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영진위 지원중단 50여 일째, 무엇을 고민해야 하나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시네마테크 운영자를 공모하는 파행적인 행각을 벌인 지 대략 넉 달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이 사태는 진행 중이다. 이에 따라 지난 22일 저녁 시네마테크 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이 사태가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해 되돌아보고 점검해볼 수 있는 포럼을 열었다. 영화평론가인 김영진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포럼에는 영화인 대표자연대회의 최현용 사무국장과 영화평론가인 네오이마주 백건영 편집장, 그리고 시네마테크 후원금 모집 관객 대표로 필름에 관한 짧은 사랑(이하 필사)의 강민영 편집장이 발제를 맡았고, 서울아트시네마 김성욱 프로그래머와 서울에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건립하기 위한 추진위원회(이하 시네마테크 건립추진위) 간사인 정윤철 영화감독이 토론자로 참여했다. "시네마테크 사태를 생각한다"라는 주제로 열린 이 포럼은 각자 다른 입장에서 바라 본 '시네마테크 사태'에 대한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기회였다. 본격적인 포럼에 앞서서는 서울아트시네마의 새로운 트레일러와 관객들이 시네마테크에 대한 애정을 담아 제작한 2편의 짧은 UCC 동영상도 상영되었다.

짧은 영상 상영 후 시작된 포럼은 '영진위의 공공지원시스템, 무엇이 문제인가? - 최근 공모 파행 사태와 관련하여'라는 제하의 최현용 사무국장의 발제로 포문을 열었다. 정책적, 행정적인 문제들을 주로 짚은 최 국장은 첫 번째 쟁점으로 공모의 대상이 된 사업의 성격에 대해 이야기하며, 결론적으로 전체적인 맥락에서는 지원 사업임에도, 계약 방식 상에서 위탁을 택하고 있었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두 번째 쟁점으로는 ‘계약의 형태’를 지적하며, "적어도 영진위가 기존의 방식과 다른 일반 경쟁으로 전환하고자 했다면, 전환의 논리적, 정책적 근거를 명확히 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협력적 영화거버넌스’라고 지칭할 수 있는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협력적 관계가, ‘관료적 영화행정’으로 지칭할 수 있는 영진위의 우월적이고 독점적인 관계로 전환됐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문화적 측면뿐만 아니라 산업적인 측면에서 바라봤을 때조차도 영진위의 행태는 파행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정책, 행정적인 문제점과 더불어 산업적 문제점까지 꼬집었다.

뒤이어 네오이마주 백건영 편집장은 '시네마테크 사태로 본 시네필의 역할에 관한 소고'에 대해 밝혔다. 그는 '시네필의 초상'이라고 일컬어지는 프랑수와 트뤼포의 예를 들면서 한국의 시네필의 역할과 변화의 양상을 언급했다. 이어 "공모제 사태 이전의 관객이 시네필이란 무엇인가라는 것에만 몰두했다면, 이후에는 시네필이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혹은 시네필은 무엇으로 어떻게 세상과 맞설 수 있는가를 고민했고. 이를 행동으로 옮겼다는 데서 차이가 발견된다"고 지적했다. 또한 “시네필은 자신만의 영화박물관을 짓는 것이 아닌, 영화로 발언하고 그 발언이 영화와 영화를 둘러싼 환경까지를 돌아보는 과정 속에서 오늘에 이를 수 있도록 부단히 움직이는 자들이고 집단'이라고 언급했다. 그리고 이런 시네필의 역할들이 시네마테크를 후원하기 위한 관객운동을 형성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시네마테크는 세월을 벗 삼고 시간을 친구삼아 영화의 역사를 만들어 왔고, 그 기운을 간직한 공간"이라며 “서울아트시네마가 53일 동안 영진위로부터 공적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이렇게 스스로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시네필들의 이러한 적극적 참여와 역할이었고, 이런 역할이 앞으로도 요구될 것임”을 재차 강조했다.

이어 '무엇이 우리를 움직이게 만들었나? - 관객의 입장에서 본 지난 1년의 시네마테크 사태'란 제하로 발제를 한 필사 강민영 편집장은 유사한 맥락에서 젊은 시네필의 필요성에 대해서 언급했다. 그녀는 "시네마테크는 멀티플렉스의 홍수에서 벗어난 지점에서 영화를 상영하고 현재와 과거, 그리고 미래를 이어갈 수 있는 중간 지점에 영화를 놓아 끊임없이 담론을 제기하고 함께 보기를 권하는 장소로서 그 중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또한 강 편집장은 "환경에 의한 변화, 소위 말하는 디지털 시대로부터 도착한 외부영향이 짙어지면서 극장을 찾는 시네필들은 점차적으로 휴대기기와 컴퓨터를 이용해 영화를 습득하고 공부하게 되었고, 이와 같은 방법으로 영화를 선택하는 현상은 주로 젊은 관객들에게 쉽게 일어난다"며 ‘젊은 시네필의 부재’에 대해 지적한 후 "영화에 대한 최소한의 미덕을 지키고 이어나가고자 하는 젊은 관객들이 시네마테크에는 절실히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발제가 끝난 뒤에는 토론이 이어졌다. 먼저 입을 연 김성욱 프로그래머는 “지난해 초부터 시작된 시네마테크 사태 공모 논란이 일 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해결되지 않은 채 현재 진행형으로 이야기한다는 거 자체가 부당하다”며 “이 사태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의 피로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해 참석자들에게 웃음을 줬다. 또한 그는 “보이지 않는 내적인 문제가 있었는데, 이것은 관객들의 모금운동이나 감독들의 노고로 인해 헤쳐 나갈 수 있었다”며 감사를 표한 후 영진위가 대체 이렇게까지 계속적으로 이 문제를 무리하게 강행하는 근원적인 힘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궁금증을 던졌다. 이에 대해 최현용 사무국장은 “크게 보면 정권의 운영방식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며 이번 정권이 영화를 바라보는 두 개의 준거 틀, 즉 정권 지지도구로서의 영화와 산업으로서의 영화에 관해 밝혔다. 최 국장에 따르면 영진위가 표면적으로는 후자(산업으로서의 영화)를 내세우고 있지만, 아마도 전자(정권을 위한 영화)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 더불어 그는 “영진위의 인적 네트워크가 매우 열악하다”며 “조직 운영방식의 문제도 이러한 사태를 불러운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시네마테크 건립추진위 간사인 정윤철 감독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시네마테크를 후원하고 지지하는 영화감독들이 시네마테크의 필요성을 더욱더 실감하게 됐다”며 “스크린쿼터 이후 영화인들이 합심해서 뭉친 전무후무한 일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성명서만 발표하는 것에서 그친 게 아니라 여러 방면으로 각자 혹은 함께 노력 중이라는 것 자체가 시네마테크의 필요성을 반증하는 놀라운 일이라는 것. 덧붙여 정 감독은 “여러 가지 선택 중에서 원칙을 지키며 능동적으로 행동해서 지금까지 진척되어 왔으니 이제는 장기적인 플랜을 짜야할 때”라고 주장했다.



이외에도 이날 토론에선 시네필의 정의, 역할, 행동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제기됐다. 백건영 편집장은 “시네마테크를 찾는 시네필과 그렇지 않은 시네필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며 “이런 벽을 허물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고, 최현용 사무국장은 “영화 자체에 대한 문제에서 더 나아가 영화 정책까지 고민하는 시네필의 측면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최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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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존 포드의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우리는 영화를 보면서 많은 것을 얻는다. 즐거움을 얻기도 하고, 감동에 젖기도 하며, 무언가를 배우기도 한다. 특히 자신의 삶의 가치관이나 기억을 환기시키는 영화는 더욱 특별한 작품으로 남는 경우가 많다. 존 포드의 가장 빼어난 드라마중 하나인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1941)는 거기에 담긴 감정이 너무도 보편적이고 진실해서, 누구에게라도 그러한 특별한 작품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 이 영화는 고전적 형식미의 완결성과 전형적인 가족멜로드라마적인 이야기만으로 인간적인 삶의 가치를 그려낸다.

 

영화는 웨일즈의 한 탄광촌에서 살아가는 모건 가족의 이야기다. 막내인 휴는 자신 인생의 정점에서 유년기의 가족과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회상한다. “나의 계곡은 얼마나 푸르렀던가!”라는 회상. 집안에 위치하던 카메라는 유연하게 창밖으로 이동하며 그 회상을 표현한다. 그곳은 계곡의 정점에 탄광이 있고, 거기서부터 내려오는 길가를 따라 집들이 정렬해 있는 작고 소박한 마을이다. 모건 가족의 아버지와 형제들은 모두 탄광에 다닌다. 일이 끝나면 일당을 받고, 다 같이 집에 와 몸을 씻으며 저녁식사를 한다. 지극히 평화롭고 행복해 보이는 평범한 가정이다. 휴는 “아버지는 우리들의 머리였고, 어머니는 심장이었다”라고 회상한다.

그런데 이 가족의 조화로운 삶의 균형을 깨뜨리는 몇몇 갈등이 발생한다. 탄광회사 측의 횡포(임금 삭감)로 인한 파업을 바라보는 견해차로 가족의 분열이 일고, 어머니와 휴에게 닥친 사고로 한동안 병상에 누워 지내는 일도 생긴다. 마을의 목사와 딸의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의 문제도 있다. 두 아들이 탄광에서 해고되어 미국으로 떠나면서 가족의 분열이 발생하기도 한다. 마을 사람들은 모건 가족의 친구이지만, 쉽사리 소문에 휩쓸리며 때로는 적대적으로 변한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갈등들은 오래지 않아 무마된다. 휴가 한동안 걷지 못하다가 푸른 꽃밭에서 목사의 도움으로 다시 걷기 시작할 때가 그 시작이다. 롱쇼트로 찍힌 이 장면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자연의 아름다움, 이에 더해 인간성의 따스한 품속에서 모든 갈등은 치유된다. 휴가 유년시절의 회상을 끝내는 결정적 사건도 회한과 고통보다는 애상감이 더 크다. 가족은 언제나 거기에 굳건하게 자리한다. 휴의 기억 속에서는 가족들과 아버지에게서 배운 삶의 가치들이 평생 뿌리처럼 자라왔던 것이다. 그 계곡의 푸름과 함께.

 

이 영화에 담긴 ‘가족과 집의 소중함’이라는 가치는 쉽사리 진부한 것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또한 영화 속 따스한 감정들은 현실성 없는 낭만주의라고 비판받기도 했다. 실제로 고용자와 노동조합의 문제, 계급의 문제, 공동체의 문제 같은 갈등의 틈들은 크게 부각되지 않은 채 너무 쉽게 봉합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모든 현실성의 문제를 넘어서는 숭고한 지점에 있다. 삶의 순수한 진실이 담겼기 때문이다. 포드는 삶의 가치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지극히 영화적인 직관만으로, 이 영화를 진실함의 심원한 영역에 올려놓는다. 어떠한 표현적인 혹은 스타일적인 기교도 필요치 않다. 그의 영화는 그 자체로 살아 숨쉰다.

 

영화는 애상에 젖어 말한다. 어떤 일이 발생했더라도 삶은 그 자체로 흘러왔으며, 인생의 정점에서 돌이켜 볼 때 그 시절은 더없이 아름다웠다고. 이는 아일랜드 이민 2세대인 포드가 가진 ‘아일랜드에 대한 근원적인 그리움’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영화는 어린 시절에 보았다면 평생 어떠한 유년의 기억처럼 그리움으로 남을 수 있고, 나이가 지긋이 든 후에 본다면 삶을 뒤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우리는 바로 이러한 영화를 ‘고전’이라고 부른다. (박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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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진 영화평론가의 선택, 존 포드의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시네토크

이번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김영진 영화평론가가 추천한 작품은 존 포드의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로 지난 17일 이 영화에 대해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김영진 평론가는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에 한껏 젖어있는 관객들을 보며 ‘나도 여러분이 보시는 그대로만 존 포드를 알고 있다’는 말을 건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영화에 대한 개괄적 설명과 함께 평소 쉽게 접할 수 없는 존 포드 감독에 대한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재미있게 풀어 주었던 시간이었다. 재치와 유머가 한껏 묻어났던 김영진 영화평론가의 시네토크 현장을 이곳에 옮긴다.


김영진(명지대 교수, 영화평론가): 영화 잘 보셨는지 궁금하다.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를 어렸을 때보면서 막 울고 그랬던 기억이 난다. 대책 없이 센치한 영화 같다. (웃음) 감독 존 포드에 대해서 우리는 늘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우리가 대체 그에 대해 무엇을 아는가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위대한 감독이라고 하지만 명쾌하게 왜 위대한지에 대해서는 대답하기 어렵다. 존 포드는 무성영화부터 시작했던 감독이고 수많은 경험을 통해 다져진 감독이기 때문에 우리가 도저히 당도할 수 없는 깊이를 가진 감독이었다. 주로 그는 ‘촬영은 사람들의 눈을 찍는 것이다’라는 말을 했는데 그의 영화를 보면 이 말이 정말 공감된다. 존 포드 영화현장의 전설 중 하나가 우연찮게 굉장한 장면을 건진다는 것에 있다. 이를테면 진주만 습격 때 존 포드가 현장에 있었는데 그는 그걸 카메라에 담았다. 또한 <황색 리본을 한 여자>에서 기병대가 말을 타고 갈 때 내려치는 천둥번개를 그대로 화면에 담았다고 한다. 일부는 철저하게 기획된 것들도 많았겠지만 이 같은 에피소드들은 정말 기막힌 우연과 행운이라 할 수 있다.

존 포드는 전성기가 굉장히 길었고 외형상으로 거의 모든 작품을 통해 확고한 커리어를 쌓았던 감독이나 그럼에도 불가하고 그의 최고 정점을 꼽자면 1939년 후 <역마차>와 <젊은 날의 링컨>, 그리고 <모호크족의 북소리> 등을 연달아 발표할 때다. 흔히 존 포드의 영화는 패밀리 전통에 대해서 낭만적이고 감상적인 미화를 하고 있다고 읽혀지는데 사실 그것 이상으로 패밀리 공동체가 부서지는 걸 낱낱이 보여주고 있다는 게 훨씬 흥미롭다.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를 처음 봤을 때 아버지의 죽음을 보여주는 방식이 엄청나게 충격적이었다. 아버지가 죽을 때 아들의 대사 한 마디 없이 바로 점프해서 어머니로 넘어가는데 어머니가 ‘영광을 봤다’라고 하잖나. 그런 ‘디그니티’, 가족이 ‘디그니티’를 지키며 어떻게 죽음과 대면하는가를 절실히 보여주고 있다. 가장 이상적인 부분이다.

존 포드 영화에서 말하기 힘든 부분들 중 하나는 영화에 나타나는 텐션을 어떻게 발견하느냐에 대한 것이다. 많은 비평가들이 논구를 많이 했지만 존 포드의 살아생전 인터뷰에서는 그럴듯한 대답이 없었다. 존 포드는 1950년대 이후에 비평적 명성이 높아지며 유럽에서 엄청난 열풍이 불었던 감독이다. 인터뷰는 거의 코미디였다. (웃음) 피터 보그다노비치의 인터뷰가 있는데 것도 재밌지만 서면으로 볼 수 있는 평론가들 인터뷰는 더 희극적이다. 존 포드의 곁에 있었던 사람들은 흔히 존 포드가 굉장히 권위적이었다는 말을 하곤 한다. 존 포드를 회고하며 그의 스태프들은 존 포드를 ‘고집불통 노인네’라고 말하지만 돌아보면 그와 일한 것은 정말 멋진 경험이었다고 이야기한다. 존 포드는 인터뷰를 통해 ‘나에게 영화는 직업이고 내 인생이다’라는 말을 했다. 그는 주변사람들과의 관계를 좋아했고 그것을 즐겼을 뿐이지 자신이 한 번도 위대하다거나 하는 걸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런 발언들이 존 포드 영화 복합성의 깊이를 설명해주는 한 예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존 포드는 할리우드 인더스트리 내에 있었고 단 한 번도 스스로 각본을 쓰지 않았다. 당시 영화사의 사장들은 소위 ‘영화 밥 먹고 자란 사람들’이라 나름대로 영화의 도사였다고 한다. 그날 찍은 분량을 보고 맘에 들지 않으면 재촬영하고 편집기사 불러서 편집하고 했던 시스템이 있어서, 감독은 실제로 공장의 현장책임자정도에 불과했었다. 이로 인해 존 포드도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존 포드는 왜 ‘존 포드’일까. 그는 미국의 역사에 대해 굉장한 탐구를 했던 감독이다. 책도 많이 읽고 영화들을 보면 독립전쟁부터 서부시대는 물론이고 2차 세계대전까지 역사적 시기의 영화들을 많이 다루고 있다. 그의 영화에서는 현재나 미래가 늘 과거로부터 시작한다. <황야의 결투>에서도 그렇고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에서도 주인공의 회상부터 시작하지 않나. 과거를 회상하며 미래를 다짐할 때 전통은 굉장히 강력한 흡입력을 보여준다. 놀라운 건 존 포드가 그려낸 현재와 미래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낙관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나중에 이르러서 신화 자체도 스스로 해체하고 파괴하는 정도까지 발전한다. 이게 바로 존 포드 영화의 특이점이다. 많은 할리우드감독들은 존 포드만큼 미국을 사랑했고 미국적 가치를 주장했지만 그만큼 미국의 역사 이면의 양극성을 복합적으로 드러낸 감독은 없었다. 근데 이게 드라이하지 않고 센치하며 유머러스하다는 것이 흥미롭지 않나. 존 포드 영화에 가장 중요한 것은 잔치장면이다. 그는 이걸 거의 의식적으로 보여준다.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에서도 밥 먹은 것을 마치 의식 치루는 것처럼 아기자기하게 보여준다. 일상에서 흥분되는 하모니의 순간들을 잡아내는 거다. 이 장면들은 언제나 순간적이다. 향연이 짧게 끝나고 그다음은 대체로 가족의 해체라든가 노동착취, 초기 자본주의의 극악함이 극에 달할 때의 상황이 전개된다. 로빈우드는 포드적 히어로는 결말에 늘 혼자 남는다는 말을 했다. 기이한 패러독스다. <분노의 포도>에서도 마지막에 어머니를 떠나는 헨리 폰다가 전혀 낙관적이지가 않게 보인다. 전통의 가치는 신화화된 시선에 뿌리를 두고 현재와 미래를 그려내지만 항상 현실의 복합적 조직들이 인물들이나 공동체를 무너뜨린다. 하지만 끝까지 ‘디그니티’를 잃지 않는다는 것, 그게 감동을 준다.

존 포드의 스타일은 수식이 없다. 그는 얼터너티브한 숏을 절대 쓰지 않는다. 그렇게 카메라에 담겨진 장면들은 편집실에서 그냥 붙이기만 하면 되는 거다. 물론 이것도 존 포드의 전설 중 하나다. 그는 두 번 찍으면 불 같이 화를 냈다고 한다. 히치콕은 치밀한 콘티를 짰지만 존 포드는 그냥 굵게 제작하는 스타일이었다. 요즘엔 왜 다들 이렇게 찍지 못할까 의문이 든다. 현존하는 존 포드 스타일의 유일한 감독은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는 생각이 든다. 이스트우드는 여전히 호소력이 있지 않나. 결국 영화는 다 인품 그대로 나오는 것 같다. 그래서 나도 존 포드를 무척 좋아하는 것 같다. 존 포드는 정말 철두철미한 감독이다. 무성영화 시절부터 영화를 찍어왔고 엄청난 커리어가 붙었기 때문에 그는 전설의 거장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이다.

관객1: 클린트 이스트우드 말씀을 하실 때 공감을 했다. 감독 가치관의 옳고 그름이 영화에 투영되고 또 그것이 영화의 가치에 포함된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김영진: 별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가치는 불필요한 것 같다. 이면을 같이 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겉으로만 입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은 많잖나. 훌륭한 예술가는 그 레벨이 아닌 것 같다. 복합성을 응시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한다. <분노의 포도>같은 경우도 보수적인 사람이 만든 영환데 요즘 이야기 같지 않나, 용산 이야기 같고 어쩜 이렇게 현재와 똑같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분노의 포도>가 존 스타인벡의 사회리얼리즘을 감상적으로 변형시켰다는 글을 보았는데 나는 이것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영화를 보면 가족이 트럭을 타고 난민촌으로 가는데 놀라운 숏이 나온다. 모든 난민들의 얼굴에 초점이 맞아있는 것이다. 그런 태도는 굉장한 리얼리스트의 태도다. 물론 정서적으로 영화에서 찡한 것 도 있었다. 극 중 아들이 엄마와 춤을 추는데 엄마는 아들의 사상을 이해하지 못하고 아들은 엄마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서로 융합되어 즐겁게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그 장면이 너무 감동적이다. 보수적인 엄마와 운동권 아들이 잔치에서 춤을 추는 것을 묘사하는 것 같지 않나. 이것에 흐르는 인간애라는 건 진짜 성숙한 무언가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관객2: 영화 속에서 가족만이 유일하게 주인공들의 불명예를 안아주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가족들은 현실 때문에 죽거나 떠난다. 양면성과 복합성을 드러내는데 이런 영화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가르쳐달라.
김영진: 본인이 말씀하셔놓고(웃음), 그대로 받아들이시면 된다. 이 영화도 충분히 산만하게 찍을 수 있는 영화인데 산만하지 않다. 비교적 스피디하게 전개되는 편인데 이런 구조에서 양가성을 나타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아버지가 머리면 어머니는 가슴이라는 대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아버지가 ‘머리’라지만 아들들이 노조를 결성할 때는 갑자기 감동적으로 나오지않나. 이런 인물들의 세세한 지점을 보는 것이 정말 재밌다.


관객3: 영화에서 특이하게 노래가 많이 나오는데 어떤 부분은 뮤지컬이라 생각될 정도다. 노래의 영향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해주신다면.
김영진: 나는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가 존 포드 개인의 자전적 느낌이 수용되었다 생각한다. 존 포드는 아일랜드계였고 미국에서 태어낫는데 11명의 형제들 중 막내였다. 그의 11명의 형제들 중 6명만 살아남았다고 한다. 때문에 휴에 대한 애착이 어느 정도 짙게 담겨있지 않나. 사실 존 포드의 댄스파티만 나오면 나는 이성을 잃는다. (웃음) 정말 따듯한 순간 아닌가. 이렇게 이야기하다보니 나도 존 포드를 더 많이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 감독의 산맥을 넘어본다는 게 결코 쉽지 않은 거다. 여러분들과 나, 우리 모두 존 포드를 너무 익숙하게 보지 말고 제한적 영역을 뚫었던 위대한 감독이라는데 동의해야한다. 아직도 나는 존 포드를 탐구 중이다. (정리: 강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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