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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Cine talk

“전통을 벗어난 이상하게 비틀린 느낌이 좋다”

[시네토크] 최동훈 감독이 추천한 하워드 혹스의 <리오 브라보>

지난 22일 오후, 하워드 혹스의 <리오 브라보>(1959)를 상영한 후 이 영화를 추천한 최동훈 감독과 관객이 함께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리오 브라보>의 감칠맛 나는 대사와 위트 넘치는 연기를 보면서 관객들은 '영화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서부극에 대한 장르의 즐거움부터 이 영화를 선택한 최동훈 감독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까지 다양한 주제가 화기애애하게 오간 그 현장을 여기에 담았다.


허남웅(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서부극의 어떤 점이 감독님을 매료시켰는지?
최동훈(영화감독): <타짜>를 만들 때 기존 도박 영화를 닮기 싫었고 어차피 대결의 영화니까 서부영화를 굉장히 많이 봤다. 내 생각에도 <타짜>는 서부 영화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항상 "너는 왜 그런 영화만 만드냐. <리오 브라보>나 <나바론 요새> 같은 영화를 찍어야지" 하셨다. (웃음) 또 서부 영화에 나오는 남자들이 굉장히 멋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혹스 영화의 남자들은 되고 싶고 닮고 싶은 부분들이 있다.

허남웅: <리오 브라보>에서 존 웨인과 딘 마틴은 마치 스승과 제자처럼 등장한다. 감독님 영화 세 편에서도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많다. <타짜>의 백윤식 선생님과 조승우 씨나 <전우치>의 백윤식 선생님과 강동원 씨가 그런데 <리오 브라보>와의 연관성이나 혹스의 영향이 있었는지?
최동훈: 영향은 많이 받은 것 같다. 빌리 와일더나 하워드 혹스 같은 감독을 굉장히 좋아한다. 혹스는 "당신의 영화는 예술인가"하는 질문에 콧방귀를 뀌는 사람이고 "나는 한 명의 영화감독일 뿐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럼에도 한 명의 영화감독이 갱스터부터 코미디, 심지어 뮤지컬까지 걸작을 만들 수 있는 경우는 흔치 않다고 생각한다. <리오 브라보>의 영향을 받은 게 있다면 첫째는 대사다. 대사가 너무 훌륭하다. 맞받아치는, 이를테면 존 웨인과 리키 넬슨이 처음 만나서 대화하는 부분은 보고 또 본다. 혹스가 한 씬을 만드는 과정을 유심히 보고 있으면 영화감독에게 씬을 정교하게 만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게 된다. 제일 좋아하는 씬은 첫 장면인데 완전히 무성 영화 같이 찍혔다. 대사가 없고, 그래서 오히려 더 빨려 들어간다. 딘 마틴은 술을 원하는데 돈이 없다. 타구에 돈을 던져 모욕을 주는 것을 보고 다툼이 벌어지고 살인이 발생하며, 이 때 존 웨인이 하는 첫 대사가 "너를 체포하겠다."이다. 그 다음에 제일 중요한 장면은 딘 마틴이 천장에 있는 범인을 총으로 쏘는 술집 신인데 콘티를 짤 때뿐만 아니라 언제나 한 씬은 저렇게 구성되어야한다는 교과서와도 같은 것이다.

허남웅:
원래 딘 마틴이 맡았던 듀드 역은 몽고메리 클리프트가 먼저 제안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몽고메리 클리프트가 존 웨인을 싫어했다고 한다. 몽고메리 클리프트는 동성연애자였고 존 웨인에게 마초적인 느낌이 있어서 싫어했다고 하는데, 존 웨인은 감독님이 느끼기에 어떤 배우인지도 궁금하다.
최동훈: 배우는, 좋은 배우에 한해서인데, 역할을 맡아서 스스로 그 역할을 하는 배우가 있다. 흔히 말하는 연기파 배우, 어떤 영화에서든 그 역할에 맞는 연기를 훌륭하게 소화해내는 배우가 있는가 하면 언제나 그 사람인 배우가 있는 것 같다. 존 웨인은 수많은 영화에 나와도 언제나 그 사람인 배우다. 존 웨인은 서부극의 아이콘이기도 하고, 이 영화에서 존 웨인을 보고 "저 돼지 같은 사람이 연기를 처음 하네"하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 영화에서 존 웨인의 연기는 기존의 존 웨인 식이라고 할 수 있는, 과묵하고 언제나 고독한 그런 캐릭터라기보다는 코미디도 좀 하는 것 같고 좀 열려 있는 캐릭터다. 개인적으로 존 포드의 존 웨인보다 <리오 브라보>의 존 웨인을 더 좋아한다.

허남웅: 잘 아시겠지만 하워드 혹스는 게리 쿠퍼가 나온 <하이 눈>을 굉장히 싫어했다고 한다. <리오 브라보>가 한편으로 보면 '전문가의 영화'이기도 한데, 그에 반해 <하이 눈>은 게리 쿠퍼가 마을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러 가는 모습이 있다. 그 점이 굉장히 마음에 안 들어서 하워드 혹스와 존 웨인이 의기투합해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감독님은 이 영화를 언제 처음 접하셨고 오늘 다시 보신 후 느낌은 어땠는지?
최동훈: 어릴 때 TV로 보진 않았고 DVD로 발매되고 나서 보기 시작했다. 혹스는 정말 프레드 진네만을 싫어했다. 게리 쿠퍼는 마을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사정하지만 버림받고 결국 혼자 싸우게 된다. 물론 그것도 멋진 영웅의 모습이겠지만. 프레드 진네만은 언제나 인간의 고뇌, 고독감, 남들이 알아주지 않지만 자기 길을 가는 사람을 담았었는데 하워드 혹스의 영화는 약간 잡탕이다. 서부 영화이기는 하지만 서부영화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역마차나 존 포드처럼 모뉴먼트 벨리 같은 거나 인디언, 기병대 이런 요소들을 전혀 나오지 않는다. 서부 영화하면 흔히 나오는 아주 멋진 풍광, 말을 타고 달려가는 질주 같은 것이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좁은 세트장에 모든 배우를 처박아놓고 그 안에서 코미디도 하고 노래도 하고 어떻게 보면 가족 영화 같은 느낌도 든다. 스템피는 할아버지 같고 존 웨인은 아버지 같고 딘 마틴은 아들 같고 리키 넬슨은 조카 정도랄까. (웃음) 존 포드의 서부 영화도 좋아하기는 하지만 이상하고 비틀린 서부 영화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하워드 혹스의 이 영화뿐 아니라 <엘도라도>라는 영화도 구조가 되게 비슷하다. 전통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그래서 오히려 독특한 냄새를 풍기는 서부 영화를 좋아하는 것 같다.

허남웅:
이 영화는 클로즈업이 거의 없는 영화다. 자료를 보면 클로즈업이 두 장면 있는데, 딘 마틴이 담배를 물 때 손을 보여주는 장면이고 존 웨인이 장총을 잡을 때 클로즈업을 잡는다. 서부극은 풀숏의 영화라는 느낌이 든다. 풍광의 영화이기도 하고. 이 영화는 세트에서 많이 찍었는데 그럼에도 클로즈업이 거의 없다. 감독님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최동훈: 감명 깊게 생각한다. (좌중 웃음) 이 영화에서 제일 좋아하는 부분이다. 영화를 찍을 때 숏 사이즈를 정하는 게 민감한 부분이다. '니 숏', 할리우드 숏이라고 하는, 사람 두 명 이상 나올 때 무릎 위에서 자르는 숏을 좋아하는데, 사실 그걸 찍기가 정말 애매하다. 화면으로 보면 애매한 것 같고. 혹스가 그 '니 숏'을 가장 자유롭게 쓰는 감독이기도 하고, 커트를 많이 하지 않는 성향의 감독이기도 한다. 그게 왜 그런지 생각해보면 하워드 혹스는 정말 관객을 위해서만 영화를 찍은 사람이다. 관객이 어떻게 하면 재밌을까만 생각한 사람인데, 관객이 영화를 편히 보게 하기 위해서인 것 같다. 예전에 읽었던 글에서 로만 폴란스키가 ‘숏 사이즈에 대해서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무조건 관객이 편하게 찍을 뿐’이라고 한 말이 생각난다. 하워드 혹스 본인도 어려운 숏을 구사하거나 최고의 테크니션은 아닌 것 같다. 클로즈업이란 건 "이 배우의 눈빛을 보세요"라고 강요하는 건데 하워드 혹스는 그런 강요를 하지 않는다.

허남웅: 존 웨인과 앤지 디킨슨의 러브 스토리가 나오는데 당시 나이 차이가 많이 났다. 존 웨인은 쉰 두 살이고 앤지 디킨슨은 열아홉 살이었는데 이것 때문에 존 웨인이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았다고 한다. 그런 것들이 클로즈업을 잡는 데 거부감을 일으킨 것 아닐까? (좌중 웃음)
최동훈: 백윤식 선생님과 문근영도 러브 스토리를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좌중 웃음) 개인적으로 혹스 영화에 나오는 여자 캐릭터를 정말 사랑한다. 혹스 개인도 게이라는 설이 있는데 그건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다. 혹스는 주로 남자들 간의 우정을 다룬다. 그 남자들 간의 우정이 약간 티는 안 나지만 너무 너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들끼리 남자로서. 그런데 영화에 여자 캐릭터가 들어올 때 여자들은 남자들에게 순종적이지 않고 언제나 남자와 싸울 준비가 되어있다. 마지막 씬을 빼놓고는 울지도 않는다. 남성들 간의 우정, 이 남성들이 해야 할 일이 영화 속에 있는데 그걸 방해하지 않으면서 도와주면서 남자를 제 것으로 만드는 것이 정말 놀라운 여성상이다. 최근에 혹스의 <천사만이 날개를 가졌다>를 봤는데 그 영화의 여성 캐릭터는 지금 한국 영화의 여성 캐릭터로 떼어놔도 여우주연상을 받을 정도로 좋은 역할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남성과 여성의 로맨스는 로맨스인지 아닌지 아무도 속마음을 밝히지 않은 채 진척이 되어간다. 마지막에 여성이 물어본다. 마음을 밝혀라. 사랑한다는 말을 하라고 하지만 체포하겠다는 말을 하는 것. 아주 훌륭한 시나리오라고 생각한다.


관객1: 이 영화는 팀플레이가 잘 되어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쓸모가 없어 보이는 노인도 제 역할을 하고 네 명이 서로 보완해가는 느낌이 있다. 감독님의 차기 영화가 공모하는 내용의 영화라고 들었는데 혹시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싶어 하셨는지. <타짜> 보실 때 서부영화 많이 보셨다고 했는데 요새 즐겨보거나 영감을 받는 영화가 있는지?
최동훈: 그 할아버지는 정말 감초 역할을 한다. 할아버지라는 존재가 일차원적인 남성 캐릭터들만 존재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영화를 도와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영화가 리얼해보이려면 가족이 등장하거나 노인이 등장하는 게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의 단독 캐릭터보다는 여러 명의 캐릭터가 있는 건데 가장 빛나는 건 그 노인이라고 생각한다. 그 노인이 없으면 영화가 무미건조해졌을 것 같고. 노인이 웃기니까. 내가 지금 준비하는 영화 역시 도둑들에 대한 영화다. 그래서 <리오 브라보>를 보자고 한 것도 있는 것 같다. <리오 브라보>에 나오는 환상의 팀플레이가 나의 다음 작품에서도 필요하다. 이번 달에 아트시네마에서 했던 <리피피> 같은 작품도 너무 좋아한다. 지금도 <리피피>를 세 달에 한 번씩은 본다.

(정리: 최용혁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관객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