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30일 저녁, 이탈리아 공포 영화의 거장 마리오 바바의 <사탄의 가면> 상영 후 ‘마리오 바바의 공포의 세계’라는 주제로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의 강연이 이어졌다. 영화의 한 장면 한 장면이 인용된 강연은 마리오 바바가 공포영화 장르에서 창조한 다양한 영화적 형식과 유령과 죽음에 대한 그의 세계관이 실감나게 공유된 자리였다. 그 일부를 여기에 전한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사탄의 가면>은 바바의 공포영화 데뷔작이다. 이 안에 마리오 바바 공포영화의 정수가 들어있다. 그가 공포영화라고 하는 특정 장르의 여러 영화적 형식을 고안해낸 것은 잘 얘기되지 않았다. 영화적인 특성을 중심으로 <사탄의 가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 그런 관점에서 오늘 얘기를 풀어가려 한다. 특히 <사탄의 가면>에서 말씀드리려는 것은 어떻게 주제적으로 유령과 환영이 등장하게 되는지와 어떤 영화적인 형식 안에서 유령을 등장시켜나가는지 이 두 가지 점이다. 유령적인 것은 표면적으로 보면 예외적이지만 <사탄의 가면>에서는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 은밀하게 현재의 삶 안에 잠복해 있는 대단히 비밀스러운 영역이라고 볼 수 있다. 영화의 공간들이 믿을 수 없는 방식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고, 과거의 일이 반복 회귀되는 구조임을 생각해보면 방금 말씀드린 것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다.
영화의 첫 장면은 불로부터 시작한다. 뱀파이어를 화형시키는 장면과 그의 연인인 마녀의 등에 가혹한 형벌을 가하는 장면이 나온다. 사탄의 약자이기도 하고 Asa라는 여인의 이름 안에 들어가는 S라는 글자를 낙인처럼 몸에 기입한다. S는 처벌의 기호이자 그녀에게 부여된 인장인데 영화 곳곳에서 반복해서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뱀파이어를 화형시키는 ‘정화’의 불은 사탄의 힘 때문인지 비에 의해 일시적으로 꺼진다. 이처럼 불과 물 같은 자연적 요소가 영화 처음부터 강조된다. 물의 흔적은 영화 곳곳에서 등장하는데 눈물로도 등장한다. 여인의 마스크를 장정이 해머로 내려치는 순간 얼굴 위로 물이 흐른다. 피인지 물인지 모르겠지만 눈물이라는 느낌이 훨씬 강하게 느껴진다. 앞서 본 장면에서는 여인의 한 방울 눈물이 비가 되어 화형을 중단시키는 느낌도 있다. 뒤에 시신으로 박사의 피가 떨어져서 핏물을 머금은 상태로 시체가 부활하게 되는 장면에서는 핏방울이 눈물방울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공포영화에서 피와 눈물은 비슷한 영역이다. 또 물웅덩이에 박사가 돌을 던지자 파문이 번지는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장면이 있다. 이 장면 다음에 시체가 떠오르는 것이 오버랩 되기 때문에 부활은 피에 의한 것이지만 동시에 물과도 연결된다.
이백년이 지난 후에 현재의 시간대가 진행된다. 박사와 조수는 낯선 마을의 지하무덤에 들어가게 된다. 지하무덤으로 들어가게 되는 순간은 그들의 시선을 경유한다기보다 특정한 소리부터 환기된다. 카메라는 줌이 되어 들어가고 컴컴한 가운데 문이 열리고 밝은 빛이 들어온다. 이들은 거기에 홀린 듯이 들어가게 된다. 영화의 장면 대부분이 그렇다. 빈 공간을 보여주는 장면부터 시작해서 갑자기 문이 열리고 빛에 의해서 내부의 공간이 확 들어온다. 그 때 카메라는 줌이거나 카메라의 트래블링이다. 달리 말해 흡수적이다. 끌어당기는 힘에 의해서 끌려가는 거지 그들 자의에 의해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내부의 공간으로 들어간 이후에 인물을 보여주는 시선도 특징적이다. 지하 무덤으로 박사와 조수가 들어갈 때 카메라는 계단을 내려가는 두 사람을 보여주면서 점차 왼쪽으로 움직인다. 폐허가 된 공간 내부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연결되고 그 중심에 무덤이 있다. 이후에도 카메라가 돌고 끝내 인물들로 되돌아오는 움직임의 양상은 <사탄의 가면> 카메라 움직임의 주된 패턴을 보여준다. 이 영화에는 크게 세 가지 시선이 있다. 하나는 인물이 본 것에 의해서 보게 되는 장면이고 둘째는 그 인물이 무언가를 보고 있는 장면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소녀가 소젖을 짜러 갔을 때 창문을 통해 무덤을 쳐다볼 때의 장면 같은 것이다. 세 번째는 여기서처럼 인물의 행동선을 따라 보여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인물에서 빠져나와 자의적인 방식으로 움직이게 되고 그 움직임에 의해서 인물들이 다시 보이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여러 가지 느낌이 있다. 이 영화는 방문자로 시작되는 영화다. 이백년이 지난 뒤 이 마을에 낯선 두 사람이 도착하면서 벌어지는 얘기다. 낯선 풍경에 대한 방문자들의 시선은 마을 사람들의 시선과 다르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세계 안에서 자신의 얼굴을 보게 된다. <킬 베이비 킬>도 그러한데 앞에 뛰어가는 사람을 쫓아가는 장면이 있다. 문을 열고 쫓아가고 문을 열고 쫓아가는데 계속 똑같은 자리를 뱅뱅 돌게 된다. 결국 그 사람 뒷덜미를 잡게 되는데 고개를 돌린 것은 자기 얼굴이었다. 진정한 공포는 타자라고 생각한 것이 알고 보니 나였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서의 공포라고 한다. <사탄의 가면>에서의 장면도 이 정도의 강력한 공포감을 주진 않지만 그들이 무언가 보았던 것이 자신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나중에 박사가 뱀파이어를 부활시키고 자신도 뱀파이어가 되어버리는 이야기와 연결된다. 결론적으로 폐허 안 장면은 굉장히 예시적인 장면이다. 앞서 말씀드린 시선의 세 번째 측면, 누구의 시선도 아니고 보는 것을 보여주는 시선도 아닌 카메라의 자의적인 움직임은 또 다른 누군가의 시선, 보이지 않는 자의 시선으로 유령적인 시선, 뱀파이어적인 시선이라고 할 수 있다. 뱀파이어의 특징은 무언가를 빨아들이는 것인데 몸 안의 피만을 빨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시선을 흡수해버린다. 박사와 조수가 낯선 공간의 지하무덤까지 들어갔을 때 그들은 무엇을 보기 위해 내려갈 때 도리어 그 공간에 사로잡히게 되고 이 폐허 안에 존재하는 부재하는 시선의 포로가 된다.
이후 뱀파이어를 화형시킨 귀족의 후손들이 사는 성 안이 나온다. 벽난로 가운데 그려진 용의 형상은 S자를 띠고 있고 인물들이 서로 연결된 모습도 S자로 표현되고 있다. 딸과 아들과 벽난로 앞에 앉아있는 아버지는 뱀파이어를 화형할 때 뱀파이어와 마녀와 마을 사람들의 삼각 구도를 답습하고 있다. 카메라의 움직임에 의해 뱀이 또아리를 틀듯이 세 인물을 한 번에 연결하는 형상은 16, 17세기 매너리즘 조각에서 나타나는 사행양식, 즉 뱀의 양식과 유사하다. 즉 S자는 프레임 장치 안에서의 형상이기도 하고 카메라의 움직임이 갖는 기본적인 운동선 자체이기도 하며 인물간의 관계를 드러낸다. 동시에 영화에 등장하는 서로 다른 여럿을 하나로 묶어버리기도 한다. 성과 지하무덤과 뱀파이어가 박사를 데리고 가는 성이 그렇다. 이 셋은 같은 건물처럼 구성되어있다. 이 세 개의 건물이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연결되어있고 근본적으로 지하 무덤으로 연결이 된다. 그런 공간적인 연결점을 만드는 구조도 S자의 형상과 동일하다고 본다.
여관집 소녀가 밤중에 외양간에 가게 됐을 때의 장면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 장면은 같은 것을 두 번 반복해서 보여준다. 한번은 소녀의 시선을 동반해 건너편 무덤을 쳐다보는 것으로 돼있다. 그 순간에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소녀는 젖 짜던 일로 돌아오는데 잠깐 뒤를 돌아본다. 뒤를 돌아본 자리엔 아무 것도 없고 유일하게 존재하는 것은 카메라다. 카메라는 서서히 움직여 창문을 따라 점점 안으로 들어가는데 그 순간 땅속에 있던 손이 올라온다. 단순히 소녀가 보지 못한 사건을 묘사한다기보다 소녀와 동행하고 있는 저 시선의 존재성을 부각하는 방식으로 카메라가 구성돼 있다. 부재하지만 소녀 옆을 맴도는 드러나지 않는 시선에 의해 환기되는 것이 시체의 부활이다. 시체의 부활 자체를 보여주기보다 그 시선을 따라가는 끝 지점에서야 비로소 뱀파이어가 부활한다는 것이다. 즉 그 시선이 시체의 부활을 이끈다. 한편 이 장면에서는 자고 있던 아버지가 순간적으로 깨어나게 되고 불안감에 사로잡힌다. 그 순간 카메라는 내부의 텅 빈 공간을 보여준다. 그러면 카메라가 점차 트래블링해서 가장 어두운 지대, 빛에 의해 포착되는 침대 근처와 달리 불빛이 없는 문 근처로 향한다. 그 순간 문이 열리고 문 뒤에는 아무도 없는 것이 보인다. 그러다 줌으로 클로즈업 되었다가 다시 줌으로 확 빠져나와서 놀라는 아버지를 보여준다. 처음에는 카메라에 의해서 부재의 공간이 드러나고 부재의 공간 안에서 가장 어두운 지대를 보여주고 그 안에서 무언가가 빛에 의해 출몰한다. 이때 아버지는 십자가를 가까이 오는 것을 향해 비춘다. 십자가는 빛에 반사돼서 굉장히 밝은 빛을 방출한다. 아버지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카메라는 줌 아웃을 해서 빠져나오는 순간 뱀파이어는 사라져버린다. 유령과도 같은 뱀파이어의 존재의 등장과 퇴장이 구상된 측면이 이렇다. 시체지만 살아있는 것 같은 그의 존재는 물질성이 있지만, 출몰과 퇴장의 순간은 비물질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공간지대 안에서 가장 어두운 지대에 빛이 비치는 순간 얼굴이 떠오르게 되고 빛이 사라지는 순간 그것도 사라진다.
영화 속 장면들을 보여드린 것은 바바가 표현하려던 것이 주제적인 측면에서만 얘기될 것은 아니어서였다. 먼저 이 영화는 불, 물, 바람, 흐르는 것, 물방울, 구름, 안개, 나무 등 자연적인 요소들로 영혼성과 정신성을 끌어올리고 있다. 또 줌의 과다한 활용, 빛과 어둠을 강렬하게 대조시키는 방식, 플랑세캉스, 트래블링이라고 하는 영화적 표현 방식을 통해 보이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들을 환기시켜간다. 뱀파이어는 유령적인 존재로 우리의 시선 안에서는 제대로 포착되지 않는 것인데 그것이 영화적인 표현 방식을 통해서 가시화된다. 빈 공간을 창조해나가는 영화적 표현 방식에서 비롯되어 빈 공간 안에 부여되는 시선과 카메라의 움직임, 그리고 빛과 어둠의 충돌로 인해 유령적인 존재성을 지닌 뱀파이어가 등장한다. 그런 식의 물리적 층위들로 영화를 표현해갈 때 두 종류의 상황과 인물이 있다. 일단 그런 식의 물리적 층위 안에 구속된 인물들이 있다. 이 영화에서 공간은 대부분 폐쇄성을 지닌다. 지하감옥, 무덤, 성이 그렇고 마을도 전체적으로 보면 폐쇄성을 가진다. 두 번째로 그러한 세계에서 탈구되어 있는, 그러한 세계에서 또 다른 세계로 연결점을 갖고 있는 것이 있다. 서로 만날 법 없는 두 세계가 연결되면서 '더블'들이 만들어진다. 그러한 분신과 유령적인 존재성을 지닌 것들은 물리적이고 물질적인 요소들 안에서 출현해간다. 그리고 이 영화 마지막에 등장하는 지하무덤은 마치 인간이 살고 있는 성의 부속 건물로서의 존재성을 갖는다. 지하무덤은 살아있는 삶의 영역의 부속 건물로, 죽은 자들의 세계이다. 바바가 이 영화에서 구축하고 있는 것은 현재라는 시간이고 마을과 성이라는 공간인데 거기에는 과거와 지하무덤이라는 부속건물을 갖고 있다. 그것은 살아있음 안에 죽음이라는 부속 건물을 갖고 있는 삶의 양태를 보여주는 것이다. 공포는 그런 불안감에서 등장하게 된다. 살아있는 세계 안에 무언가 죽음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거나, 사라졌고 이미 지나가버렸다고 생각한 것이 회귀할 것 같은 예감을 하게 되는 것, 끊임없이 시간 안에서 반복되어 유예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이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세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리: 최용혁 관객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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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오 바바 특별전, 6월21일부터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서

6월21일 시네마테크서울에서 특별한 영화제가 열린다. 마스터 오브 호러, 이탈리아에서 가장 위대한 공포영화 감독으로 꼽히는 ‘마리오 바바’ 특별전이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공포영화 감독인 마리오 바바는 뛰어난 감독일 뿐만 아니라 유려한 촬영으로 기막힌 영상을 찍는 촬영감독이기도 했다. 영화인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영화 일을 시작했고, 저예산으로 효과적인 특수효과를 구사하며 호러사에 길이 남을 굵직한 영화들을 만들어냈다. 완벽주의와는 거리가 멀지만 마리오 바바의 영화엔 다른 감독이 흉내낼 수 없는 특별한 재능과 감각이 있었다. 이번 특별전에서 필견의 영화인 몇 작품을 소개한다.

마리오 바바는 이탈리아 공포영화 역사와 함께했다. 1956년 리카르도 프레다 감독과 제작자와의 불화로 제작이 중단된 <이 밤피리>는 그의 첫 장편영화다. 후반에 투입된 탓로 완전한 연출작은 아니었지만 이탈리아에서 최초로 사운드를 입힌 공포영화로 기록된다. 대표작으로 <사탄의 가면>(1960)이 첫손에 꼽힌다. 아름답고 강렬한 흑백 영상의 이 영화는 당대 최고의 호러퀸 바버라 스틸의 출세작이기도 했다. 19세기를 배경으로 부활한 마녀로 인해 벌어지는 공포와 살육을 그리고 있다. <사탄의 가면>은 마리오 바바의 첫 공식 데뷔작이자 그에게 성공의 발판을 마련해준다. 바바 자신이 직접 촬영한 흑백 영상은 유니버설 고전 공포영화 팬들이라면 넋이 나갈 만한 볼거리다.


마리오 바바의 업적으로 ‘지알로’(이탈리아어로 노랑이란 뜻으로, 당시 인기를 끌던 범죄·추리소설의 노란색 표지에서 유래가 되었다)의 창조를 빼놓을 수 없다. ‘지알로’는 세련된 스타일과 살인의 극단적인 표현, 강렬한 색채와 같은 특징적인 요소들을 포함한다. 또한 상징적인 소품이 사용되는 심리스릴러물이다. <너무 많이 아는 여자>(1963), <피와 검은 레이스>(1964), 두편은 ‘지알로’ 스타일을 창조하고 확립한 대표작이다. <너무 많이 아는 여자>가 이번 마리오 바바 특별전에서 상영된다. 로마를 찾은 노라 데이비스가 이상한 사건에 휘말리며, 그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이야기로 할리우드영화 같은 경쾌함이 인상적이다. 또한 마리오 바바의 마지막 흑백영화다.


<블랙 사바스>(1963)는 마리오 바바의 대표작을 얘기할 때 늘 언급되는 영화다. 세편의 영화를 하나로 묶은 옴니버스로 <전화> <우드달락> <한 방울의 물>이며 세 영화가 각기 다른 매력과 스타일을 자랑한다. 유니버설 공포영화 시대의 스타인 보리스 칼로프가 음산하고 재미있는 내레이션을 맡은 것도 이색적이다. <전화>는 제한된 공간에서 정체불명의 인물에게 걸려온 전화를 소재로 한 심리스릴러로 <스크림>의 도입부를 떠올리게 한다. <우드달락>은 19세기 동유럽의 어느 마을에 나타난 흡혈귀에 관한 영화다. 보리스 칼로프가 흡혈귀 우드달락을 연기하며, 바바 특유의 스타일이 가장 잘 녹아 있는 무서운 영화다. <한 방울의 피>는 간호사를 괴롭히는 유령의 이야기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이 얼마나 무서울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바바는 이 영화를 통해 심리 공포를 다루는 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음을 보여준다.

<블러드베이>(1971)는 본격 난도질영화다. 마리오 바바의 후기작으로, 할리우드 난도질영화에 끼친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13일의 금요일2>는 <블러드베이>의 한 장면을 똑같이 재현해 난도질 팬들을 열광케 했다. 마리오 바바가 남긴 공포영화들은 후대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의 영화들은 유니버설 클래식 공포영화들과 영국 해머 스튜디오의 스타일이 조화롭게 이루어졌다. 우아하면서 아름답고, 한편으로 극단적인 폭력과 에로티시즘을 추구했다. 마리오 바바의 존재가 없었다면 이탈리아 공포영화의 역사는 다른 방식으로 흘렀을 것이다. 많은 예술가들이 겪었듯이 그 또한 살아생전에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고,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작품들이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재평가하기 시작했다. 마리오 바바의 영화를 보지 않고 감히 공포영화를 안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다.

글 : 김종철 (익스트림무비(http://extmovie.com) 편집장)

* 이 글은 씨네21 809호에 게재된 것을 발췌한 것입니다. 기사 원본은 씨네21 809호나 씨네21 사이트 2011.06.21자 온라인 기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www.cine21.com/Article/article_view.php?mm=001002005&article_id=66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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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오 바바는 낯선 이름이다. 1914년에 태어나 1979년 사망하기까지 25편의 영화를 남긴 바바는 ‘이탈리아 공포영화의 대부’였다. 그는 다리오 아르젠토와 아들인 람베르토 바바를 통해 지알로(범죄잔혹극)를 탄생시켰고, 1980년대 시작된 슬래셔공포영화의 기반을 다졌다. 하지만 그는 싸구려 제작비로 특이한 B급영화를 양산한 로저 코먼 류의 컬트 감독은 아니다. 그는 고딕호러의 전통 속에서 현대 공포영화의 전통을 새롭게 사유한 장르의 거장이었다. 6월 21일부터 열리는 ‘마리오 바바 특별전’을 기념해 ‘이탈리아의 알프레드 히치콕’ 마리오 바바의 삶과 영화를 돌아본다.

사실 바바는 장르를 가리지 않는 고용 감독이었다. 1960년부터 사망 1년 전인 1979년까지, 바바는 고딕호러(<채찍과 시체>)로부터 팝아트 액션영화(<디아볼릭>), 스파게티 웨스턴(<알라모 요새로 가는 길>)으로부터 섹시코미디(<닥터 골드풋과 섹시한 여자들>), 고대사극(<지구 중심의 헤라클라스>)으로부터 하드고어스릴러(<블러드 베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장르영화들을 만들어냈다. 어떤 장르를 다루건 간에 바바의 영화들은 한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건 바로 속임수로 가득한 인간 본성에 대한 화려하고 파괴적인 탐구라는 특징이다. 그같은 탐구를 통해 마리오 바바는 다리오 아르젠토 같은 후배들이 완성해낸 이탈리아 범죄잔혹극 ‘지알로’를 낳았고, 현대 공포영화를 새롭게 창조하고 발전시켰다. 그러나 바바는 자신의 업적에 대한 아무런 감사도 받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어쩌면 그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그는 스스로를 “싸고 빨리 만드는 것 외에는 아무런 재능도 없는 사람”이라고 표현하곤 했고, “나는 모든 커리어를 통틀어 엄청나게 개똥 같은 영화들만 만들었다”며 입버릇처럼 스스로를 낮추곤 했다. 하지만 마리오 바바가 현대 장르영화에 남긴 유산은 개똥 같은 것들이 아니다.

촬영감독 아버지의 조수로 영화계 입문

바바의 데뷔작 <사탄의 가면>(1960)에 출연해 영화 역사상 첫 ‘호러퀸’의 지위에 오른 바버라 스틸에 따르면, 마리오 바바는 매우 비밀스럽고 사생활을 잘 드러내지 않는 남자였다. 이 비밀스런 남자가 이탈리아의 산 레모에서 태어난 것은 독일이 1차대전을 선언한 바로 다음날인 1914년 7월21일이었다. 그의 아버지인 유제니오 바바는 이미 당대의 유명한 촬영감독이었고, 빛과 음영을 이용한 특수효과에서는 이름난 대가였다. 마리오 바바는 태어나면서부터 꿈의 공장에서 살아갈 운명이었던 것이다. 그는 아버지의 조수로 일하면서 이탈리아 영화계에 발을 들였고, 유명 이탈리아 촬영감독들의 조수를 거쳐 1939년에는 촬영감독의 자리에 올랐다.

1956년에 바바는 친구 리카르도 프레다가 연출하는 <뱀피리>의 촬영감독으로 고용된다. 그러나 감독은 제작자와의 불화로 촬영장을 박차고 뛰쳐나갔고, 바바가 메가폰을 손에 쥐고 12일로 계획된 촬영을 이틀 만에 마쳐버렸다. 이탈리아의 첫 번째 유성공포영화는 사실 마리오 바바의 데뷔작이나 다름없었던 셈이다. 그 뒤로도 바바는 “감독들이 낮잠을 즐기는 동안” 메가폰을 대신 쥐는 일이 많아졌고, 리카르도 프레다가 또다시 이틀 만에 촬영장을 박차고 나간 영화 <칼티키: 불멸의 몬스터>(1957)를 대신 완성하기도 했다. 제작자로서는 기특하고도 미안한 마음이 생겼을 터이다. 바바는 “제작비를 많이 허비하지 않는 한도에서 영화를 연출해보라”는 제작자의 권유를 냉큼 받아 46살의 나이로 감독 데뷔를 한다.

46살에 <블랙 선데이>로 감독 데뷔

마리오 바바는 고골의 <비이>(Vij)를 원작으로, 결국 원작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갖게 된 영화 <사탄의 가면>을 만든다. 독일 표현주의와 영국 해머영화사의 유산이 절묘하게 결합된 이 작품은 곧 대성공을 거두었고, 성공은 이탈리아 내에서만 머무르지 않았다. 저예산영화의 대부였던 미국 제작사 AIP(American International Pictures) 사람들은 싼값에 사들일 만한 공포영화를 찾아 로마에 당도했고, 이탈리아 제작사의 권유로 <사탄의 가면>을 보았다. 영화가 시작되자 못이 촘촘히 박힌 금속제 가면이 여인의 얼굴에 씌워졌고, 건장한 기사가 가면을 해머로 내리찍었다. 여자의 얼굴은 수많은 못으로 궤뚫렸다. 가면 밖으로 피가 펑펑 솟아나기 시작했다. 그 순간 AIP의 대표는 자신들이 “진짜 걸작을 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10만달러에 팔린 <사탄의 가면>은 잔혹한 장면을 덜어낸 재편집본으로 상영되어 북미 관객을 열광시킨다.

이후 바바는 이탈리아 잔혹범죄물 ‘지알로’의 시작으로 평가받는 <너무 많은 것을 안 여자>(1962)를 만들었고, <블랙 사바스>(1963), <피와 검은 레이스>(1964) 등의 걸작을 탄생시키며 감독으로서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하지만 바바는 미국에서 활동하라는 AIP의 청을 거절했다. 그를 숭앙하는 수많은 현대 감독 중 한명인 조 단테(<그렘린>)의 말처럼 “유럽 감독들이 미국에서 만든 작품들을 보면, 미국에 오지 말았어야 할 듯한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마리오가 왔더라면, 어떤 식의 영화가 나왔던 간에 매우 흥미진진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미국과는 달리 제작과정에서 시나리오를 장면에 맞게 뜯어고칠 수 있는 이탈리아 영화현장의 유연성은, 이미지에 대한 통제를 중요시했던 바바에게는 꼭 필요한 요소였다. 미국행을 거부한 바바는 또 다른 걸작 고딕공포영화 <킬, 베이비… 킬!>(1966)을 완성한다. 루키노 비스콘티는 이 작품의 이탈리아 시사회 도중 일어나서 열광적으로 박수를 쳐댔고, 페데리코 펠리니는 마리오 바바의 열정적인 팬임을 자처하고 나섰다.

이탈리아 범죄잔혹극 ‘지알로’를 낳고

AIP의 회유를 물리친 것에서도 보이듯이, 마리오 바바는 자신이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는 거대 예산의 영화를 연출하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하지만 거물 제작자 디노 드 로렌티스의 부탁으로 그는 인기 코믹스를 원작으로 한 현란하고 캠피한 액션히어로물 <디아볼릭>(1968)을 제작하게 된다. 영화는 곧 유럽 전역에서 엄청난 흥행수익을 기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바는 여전히 바바였다. 그는 300만달러의 제작비를 제작자로부터 얻어내고도 그의 장기인 특수효과를 이용해서 세트와 액션장면 촬영비용을 현격하게 절감, 겨우 40만달러에 영화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디노 드 로렌티스의 간곡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디아볼릭>의 후속편을 만들지 않기로 결심한다. 종종 말하곤 했던 “즉흥연주로서의 영화 만들기”의 재미를 자본에 의해 속박당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1966년은 바바의 경력을 전기와 후기로 구분짓는 중요한 시기다. 이때부터 시작된 바바의 후기 경력은 그가 새로운 장르를 거의 발견하다시피 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안 여자>를 통해 지알로 소설의 기운을 영화로 끌어들인 그는 <8월의 달을 위한 다섯 인형들>(1970)과 <신혼여행지의 학살>(1970) 같은 작품으로 지알로 장르의 토대를 마련했고, <블러드 베이>(1971)로는 슬래셔 장르의 시작을 알렸다. 하지만 거듭되는 흥행 실패와 아버지의 죽음으로 60대의 바바는 지쳐 있었다. 그는 아들 람베르토 바바가 쓴 각본으로 <쇼크>(1977)를 만들었고, 이는 마리오 바바 최후의 단독 연출작이 된다. 이 영화의 대부분은 람베르토 바바가 직접 연출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자신의 유산을 아들에게 물려주기 위한 예순살 거장의 마지막 교습이었던 것이다. 마리오 바바는 제자 다리오 아르젠토의 <인페르노>(1980)에 특수효과 디자이너로 참여한 직후인 1980년 4월25일, 65살의 나이로 바닥에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 심장마비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바의 심장이 멈춘 지 딱 4일 뒤에 앨프리드 히치콕이 사망했다. 마리오 바바는 생전에 이탈리아의 앨프리드 히치콕이라고 불렸고, 바바의 진가를 알고 있었던 소수의 지인들은 히치콕을 ‘영국의 마리오 바바’라고 불렀다. 두 감독은 영국과 이탈리아처럼 다른 존재였지만, 동시에 현대 공포/스릴러 장르의 양지와 음지를 대변하는 도플갱어였다. 그리고 동시에 세상을 떠났다.

현대 공포영화를 새롭게 창조하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와 로베르토 로셀리니가 ‘현대영화’를 창조했다면, 마리오 바바가 ‘현대 공포영화’를 창조했다고 말하는 것도 크게 무례한 일은 아닐 것이다. 바바는 이야기를 통해 관객에게 말을 걸었던 이전의 장르영화들로부터 자유를 획득한 남자였다. 이를테면, 마리오 바바는 기술적인 공정을 통해 감정적인 효과를 창출하는 촬영감독의 입장에서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바바의 영화들은 이야기보다는 빛과 어둠을 절묘하게 화면 속에 이용함으로써 모든 장르적인 효과를 만들어낸다. 바바의 대표작인 <블랙 사바스>가 대표적이다. 이 작품은 3개의 중편으로 구성되어있다. 케빈 윌리엄슨이 <스크림>을 만들기 위해 참조했음이 분명한 <전화>는 자신을 염탐하는 전화 속 목소리 때문에 공포를 느끼는 여자의 이야기고, 보리스 칼로프 주연의 <부르둘락>은 서로에 대한 애정으로 인해 파멸로 치닫는 흡혈귀 가족에 대한 고딕호러이며, 가장 무시무시한 <물방울>은 심장마비로 사망한 노파의 반지를 훔친 간호사가 죽은 노인의 방문을 받는다는 이야기다. 한정된 공간에서 진행되는 <전화>와 <물방울>은 실내의 빛을 뒤흔드는 번개와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만으로 관객의 심장을 쥐락펴락한다. 이야기가 벌어지는 장소는 극히 한정되어있으나 바바는 기술적 효과들만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마리오 바바는 지알로의 대부였지만 후배들과는 달랐다. 그는 면도날을 든 검은 장갑의 은밀한 손길이 아니라 피해자의 방에서 깜빡거리는 등잔을 더욱 두려운 것으로 이해하는 남자였다. 이는 바바가 글쟁이 출신이 아니라 기술자인 촬영감독 출신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는 25편의 연출작 중 여덟 작품에서 직접 카메라를 잡았고, 직접 카메라를 잡지 않을 경우에도 모든 화면의 디자인을 스스로 통제했다.

빛과 어둠이 빚어낸 거대한 환상

이같은 바바의 기술적 영화 만들기는 이야기 자체를 해치지 않는다. 바바의 후예인 다리오 아르젠토의 영화들은 거친 영화적 화법 때문에 이야기의 얼개가 종종 손상당한다. 그래서 이탈리아 장르영화에서는 플롯이 미장센을 위해 봉사하는 수준에 그친다고 불평하는 것도 온당한 일이다. 하지만 마리오 바바는 고전적인 고딕문학의 전통으로부터 이야기의 숨결을 끌어온 고전적인 예술가이기도 했다. 그의 영화들은 <리사의 악마>(1973)에서처럼 도시의 모퉁이를 도는 순간 빠져들고 마는 현실과 환상의 모호한 경계들을 담고 있으며, 이를 표현하기 위해 바바가 사용한 것은 야시시한 테크니컬러로 범벅된 조명과 미술, 줌이 드라마틱한 속도로 인물에 다가가고 빠지는 자극적인 카메라워크였다. 마리오 바바의 영화적 화법은 이야기의 차원을 확장시키는 데 쓰이는 충실한 도구였고, 그 결과는 하나의 백일몽에 가깝다. 팀 버튼의 말처럼 마리오 바바는 “영화를 의식세계를 넘나드는 하나의 꿈처럼 만들어내는” 악몽의 예술가로서 자신을 창조한 것이다.

바바의 영향력은 이탈리아 지알로 영화계로 직접 전승되었다. 그의 조감독 출신인 다리오 아르젠토는 <신혼 여행지의 학살>로부터 영향을 받은 <딥 레드>(1975)를 내놓으며 지알로를 하나의 국제적 장르를 확립시켰고, 미켈레 소아비와 아들인 람베르토 바바 같은 젊은 세대를 통해 지알로 영화는 슬래셔 장르와 결합되어 발전했다. 하지만 바바의 영향력은 이탈리아 반도 속에서만 머무르지 않았다. 그의 영화들은 현대 공포영화의 발전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1980년대 슬래셔영화의 유행을 선도한 숀 커닝엄의 <13일의 금요일>(1980)은 바바의 <블러드 베이>를 리메이크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리들리 스콧의 <에이리언>(1979) 역시 바바의 <흡혈귀 행성>(1965)에서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정설로 통한다. 마리오 바바의 영화 같은 공포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해온 마틴 스코시즈는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1988)에 <킬, 베이비… 킬!>에 등장하는 소녀 유령을 등장시켰고, 팀 버튼은 바바의 초기 고딕호러영화들의 총체적인 오마주라고 할 수 있는 <슬리피 할로우>(1999)를 만들었다. 특히 주인공의 엄마가 속에 못이 촘촘히 박힌 철가면에 갇혀 죽는 장면은 <사탄의 가면>의 첫 장면을 직설적으로 인용한 사례다. 마리오 바바가 지금처럼 서구 영화계의 적극적인 재평가를 받게 된 데에는 말 많은 타란티노의 덕도 크다. 심심찮게 마리오 바바를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감독 중 한명으로 거론해온 그는 <사탄의 가면>을 직접 리메이크하겠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녔다.


마리오 바바의 검은마술은 계속된다

“영화는 마술사들의 작업실이다. 그것들은 당신이 스스로 이야기를 구축할 수 있도록 허한다. 최소한 나에게 영화란 그런 의미다. 무(無)로부터 환상과 효과를 창조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영화가 줄 수 있는 최고의 희열이다.” 마리오 바바라는 마술사는 아무것도 없는 어두운 그늘을 가장 두려운 존재로 만들 수 있는 재주를 지니고 있었다. 그건 이를테면, 흑마술에 좀더 가까운 재능이었을 것이다. 흑마술은 결코 양지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법이다. 바바도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결코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가 되지는 못할 것이라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성공적인 커리어 따위는 관심없다. 계속 영화를 만들고 싶을 뿐이다. 나는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가 될 수 없다. 다급한 상황에서 새로운 장면을 창조하는 즉흥 연주를 좋아하고, 영화를 만들면서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니 당신이 훌륭한 감독이라면 절대 나처럼 작업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자유로운 즉흥 연주. 그것이 바로 마리오 바바라는 너무나도 이탈리아적인 흑마술사의 비법이었다. 마리오 바바의 영화들은 충만한 지중해의 빛과 그늘을 우리의 나약한 두려움 위에 뿌려대며 은밀한 공포를 들추어낸다. 그리고 그것은 거대한 환상으로서의 ‘순수한 영화’에 가장 가까운 희열을 전해준다. 마리오 바바는 여전히 발견을 기다리고 있는 고전영화의 마지막 신대륙이다.

글 / 김도훈(씨네21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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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대표 최정운 www.cinematheque.seoul.kr)6 21일부터 7월 일까지 12일 동안 국내 최초로 이탈리아 공포영화의 대부인 마리오 바바 대표작들만을 모아 상영하는 마리오 바바 특별전을 개최한다.

촬영 감독으로 활약하다 46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연출자로 데뷔, 25편의 영화를 만든 마리오 바바는 현대 공포영화의 창조자, 이탈리아의 히치콕이라 불리우며 많은 영화감독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국내에서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등 간헐적으로 영화제를 통해 소개된 바 있지만 마리오 바바란 단독 이름을 건 기획전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특별전을 통해 공개하는 작품은 장편 데뷔작인 <사탄의 가면>(1960)을 비롯해 그의 대표작으로 거론되는 <너무 많은 것을 안 여자>(1963) <, 베이비... !>(1966) <블러드 베이>(1971) 등 총 10편이다. 그의 전작을 모두 만나길 기대했던 국내 팬들에게는 성에 차지 않는 편수일지 모르지만 이번 상영작 중 <사탄의 가면><블랙 사바스><블러드 베이> 3편을 제외한 7편은 모두 국내에서 처음 소개되는 작품이라 마리오 바바의 진가를 확인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흔히 마리오 바바를 일러 ‘이탈리아의 히치콕'이라고 부른다. 히치콕이 현대 스릴러 영화의 문법을 확립한 것처럼 마리오 바바는 현대 공포영화의 모든 것을 창조했다. 살인을 다룬 1960년대 이후의 이탈리아 영화를 통칭하는 장르명이 된 ‘지알로 Giallo' <너무 많은 것을 안 여자>가 출발점이다. ‘노랑'을 뜻하는 지알로는 1920년대 중반 이탈리아의 한 출판사가 노란색을 표지로 한 저가의 장르 소설을 발표하고 이것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싸구려 가판 소설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 온갖 종류의 소설을 좋아했던 바바는 이를 영화로 만들길 즐겼고 지알로는 이후 람베르토 바바, 다리오 아르젠토 등에 의해 계승되며 이탈리아 영화사에 빛나는 업적을 남겼고, 그의 업적은 세계 영화사적인 측면에서도 중요한 유산이다.

그의 영향을 받은 작가들도 상당한 많다. 일례로 쿠엔틴 타란티노를 들 수 있는데, 그는 틈만 나면 그 자신의 영화적 뿌리를 일러 지알로라고 말하기도 했다. 타란티노의 대표작인 <펄프 픽션 Pulp Fiction>(1994)은 역시나 가판 소설을 의미하는 단어로 미국의 지알로인 셈이고 이 영화를 통해 타란티노는 전 세계적인 감독이 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블러드 베이>의 경우도 미국으로 넘어가 슬래셔의 원전이 되었다. <13일의 금요일>(1980) <나이트메어>(1984) 같은 종류의 난도질 영화가 나올 수 있도록 터전을 마련한 것도 바로 마리오 바바의 작품이었다. 한 핏줄 영화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마틴 스콜세지, 존 카펜터,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브라이언 드 팔마 등 거장으로 칭송되는 감독들이 그들 각자의 방식을 통해 마리오 바바에 오마주를 바친 것도 유명하다.

다소 과장해 말하자면, 마리오 바바의 출현 이후 전 세계의 영화는 마리오 바바에 영향 받은 영화와 영향 받지 않은 영화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을 정도다. 마리오 바바에 열광했던 감독 중 한 명이었던 페데리코 펠리니는 “살인 사건이 등장하는 공포영화 시나리오를 쓴 적이 있었다. 내 작업이라고 밝히지 않고 지인들에게 보여줬더니 하나 같이 마리오 바바가 쓴 거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내가 들은 최고의 찬사였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와 같이 마리오 바바는 세계 최고의 감독들이 그 자신들보다 더 최고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감독, 공포 영화 팬들 사이에서 신적인 존재로 추앙 받는 감독이지만 한국 팬들 사이에서는 소수의 팬을 제외하면 여전히 미지의 이름으로 남아있기에 이번 특별전은 더욱 의미 있는 기획전으로 기대된다. 특히 이번 특별전 상영작 목록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는 지알로와 슬래서 뿐만 아니라 스파게티웨스턴과 섹스코미디물 등 장르를 총망라한 작품들이 처음으로 소개되는 자리라 다양한 소재의 영화에서 장기를 발휘해온 장르의 달인 마리오 바바의 영화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기억에 남는 뜻 깊은 시간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번 마리오 바바 특별전은 지난 5월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후원금으로 기부된 하퍼스 바자와 함께하는 시네마테크 후원 프로젝트에 참여배우인 박중훈, 이선균, 이연희 씨의 화보 촬영 수익금으로 이뤄지는 영화제로서도 의미가 크다. 또한 이 기간 중에는 마리오 바바의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두 차례의 시네토크 시간도 마련되어 있다. 오승욱 감독이 그의 스파게티 웨스턴에 대해, 김성욱 프로그램 디렉터가 공포의 세계에 대해 관객들에게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줄 예정이다. 보다 상세한 작품 정보는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홈페이지 홈페이지(www.cinemathrque.seoul.kr)를 참고하면 되며, 지정 예매처에서 인터넷 예매도 가능하다. 문의는 741-9782.

 

■ 감독 소개

마리오 바바 Mario Bava (1914~1980)

1914년에 태어나 1980년 사망하기까지 25편의 영화를 남긴 바바는 ‘이탈리아 공포영화의 대부’다. 그는 다리오 아르젠토와 아들인 람베르토 바바를 통해 지알로를 탄생시켰고, 80년대 시작된 슬래셔공포영화의 기반을 다진 감독이다. 그는 이탈리아 북부의 산레모에서 태어났다. 이탈리아 영화계에서 이름을 떨쳤던 촬영감독인 유제니오 바바가 아버지인 그는 자연스럽게 아버지를 따라 촬영감독 조수로 영화계에 입문했다. 1960년까지 촬영 감독으로 활동하면서 마리오 바바는 특히 광학 렌즈를 이용해 관객의 눈을 현혹하는 이미지 창조에 일가견을 보이면서 특수 효과 부문에서 명성을 얻었다. 촬영 틈틈이 단편 영화를 만들었지만 마리오 바바는 정식으로 연출자가 될 생각은 없었는데 <칼티키: 불멸의 몬스터>(1957)에서 리카르도 프레다를, <마라톤의 거인>(1959)에서 자크 투르뇌르를 대신해 메가폰을 잡으면서 마리오 바바는 본격적으로 감독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이후 <마라톤의 거인>의 제작사는 영화를 찍고 남은 필름과 적은 예산을 책정해 만들고 싶은 영화를 원 없이 만들어보라고 권유했고 이를 받아들인 바바는 46세의 나이에 공식적인 장편 데뷔작 <사탄의 가면>을 완성하게 된다. 이후 <너무 많은 것을 안 여자> <피와 검은 레이스>(1964) <, 베이비... !> 등과 같은 지알로를 남기며 이탈리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감독의 위치에 올랐다. 1965년 이후에는 아들 람베르토 바바가 조감독으로 참여하고, 다리오 아르젠토가 그의 영화에 열광적으로 관심을 보이면서 지알로는 하나의 독립적인 장르로 자리 잡게 된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 계속되는 상업적인 실패는 그를 반 은퇴 상태까지 몰아가게 된다. 그의 실질적인 유작이라고 해도 좋을 <kidnapped> 1974년 촬영에 들어갔지만 제작자가 파산하면서 완성되지 못한 상태로 창고에 묻히게 된다. 마리오 바바는 람베르토 바바의 주선으로 TV용 영화를 만들기도 했지만 더 이상 영화를 연출할 기회는 얻지 못했다. 1980 4월 갑자기 찾아온 심장 발작으로 세상을 떠났다.

 

■ 상영작 목록 (10)

사탄의 가면 La maschera del demonio / Black Sunday

1960 87min 이탈리아 B&W 35mm 15세 관람가

 

블랙 사바스 I tre volti della paura / Black Sabbath

1963 92min 이탈리아/프랑스/미국 Color 35mm 15세 관람가

 

너무 많은 것을 안 여자 La ragazza che sapeva troppo

1963 86min 이탈리아 B&W 35mm 12세 관람가

 

, 베이비... ! Operazione paura / Kill, Baby... Kill!

1966 80min 이탈리아 Color 35mm 15세 관람가

 

8월의 달을 위한 다섯 인형들 5 bambole per la luna d'agosto / Five Dolls for an August Moon

1970 81min 이탈리아 Color 35mm 청소년 관람불가

  

로이 콜트와 윈체스터 잭 Colt e Wincester Jack / Roy Colt e Winchester Jack

1970 85min 이탈리아 Color 35mm 15세 관람가

 

블러드 베이 Reazione a catena / A Bay of Blood

1971 84min 이탈리아 Color 35mm 청소년 관람불가

 

바론 블러드 Gli orrori del castello di Nor imberga / Baron Blood

1972 98min 서독/이탈리아 Color 35mm 15세 관람가

 

포 타임스 댓 나이트 Quante volte... quella notte / Four Times That Night 

1972 83min 이탈리아/서독 Color 35mm 청소년 관람불가

 

리사와 악마 Lisa e il diavolo / Lisa & Devil

1974 96min 이탈리아/서독/스페인 Color 35mm 청소년 관람불가

 

★ 시네토크 Cine-talk

6 26() 13:30 <로이 콜트와 윈체스터 잭> 상영 후

스파게티 웨스턴과 마리오 바바│오승욱(영화감독)

6 30() 19:00 <사탄의 가면> 상영 후

마리오 바바의 공포의 세계│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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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만 폴란스키의 <유령 작가>(2010)에서 주인공은 정말 기이한 인물입니다. 그는 이름도 없고, 그저 ‘유령’이라 불릴 뿐입니다. 그가 세상에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지만 (그래서 존재가 미미한 그가 세상에 드러나는 유일한 방법은 최종적으로 그가 죽었을 때입니다), 실로 그가 ‘유령’인 것은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다른 이의 대필 작가로 나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이미 죽어버린 선임자의 뒤를 계승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주인공은 그래서 유명인의 대필 작가이자 대필 작가의 대역, 즉 이중적인 의미의 ‘유령’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인물은 알프레드 히치콕의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1959)에서 주인공처럼 일종의 텅 빈 존재와도 같습니다. 그는 첩보원으로 오인 받으면서 부재하는 이의 일종의 유령 대역을 했던 것입니다. 혹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패신저>(1975)를 떠올려볼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정체성의 혼란에 빠져있고, 다른 인물을 대신합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죽은자, 혹은 부재하는 이의 유령이 되는 것은 최종적으로는 사라지는 것, 즉 인물의 소멸로 향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역설적이지만 유령 또한 죽기도 합니다.

나치스가 독일에서 정권을 장악했던 1933년에 유태계 폴란드인으로 태어난 로만 폴란스키는 어린 시절 강제 수용소를 경험했고, 그 스스로 답답해했던 조국을 떠나 세계를 떠돌았던 감독입니다. 그의 유년시절을 두고 ‘폭풍의 고아’라 말했던 평자도 있는데, 그리 이상하지 않은 표현이라 생각합니다. 폴란스키는 언젠가 자신의 인생 대부분을 할애해 깨닫게 된 것이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분간할 수 없으며, 그 경계성이 애매하다는 사실이라 말한 바 있습니다. 그러한 인식으로 그는 상심, 갈등, 불행, 실망을 경험했지만 동시에 예술가가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유년기의 누구나가 그러하듯 판타지의 세계를 꿈꾸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의 실현을 단념했던 것과 달리 아직 생기가 없었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세상을 떠돌았습니다. 꿈과 현실의 문제는 언제나 그의 작품 전체를 관철하는 테마였는데, 종종 그의 작품에서 눈앞의 현실은 도리어 비현실적이고 부조리하게 보입니다. 이번 ‘로만 폴란스키 초기 걸작선’에서 상영하는 세 편의 작품은 이런 특징을 보여줍니다.

인물들 대부분은 자신의 정체성에 심각한 위협을 받게 됩니다. 외부적 위협에 노출되면서 그들은 주위의 압력에 무너져버리고 망상의 세계에 쉽게 빠져듭니다. 난입자 때문에 주인공의 정신이 불안에 사로잡히는 과정을 날카롭게 그린 <물속의 칼>(1962), 망상과 광기의 세계에 빠져든 인물의 극단적인 시각을 담아낸 <혐오>(1965), 그리고 ‘막다른 골목’에 처한 인물의 불안과 동요를 가장 훌륭하게 표현한 <궁지>(1966)가 그러합니다. 폴란스키는 영화가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고 동요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던 작가입니다. 그가 도발을 즐겼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사회적 관습, 논리적 사고를 흔들어버리는 불안이야말로 인간의 본질을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불안은 무언가 우리 안에서 바뀌어져야 할 것을 성찰하게 합니다.

이탈리아 호러영화의 선구자인 마리오 바바의 작품도 그런 불안의 영화라 할 수 있습니다. 마틴 스콜세지가 그를 찬양하며 했던 말처럼 마리오 바바의 영화는 종종 형언할 수 없는 꿈의 상태로 관객들을 빠져들게 합니다. 마치 거친 파도위에서 서핑을 하는 것 같은 상태를 말합니다. 꿈과 현실의 경계를 넘어가며 혼란을 자아내는 불안의 영화들. 그런데 이는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 영화의 진정한 매혹이기도 합니다.

글 / 김성욱(영화평론가,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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