지난 6월 24일, <아메리카의 밤> 상영 후 지난 달에 이어 두 번째 “오픈 토크”행사가 마련되었다. 영화에 대한 공감,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감독으로서의 어려움과 그럼에도 작업을 계속 이어가게 만드는 영화의 힘에 이르기까지, 네 감독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일부 옮긴다.

 

 

변영주(영화감독): 오늘은 김종관 감독, 이혁상 감독을 모시고, 트뤼포의 <아메리카의 밤>을 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먼저, 오늘 영화를 보면서 가장 와 닿았던 장면은 어떤 장면이었나?

김종관(영화감독): 공감도 있지만, 어쨌든 트뤼포 감독님은 저랑 사정이 많이 다르다보니 동경의 대목도 있다. 대부분은 영화를 찍는 시간이 아니라 영화를 찍기 위해서 기다리는 시간에 대한 고민이 많고, 영화를 찍을 때는 항상 찍는 순간의 즐거움이 있다. 영화에서 감독이 배우를 달래면서 하는 말이 있다. “영화는 야간 기차 같다. 네가 살아서 숨 쉴 수 있는 장소는 여기니까 도망치지 말고 여기서 어떻게든 해봐라”는 말이 와 닿았다. 영화를 찍어야한다는 강박에도 공감이 간다.

이혁상(영화감독): 계속 극영화가 아닌 다큐멘터리를 작업해왔기 때문에, 극영화 현장 분위기에 대해선 잘 모른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극영화감독들은 참 난잡하다는 느낌이었다.(웃음) 영화판에 여러 가지 일들이 많지만, 그중에도 서로 정분나는 일들이 참 많다.

이해영(영화감독): 영화를 만들 때 감독들의 악몽과 무의식, 현실적인 부분 같은 것들이 잘 표현된 것 같다. 하지만 어쨌든 그는 트뤼포니까, 프랑스에서 인정받으며 좋은 시스템에서 영화를 찍던 감독이니까, 사실은 영화 속의 고민이나 갈등이 굉장히 우아하다. 여기에 냄새로 따진다면 땀 냄새, 토한 냄새, 발 냄새 같은 걸 섞어 놓으면 충무로랑 가까워지지 않을까 싶다.(웃음)

 

변영주: 재밌게도 하필 오늘 이 영화를 보는 동안 트윗으로 메시지가 왔다. 영화감독이 되고 싶은 고등학생인데, 영화감독이 되려면 19살에는 영화의 어떤 걸 공부해야 하냐고 질문을 보내왔다. 그래서 “19살에는 영화를 공부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라고 답했다.(웃음) 오늘 이 자리에도 어쩌면 앞으로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분들도 계실 것 같다. 김종관 감독은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순간은 언제였나?

김종관: 어렸을 때 영화를 보고나면 나만의 스토리를 만들면서 공상하곤 했다. <그렘린>을 보면 <그렘린2>의 이야기를 머릿속으로 혼자 만들 거보고, <슈퍼맨>의 속편을 만들어본다든지 하는 식이었다.

이해영: 그렇게 블록버스터를 상상하고서 인디영화를 만드셨다.(웃음)

김종관: 영화를 재밌게 보는 것에서 어느 순간 영화를 만들기에 대한 욕구로 자연스럽게 옮겨가는 것 같다. 20대 초반에 필름 워크샵을 한번 했었다. 한 달 동안 워크샵에 참여하면서 어깨너머로 영화를 배웠다. 그 때 재밌게 했던 기억에서 어떻게 넘어오게 되면서, 20대 후반부터는 나의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

이해영: 영화과에 비교적 늦게 들어간 편이다.

김종관: 그 전에는 장사도 하고 이것저것 다른 일을 했었다. 그런 일들이 다 잘 안되고, 뭔가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하고 싶은 게 아니니까.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었다.

 

변영주: 이혁상 감독은 ‘연분홍치마’라는 다큐멘터리 만드는 독립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연분홍치마’의 첫 작품인 <마마상> 때부터 함께 했었나?

이혁상: 그렇다. 사실 애초에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모인 것은 아니었다. 다들 제작을 전공한 것도 아니었고, 이론과에서 비평을 공부한 사람들이었다. 세미나 팀을 시작하면서 여성주의와 섹슈얼리티와 관련된 세미나를 진행했는데, 세미나만 하다보니까 뭔가 실천적인 것도 해봐야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 ‘연분홍치마’를 만들게 되었다. 처음엔 카메라를 든다는 것 자체를 상상도 못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현장에서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실태보고서 나 자료집 같은 걸 만들게 되는데, 이걸 꼭 글로 만들 필요가 있을까, 카메라로 다큐멘터리를 찍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처음 만든 작품이 <마마상>이었다.

 

변영주: 이해영 감독은 배우랑 결혼하고 싶어서 영화감독이 됐다는 게 사실인가.(웃음)

이해영: 특별하게 할 줄 아는 건 없지만, 막연하게 나에게 있는 잡다한 재능들을 모아보면 그나마 영화판에서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감독이 돼서 유명해지면 좋은 여배우와 결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웃음) 변영주 감독은 ‘연분홍치마’와 비슷하게 다큐멘터리의 길을 걷다가 갑자기 극영화로 전환하셨는데..

변영주: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처음에는 ‘장산곶매’에 들어가서 일을 하다가 현재 영상원의 김소영 교수님과 함께 사무직 여성노동자에 관한 중편극영화의 시나리오와 촬영을 했었다. 그러니까 다큐로 시작을 했던 건 아니었다. 그리고 나서, 김동원 감독을 만나 다큐멘터리를 하게 되었는데 그렇게 만든 첫 작품이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었다. 그 영화를 만들고 나서야 갑자기 감독이 되고 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영화를 시작했다.

이해영: 김종관 감독도 말했지만 사실 영화를 찍는 시간보다는 기다리거나 준비하는 시간이 훨씬 더 길다. 스스로 영화감독으로서의 자의식이 별로 없다가, <천하장사 마돈나>가 개봉하고나서 극장의 마지막 상영 때 혼자 영화를 보는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비로소 들더라. 그때부터 ‘나는 감독이다’ , ‘감독이니까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식으로 스스로를 채근한다.

김종관: 처음에 영화를 시작했을 때는 영화가 굉장히 중요했다. 어느 정도 시기가 지나서 시작했기 때문에 스스로 배수진을 치고 뭔가 결과물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컸다. 영화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자의식은 별로 없었다.

 

 

이해영: 이혁상 감독은 앞으로의 행보에 대한 고민도 있을 것 같다.

이혁상: 고민을 하고 있는데, 당장은 <두개의 문> 때문에 워낙 정신이 없는 상황이다. 한 번 더 게이 영화를 더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큐멘터리로 한 편 정도 더 작업하고, 다큐멘터리 뿐 아닌 다른 길도 모색해보려고 한다.

변영주: 영화촬영을 하면서 가장 끔찍했던 기억이 있나? <아메리카의 밤>에서처럼, 스크립터와 배우가 사랑에 빠져서 감독은 안중에 없게 된다면, 감독 입장에서는 정말 끔찍할 것 같다.

김종관: 영화촬영 현장에선 연애가 많이 일어나는 것 같다.(웃음) 적은 예산의 영화를 해오다보니까 항상 무슨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그래서 처음의 계획대로 촬영이 진행되는 게 아니라 항상 무언가로 떼우게 되고, 그러면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허덕허덕 하는 게 제일 스트레스다.

이혁상: 다큐멘터리는 일단 주인공들과의 거리 설정이 중요하다. 특히 <종로의 기적>은 스스로도 또 한 명의 주인공으로서 등장하기 때문에, 다른 주인공들과의 거리 관계가 힘들었다. 촬영 중간에는 주인공 중의 한 명이 세상을 떠났는데, 그 때 정말 힘들었다. 2~3개월 동안 방에 틀어박혀서 악몽을 꾸고 아무것도 못할 정도였다.

이해영: 뒤늦게 고백하자면 예전에 감독을 해보니까 어떠냐는 질문에, 너무 귀찮다고 대답한 적이 있다. 그때는 농담이 아니라 진짜였다.(웃음) 감독에게 계속 모든 것을 물어오고, 감독은 계속해서 일일이 선택해야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공감했던 것이 악몽장면인데, 촬영을 하면서 실제로 악몽을 정말 많이 꾼다.

변영주: 영화현장에서는 정말 사사로운 것까지 감독에게 물어본다. 감독은 모든 걸 대답을 하면서 가야한다. 그 때 감독이 잘 대답을 못하게 되면 스탭과 감독 사이의 신뢰에 균열이 가게 된다. 언제가 선배감독으로부터 배운 요령은, 감독은 다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그럼 너는 어떤 게 더 좋은데?’ 되물어보면 된다.(웃음)

 

관객1: <아메리카의 밤>에서 배우들은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헤매고, 감독은 악몽 속에서 힘들어 할 때, 스탭들은 묵묵히 작업을 하고 있던 장면이 인상 깊었다. 영화감독이라면 아마도 ‘영화라는 게 대체 뭐길래’라는 물음을 힘들 때마다 떠올리게 될 것 같다.

이해영: 그 질문은 때로는 스스로를 무기력하게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다시 일어서게 만드는 힘이 되기도 한다. 수많은 스탭들이 고생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정말 ‘영화가 뭐길래 이들은 청춘을 다 바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찰나적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영화가 뭐길래 이렇게 터무니없는 낙관을 하게 만들고, 이렇게 나를 계속 움직이게 하는가’라는 생각이 든다. 치유와 상처가 그 안에 다 있는 것 같다. 영화의 대사 중에 영화가 삶보다 훨씬 조화롭다는 말, 우리는 영화를 해야만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얘기가 핵심인 것 같다.

 

관객2: 감독님들께서 힘들 때 마다 꼭 찾게 되는 자신만의 영화 목록이 궁금하다.

김종관: 시기마다 좀 바뀌기는 한다. 지금은 예전처럼 반복해서 보는 영화는 없는데 가끔씩 보게 되는 건 영화에서도 나왔던, 장 비고의 <라탈랑트>이다. 관객으로서 깊은 교감을 느끼게 되는 영화다.

이혁상: 새벽에 <섹스 앤 더 시티> 시리즈를 보면서 최면에 걸리듯 잠이 든다.(웃음)

변영주: <스타워즈> 시리즈와 <아라비아 로렌스>, 50~60년대 할리우드에서 대작 붐이 일어났던 시기의 대작 영화들을 찾는다.

관객3: 어떤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될 때 갖는 기준이 궁금하다

이해영: 그런 생각이 들기 까지는 123가지 정도의 이유가 있는 거 같다. (웃음) 하지만 결국 이야기의 재미라는 점이 크다.

이혁상: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와서 그런지, 사명감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무도 기록하지 않은 시간과 역사를 내가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종로의 기적>도 그런 출발에서 시작했었다. 다큐멘터리가 아니더라도, 픽션의 경우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역사를 기록하고, 시간을 기록하는 기분으로 영화를 만들고 있다.

김종관: 앞의 두 얘기와 다 연결된다. 처음에 단서처럼 오는 건 기록인 거 같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나 계절, 그때의 감정을 편지를 쓰는 느낌으로 담아낸다. 모든 단서들은 차근차근 오는 것 같다.

변영주: 어떤 이야기를 접했을 때 혼잣말처럼 메인플롯을 만들어본다. 만들어보는 순간 어떤 메인플롯이 재밌다, 그리고 그 플롯 안에서 이런 장면을 만들어 볼 수 있겠다, 이런 장면이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정리: 장지혜(관객에디터) 사진: 최용혁(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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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시네마테크 오픈토크

 

 

 

 

 

 

서울아트시네마 개관 10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시네마테크 오픈토크’의 두 번째 시간은 영화 감독들의 내밀한 삶에 관한 것입니다. 영화촬영 현장을 처음 방문한 사람들은 우리가 극장에서 보는 영화들이 어떻게 이런 무질서한 현장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지 의아해하곤 합니다. 프랑수아 트뤼포는 <아메리카의 밤>에서 그런 영화촬영 현장의 내막을 보여주며 그 장소가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서로 입을 맞추면서 시간을 보내는 영화의 세계’라 말합니다. 영화 작업은 스크린의 세계와는 다른 또 하나의 세계입니다. 종종 영화 감독들은 배의 선장이나 비행기의 조종사로 비유되곤 합니다. 그들이 어떤 항로로 진전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그러나 관객으로서의 우리는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게다가 항해의 흥분과 기쁨이 무엇인지 가늠하기 쉽지 않습니다. 트뤼포는 영화는 야간 열차처럼 그저 전진하는 것이며 영화 감독들은 결국 일 속에서, 영화라는 작업에서 행복을 찾아야 하는 운명이라 말합니다. 영화 감독의 삶은 그들의 영화보다 훨씬 가려져 있고, 그렇기에 두 시간 동안 보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반년, 혹은 수년의 시간을 어떻게 소진하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6월의 오픈토크는 스크린의 뒤에 숨겨진 영화 감독들의 삶의 내막을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입니다. 그 비밀스런 자리에 많은 분들을 초대합니다.

 

일시: 6월 24일(일) 14:00 <아메리카의 밤> 상영후

장소: 시네마테크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

진행: 변영주 감독(<화차>), 이해영 감독(<페스티벌>)

초대손님: 김종관 감독(<조금만 더 가까이>), 이혁상 감독(<종로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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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트시네마 개관 10주년 기념 시네마테크 오픈 토크 지상중계

 

지난 5월 17일 저녁,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의 개관 10주년을 기념한 ‘시네마테크 오픈 토크’에 참여하기 위한 5인의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았다. “서울에 시네마테크를 허하라! - 내가 사랑한 영화들, 극장의 추억”이란 주제로 자유로운 대화를 나누는 이날 행사 진행은 시네마테크의 오랜 친구인 변영주 감독과 이해영이 감독이 맡았고 초대손님으로 진행자의 절친인 김태용 감독을 비롯해 시인 심보선 씨, 그리고 뮤지션 정바비 씨가 함께 했다. 1부 프로그램으로 파리의 시네마테크를 최초로 설립한 앙리 랑글루아를 다룬 다큐, <시티즌 랑글루아>가 상영되었고, 본격 오픈 토크는 상영 후에 이어졌다. 평소 아트시네마의 경직되고 무거운 분위기를 넘어서 자유롭고 장난스러운 농담과 영화관에 대한 애정, 소소한 추억이 오가며 관객들과 함께 소통할 수 있었던 그 시간의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변영주(영화감독): 오늘 진행을 맡은 저와 메인 MC를 맡은, 최근 방송인으로 거듭나고 있는 이해영 감독 외에 특별히 초대손님으로 2~30대의 젊은 여성들의 심장을 두드리는 뮤지션, 정바비님과 심보선 시인님, 그리고 김태용 감독님을 모시고 시네마테크 개관 10주년 기념 오픈 토크를 본격적으로 시작해보도록 하겠다.

이해영(영화감독): 우선 1부 행사로 <시티즌 랑글루아>를 상영했는데 다큐 다 보시고 나서 어떠셨는지 소감부터 듣고 싶다.

정바비(가수, 작곡가): 영화에 고전 영화 장면이 시의 적절하게 삽입되면서 영화 만드는 분들에 대한 애정이 많이 묻어났다. 만약 내가 영화인이라면 이 메타적인 작품에 감동 받으면서 봤을 것 같다.

심보선(시인, 사회학자): 저도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다녔는데, 오늘 랑글루아에 대한 영화를 보니까 총을 들고 프린트를 지키는 애정이 내 영화의 애정에 비할 바는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태용(영화감독):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영화가 사실 가치가 있어서 좋아 한다기 보단, 영화를 좋아하게 돼서 가치가 생기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만약 저 분이 영화가 아닌 시나 나무를 만났어도 소중히 하지 않았을까 싶다. 자기가 좋아하는 걸 지키고,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하는 열정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이해영: 영화 속 ‘시간은 곧 공간이다’라는 내레이션이 인상적이었다. 반대로 서울에는 시간을 담고 있는 공간들이 철거가 진행되면서 많이 사라졌는데 지금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고 생각한다. 변영주 감독님은 많이 괴로하시면서 보시던데.

변영주: 괴로워하지 않고 재밌게 봤다. 영화를 공부하시는 분들이라면 영화 속 인물들이 어디선가 들은 인물들이지 않나. 영화를 열심히 보던 시기에 힘들게 보았던 작품들이 나오면서 두근거린 느낌도 나서 좋았다. 이 자리는 사실 서울아트시네마의 김성욱 프로그래머가 원했던 것보다 대단한 자리였다. 초대 손님들도 많고 저희가 축제처럼 관객 분들을 무대로 모시면 애정에 가득 차서 시네마테크 나가면서 관객회원으로 등록 하게 하고 싶었다. 한 마디로 부흥회 느낌(웃음), 어떻게든 사람들의 마음을 뜨겁게 데울 수 있었음 했는데, 영화로 데운 것 같다. 심보선 시인에게 영화를 어찌 사랑하게 되셨는지 묻고 싶다.

심보선: 제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영화관에 데려갔고, 어두운 곳에서 아버지가 저를 데려 가셨는데 눈앞에서 스크린이 환한 빛처럼 펼쳐졌다. 그게 <메리 포핀스>였다. 영화라는 매직을 어린 아이가 처음 경험한 것. 어두워서 무서워하다가 눈앞에서 환상적인 장면이 펼쳐지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경이로워하며 봤었다.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환상적 사건으로 영화적 첫 경험은 마술이었다. 부모님이 영화를 좋아하셔서 TV의 영화 프로그램 있으면 보여줬다.

이해영: 처음 영화가 <메리 포핀스>라니 참 시적이다. 정바비씨는 어땠는지?

정바비: 저는 아트시네마에서 영화를 많이 봤는데, 가장 좋아하는 건 음악이었고 영화는 엔터테이먼트였다. 2004년 대학생 시기에 아트시네마의 에른스트 루비치 회고전을 교수님이 보라고 추천하셔서 보러왔다. 그레타 가르보가 처음으로 웃는 스파이 영화 <니노치카>였는데 극장에서 가장 많이 울었던 영화였다. 이를 계기로 영화에 대한 생각들과 감정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폭이 넓어졌다. 그래서 집에서 팜플렛을 찾아봤는데...(2004년 11월 에른스트 루비치전 팜플렛 꺼내며) 재밌는 말이 있었다. 트뤼포가 말하길 ‘예술가는 두 종류가 있는데 관객이나 독자 없이도 잘 할 수 있는 예술가가 있다면 반대로 읽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보람을 느낄 수가 없는 감독이 있다. 루비치는 후자에 속하는 감독이다’고 했다. 저도 후자에 속하는 사람이라 루비치가 와 닿았다.

 

 

이해영: 김태용 감독님은 영화와 첫 사랑에 빠진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김태용: 처음 본 영화는 <킹콩>으로, 초등학교 1학년 때 사촌형이 시내 나가서 여자 친구랑 영화 보는데 데리고 가게 된 거다. 그 때 기억에 영화는 너무 무서웠다. 지금 보면 그렇게 많이 무섭진 않지만 신기하고 마술적인 느낌이었다. 어리석게도 다큐와 극영화의 구분도 못했다. 근데 계속 영화를 보고 싶은 생각은 안했고 시네필로 자라지 못했다. 대학교 때 극장의 경험이 영화를 하게 만든 건 아니고, 선배들이 영화를 찍는 현장에서 조연출로 일했다. 연출부 일을 돕는데 신비한 경험이었다. 카메라로 영화를 찍고, 현상을 하는 메카니즘에 빠져서 영화를 하고 싶어 의식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나는 비디오 세대로, 문화학교 서울에서 비디오테이프를 몇 번이고 복사한 저화질의 영상을 보면서 영화를 꿈꿨다.

이해영: 변감독님은 어떠신지? 맞먹고 막대하긴 하는데 저보다 엄청난 선배님이시다. 대화를 하다보면 영화 관련 서적에서 본 것 같은 역사적 이야기를 술자리에서 겸상하면서 들을 기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그렇게 들을 이야기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변영주: 방금 영화를 보면서 생각했다. 1992년 93년 사이에서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사는 것>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 다큐멘터리가 뭔지 모르고 만들었다. 첫 시사회에서 영화를 본 어떤 누구보다 이 영화가 끔찍하다는 걸 알았다. 그 뒤 정말로 감독이 되고 싶어졌다고 결심했다. 문화학교 서울 이전에는 유학한 선배들이 지령을 받은 것처럼 비디오를 카피해서 소포로 보내서 복사본들을 계속 만들었다. 저는 <미치광의 피에로>가 흑백영화인줄 알았을 정도였다. 근데 일본의 다큐 영화제에서 초청해서 많은 다큐를 접했다. 그러면서 영화사적인 작품들 중 내가 본 게 없구나. 과연 나는 감독이 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결혼식 비디오 찍고 알바를 해서 돈을 모아 파리로 갔다. 파리스코프를 사서 영화를 하루에 8편에서 9편 보러 다녔다. 아프리카 영화를 불어자막으로 볼 때는 마음대로 줄거리 상상을 하면서 봤다. 두 달 동안 미치도록 영화를 보고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이젠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낮은 목소리>를 만들었다. 지금은 영화제목을 기억 못하지만, 그렇게 많은 소극장 시네마테크들에서 다양한 영화들 중 뭘 봐야할지 고민하고 아쉬워했다. 그 시간이 제가 아직까지도 영화를 만들고 있는 가장 큰 힘 중에 하나다. 만약에 그 시간이 없었다면 <낮은 목소리> 만들 때 나의 부모님들이 누구인지 모르고 만들었을 거다. 이 감독님은 감독이 되고 싶다고 결심했던 시기가 언제인지?

이해영: 일단 영화에 사랑에 빠지게 된 건, 80년대 초등학교 때 MTV를 보면 전 세계 영상언어가 만국 공통어일 때, 처음 극장에서 본 영화가 <E.T>다. 어려운 영화는 아니지만 어려웠다. 다시 극장에서 필름으로 보다가 영사사고가 일어나서 중간에 끊겼었다. 영화가 마법 같다고 다들 얘기했지만 영화의 물리적인 면을 깨달았다. 청소년기에는 홍콩영화 전성기라 동시상영관에서 <천녀유혼>, <첩혈쌍웅>, <영웅본색> 을 수십 번 봤다. 그러면서 영화랑 친해졌다. 80년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들도 좋아했는데, 지금보다 그 시기의 영화들 이 창작할 때도 많은 자극을 준다. 그러면서 특별히 영화기 멀리 있거나 어렵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영화를 해볼까 마음먹을 때도 큰 결단이 필요하진 않았다. 김 감독님과 반대로 요즘 저는 영화가 무섭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극장에 관한 추억이라면, 동시상영관 의 풍경은 엄청났다. 콘서트 장에 온 것처럼 영화에 열광하면서 봤다. 아이돌 콘서트에 온 것 같은 뜨거운 분위기가 영화가 누군가를 열광시킬 수 있구나하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제는 극장에 관한 인상적인 기억에 대해 얘기를 나눠보고 싶다. 정바비씨부터 말씀해 주신다면.

 

 

정바비: 아트시네마가 박물관이거나 성스러운 공간이지만, 평소에 영화하시는 분들이 젠체하는 느낌을 받는다. 데이비드 린의 <밀회>를 보는데, 한 아저씨의 징글벨 멜로디의 벨소리가 울렸다. 세 번 넘게 흘러나오는데도 아무도 저지를 안 해서 결국 그 아저씨에게로 가 핸드폰을 꺼내서 벨소리를 껐다. 그 아저씨는 약간 취한채로 깨어 있어서 공포스러웠다.

심보선: 저는 영화를 혼자 많이 보러 다녔는데, 극장에서 담배를 피면서 군복을 입고 보니 누가 뭐라 하지 않았다. 저한테는 군대에 있을 때나 혹은 대학교 다닐 때도 유일한 문화생활이었다. 사실은 그 때는 영화 보러 혼자 가는 건 이상하게 봤다. 요새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런 공간은 혼자 편하게 보고 쏙 빠져나올 수 있는 공간이다. 멀티플렉스는 이벤트나 데이트 공간으로 혼자 가려면 용기를 내야한다.

이해영: 멀티플렉스는 고기 집에 가서 혼자 삼겹살 먹는 느낌이고, 여기는 기사식당 같다.

변영주: 전 멀티플렉스도 혼자 자주 간다.

김태용: 저도 극장 혼자 많이 간다. 혼자 가서 영화 보는 것 좋아하는 편이고. 좀 다른 이야긴지만 <가족의 탄생>을 개봉하고 그 영화를 곧 내릴 것 같아서 극장에 혼자 가서 봤다. 너무 촌스럽게 마지막 크레딧 올라가면서 눈물이 났다. 사람들 이름 올라가면서 이 영화가 내린다는 생각에 뭉클했다. 불 켜지고 혼자 울고 있는데 뒤에서 당시 씨네 21 기자 분이 나를 알아보더라. ‘감독님 뭐하세요, 우세요? 자기 영화 보고 우세요?’ 묻는데 변명할 수 없고 부끄러워서 도망갔다. (웃음)

변영주: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개봉한 날 낮에 <화차>를 봤다. 제 앞에 계시는 아저씨가 전화를 받으셔서 영화가 아닌 그 분을 보게 되었다. 가서 말을 할까 말까 고민하면서 영화 중간 이후를 그 분 때문에 보질 못했고, 끝나고 보니 극장에서 일하시는 분이신데 ‘감독님이 첫날 영화 보러 왔네?’라고 해서 황당했다.

김태용: 99년에 <여고괴담 2>로 데뷔했을 때 멀티플렉스가 없어서 제작진이 극장에서 영화를 제대로 상영하는지 돌아가면서 체크했다. 영등포에 명화극장 밑에 명화 나이트가 있는데, 극장가서 보니까 거의 대사도 안 들릴 정도로 작은 소리로 틀어 놓았다. 영사기사에게 말씀드렸는데 소리를 크게 틀어놓으면 나이트에서 불평이 온다고 얘기했다.

이해영: 지금은 그런 일들이 많다. 요즘은 멀티플렉스라 상영관들 환경이 통제가 잘된다. <천하장사 마돈나>를 볼 때 사운드가 너무 안 들려 영사실에 올라갔다. 소리가 너무 작다고 얘기했는데 결국 싸운 적 있다. 무대 인사를 하러 부산에 갔는데, 덕환이랑 기다리다가 몰래 들어가 반응을 봤다. 한 중년 남자 분께서 덕환이 립스틱 바르는 장면에서 아저씨가 갑자기 ‘뭐꼬 변태아이가!’라며 화를 내서 조용히 나왔다.

 

변영주: 시간이 많지 않으니 이제 관객 분들과 이야기를 나눠야 될 것 같다. 나는 영화와 이렇게 사랑에 빠졌다 얘기하고 싶으신 분은 손들고 이야기를 해주시기 바란다.

관객1: 저는 48시간 국제영화제를 준비하고 있는데 행사가 있어서 보게 되었다. 전 세계 107개 도시에서 열리는 영화제인데, 48시간 동안 시나리오 작성해서 영화를 만드는 게임이다. 올해 서울에서도 준비하고 있고, 10월 19일에 시작하여 누구나 출전할 수 있다. 시작하기 15분 전에 주인공 이름, 직업, 들어 가야하는 대사와 소품을 주고 촬영 직전에 장르를 추첨해서 맞춰서 영화를 제작하는 것이다.

이해영: 영화가 순발력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보는데. 순발력이 왜 가장 중요한 기준인지?

관객1: 순발력을 측정한다기보다는 잠시 쉬고 있는 감독님들에게 창의력을 발휘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행사다.

변영주: 지금까지 영화에 대한 사랑과 극장의 추억 대해 얘기해보았으니 다음은 관객의 입장으로서 개선되어야할 점과 시도하면 좋을 것 같은 프로그램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는지도 듣고 싶다.

정바비: 개인적인 로망으로, 같이 영화를 봤던 여성분과 또 다른 장소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만남, 애프터에 대한 판타지다. 자연스러운 만남을 유도하는 장치나 테크닉이 필요한 것 같다. 영화관에서 우연히 만난 분과 잘 된 경우 있지 않는지?

관객2: 관객 분이 인터뷰를 할 때 아트시네마에서 연인을 만났고 다시 여기서 헤어지셨다고, 그래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곳은 이 아트시네마 밖에 없다고 말씀을 했었다.

이해영: 몇몇 대도시들의 시네마테크 전용관에 가면 라운지가 잘되어있어서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분위기다. 건전하게 영화에 대해서 토크가 가능하고 네트워크가 관객들끼리 생길 수 있는 환경인데, 아트시네마 로비에 있다 보면 앞의 공간이 잘 활용이 안 되는 것 같다.

변영주: 정바비씨의 로망이 시네마테크에게 필요한 것 같다. 슬쩍 맞은편에 앉아서 영화에 대한 질문을 하면서 같이 밥을 먹으러 가는, 그런 애프터가 가능한 공간이 시네마테크에 꼭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심보선: 얘기를 듣다보니까 정바비씨에게 얘기하고 싶은 장면이 있다. 극장 앞에서 친구랑 커피 숍에 앉아있는데 밖에 비가 오고, 할머니가 곱게 단장을 하시고 우산을 쓰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극장 앞을 계속 서성이기 시작하는데 마치 스텝을 밟고 있는 느낌이었다. 영화가 시작했는데도 친구랑 같이 그 할머니를 걱정했었다.

정바비: 가사가 될 만 한 이야기인 것 같다. 사실 심보선 시인님의 팬이다. 시낭송회에 예전에 간 적이 있었는데, 시 낭송회는 지금 분위기보다 더 많이 무겁다. 좀 힘들었던 경험으로 바로 앞에 앉아있던 남자분이 시낭송회에서 빵을 꺼내 먹었다. 그 옆에 있던 일행분이 움직여서 말리는 줄 알았더니 음료수를 꺼내서 주었다. 순간 너무 웃겨서 손톱으로 누르고, 혀 깨물고 죽은 사람 생각하고 그랬는데...이 자리에서 말씀 드리고 싶었다.

 

이해영: 심 시인님은 극장에 바라는 게 없으신지?

심보선: 비슷한데, 학교 다닐 때 씨네꼼이라는 영화동아리를 만들었었다. 같이 한 황동엽이라는 친구가 그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감독의 길로 들어섰고 <도가니>를 만들었다. 그때 씨네꼼의 목표는 영화를 보고 같이 얘기하고 공부하자였다. 영화를 통해서 우정을 만드는 것이었다. 얼마 전에 홈커밍 데이라고 해서 갔는데 영화를 보고 함께 나누는 공동체적 문화가 깨졌다. 사실 공간적으로 바깥에 테이블을 놓고 배치한다고 해서 될까 의문이다. 요새만큼 토크가 많은 시대는 없는 것 같다. 그런데 토론자들은 무대 위에, 관객들은 아래에, 객석은 꽉차있지만 교류가 없는 게 전반적인 경향이다. 그것에 대해 근본적으로 고민을 해야할 것 같다. 다른 장르들도 마찬가지지만. 그런 고민을 이 공간이 좀 해줬으면 좋겠다.

변영주: 공간이 만들어지는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이 공감하고 이야기 나누는 문화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셨는데, 두 분이 매우 중요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이해영: 시네마테크 전용관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굉장히 많이 들으셨을 거다. 정책 문제와 영화인들 참여가 문제지만, 사실 교류가 가능한 가상의 공간에 대한 갈증을 공유하는 것을 잊지 않을 거다. 이제 자리를 마감해야 할 것 같다. 끝으로 앞으로의 계획이나 자리를 마무리하면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한 말씀 부탁한다.

김태용: 아까 말처럼 시네마테크 분위기가 무거운데 이 분위기를 좋아하는 편이다. 다른 극장에서는 혼자 영화보고 나오지만 여기 시네마테크에서는 관객들을 한번 보게 되는 습관을 보게 된다. 그 영화를 보러 오는 사람들끼리의 동질감을 느낀다. 10주년을 축하하고 이후 10주년을 기획하는 자리인데 왜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가에 대해 많은걸 느끼게 해서 좋았다. 현재 시나리오를 쓰고 있지만 언제일지 기약은 없다.

정바비: 언니네 이발관 1, 2집에서부터 줄리아 하트, 바비빌, 가을방학까지 활동하고 있는데, 더 많은 교류를 했으면 좋겠다. 아까 그 사연을 보내주시면 참고하겠다.

심보선: 우울한 상황은 두 가지, 시를 못 쓴지 너무 오래됐거나 혹은 영화를 못 본지 오래되었을 때다. 비록 모든 관객이 아는 친구는 아니지만 좋은 영화에 대해서 같이 감동하고, 함께 웃을 수 있는 공간이 유지되었으면 좋겠다. 세분 감독님한테 좋은 영화 계속 만들어달라고 부탁드리고 싶다. 영화 없으면 저는 죽는다.

 

김태용: 영화 만들고 영화를 보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몸담은 곳이 생각보다 좋은 곳이라는 걸 극장에서 느낀다. 그 점에서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극장에서 많이 뵈었으면 좋겠다.

이해영: 저도 영화에 대한 사랑과 열정 식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변영주: 마무리를 하자면, 서울아트시네마가 시네마테크로서 좌석수가 작아져도 상관없으니 보다 더 많은 분들이 찾아오고 토론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부에서 시네마테크를 안정적으로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오늘을 시작으로 아트시네마가 10주년을 넘어서서 어떻게 성장하고 살아남을 수 있을지 고민할 수 있을 것 같다. 5월 30일부터 인디포럼 영화제가 시작된다. 문득 랑글루아가 해임되어진 뒤 상황들이 흡사 6년 전 정부가 새로 만들어지고 문화부 장관이 바뀌면서 발생한 일들이 떠올랐다. 인디포럼은 소송비도 모을 정도로 어려운 상황인데, 관객 분들이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은 2012년도 독립영화가 어떤지 열심히 봐주는 거다. 롯데시네마 피카디리에서 하니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다. 아무튼 어느 순간 관객과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어떤 정책이 와도 신경 안 쓸 수 있고, 올바른 문화들이 만들어질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정리: 윤서연(관객 에디터) | 사진: 최미연(자원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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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주 감독과 배우 김민희가 이번 영화제에서 관객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추천한 작품은 로만 폴란스키의 <차이나타운>이다. 변영주 감독은 최근 개봉예정인 <화차>의 영화적 레퍼런스 중의 하나가 이 영화라 말했는데, 무엇보다 두 편의 영화에 시대의 공기가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시네토크는 자연스럽게 <차이나타운>과 <화차>를 오가며 진행되었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더 많은 영화들과 만나고 싶다는 김민희와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의 시네마테크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변영주 감독님의 말이 이어졌고, 시네토크가 끝나갈 즈음에는 <화차>의 초대권 행사로 많은 이들이 즐거워했다. 배우와 감독의 기운 때문이었을까. 당첨된 사람들은 신기하게도 전부 여성들이었다.


허남웅(영화칼럼니스트): <차이나타운>을 추천했는데, 최근 개봉할 예정인 <화차>를 만들 때 참고를 했다고 들었다. 어떤 관련이 있나?
변영주(영화감독): 미스터리 영화 준비 중 이 감독의 최근작인 <유령작가>를 보았다. 거장이 '너네는 스릴러 만드는 게 어렵니? 이렇게 쉽게 찍을 수 있는데' 하며 만든 것 같았다.(웃음) <화차>라는 영화를 준비하면서 촬영감독한테 습한 느낌을 강조하는 것이 미스터리를 잘 느끼게 해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얘기했다. <차이나타운>은 우리 시대에 어울린다고 느껴져서 선택했다. 재산이 공유화되면서 자본가들이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어떤 음모를 꾸미는가. 붕괴 이후의 행복과 욕망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에 <화차>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서울아트시네마가 잘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지 우리 영화의 홍보를 위한 마음은 없다. (좌중 폭소)

허남웅: 김민희 배우님께서는 알쏭달쏭한 연기를 좋아하시고, <화차>에서도 그런 연기를 했다고 했는데, 이 작품에서 페이 더너웨이를 어떻게 보셨는지.
김민희(배우): 감독님이 이 영화를 보자고 해서 재밌게 봤다. 미스터리를 끌어갈 수 있는 집중력은 모호한 연기력에서 나온다고 봤다. 아버지에게 총을 겨누는 장면과 캐서린에 대한 비밀을 털어놓는 대사가 인상 깊었다.

허남웅: 이 영화에서 “잊어버려, 여긴 차이나타운이야”라는 마지막 대사가 유명하다. 관객들이 보기엔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는데, 감독님은 마지막 장면을 어떻게 봤는지?
변영주: 차이나타운이 이민자들의 거주지, 관광지, 스타를 배출한 극장들, 이런 요소들이 섞이면서 미국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 후반부에서 '재산이 얼마나 있나요,' '천만 달러인데 왜,' '대체 뭘 더 가지려고 하나요?' '미래를 위해서 투자해야지.' 라는 그 대사가 자본을 상징하는 것 같다. 누군가는 불행해지고 행복해지는 악귀의 공간이 바로 차이나타운이다.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나에게는 마지막 대사보다 기티스가 아버지에게 이야기하는 대사가 영화하고 더 가깝게 느껴져서 인상적이었다.

허남웅: 느와르 영화를 좋아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느와르의 어떤 요소들이 감독님을 매혹시키는지?
변영주: <차이나타운>은 전형적인 팜므 파탈의 연기인데, <화차>의 김민희는 좀 다르게 생활 밀착형 느낌이 들 거다. 많은 이들의 착각이지만 스타일은 멋있는 외관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시대의 공기를 어떻게 담아내는가에 관한 방법론이다. BBC의 드라마 셜록이 기쁨을 주는 건 그것이 우리가 안 만났으면 하는 범죄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범죄가 사람이 나빠서라고 단순히 치부하는 게 아니라 이 범죄를 만드는 욕망은 어디서 나왔는지를 보여준다. 이런 장르가 시대의 담론을 제대로 읽지 않고 단순히 멋진 외관에만 것에만 집중하면 함정에 빠지는 것 같다.


관객1: 로만 폴란스키가 히치콕 감독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들었다. 모든 스릴러 영화에선 히치콕 영화가 보이는데, 감독님도 히치콕에 영향을 받았는지 궁금하다. 또 김민희씨의 모호하고 멍한 연기를 좋아하는데, 연기할 때 실제로 어떻게 몰입하시는지 질문을 드리고 싶다.
김민희: 내가 할 수 있는 걸 다 보여주는 연기보다 어느 정도 감추고 모호하게 하는 연기를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그런 연기를 했을 때 관객 분들이 스스로 채우고 생각할 수 있는 빈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 같다.
변영주: 김민희는 자기를 규정짓지 않는 배우이다. 보통 작업할 때 할 수 있는 최대치를 그어놓는데, 그게 아니니까 깊어지기도 하고 방향을 잃기도 한다. 오히려 만족감을 향해 가는 길이 길어진다. 공부를 안 하는 천재처럼, 계산되지 않은 번뜩이는 재능이 보여 무서웠다. 내가 망치거나 혹은 발전시킬지도 모른다는 행복한 두려움이 있었다. 사실 <화차>의 현장을 되돌아보면 미치도록 행복했는데, 이게 모두 김민희 덕분이었다. 히치콕의 영향력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자면, 영향 받은 건 히치콕 뿐 만은 아니다. 결국 나이 들면 새로운 영화를 보기 보단 그동안 보았던 영화를 다시 본다. 명장면은 그 배우와 그 동네와 그 대사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그 쇼트가 다른 배우나 다른 공간에서 하면 의미가 없어진다. 결국 어떤 배우와 어떤 이야기를 어떤 공간에서 찍는가의 문제이다. 영화 볼 때 옛날엔 이 사람은 어떤 식으로 찍었는가를 생각했는데, 요즘은 이 사람은 이 시대를 왜 이렇게 본 걸까라고 생각한다.

관객2: 김민희 씨가 등장한 <화차>의 예고편을 봤다. 모호한 연기였다지만 오히려 소설보다 김민희 씨 연기가 강하게 와 닿았다. 영화를 준비하면서 롤 모델의 캐릭터가 있었는지.
김민희: 뛰어가는 장면에서의 선영의 마음이 영화에서 가장 센 부분이라서 아마도 강렬했다고 느낀 것 같다. 롤 모델은 아니지만, <블랙 스완>의 나탈리 포트만의 연기와 <팩토리 걸>의 시에나 밀러가 선영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 두 영화를 다시 찾아봤다.

허남웅: 로만 폴란스키와 페이 더너웨이는 둘 다 괴짜라서 많이 부딪혔다고 들었다. 마지막 장면을 찍을 때 더너웨이가 소변을 보고 싶다고 얘기했으나 감독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고, 결국 여배우가 종이컵에다 오줌을 누어 감독에게 뿌렸다는 일화가 있다. 결국 그의 연출 방법이었다고는 하는데, 감독님은 현장에서 작업할 때 어떤 편인지.
변영주: 접근법은 배우마다 다르다. 민희씨는 자기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나를 왜 좋아하는지에만 관심이 있다. 민희랑 작업하면서 관객이 너에게 연민을 느끼면 안되니 사악한 마음을 갖고 욕망을 표출하라고 얘기했다. 어떤 배우는 심하게 준비해오는데, 그러면 딴 생각을 하면서 연기를 하게 한다. 영화에서 메소드 연기를 안 믿는다. 영화 전체의 연기가 아닌 쇼트의 연기가 영화 연기다. 우리는 쇼트를 찍으니까. 사람들에게 공감하는 순간이 진짜다. 그 캐릭터에 대해서 진정성을 준비해서 가는 건 자기기만이다. 진정성은 절대적이지 못해서 나와 세계관이 일치하는 사람들만 이해하기 때문이다.
김민희: 배우는 연기든 외모든 간에 관객을 사로잡고 전달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혼자 진정성을 가지고 연기해도 전달이 안 되면 좋은 배우라고 할 수 없다. <화차>를 하면서 현장에서 갑자기 생겨나는 에너지 때문에 즐거웠다. 오늘은 내가 이 정도해야지라고 생각하지만 거기에 얽매여 있지 않다. 그게 깨졌을 때 나온 새로운 연기가 더 좋다.



관객3: 우디 앨런은 입양인이었던 한국 여자와 결혼했고, 로만 폴란스키는 아내의 살해를 목격했고 아동 성폭행으로 물의를 일으켰는데, 이 두 사람의 심리가 이미지에서 비슷하게 나타났는지 묻고 싶다. 또, 영화를 선택하는 결정권은 여자에게 있다고 보는데 여자 감독으로써 여자 관객을 어떻게 끌어들일지 고민하는지 궁금하다.
변영주: 사생활 적으로는 엮이지만, 두 작가를 엮어본 적이 없다. 우디 앨런 영화는 관객으로서는 좋아하나 그처럼 만들고 싶지는 않다. 질문을 바꿔보면 감독이 자기의 삶을 결정한다고 본다. 영화보다 내가 어떻게 사는지, 내가 세상과 어떤 관계를 형성하며, 나의 세계관을 배신하지 않고 올바르게 사는가가 중요하다. 나를 믿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에게 인간이 저렇게 변할 수 있냐는 말은 요즘 네 영화가 별로라는 말보다 치명적이다. 영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단하다. 그리고 아직도, 우리나라도 결국 여자 친구가 선택하는 영화를 보는지? 예전에 비하면 많이 달라졌다고 본다. 영화를 만들 때 어떻게 하면 관객들이 매혹 당하는지에 관해 깊게 고민하는 편은 아니다. 그 동안 여자건 남자건 관객 수는 적었다. 흥행 영화가 뭔지 모르겠다. <화차>라는 영화가 흥행한 후에 물어봐도 모를 거다. 그래도 <발레 교습소>가 사랑받지 못했던 이유와 부족한 점은 내가 가장 많이 고민하니까 잘 안다. 봉준호는 흥행 영화가 뭔지 알까?(웃음) 하고 싶은 것들을 향해 전진하면서, 관객들과 코드가 맞으면 행복해질 거고 아님 집에 가서 우는 거다.

관객4: <화차>의 예고편을 봤는데, 사라진 김민희 씨를 찾는 사촌형인 형사가 잭 니콜슨이 맡은 탐정 캐릭터와 유사하다고 느꼈다.
변영주: 어느 경우에도 영화의 이미지만 차용해서 설명하면 실패한다. <화차>의 원작은 90년대 일본 버블 경제 붕괴 후 형사가 사회 문제로 사람들이 불행한 거고, 개인 파산을 신청하라는 이야기다. <화차>는 이와 다르게 행복해지고 싶다는 이유 하나로 범죄를 저지른 여자의 이야기이다. 2010년 서울에서는 욕망과 행복의 느낌을 줘야할 것 같아서 원작의 지혜로운 형사를 버렸다. 형사 역을 맡은 조성하는 찌질한 느낌의 형사이다. 열심히 살면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남자가 그녀를 찾으며 다른 세상을 알게 된다. 아마 제 3자에 의해 설명되어지는 캐릭터를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창조해냈으니까 김민희가 힘들었을 것이다.


허남웅: 마지막으로 두 분의 소감을 듣고 싶다.
김민희: 초대권을 더 드리고 싶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좋은 만남을 가졌으면 좋겠다. <화차>는 3월 8일날 개봉하는데, 감독님 최고의 작품이 탄생한 것 같다. 많은 기대와 관심을 가져달라.
변영주: 이 영화제를 개최하는 이유는 시네마테크가 없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 것 같다. 한국 영화의 극장 점유율이 48%라고 들었는데, 이게 한국영화에 도움이 되는 일인지 고민했다. 전주 국제 영화제에서 지역성을 강조하는 독립영화를 많이 봤는데, 알렉산더 페인의 <디센던트>처럼 지역성이 잘 드러난 영화를 본 적이 없다. 다양한 영화를 보는 게 한국영화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들이 영화를 추천하는 이유는 관객들이 찾아와주길 바라서이다. 관객들이 결국엔 시네마테크를 지키는 사람들이다. 서울아트시네마를 사랑하는 길은 회원가입을 해서 이번 달에 서울아트시네마의 프로그램이 적힌 팜플랫을 받아보는 거다. 여기가 서울에서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영혼을 살찌울 수 있는 공간이 된다면, 내년에는 더 많은 감독과 배우들과 함께 좋은 영화를 만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

정리: 윤서연(관객 에디터) 사진: 이호규(자원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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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LA, 사립탐정 제이크 기티스(잭 니콜슨)는 묘령의 여인으로부터 수력 자원부의 수석 엔지니어인 남편 홀리스 멀웨이의 불륜을 조사해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제이크는 홀리스가 젊은 아가씨와 데이트하는 장면을 포착하고, 그가 찍은 사진은 신문에 대서특필된다. 당시 홀리스는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발생한 LA의 물 전쟁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얼마 후 홀리스의 진짜 아내인 에블린(페이 더너웨이)이 등장하면서, 제이크는 자신의 의뢰인이 가짜였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홀리스가 익사체로 발견된다. 자기도 모르게 함정에 빠졌다고 생각한 제이크는 홀리스의 죽음에 의문을 품고, 곧 에블린과 그녀의 아버지 노아(존 휴스턴)가 각기 다른 제안을 해온다.

실상 이 영화에서 '차이나타운'은 엔딩 신에만 단 한번 등장한다. 그러나 영화 내내 주인공들 사이에서 주문처럼 맴돌며 불길한 기억을 환기시킨다. 제이크는 예전에 차이나타운에서 근무하던 경찰이었고, 거기서 어떤 여자를 보호하려다 실패한 다음 경찰 일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평범한 불륜이라고만 생각했던 홀리스 멀웨이 사건을 통해 다시 한 번 과거의 악몽이 자신을 향해 촉수를 뻗쳐오고 있음을 직감한다. 그는 거기서부터 애써 달아나려 하지만 실패한다. "Cherchez la Femme(그 여자를 찾아내)." 모든 느와르 소설은 이 문구에서 시작한다. <차이나타운>도 마찬가지다. 영화엔 실체로서 등장하지 않는 제이크의 옛 여자, 홀리스와 함께 있던 젊은 여인, 에블린. 제이크는 영화 내내 이 세 명의 여성을 뒤쫓지만 그녀들은 자꾸만 미끄러져 달아난다. 그리고 가까스로 그녀들의 실체를 잡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그는 자기파멸의 지옥을 마주하고 있음을, 자신이 다시 한 번 차이나타운에 와있음을 깨닫게 된다. 누군가가 (혹은 무엇이) 보이는 대로 믿지 마라. 적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고, 과거는 되풀이된다. 추적의 끝은 언제나 시작점으로 귀환한다. 그 모든 비밀이 밝혀지더라도, 끝에 이르러선 힘없이 중얼거릴 수밖에 없다. "잊어버려. 여긴 차이나타운이야."


로만 폴란스키는 미국에서 만든 마지막 영화 <차이나타운>을 통해,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긴 그 어떤 영화들보다 더 챈들러적인 본질을 꿰뚫는 걸작을 완성했다. 모든 대사와 쇼트들이 영화의 충격적인 반전을 향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잭 니콜슨과 페이 더너웨이는 산산조각나기 일보 직전의 표정으로 LA의 가뭄 속을 헤맨다. 수수께끼는 단순하지 않은 방식으로 증폭되며 인과응보의 해결을 조롱하고, 오만하기 짝이 없는 창조주들의 죄악은 사막 위의 환영과도 같은 도시 LA에 피비린내 나는 악취를 심어놓는다. 느와르의 교과서라 불리는 <차이나타운>의 마지막 대사, 통렬한 비극을 단 한 문장으로 압축한 "잊어버려, 제이크. 여긴 차이나타운이야"AFI에서 선정한 '미국영화 역사상 가장 유명한 대사 100'에서 74위를 차지했다.

글|김용언 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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