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에서 전쟁영화를 하나의 굳건한 장르로 규정하자면, 1970년대까지 2차 세계대전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대세’였다. 그러다 1970년대 말에 이르러 <대전장>(1978), <3중대의 병사들>(1978)같은 베트남전 영화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기존 2차 세계대전 영화들의 사소한 변형에 지나지 않았다. <영화 장르: 할리우드와 그 너머>를 쓴 배리 랭포드는 <디어 헌터>가 “전쟁영화의 역사적 무게중심이 결정적으로 베트남으로 옮겨가게 된 계기”로 본다. 또한 미국영화 투자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EMI가 당시 성공적인 출발을 하게 해준 영화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배리 랭포드는 <디어 헌터>를 <지옥의 묵시록>(1979)과 함께 베트남전과 무관하게 ‘할리우드 르네상스 스타일의 실험’이 더해진 전쟁영화로 본다. 그것은 1980년대 중반 이후 <플래툰>(1986), <햄버거 힐>(1987), <7월4일생>(1989)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식으로 등장하게 된다. 그 양상은 대부분 ‘액션오락영화’로 분류되던 2차 세계대전 영화들과 사뭇 달랐다. 배리 랭포드가 말하길 “전쟁의 격렬하고 지속적인 정치화와 더불어 현대 미국의 첫 패배 경험의 파장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디어 헌터>는 <모히칸족의 최후>를 쓴 제임스 페니모어 쿠퍼의 <사슴 사냥꾼 Deerslayer>으로부터 유래한 제목이다. 쿠퍼는 내티 범포라는 하층민 출신의 사냥꾼이 등장하는 5부작 소설을 통해 변경의 백인과 인디언의 관계를 다채롭게 묘사, 탐색해왔는데 마이클 치미노는 그를 베트남전으로 치환하여 스러져가는 미국의 처참한 현실을 드러냈다. 영화가 시작하면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클레어튼에 있는 제철소의 삭막한 풍경이 펼쳐진다. 그것은 이후 베트남에서 겪게 되는 악몽과 연결되는 지옥으로의 입구다. 이곳에서 일하는 마이클(로버트 드니로)과 닉(크리스토퍼 워큰), 스티븐(존 세비지) 등은 절친한 친구 사이로 종종 산으로 사슴 사냥을 떠난다. 그리고 그들은 얼마 안 가 베트남으로 파병된다. 하지만 그들은 베트콩에게 사로잡히는 신세가 되고 러시안 룰렛으로 대표되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 피폐해져 간다. 그렇게 우정은 산산조각 나고 과거의 아름다운 추억은 휴지조각이 된다. 그렇게 그 누구도 정상으로 돌아오지 못 한다.


<디어 헌터>에 대해서는 <베트남에서 레이건까지>를 통해 무려 30페이지 넘게 이 영화에 대해 할애한 영화평론가 로빈 우드의 분석이 압권이다. 그는 “사실주의적이라고 해서 많은 칭찬을 받았던 반면 한편으로는 반동적인 영화라고 가차 없이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둘 중 어떤 반응도 정당하거나 유용한 것 같지는 않다”며 “정치학과 미학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영화”라고 말했다. 좌파의 입장에서 보면 실제 존재하지 않았던 베트콩의 러시안 룰렛 등 베트남전 묘사에 대한 심각한 문제가 있지만, 형식적 측면에서는 이후 만들게 되는 <천국의 문>과 더불어 “미국영화의 위대한 건축가이자 가장 멋진 형식의 혁신자”라고 추켜세운다. “존 포드와 하워드 혹스가 함께 속해 있는 전통의 절정이자 그 전통에 대한 만가”라는 것. 그러면서 <디어 헌터>가 <수색자>(1956)와 <리오 브라보>(1959)와 맺고 있는 강한 대응관계에 대한 분석도 시도한다. 그가 보기에 <디어 헌터>는 “치미노의 이상주의가 만들어낸, 그러니까 현대문명이 폐기처분해버렸지만 여전히 숭고함과 순수함을 가지고 있는 인물(마이클)에 대한 탄식”이다. 물론 로빈 우드는 일방적 가치 찬양에 경도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영화에 대한 혼란을 긍정하면서 “<디어 헌터>의 위대함은 그러한 혼란의 풍부함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썼다. <디어 헌터>는 과작(寡作)의 작가 마이클 치미노가 만들어낸 가장 문제적인 작품이다.

글/주성철(씨네21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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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가 거대 에픽에 현혹되어 있을 당시, 하워드 혹스도 왕과 왕비와 유사 역사가 뒤섞인 이야기에 도전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이자 혹스의 친구인 윌리엄 포크너를 비롯해 수많은 혹스 사람들이 동원됐고, 이집트 로케이션을 감행한 영화엔 막대한 물적 자원이 투입됐으며, 만 명 가까운 엑스트라가 출연한 어마어마한 장면까지 연출됐다. 그러나 장르영화를 주물러온 혹스라 한들 모든 장르의 걸작을 만들 수는 없었다. <파라오의 땅>은 흥행에 실패한데다 평단의 혹평까지 들었다. 데뷔 이후 1년 이상 쉰 적이 없던 혹스가 4년이란 긴 시간을 할리우드와 멀리 떨어져 지내야 했던 이유는 그러하다. 유럽, 그 중에서도 프랑스 평단들의 애정 공세로 그나마 마음을 달랜 혹스는 1958년 봄에 드디어 애리조나의 촬영 현장으로 복귀한다. 그가 예상 밖으로 서부영화를 선택하자, 코미디나 액션영화를 기대한 워너 측은 당황했다. 혹스가 서부영화를 선택하게 된 데는 TV의 영향이 컸다. 유럽에서 돌아온 혹스는 그 사이에 TV가 미국인들 생활의 중심에 자리 잡았음을 알게 되었고, 유심히 지켜본 결과 그들이 서부극을 즐겨 본다는 걸 파악했다. 마침내 잭 워너가 혹스의 의견에 동의함에 따라 <리오 브라보>에 착수할 때에도 그의 불안감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며칠이 더 흐른 뒤에야 혹스는 현장에서의 자신감을 회복했다고 전해진다.

<리오 브라보>는, 몇 편의 서부영화에 거부감을 품은 혹스가 그러한 영화에 대응한 결과물이다. 프레드 진네만의 <하이 눈>(1952)과 델머 데이브스의 <유마행 3:10분 열차>(1957)는 인물의 심리와 영웅의 변화를 심도 깊게 그려 향후 서부영화의 방향 짓기에 큰 역할을 해낸 작품이다. 그러나 전통적인 서부 영웅을 예찬해온 사람들은 두 영화의 주인공에 거부감을 느꼈다. <하이 눈>에서 여주인공 ‘에이미’는 갓 결혼한 상대인 ‘윌 케인’에게 “영웅이 되려고 애쓰지 말아요. 나 때문에 그럴 필요는 없어요”라고 말한다. 이에 대한 윌의 대답 - “난 영웅이 되려는 게 아니오. 내가 좋아서 이런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미친 거요” - 은 의외의 것이다. 그리고 윌은 그것도 모자라 영화 내내 자신을 도와줄 사람을 구하러 돌아다닌다. <하이 눈>은 주인공을, 도움이 필요한 불쌍한 영웅으로 그리고 있다. 그러한 행위를 구걸이라고 판단한 혹스가 두 영화를 용납하지 않은 건 당연한 일이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하이 눈>이 가식적이어서 싫다. 그 주인공은 프로페셔널이 아니다”라고 대놓고 말했다. 영웅은 아마추어의 도움을 오히려 거절해야 하며, 오직 프로페셔널과 함께 자신의 일을 수행해야만 한다, 고 혹스는 생각했다. 그러므로 <리오 브라보>를 읽는 데 가장 중요한 신은, 도와주겠다고 제안하는 평범한 친구의 선의를 주인공 챈스가 시원하게 거절하는 부분이다. 안소니 만이 <서부의 사나이>(1958)에서 게리 쿠퍼를 다시 불러내 악당과 당당히 맞서는 인물을 창조함으로써 영웅을 되살렸다면, 혹스는 <하이 눈>과 유사한 소재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시킴으로써 영웅의 진정한 자세를 재확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59년이란 격변의 시간과 전통 서부극인 <리오 브라보> 사이엔 결코 작지 않은 틈이 자리한다. 그 해, 프랑스에선 고다르가 <네 멋대로 해라>를 발표했고, 미국에선 존 카사베츠가 <그림자>를 내놓았다. 영화가 일대 변혁의 시기에 돌입할 즈음, 서부영화 또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있었다. 서부극의 장인 존 포드의 사정도 다르지 않아서, <수색자>(1956)로 정점을 찍은 그조차 몇 년 후엔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1962)를 연출함으로써 서부극에 작별을 고할 터였다. 그런 시점에 혹스는 전통 서부극의 세계로 재진입하기로 결정했다. 왜 그랬을까? ‘웨스턴 백과’의 저자 허브 페이건은 <리오 브라보>를 ‘악에 맞선 선을 그린 서부극의 거의 완벽한 예’라고 표현했다. <하이 눈>의 결말에서 주인공 ‘케인’이 아무도 도움을 주지 않았던 마을을 버리고 떠나는 것과 반대로, <리오 브라보>의 ‘챈스’는 프로페셔널과 영웅으로서의 자아와 공동의 선의 가치를 재확인한다. 인간 본연의 순수한 감정을 사랑했기에 혹스는 장르를 의심하거나 뒤틀린 인물의 지옥을 그리기보다 선을 지키려는 자유로운 영혼의 인물과 함께하기를 원했다. 그리고 선이 승리함으로써 정의가 성취된다고 보았다. 이를 위해 주변상황에 연연하지 않고, 여유가 넘치고, 우정을 간직하고, 자신감과 정의감에 찬 인물을, 혹스는 추구했다. 프로정신과 자부심을 지닌 반면 전통적이고, 그러면서도 사회의 인습에 저항하는 그들이 어찌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겠나. 그런 까닭에 혹스의 서부극은 호탕하고 유머가 흐르며, 종래엔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는 게 특징이다. 단적인 예로, 존 웨인은 혹스의 웨스턴에서 더 많은 미소를 짓는다. 사실 포드의 서부극에서 간혹 이상화되고 신경질적이며 경직되어 있는, 그래서 아메리칸 히어로의 피곤함에 지친 듯 보이는 웨인은 혹스의 서부극으로 이동할 때마다 훨씬 경쾌한 인물로 탈바꿈한다. 물론 혹스의 인물들이 시작부터 완벽한 프로페셔널로 행세하는 건 아니다. 난관을 극복하고, 인간적인 결점을 보완하며, 서로 협조하는 과정을 거쳐 각 인물들은 성숙한 프로페셔널로 거듭 태어난다. 혹스의 첫 서부극인 <레드 리버>에서 그랬고, 변형된 서부극인 <빅 스카이>에서도 그랬듯이, <리오 브라보>는 프로페셔널과 영웅이 일체가 되는 지점을 지향하는 영화다. 실연의 고통과 알코올 중독을 딛고 주인공의 동반자로 성장하는 <리오 브라보>의 ‘듀드’는 혹스식 프로페셔널의 대표적 인물이다. 혹스가 꿈꾼 프로페셔널의 원형이 <천사만이 날개를 가졌다>(1939)라면, <리오 브라보>는 혹스가 평생 희구했던 가치를 꽃피운 작품이라 하겠다.


후반부의 클라이맥스에 도달하기 전까지, <리오 브라보>의 대다수 장면은 설정 상 텍사스 주와 멕시코 사이에 위치한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한정된 공간 내에서 벌어지는 포위의 드라마이기에 혹시 빡빡하게 직조된 구성을 예상했다면, 틀렸다. 혹스는 긴박한 전개를 보여주려고 애쓰지 않거니와 유별난 스타일을 뒤쫓지도 않는다. 어느덧 익숙해진 존 웨인의 걸음걸이처럼, 언제나 눈높이에 맞춘 카메라는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위치에 머문다. 꼭 맞는 때에 꼭 맞는 곳에서 꼭 봐야 할 것을 보여주는 게 <리오 브라보>의 스타일이다. 그래서 화려하지 않고 단순하지만, 거기엔 고전적인 우아함이 빛난다. 당당하고 서두르지 않기에 <리오 브라보>의 전개 속도는 오히려 느린 편이다. <리오 브라보>는 극중 주요 지점인 보안관 사무실, 호텔, 초소 사이를 오가는 인물들의 행동으로 구성된 영화다. 간간이 몇 개의 중요한 액션 신이 삽입되어 있으나, 혹스는 그 밖의 장면을 코미디와 로맨스 (그리고 뮤지컬) 등으로 채워놓았다. 남녀 주인공의 로맨스 신에서 <소유와 무소유>를 재연하고, 딘 마틴과 리키 넬슨의 인기를 살려 기이할 정도로 긴 노래 장면을 끼워 넣는 등, 혹스는 자신의 장기를 아끼지 않고 선보였다. <리오 브라보> 속에서 발견되는 서너 가지 장르의 영화는, 서너 편의 TV쇼를 동시에 안으려는 혹스의 의도를 따른 것이기도 하다. <리오 브라보>가 혹스의 최고 걸작일까? 모르겠다. <리오 브라보>가 최고의 서부극일까? 역시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리오 브라보>가 재미로 치면 으뜸가는 서부극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영화를 재미있어 하는지 알고 있던 혹스는 아는 바대로 <리오 브라보>를 만들었으며, 그의 판단은 옳았다. <리오 브라보>는 엄청난 흥행을 기록했고, 지금도 가장 사랑받는 서부극으로 손꼽힌다. (개봉 당시 평론가들만 이 영화를 과소평가했을 뿐이다) 진실로 즐겁고 재미있는 영화는 구식의 때를 타지 않는 법이다. (이용철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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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토크] 최동훈 감독이 추천한 하워드 혹스의 <리오 브라보>

지난 22일 오후, 하워드 혹스의 <리오 브라보>(1959)를 상영한 후 이 영화를 추천한 최동훈 감독과 관객이 함께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리오 브라보>의 감칠맛 나는 대사와 위트 넘치는 연기를 보면서 관객들은 '영화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서부극에 대한 장르의 즐거움부터 이 영화를 선택한 최동훈 감독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까지 다양한 주제가 화기애애하게 오간 그 현장을 여기에 담았다.


허남웅(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서부극의 어떤 점이 감독님을 매료시켰는지?
최동훈(영화감독): <타짜>를 만들 때 기존 도박 영화를 닮기 싫었고 어차피 대결의 영화니까 서부영화를 굉장히 많이 봤다. 내 생각에도 <타짜>는 서부 영화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항상 "너는 왜 그런 영화만 만드냐. <리오 브라보>나 <나바론 요새> 같은 영화를 찍어야지" 하셨다. (웃음) 또 서부 영화에 나오는 남자들이 굉장히 멋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혹스 영화의 남자들은 되고 싶고 닮고 싶은 부분들이 있다.

허남웅: <리오 브라보>에서 존 웨인과 딘 마틴은 마치 스승과 제자처럼 등장한다. 감독님 영화 세 편에서도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많다. <타짜>의 백윤식 선생님과 조승우 씨나 <전우치>의 백윤식 선생님과 강동원 씨가 그런데 <리오 브라보>와의 연관성이나 혹스의 영향이 있었는지?
최동훈: 영향은 많이 받은 것 같다. 빌리 와일더나 하워드 혹스 같은 감독을 굉장히 좋아한다. 혹스는 "당신의 영화는 예술인가"하는 질문에 콧방귀를 뀌는 사람이고 "나는 한 명의 영화감독일 뿐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럼에도 한 명의 영화감독이 갱스터부터 코미디, 심지어 뮤지컬까지 걸작을 만들 수 있는 경우는 흔치 않다고 생각한다. <리오 브라보>의 영향을 받은 게 있다면 첫째는 대사다. 대사가 너무 훌륭하다. 맞받아치는, 이를테면 존 웨인과 리키 넬슨이 처음 만나서 대화하는 부분은 보고 또 본다. 혹스가 한 씬을 만드는 과정을 유심히 보고 있으면 영화감독에게 씬을 정교하게 만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게 된다. 제일 좋아하는 씬은 첫 장면인데 완전히 무성 영화 같이 찍혔다. 대사가 없고, 그래서 오히려 더 빨려 들어간다. 딘 마틴은 술을 원하는데 돈이 없다. 타구에 돈을 던져 모욕을 주는 것을 보고 다툼이 벌어지고 살인이 발생하며, 이 때 존 웨인이 하는 첫 대사가 "너를 체포하겠다."이다. 그 다음에 제일 중요한 장면은 딘 마틴이 천장에 있는 범인을 총으로 쏘는 술집 신인데 콘티를 짤 때뿐만 아니라 언제나 한 씬은 저렇게 구성되어야한다는 교과서와도 같은 것이다.

허남웅:
원래 딘 마틴이 맡았던 듀드 역은 몽고메리 클리프트가 먼저 제안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몽고메리 클리프트가 존 웨인을 싫어했다고 한다. 몽고메리 클리프트는 동성연애자였고 존 웨인에게 마초적인 느낌이 있어서 싫어했다고 하는데, 존 웨인은 감독님이 느끼기에 어떤 배우인지도 궁금하다.
최동훈: 배우는, 좋은 배우에 한해서인데, 역할을 맡아서 스스로 그 역할을 하는 배우가 있다. 흔히 말하는 연기파 배우, 어떤 영화에서든 그 역할에 맞는 연기를 훌륭하게 소화해내는 배우가 있는가 하면 언제나 그 사람인 배우가 있는 것 같다. 존 웨인은 수많은 영화에 나와도 언제나 그 사람인 배우다. 존 웨인은 서부극의 아이콘이기도 하고, 이 영화에서 존 웨인을 보고 "저 돼지 같은 사람이 연기를 처음 하네"하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 영화에서 존 웨인의 연기는 기존의 존 웨인 식이라고 할 수 있는, 과묵하고 언제나 고독한 그런 캐릭터라기보다는 코미디도 좀 하는 것 같고 좀 열려 있는 캐릭터다. 개인적으로 존 포드의 존 웨인보다 <리오 브라보>의 존 웨인을 더 좋아한다.

허남웅: 잘 아시겠지만 하워드 혹스는 게리 쿠퍼가 나온 <하이 눈>을 굉장히 싫어했다고 한다. <리오 브라보>가 한편으로 보면 '전문가의 영화'이기도 한데, 그에 반해 <하이 눈>은 게리 쿠퍼가 마을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러 가는 모습이 있다. 그 점이 굉장히 마음에 안 들어서 하워드 혹스와 존 웨인이 의기투합해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감독님은 이 영화를 언제 처음 접하셨고 오늘 다시 보신 후 느낌은 어땠는지?
최동훈: 어릴 때 TV로 보진 않았고 DVD로 발매되고 나서 보기 시작했다. 혹스는 정말 프레드 진네만을 싫어했다. 게리 쿠퍼는 마을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사정하지만 버림받고 결국 혼자 싸우게 된다. 물론 그것도 멋진 영웅의 모습이겠지만. 프레드 진네만은 언제나 인간의 고뇌, 고독감, 남들이 알아주지 않지만 자기 길을 가는 사람을 담았었는데 하워드 혹스의 영화는 약간 잡탕이다. 서부 영화이기는 하지만 서부영화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역마차나 존 포드처럼 모뉴먼트 벨리 같은 거나 인디언, 기병대 이런 요소들을 전혀 나오지 않는다. 서부 영화하면 흔히 나오는 아주 멋진 풍광, 말을 타고 달려가는 질주 같은 것이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좁은 세트장에 모든 배우를 처박아놓고 그 안에서 코미디도 하고 노래도 하고 어떻게 보면 가족 영화 같은 느낌도 든다. 스템피는 할아버지 같고 존 웨인은 아버지 같고 딘 마틴은 아들 같고 리키 넬슨은 조카 정도랄까. (웃음) 존 포드의 서부 영화도 좋아하기는 하지만 이상하고 비틀린 서부 영화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하워드 혹스의 이 영화뿐 아니라 <엘도라도>라는 영화도 구조가 되게 비슷하다. 전통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그래서 오히려 독특한 냄새를 풍기는 서부 영화를 좋아하는 것 같다.

허남웅:
이 영화는 클로즈업이 거의 없는 영화다. 자료를 보면 클로즈업이 두 장면 있는데, 딘 마틴이 담배를 물 때 손을 보여주는 장면이고 존 웨인이 장총을 잡을 때 클로즈업을 잡는다. 서부극은 풀숏의 영화라는 느낌이 든다. 풍광의 영화이기도 하고. 이 영화는 세트에서 많이 찍었는데 그럼에도 클로즈업이 거의 없다. 감독님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최동훈: 감명 깊게 생각한다. (좌중 웃음) 이 영화에서 제일 좋아하는 부분이다. 영화를 찍을 때 숏 사이즈를 정하는 게 민감한 부분이다. '니 숏', 할리우드 숏이라고 하는, 사람 두 명 이상 나올 때 무릎 위에서 자르는 숏을 좋아하는데, 사실 그걸 찍기가 정말 애매하다. 화면으로 보면 애매한 것 같고. 혹스가 그 '니 숏'을 가장 자유롭게 쓰는 감독이기도 하고, 커트를 많이 하지 않는 성향의 감독이기도 한다. 그게 왜 그런지 생각해보면 하워드 혹스는 정말 관객을 위해서만 영화를 찍은 사람이다. 관객이 어떻게 하면 재밌을까만 생각한 사람인데, 관객이 영화를 편히 보게 하기 위해서인 것 같다. 예전에 읽었던 글에서 로만 폴란스키가 ‘숏 사이즈에 대해서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무조건 관객이 편하게 찍을 뿐’이라고 한 말이 생각난다. 하워드 혹스 본인도 어려운 숏을 구사하거나 최고의 테크니션은 아닌 것 같다. 클로즈업이란 건 "이 배우의 눈빛을 보세요"라고 강요하는 건데 하워드 혹스는 그런 강요를 하지 않는다.

허남웅: 존 웨인과 앤지 디킨슨의 러브 스토리가 나오는데 당시 나이 차이가 많이 났다. 존 웨인은 쉰 두 살이고 앤지 디킨슨은 열아홉 살이었는데 이것 때문에 존 웨인이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았다고 한다. 그런 것들이 클로즈업을 잡는 데 거부감을 일으킨 것 아닐까? (좌중 웃음)
최동훈: 백윤식 선생님과 문근영도 러브 스토리를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좌중 웃음) 개인적으로 혹스 영화에 나오는 여자 캐릭터를 정말 사랑한다. 혹스 개인도 게이라는 설이 있는데 그건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다. 혹스는 주로 남자들 간의 우정을 다룬다. 그 남자들 간의 우정이 약간 티는 안 나지만 너무 너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들끼리 남자로서. 그런데 영화에 여자 캐릭터가 들어올 때 여자들은 남자들에게 순종적이지 않고 언제나 남자와 싸울 준비가 되어있다. 마지막 씬을 빼놓고는 울지도 않는다. 남성들 간의 우정, 이 남성들이 해야 할 일이 영화 속에 있는데 그걸 방해하지 않으면서 도와주면서 남자를 제 것으로 만드는 것이 정말 놀라운 여성상이다. 최근에 혹스의 <천사만이 날개를 가졌다>를 봤는데 그 영화의 여성 캐릭터는 지금 한국 영화의 여성 캐릭터로 떼어놔도 여우주연상을 받을 정도로 좋은 역할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남성과 여성의 로맨스는 로맨스인지 아닌지 아무도 속마음을 밝히지 않은 채 진척이 되어간다. 마지막에 여성이 물어본다. 마음을 밝혀라. 사랑한다는 말을 하라고 하지만 체포하겠다는 말을 하는 것. 아주 훌륭한 시나리오라고 생각한다.


관객1: 이 영화는 팀플레이가 잘 되어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쓸모가 없어 보이는 노인도 제 역할을 하고 네 명이 서로 보완해가는 느낌이 있다. 감독님의 차기 영화가 공모하는 내용의 영화라고 들었는데 혹시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싶어 하셨는지. <타짜> 보실 때 서부영화 많이 보셨다고 했는데 요새 즐겨보거나 영감을 받는 영화가 있는지?
최동훈: 그 할아버지는 정말 감초 역할을 한다. 할아버지라는 존재가 일차원적인 남성 캐릭터들만 존재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영화를 도와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영화가 리얼해보이려면 가족이 등장하거나 노인이 등장하는 게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의 단독 캐릭터보다는 여러 명의 캐릭터가 있는 건데 가장 빛나는 건 그 노인이라고 생각한다. 그 노인이 없으면 영화가 무미건조해졌을 것 같고. 노인이 웃기니까. 내가 지금 준비하는 영화 역시 도둑들에 대한 영화다. 그래서 <리오 브라보>를 보자고 한 것도 있는 것 같다. <리오 브라보>에 나오는 환상의 팀플레이가 나의 다음 작품에서도 필요하다. 이번 달에 아트시네마에서 했던 <리피피> 같은 작품도 너무 좋아한다. 지금도 <리피피>를 세 달에 한 번씩은 본다.

(정리: 최용혁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관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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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오 브라보 Rio Bravo>(1959)는 전작의 참담한 흥행 실패로 미국을 떠나 유럽에서 생활하던 하워드 혹스가 4년여 만에 할리우드로 돌아와 만든 영화다. 고국에 돌아온 그는 미국 사회에서 TV 드라마가 대중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누리는 것에 큰 인상을 받았고, 그 가장 큰 요인을 스타들이 만들어내는 매혹적인 캐릭터에서 찾았다고 한다. 그는 <리오 브라보>에 이러한 요소를 도입한다. 영화의 스토리와 공간을 매우 단순하게 구성하고, 그 속에서 다채로운 특징을 지닌 캐릭터들이 개성을 자유롭게 발휘하며 활보하도록 한 것. 마을을 거의 홀로 지키는 보안관 챈스(존 웨인), 전직 부보안관이었으나 사랑의 실패로 받은 상처로 인해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고 지금은 거기에서 벗어나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듀드(딘 마틴), 젊은이의 활기와 냉정함을 동시에 갖춘 총잡이 콜로라도(리키 넬슨), 이 세 사람이 만들어내는 개성의 충돌과 조화는 이 영화의 매우 큰 매력임에 틀림없다. 또한, 챈스를 돕는 부보안관 할아버지 스탬피(월터 브레넌)와 강인하면서도 섹스어필의 매력이 넘치는 여성 패더스(앤지 디킨슨)의 존재는 영화에 다채로움을 더한다. 이러한 주요 캐릭터에 대한 두드러진 강조는 혹스 식의 '전문가 웨스턴'의 성향과 매우 잘 맞아 떨어진다.


<리오 브라보>는 프레드 진네만의 <하이 눈 High Noon>(1952)에 대한 혹스의 대답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혹스는 <하이 눈>의 보안관 캐릭터(게리 쿠퍼)를 매우 싫어했는데, 그 이유는 그가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호소했기 때문이었다. 이는 혹스적 세계와는 정면으로 대치되는 것이다. 혹스의 캐릭터는 전문가적 스킬을 지닌 영웅들이다. <리오 브라보>의 영웅인 챈스는 매우 큰 곤경에 처해있다. 많은 총잡이들을 거느린 거대 목장주의 동생을 살인죄로 체포함으로써, 그 패거리들의 집중적 공격을 받게 된 것. 그러나 챈스는 자신을 돕겠다고 나선 친구의 제의를 거절하는데, 이는 그가 "야심찬 아마추어 보다는, 결함 있는 프로가 낫다"고 여기며, 무고한 사람들이 자신으로 인해 사건에 휘말려들어 희생되는 것을 방지하려는 책임 의식을 가진 까닭이다. 그리하여 챈스는 결코 공동체의 도움을 구하지 않고, 실력을 인정하는 자만을 옆에 두어 자신들의 전문가적 스킬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영화는 사실상 이 영웅들의 모습에만 관심을 두는데, 이들의 존재성은 어쩐지 현실감이 적다. 즉 이 캐릭터들은 어떠한 역사적 차원이나 시대의 운명에도 놓이지 않으며, 영화 속 공간인 마을 또한 하나의 독립적인 세상처럼 존재하는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이 영화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영위하는 일상적 삶의 모습을 거의 볼 수 없다.


혹스의 웨스턴은 확실히 남성 지향적이다. 힘에 의해 서열화 된 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남성들 간의 단결과 의리, 그리고 우정이다. 소수로 등장하는 여성들조차 매우 개성 있고 강인하며, 남성세계에 잘 융화되면서 그들의 우정을 해치지 않는다. <리오 브라보>를 작동시키는 가장 큰 축은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 새 삶을 살아보려는 듀드의 치열한 노력이다. 영화는 그의 비참한 처지와 고통으로부터 출발하여, 그가 거기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 과정을 돕는 것이 챈스의 사려 깊은 배려이며, 챈스를 중심으로 뭉친 남성들의 연대와 우정인 것이다. 마을에 고립된 채 공격을 받고 있다는 상황, 그리고 점점 더 격렬해져 가는 싸움은 이들의 우정을 한층 공고하게 만든다. 콜로라도가 기타를 치며, 스탬피가 하모니카를 불고, 듀드가 누워서 노래를 부르는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장면은 이들의 우정이 싹트는 순간을 보여주면서, 그 어떤 대결 장면보다도 깊은 인상을 남긴다. (박영석: 시네마테크 관객 에디터)

Cine-Talk
1월 22일(토) 14:30 <리오 브라보> 상영 후 최동훈 감독 시네토크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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