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오 바바의 공포의 세계
2011. 7. 10. 14:24ㆍ특별전/마리오 바바 특별전
지난 6월 30일 저녁, 이탈리아 공포 영화의 거장 마리오 바바의 <사탄의 가면> 상영 후 ‘마리오 바바의 공포의 세계’라는 주제로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의 강연이 이어졌다. 영화의 한 장면 한 장면이 인용된 강연은 마리오 바바가 공포영화 장르에서 창조한 다양한 영화적 형식과 유령과 죽음에 대한 그의 세계관이 실감나게 공유된 자리였다. 그 일부를 여기에 전한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사탄의 가면>은 바바의 공포영화 데뷔작이다. 이 안에 마리오 바바 공포영화의 정수가 들어있다. 그가 공포영화라고 하는 특정 장르의 여러 영화적 형식을 고안해낸 것은 잘 얘기되지 않았다. 영화적인 특성을 중심으로 <사탄의 가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 그런 관점에서 오늘 얘기를 풀어가려 한다. 특히 <사탄의 가면>에서 말씀드리려는 것은 어떻게 주제적으로 유령과 환영이 등장하게 되는지와 어떤 영화적인 형식 안에서 유령을 등장시켜나가는지 이 두 가지 점이다. 유령적인 것은 표면적으로 보면 예외적이지만 <사탄의 가면>에서는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 은밀하게 현재의 삶 안에 잠복해 있는 대단히 비밀스러운 영역이라고 볼 수 있다. 영화의 공간들이 믿을 수 없는 방식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고, 과거의 일이 반복 회귀되는 구조임을 생각해보면 방금 말씀드린 것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다.
영화의 첫 장면은 불로부터 시작한다. 뱀파이어를 화형시키는 장면과 그의 연인인 마녀의 등에 가혹한 형벌을 가하는 장면이 나온다. 사탄의 약자이기도 하고 Asa라는 여인의 이름 안에 들어가는 S라는 글자를 낙인처럼 몸에 기입한다. S는 처벌의 기호이자 그녀에게 부여된 인장인데 영화 곳곳에서 반복해서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뱀파이어를 화형시키는 ‘정화’의 불은 사탄의 힘 때문인지 비에 의해 일시적으로 꺼진다. 이처럼 불과 물 같은 자연적 요소가 영화 처음부터 강조된다. 물의 흔적은 영화 곳곳에서 등장하는데 눈물로도 등장한다. 여인의 마스크를 장정이 해머로 내려치는 순간 얼굴 위로 물이 흐른다. 피인지 물인지 모르겠지만 눈물이라는 느낌이 훨씬 강하게 느껴진다. 앞서 본 장면에서는 여인의 한 방울 눈물이 비가 되어 화형을 중단시키는 느낌도 있다. 뒤에 시신으로 박사의 피가 떨어져서 핏물을 머금은 상태로 시체가 부활하게 되는 장면에서는 핏방울이 눈물방울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공포영화에서 피와 눈물은 비슷한 영역이다. 또 물웅덩이에 박사가 돌을 던지자 파문이 번지는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장면이 있다. 이 장면 다음에 시체가 떠오르는 것이 오버랩 되기 때문에 부활은 피에 의한 것이지만 동시에 물과도 연결된다.
여관집 소녀가 밤중에 외양간에 가게 됐을 때의 장면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 장면은 같은 것을 두 번 반복해서 보여준다. 한번은 소녀의 시선을 동반해 건너편 무덤을 쳐다보는 것으로 돼있다. 그 순간에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소녀는 젖 짜던 일로 돌아오는데 잠깐 뒤를 돌아본다. 뒤를 돌아본 자리엔 아무 것도 없고 유일하게 존재하는 것은 카메라다. 카메라는 서서히 움직여 창문을 따라 점점 안으로 들어가는데 그 순간 땅속에 있던 손이 올라온다. 단순히 소녀가 보지 못한 사건을 묘사한다기보다 소녀와 동행하고 있는 저 시선의 존재성을 부각하는 방식으로 카메라가 구성돼 있다. 부재하지만 소녀 옆을 맴도는 드러나지 않는 시선에 의해 환기되는 것이 시체의 부활이다. 시체의 부활 자체를 보여주기보다 그 시선을 따라가는 끝 지점에서야 비로소 뱀파이어가 부활한다는 것이다. 즉 그 시선이 시체의 부활을 이끈다. 한편 이 장면에서는 자고 있던 아버지가 순간적으로 깨어나게 되고 불안감에 사로잡힌다. 그 순간 카메라는 내부의 텅 빈 공간을 보여준다. 그러면 카메라가 점차 트래블링해서 가장 어두운 지대, 빛에 의해 포착되는 침대 근처와 달리 불빛이 없는 문 근처로 향한다. 그 순간 문이 열리고 문 뒤에는 아무도 없는 것이 보인다. 그러다 줌으로 클로즈업 되었다가 다시 줌으로 확 빠져나와서 놀라는 아버지를 보여준다. 처음에는 카메라에 의해서 부재의 공간이 드러나고 부재의 공간 안에서 가장 어두운 지대를 보여주고 그 안에서 무언가가 빛에 의해 출몰한다. 이때 아버지는 십자가를 가까이 오는 것을 향해 비춘다. 십자가는 빛에 반사돼서 굉장히 밝은 빛을 방출한다. 아버지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카메라는 줌 아웃을 해서 빠져나오는 순간 뱀파이어는 사라져버린다. 유령과도 같은 뱀파이어의 존재의 등장과 퇴장이 구상된 측면이 이렇다. 시체지만 살아있는 것 같은 그의 존재는 물질성이 있지만, 출몰과 퇴장의 순간은 비물질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공간지대 안에서 가장 어두운 지대에 빛이 비치는 순간 얼굴이 떠오르게 되고 빛이 사라지는 순간 그것도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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