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에필로그] 2010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남긴 것들

2010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대망의 막을 내렸다. 폐막 하루 전날인 지난 27일 아직 냉기가 감돌고 먼지가 흩뿌려진 극장 카페테리아에 8명의 데일리, 에디터팀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번 영화제와 그간의 활동을 돌아보는 마지막 모임인 셈이다. 웹데일리팀과 관객에디터들은 예년보다 길게 이뤄진 한 달 반 시간 동안 갖가지 영화제 소식을 알리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했으며, 관객후원 모금운동까지 많은 활동을 했다. 특히 이들 모두는 이번 영화제가 영화가 무엇인지를 다시금 고민하고 생각해볼 수 있었던 자리였으며 시네마테크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장이었다는 한 목소리다. 유난히 길고 여전히 끝이 아닌 친구들 영화제를 마치면서도 극장에 대한 걱정을 떨치지 못했던 데일리/에디터 친구들의 이야기를 여기에 옮긴다.



신선자(웹데일리 편집/관객에디터):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때마다 웹데일리를 통해 소식을 전한 지는 3년 정도 되었다. 이번은 특히 좀 남다르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닐 것 같다. 영화제를 마감하면서 각자 개인적으로 느끼는 바들이 많았을 것 같다. 데일리팀은 준비기간부터 치면 두 달여의 기간이 흐른 셈이다. 각자 이번 영화제 기간 동안 관객모금운동 자원도 하고 영화도 보고 글도 쓰고 하느라 정말 수고 많았다. 인상 깊게 생각했던 부분들이나 이번 영화제 기간 동안 일어났던 일련의 일들에 대해 느끼는 바를 한마디씩 자유롭게 이야기 봤음 좋겠다. 나부터 간단히 말해 보자면 사실 우리가 운영하던 웹데일리가 친구들 영화제의 소식지인지 시네마테크 사태에 관한 논의의 장인지 모호하다는 느낌도 약간 있었다. 장단점은 있었던 것 같다. 해야 하고 필요하다 느껴 일을 했지만 개인적으로 좀 피곤하기도 했다. 영화는 그래도 꽤 봤긴 한데 영화 보면서 영화에 집중하기보다는 다른 부분들을 신경쓰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후회하진 않지만 이런 상황에 봉착한 현실이 짜증나긴 했다. 결과적으로 처음에 후원모금 활동 시작하면서 모금액자체가 목표했던 금액의 1/10수준이지만, 그 전에 후원모금으로 모아지는 금액을 비교해보면 한 달 여간 짧은 기간 동안 성과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눈앞에 보여지는 돈이 아니라 어느 정도 시네마테크라는 공간의 성격이나 브랜드 인지도를 높일 수 있었다는 게 가장 큰 성과가 아닌가 싶다.
홍성원(관객에디터): 예전에 CMS로 시네마테크를 후원해주신 분들 이름을 오프라인 소식지를 통해 보았는데 짧은 기간에 많이 모였으니 이젠 너무 많아 세어보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 (웃음)
선자: 시네마테크 문제가 작년 친구들 영화제가 불거져 나왔고 CMS 제도를 그때부터 시작해서 1년 동안 대략 100명 정도 모였다고 하는데, 보다 긴박한 상황이 되어 우리 관객들 스스로 모금운동을 펼치면서는 그 수가 거의 배가 되었다. 후원금도 두 배정도 모인 거다. 기존 CMS 후원회원의 모금액까지 합치면 이제 안정적으로 대략 한달에 4, 5백만원 정도가 시네마테크를 위해 쓰여지게 된다. 완벽한 독립은 어렵지만 그래도 이 정도까지 호응을 얻었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성원: 액수로 따지면 적을지 모르지만, 모두가 같이 도와주시는 분들이었으니까 여기까지 가능했던 것 같다.

박영석(웹데일리/관객에디터): 이번 영화제는 길고 드라마틱하게 느껴졌다. 상황이 급변했었고 처음에는 데일리에 영화에 관한 글만 쓰면 한가해지겠지 싶었는데, 그 다음에는 소식지를 준비해야했고, 소식지 준비가 끝나자마자 영진위 일이 터지고 전용관 문제 등이 다가왔다. 동시에 독립영화전용관이랑 미디액트일도 생겼다. 기분이 내내 이상했다.
강민영(웹데일리/관객에디터): 사실 나는 작년부터 푀이야드의 <뱀파이어>를 너무 극장에서 보고 싶었다. 작년 무성영화들을 챙겨보면서 내가 도대체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볼 날이 과연 올까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번 영화제 상영작 목록에 있는 것을 보고 뛸 듯이 기뻤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번 영화제 기간 동안 영화들을 보면서 소중한 것을 손 안에 꼭 쥐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최혁규(관객에디터): 개별 영화에 대한 느낌이라는 것보다 영화 자체에 대해 소중하게 느껴졌던 게 너무 좋았고 영화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 느끼게 된 것 같다.
영석: 나도 비슷한데 주로 어떤 영화가 어떤 뜻을 담고 있냐에 대해 생각했다기보다 극장일로 만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모금운동하면서 만난 사람들도 있고 하니까 영화가 도대체 무엇인가, 시네마테크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를 생각하면서 두 달을 보낸 것 같다.
성원: <뱀파이어> 시네토크 때 정성일 평론가는 <뱀파이어>를 ‘내 생애의 영화’라고 표현했고, 크리스 후지와라도 프리츠 랑의 영화를 보며 영화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었다. 관객들뿐 아니라 영화를 추천한 감독이나 평론가들도 같은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선자: 그런데 영화는 다들 볼 만큼 봤는지 궁금하다. (일동 고개 끄덕 끄덕, 웃음)
혁규: 틈나는 대로 보긴 했는데 사실 영화를 봤단 느낌이 안 든다. (웃음)
영석: 그나마 영화제 후반부에 몰린 존 포드 영화를 보면서 ‘아 내가 영화를 보고 있구나’라는 느낌이 들긴 했었던 것같다.
성원: 나는 이번 영화제에서 존 포드의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와 카르멜로 베네의 <카프리치>빼고는 다 챙겨봤다.
장지혜(웹데일리): 난 사실 이번 영화제는 완전정복을 꿈꾸었는데, 여러 일들이 생기면서 완전정복은 물 건너 갔구나 했다. 언론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많은 질문을 받았는데, 관객발언 때도 그렇고 나는 항상 서울아트시네마가 소중한 공간이고 가치 있는 공간이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근데 그 이야기를 한번 내뱉고 마는 게 아닌지 고민스러웠다. 그 말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가치가 어떤 것이고, 또 이야기를 해놓고도 질문이 다시 돌아오고 다시 생각하게 되고. 영화제 시작하며 영화 리뷰 등을 열심히 쓰고 작품 분석해야지라는 생각만 했다가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영화가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가’ 이런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해보게 된다.

성원: 영진위의 처사는 분명 잘못된 것인데 오히려 그게 소중한 공간이라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기회를 제공해준 것 같다.
영석: 연대감이 생성된 거지.
민영: 처음 모금부스를 운영할 때는 우리 데일리, 에디터들이 주축이 되어 움직였지만 자원봉사하겠다는 친구들이 하나씩 늘지 않았나. 그 친구들 중에 가은이나 예하, 재욱 같은 경우는 다들 고등학생이고 한데 추운 날에도 나와서 도와드릴 것 없냐고 물어보곤 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마음이 참 짠했다.
지혜: 고등학교 친구들뿐만 아니라 카페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닉네임으로만 알았던 분들과 이야기하는 것들도 좋았던 것 같다.
영석: 시네마테크가 친구들을 만나는 공간이라는 걸 절실히 깨닫게 된다.
성원: 얼굴만 보고 간단히 인사만 건네던 사람들이 함께 극장을 걱정하고 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김보년(웹데일리): 나는 이번 일이 터지면서 사람들을 본다는 것 자체가 되게 중요한 경험이란 생각을 했다. 서울아트시네마 관객들이 유난히 많이 웃지 않나. <사냥꾼의 밤> 같은 경우도 영화를 보면서 엄청 웃었다. 사실 한 번 웃을 거 괜히 두 번 웃고 하는 것 같아 싫기도 했고 그런 게 때때로 감상에 방해를 주고 그랬는데 되돌아보면 참 좋은 경험인 것 같다. 사람들과 같이 영화 본다는 게 특별한 경험이구나, 영화 이상의 특별한 경험이구나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성원: 예전에는 그런 것 싫다는 사람도 많았다. 나는 심각하게 영화를 보고 있는데 남들이 큰 소리로 웃으면 흐름이 깨지는 것 같은 기분도 들고.
지혜: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영화를 보면 마음에 약간 여유가 생기고 한 번 웃을 것도 두 번 웃고 그러는 것 같다. 나는 그런 분위기가 좋다.
보년: 때때로 과시적으로 웃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 때도 있다. (웃음)
영석: 특히 <뱀파이어>는 완전무성이었는데 모두가 낄낄거리며 웃지 않았나. 그런 경험을 할 곳은 여기밖에 없다.
성원: 영화를 그냥 심심풀이가 아니라 좋은 걸 보러가는구나 할 때 느끼는 기대감이나 이런 게 서울아트시네마에는 있는 것 같다.
보년: 서울아트시네마의 관객들은 질문도 터프하게 하는 것 같다. (웃음) 친구들 영화제 기간이어서 사람이 많아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당장 다음 주 되면 또 바뀌겠지.

영석: 데일리하면서는 사실 우리가 쓴 영화리뷰보다 기사들을 더 열심히 읽었다. 영화보다 워낙 기사들이 드라마틱하다보니까.
보년: 프리뷰를 드라마틱하게 쓸 수는 없잖나. (웃음) 트위터를 통해 사람이 엄청 많이 들어온 날도 있었는데, 여하튼 이번 사태들 때문에 데일리를 찾아보는 사람도 많았던 것 같다.
선자: 이번 데일리에는 카테고리에 변화가 심하게 있진 않았지만 추가된 건 관객 후원릴레이 정도였는데, 정말 사건사고가 많았으니 그 뉴스들을 읽는 재미 또한 쏠쏠했던 것 같다. 가장 많이 언론에 노출된 게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혁규: 데일리 뿐 아니라 영화를 보고 나와서도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 대해서 궁금했다. 아침에도 그렇고 뭘 하든 간에 계속 변화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극장 밖에 있으면서도 극장 안에 있는 느낌이었다. 같이 기사보고 같이 화도 내고 그런 게 참 재밌었는데 말이지.
선자: 영석이 말대로 정말 드라마틱한 날들이었다. 영화보다 TV보다 임시국회가 더 재밌지 않았나? 그런데 여러모로 시네마테크에 대한 인식은 넓어졌으나 명증하게 설명되지는 못했던 부분들도 있었던 것 같다. 사실 우리는 관객이고 자원봉사 차원에서 활동을 한 것인데, 나를 포함해 우리 모두 수위 조절을 잘 못했던 것은 아닌지 싶기도 하다. 인터뷰를 받을 때도 어떤 친구는 사무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 꼭 우리가 운영자인가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것은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서 그런 면도 있다. 그때마다 우리의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생각을 했다. 원하고 스스로 필요하다 생각했으니까 이 일들을 진행하고 다들 수고하면서 고생했는데, 운영적인 측면에서도 원활하게 쉽게 할 수 는 방법을 우리가 찾지 못한 것도 있다면 추후에는 그런 지점들을 제고해봐야 할 듯 하다. 어쨌든 오프라인 모금부스는 이번 영화제를 끝으로 정리한다. 보년 씨 이야기처럼 다음 주면 또 다른 일이 시작되겠지. 시끌벅적했던 극장이 조용해질지도 모를 일이이고. 영화제를 끝맺으면서 이걸 어떤 식으로 마무리 시켜야 또 다른 시작을 잘 맞이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어떻게 연계하는 게 좋을까라는 생각. 그런 부분의 고민을 많이 하게 되는데.
성원: 예전에 할아버지 한 분이 그런 이야기를 하셨다. 서울아트시네마의 관객회원제도는 기간이 끝나면 언제 끝나는가에 대해 안내를 해주지 않는다고 불평하시더라. 메일로도 안내를 안 해주고 소식도 알려주지 않고, 이건 고쳐야 하지 않나.
혁규: 후원회원은 기간 여부에 상관없이 메일로 안내되지 않나?
선자: 확인하지 않으면 사전에 알지 못하는 게 있긴 하다.
영석: 그런 경험 나도 있었다.
지혜: 관객회원에 가입하면 온라인으로 로그인해서 기록들을 볼 수 있고 마이페이지가 뜨는 게 가능하면 좋을 텐데. 그리고 우리는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모호한 위치였던 것 같다. 모금활동을 진행한 사람들이 분명 필요한 부분이긴 한데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같은 관객이지만 모든 사람이 여기의 친구들 같지 않으니 거리감이 생겨서 관객들조차도 관계자에게 정보를 묻듯이 우리에게 질문하곤 한다. 그런걸 보면서 우리가 만든 거리감은 아닌데 의문이 들었다. 모두 같이 자유로웠으면 좋겠다.
영석: 관객으로서는 어디든지 말 할 수 있지만 우리는 실질적으로 눈에 보이는 주체이기 때문에 다른 데서 빌미를 잡힐 만한 위험성 있는 행동들은 자제를 해줘야 한다. 책임감도 동시에 있는 것 같다.
성원: 정치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건 맞는데 한쪽으로 쏠려있으니까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다. 정치적성향이 강하다보니까 정치적으로 흘러들어간다는 것으로 빠질 수도 있고.
영석: 각종 상관없는 매체들에서 우리 얘길 기사화한다고 할 때 우리가 한 얘기가 아니고 의견이 모아진 것이 아닌데도 같은 부류로 모아서 비판할 수 있다는 이야기지. 앞으로 어떤 행동을 해야 하나를 전제한 후에 고민해야 한다. 모금부스는 끝났지만 이후에도 홍보활동을 어떻게 할 건지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선자: 우리의 활동이 훨씬 더 긍정적인 성과를 내왔다는 것은 분명한 듯 하다. 여전히 불투명한 상태이지만 그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것 같지는 않다. 가능성이 많고 오히려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될 것 같다. 일단 지혜도 얘기했듯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생각을 많이 해봐야 할 것 같다. 아 그리고 우리는 이번 활동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런 모임들을 지속시켜나갈 수 있는 방안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어떤 방법들이 있을까.
혁규: 예를 들면 바자회 같은 거.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우리가 지속시킬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진행할 수 있다면 좋은 것 같다. 자연스레 관객 만남도 이뤄지고. 관객차원에서의 행사라는 것 자체가 중요한 거니까.
민영: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예전에 광주극장에서는 한 달에 한 번씩 회원들끼리 모여서 간식도 먹고 베이킹 파티도 하고 했었다. 같이 뭔가를 만들고 나누기도 하는 행사를 진행하는 것이 참 좋아보였다.
성원: 지금까지는 관객들이 선택한 영화가 친구들이나 시네바캉스때 상영했는데, 관객들이 원하는 영화를 DVD로라도 한 번씩 편히 볼 수 있다면 좋겠다. 상영이 없을 때 날을 잡아서 말이다.
혁규: DVD로 틀면 영사실에서 장비를 빌려와야하는 문제가 있다.
영석: 자막이 없을 경우에 우리가 자막을 만들어야하긴 한다.
신윤하(웹데일리): 관객들이 자체적으로 시네클럽을 결성하는 건 어떨까. 적정한 강의비만 내서 극장이나 카페 등 장소를 잡아서 모여서 지식을 공유하거나 강사를 초빙하는 행사. 그런 행사들이 별로 없었다.
성원: 학교강의실이나 이런 곳을 빌려서 해도 좋을 것 같다.
선자: 시네클럽이든 바자회든 뭐든 좋을 것 같다. 이제 다시 시작이니까 관객들이 지금처럼의 결속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웹데일리는 이제 시네마테크의 이후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소통의 장이 될 수 있는 웹블로그로 전환 계획에 있다. 우리의 만남이 여기서 끝이 아니고 앞으로도 더 많은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지난 한 달 반간의 영화제를 통해 모두 조금 성숙해진 느낌이다. 고생해서 그런가. (웃음) 이후에 더 좋은 모습으로 만났음 한다. 모두 고생 많았다. (정리: 강민영)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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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머의 <저항하는 파라다이스>로 본 시네마테크

이번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시작되기 전에 “레즈비언 시네마의 거장 바바라 해머 회고전”이 열렸었다. 그 전에 있었던 장 콕도와 장 주네 특별전을 접한 나는 콕도와 주네의 영화에 큰 감명을 받았던지라 레즈비언의 세계는 또 어떻게 그려질지 내심 궁금했다. 시간을 맞추고 맞춰 <저항하는 파라다이스>, <아웃 인 남아프리카>, <질산염 키스> 세 편의 영화를 보았다. 그 중 <저항하는 파라다이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한다. 독특한 형식과 구성 때문에도 인상적이었지만,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주인공들의 삶과 고민들이, 그 전에 접했던 다른 어떤 영화들보다 나에게 피부에 와 닿는 듯 가깝게 느껴졌고 생각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삶에 대해, 또 나의 삶에 대해. 그리고 지금의 시네마테크 사태까지. 현재 서울아트시네마의 상황은 그 때 떠올랐던 많은 생각들과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저항하는 파라다이스>는 내가 궁금했던 레즈비언의 세계가 그려져 있는 영화는 아니었다. 이 영화는 바바라 해머의 1999년 작품이다. 원래 바바라 해머는 이 영화를 통해 빛과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었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프랑스 남부지방에 위치한 카시스라는 섬은 많은 화가들이 그들의 작품활동을 위해 거쳐 가고 머물렀던 곳이다. 바바라 해머는 카시스 섬의 어떤 면이 이 많은 화가들을 머물도록 했는지 궁금해졌고, 그들의 발자취를 따르면서 그들의 작품 속에 담겨 있는 빛과 아름다움을 연구해 보고자 했던 것이다. 해머는 화가인 피에르 보나르와 앙리 마티스를 이 영화의 주된 인물로 설정하고 이들의 삶을 따라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에 코소보 전쟁이 발발했고, 이 전쟁 때문에 바바라 해머는 더 이상 그녀의 작업을 진전시킬 수 없었다. 왜냐하면 ‘가까운 곳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과연 이 상황에서 예술가로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고민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해머는 영화의 방향을 살짝 바꾸게 된다. 코소보 전쟁 현장으로 달려가는 대신, 화가들의 삶 속에서, 또 카시스 섬 안에서 전쟁의 흔적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해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카시스 섬에 거주하면서 독일에 반항해 싸웠던 무명의 세 여인을 만나게 된다. 마리-앙주 알리베르 로드리게즈라는 그 당시 구청직원과 독일에서 파리로 도망 온 정치 망명자 리사 리코트, 그리고 저항군들의 기밀사항을 전달하는 역할을 했던 앙리 마티스의 아내가 그들이다. 마리-앙주 알리베르 로드리게즈와 리사 리코트는 이 영화를 촬영할 당시 카시스 섬에 생존해있던 인물들이었기 때문에 직접 인터뷰한 내용이 영화 속에 삽입되어 있다. 이렇게 해서 실제 살아있는 저항군들의 인터뷰, 이미 고인이 된 두 화가의 서신 내용과 작품들, 2차 세계 대전 당시 세 명의 여자 저항군들이 각각 활동했던 상황을 재현한 장면들, 그리고 세 명의 여자 저항군들 중 한 명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었던 발터 벤야민의 텍스트들로 이 영화는 가득 채워지게 된다. 빛과 아름다움에 대한 연구는 전쟁 중에 저항했던 인물들에 대한 연구로 옮겨지게 되었고, 영화 가운데 예술가와 저항군을 나란히 병치시키면서 전쟁의 시기에 예술 혹은 예술인의 역할은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해머의 고민을 담아내고 있다.

이 영화는 발터 벤야민의 다음과 같은 문구로 시작된다. “There is no document of civilization which is not at the same time a document of barbarism(야만적인 기록이 아닌(없는) 문명사회의 기록은 없다).” 결국 모든 문명사회의 기록 속에는 야만적인 기록들이 함께 존재한다는 것이다. 문명이 발달한 사회일수록 야만적인 행위들 역시 발달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야만적인 행위들은 찬란한 문명 뒤에 교묘하게 가려진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야만적인 행위들에 의해 짓밟힌 희생자들이 반드시 존재하며, 이러한 희생 위에서만 문명이라는 것이 세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세워진 문명은 역사 가운데 찬란하게 살아남는 반면, 희생은 역사 속에서 사라지고 잊혀진다는 것이다. 해머는 알려지지 않은 역사, 알려지지 않은 소수자, 그리고 역사 속에서 서서히 사라지는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그것들을 알리고 기억하게 하기 위해 영화작업을 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런 관심과 열정이 이 영화 안에서도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 문구가 사라지면 환한 햇살 아래 반짝이는 벚꽃 나무를 카메라가 주시한다. 카메라는 나무 아래에서 위쪽으로 화사하게 활짝 피어오른 벚꽃나무의 벚꽃을 푸른 하늘과 함께 담아낸다. 그러면서 카메라는 계속 원을 그리며 움직인다. 그 움직임으로 벚꽃들은 연한 분홍빛의 선을 그리면 원형으로 끊임없이 빠르게 움직인다. 그리고 이런 화면과 함께 2차 세계 대전 당시 저항군들이 불렀을법한 노래가 흐른다. 정확한 음정과 아름다운 음색이 아닌 거칠고 투박한 음정과 음색의 활동가가. 이 장면을 볼 당시는 그냥 화면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만 했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해머는 이 장면을 통해 아름다움과 저항을 나누어서 따로 보지 않고 함께 두고 보고 싶었던 것 같다. 예술과 전쟁을 어떻게 조합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의 한 표현이었다고나 할까.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내가 이 영화를 보고 느낀 것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내가 가장 강렬한 느낌을 받은 것은 바로 해머가 카시스 섬에서 만난 세 명의 여자 저항군들로부터 온 것이다. 정치망명가였던 리사 리코트는 약간 예외라 하더라도, 마리-앙주와 마티스의 부인은 평화롭게 카시스 섬에서 빛과 아름다움을 즐기던 평범한 여성들이었다. 마리-앙주는 구청직원으로서, 마티스의 부인은 한 화가의 평범한 아내이자 아이들의 엄마로서 평범한 삶을 살고 있었던 이들이다. 그랬던 그들이 어떻게 저항군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일까.

2차 세계 대전 당시 카시스 섬에는 많은 유태인들과 외국인들이 전쟁을 피해, 독일군을 피해 피난해 와서 머무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곳도 더 이상 안전한 곳이 되지 못했고, 피난 온 많은 유태인과 외국인들은 독일군들에 의해 체포되거나 죽임을 당했다. 이런 상황에서 마리-앙주는 구청직원으로 일하면서 유태인들을 위해 가짜 신분증을 만들어 주었고, 리사 리코트는 이들이 다른 인접국으로 망명할 수 있도록 직접 돕는 역할을 했으며, 마티스의 부인은 지역적으로 떨어져 있는 저항군들에게 몰래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마티스의 부인은 독일군에게 체포되어 심한 고문을 당하기도 했고, 끝까지 비밀을 지키기 위해 가지고 있던 전달문서를 씹어 삼키기까지 했다. 어느 누구도 인정해 주지 않고 기억해 주지 않고 기념해 주지 않을 일을 위해 내 자신의 목숨을 내놓을 수 있을까 싶다. 것도 전쟁의 상황에 말이다. 질서도 기준도 없는 혼돈의 상황 속에서 얼마든지 모르는 척 눈감고 편한 길을 갈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들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얼굴도 모르는 이들을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언제 죽음이 내 눈앞에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정말 말 그대로 하루하루를 긴장 속에 살아간 것이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 그것도 잘 알지 못하는 ‘남’을 위해서. 전쟁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나로서는 사실 전쟁의 극한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 극한 속에서 느껴지는 죽음의 그림자가 얼마나 두렵고 숨 막히는 것일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른 어떤 영화들보다도 이 영화를 보면서 전쟁이 주는 긴박감과 두려움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이들이 나와 같은 지극히 평범한 인물들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인터뷰 장면을 통해, 또 그 때의 상황을 재현한 장면들을 통해 그들이 느꼈던 두려움과 그 상황의 긴박함이 그대로 전달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들이 두려움 가운데서도 저항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 있었을까? 마리-앙주는 인터뷰 가운데 이런 말을 한다. “무언가를 해야만 했어요. 이유 없이 내 옆에서 사람들이 죽어갔어요. 이유가 있다면 단지 유태인이라는 거였어요.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어요.” 그녀의 고백에서 볼 수 있듯이 그녀에게 어떤 굳은 신념이나 논리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단지 같은 인간으로서 누군가가 죽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단지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려야만 했던 것이다. 이념의 문제가 아닌 너무나 인간적인 이유에서 그녀는 저항군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이다. 그녀는 저항군이 되기 위해 의지적으로 노력을 하고 행동을 한 것이 아니다. 느껴지는 대로 행동을 하다 보니 어느새 저항군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아니 되어 있었다기보다는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사람들이 그녀를 그렇게 부르게 된 것이다.

마티스의 아내에 대한 기억을 회상하며 기술하는 중에 마티스의 손자는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다. “흔히 사람들은 저항군에 가담한다고 하는데, 그건 잘못된 말입니다. 가담한 것이 아니라 흡입된 거죠.” 어떤 의도나 목적을 가지고 저항군이 된 것이 아니라 그 때의 상황이 그들로 하여금 그렇게 행동하게 만들었고,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그 상황 가운데로 빠져들어 간 것이다. 옳고 그름을 따질 어떤 사상적 기반도 시간적 여유도 없었던 이들이었다. 그들의 곁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당장 무언가를 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삶이 나에게 더욱 가깝게 다가왔던 이유는 여기에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사상이나 이념에 따라 행동하게 된 이들이 아니라 일상의 삶 가운데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가장 근본적인 인간에 대한 의무감,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에 죽음을 무릎 쓰고 행동하게 된 이들의 삶이 나와 그리 다르지 않다고 느껴진 것 같다. 다시 말하면 모든 인간은 기본적으로 그 마음 가운데 인간에 대한 의무감과 사랑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단지 그것을 의식하고 행동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나의 모습을 들여다본다. 정작 나의 삶을 돌아보았을 때 난 얼마나 그런 의무감들에 무감각하게 살아왔던가. 가장 근본적인 인간에 대한 의무감, 인간에 대한 사랑이 나의 삶과는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 지금도 이러한데 죽음이 언제 내 삶 속에 들어올지 모르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난 과연 이들과 같이 행동할 수 있었을까 반추해보게 된다.

그런데 잘못된 시대의 흐름에 반대하여 저항하며 많은 이들의 생명을 살린 이 저항군들의 이야기는 역사 가운데서 서서히 사라지며, 더 이상 사람들 사이에서 이야기되지 않는다. 많은 이들의 망명을 돕고, 특히나 발터 벤야민의 망명을 도왔던 리사는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다. “역사 속에서 이 모든 것이 사라지고 있어요. 그리고 그것에 대해 더 이상 말하지 않아요. 그렇지만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특히나 지금 독일의 젊은이들은 알아야 해요. 역사 속에서 그들의 조상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행동했는지를요.” 리사는 전쟁 중에도 그곳에 있었으며, 전쟁이 끝난 지금도 그곳에 있다. 그녀의 이 말은 그녀가 그 모든 것을 직접 체험하고 난 후 지금의 모습을 바라보며 던지는 말이었다. 추상적이지도 허구적이지도 꾸밈이 있지도 않은, 너무 명확하고 강렬하며 단순한 말이었다. 그렇지만 그 단순한 말은 묵직한 무게감을 준다. 왜냐하면 그녀의 직접적인 체험 속에서 걸러져 나온 말들이기 때문이다. 또 다시 나의 삶을 들여다본다. 난 역사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나. 알려고는 했던가. 역사 속에서 어떤 것이 사실이고 진실인지 분별해보려는 노력을 했었나. 지금 이들이 분명히 알고 있는 이 사실들은 시간이 지나고 시대가 바뀌면서 왜곡되거나 사라질 것이다. 우리가 노력하지 않는다면. 후대의 젊은이들이 인식하지 못하고 노력하지 못한다면 이들의 삶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단지 이렇게 사라져가는 것들이 이들의 삶에만 국한될까.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것들이 우리 곁을 떠나고 사라지고 있다. 그리고 사라지려 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꼭 필요하고 소중한 것이라면 어떤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지켜져야만 한다. 사라지지 않도록 저항해야 한다. 어떤 신념이나 논리, 사상이 있어서가 아니라, 아니 그런 것들이 없더라도 저항할 수는 있다.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것이 정말 옳은 것이라면. 그것이 인간에 대한 의무감이고 인간에 대한 사랑과 관계된 것이라면. 지금 우리가 노력하지 않는다면, 제대로 보지 못하고 제대로 분별하지 못한다면, 그리고 제대로 저항하지 않는다면, 역사 속에서 소중한 것들은 서서히 사라져서 더 이상 아무에게도 회자되지 않는 것들이 되어버릴 것이다. 해머가 카시스 섬에서 만난 저항군들처럼, 우리가 어떤 사상이나 신념이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것을 방해받는 상황이라면 이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해 우리는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 긴박하고 절박한 마음으로.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이 공간, 시네마테크 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는 물론 지금 당장 우리를 위해 필요한 곳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저항하려고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약간은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이유로 혹은 마음으로. 하지만 이 공간은 단지 현재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과거 8년 동안의 행적들 가운데 이 공간은 영화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와 사랑과 평안함, 소통함, 인간에 대한 시각과 세계에 대한 시각을 제공해 주었다. 그리고 이 공간은 앞으로 우리 다음 세대들에게 그 과거의 행적들과 함께 지금 우리의 행적들은 전달해 주며, 지금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많은 것들보다 훨씬 폭넓은 것들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이 공간은 지금 우리만의 문제가 결코 아니다. 과거의 문제이자 미래의 문제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더욱 쉽게 이 공간을 포기할 수 없으며, 포기해서도 안 된다. 이 공간이 역사 속에서 더 이상 회자되지 못하고 사라지도록 내버려둔다면, 과거와 미래는 소통하지 못하고 우리에게서 끊어지게 되는 것이며, 그만큼 다음 세대는 그들이 오롯이 받아야 할 100%의 과거 중 많은 부분을 잃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8년 동안 묵묵히 이곳을 지켜왔던 많은 이들의 희생이 역사 속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개혁은 중요하다. 하지만 과거와 단절된 개혁은 의미가 없다. (방현주 관객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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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진위는 시네마테크 지원여부를 결정할지언정 운영자를 선정할 권리는 없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파행적인 공모제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서울 유일의 비영리 시네마테크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를 운영해 온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이하 '한시협)'은 17일 오후 총회를 열어 18일 6시로 접수마감이 예정된 영진위의 시네마테크 지원사업 운영자 선정 공모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밝혔다.

많은 논의 끝에 총회를 걸쳐 공식적으로 결정된 주요 사항은 부당하고 비상식적인 영진위의 공모에는 참여하지 않기로 한 것.

한시협이 이러한 결정을 내린 이유는 영진위의 공모제가 어떠한 설명회도 걸치지 않고 졸속으로 이뤄지고 있을 뿐 아니라 영진위 스스로 지속성이 보장되어야 하는 시네마테크 사업에 대한 제대로된 이해 기반을 갖지 못하고 단지 요식행위로 전락시켜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영진위는 그간에도 30% 정도의 일부 지원을 해왔을 뿐이라 민간이 설립해 힘겹게 일궈놓은 시네마테크에 대한 지원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에 대한 운영자 선정에 대한 어떠한 권리나 자산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게 불참의 주요 요인이다. 시네마테크의 지원사업에 대한 중장기적인 정책마련과 제도의 보완이 이루어지지 않는 조건에서는 시네마테크의 공모제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

한편 서울아트시네마 온라인 카페와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한창인 서울아트시네마 극장에서는 한시협의 이러한 결정을 지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많은 영화인과 관객들이 민간 영역의 시네마테크가 올곧은 모습으로 자립적으로 설 수 있도록 후원회원 모집 모금 운동을 펼치고 있는가하면 그들을 지지하고 응원한다는 다양한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영화문화와 교육활동을 위해 8년간 힘들게 쌓아온 탑이 무너지지 않길 바라는 바이다. (신선자) 

<한시협의 성명서 전문>
 

영화진흥위원회의 ‘서울아트시네마 운영자 공모’에 관한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의 입장

 

 

(사)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이하 한시협)는 최근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서울아트시네마 운영자 공모’와 관련해 많은 논의 끝에 이번 ‘2010년 시네마테크전용관 지원사업 운영자-서울아트시네마 운영사업’ 공모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힙니다.

 

첫째, 영진위가 현재 진행중인 공모제는 너무 짧은 일정에 졸속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지난 목요일(2월 10일) 저녁에 공모안이 나왔고, 일주일도 채 안 되는 기간 안에 이후 일 년 동안 사업을 운영할 계획안을 제출하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일주일 만에 사업자를 마감하고, 또 일주일 만에 단지 사업계획안만을 보고 사업자를 선정한다는 것은 장기적인 사업계획하에서 진행되어야 할 시네마테크 사업에 파행을 불러올 수밖에 없습니다. 공모만을 노리고 준비한 사업자가 없는 한 현행의 공모제는 처음부터 파행을 내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둘째, 영진위는 공모제와 관련해 공식적인 사업자 설명회나, 장기 비전을 제시하는 단 한 페이지의 정책도 제시한 적이 없습니다. 이런 부실한 공모제는 문화예술의 지속성 사업이라기보다는 요식행위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영화계와 영진위의 오랜 논의와 협력으로 안정적인 공간마련을 위해 2008년 영진위 예산에 ‘다양성영화 복합상영관’이라는 이름으로 총 500억 규모의 예산이 마련되었으나 2008년 주어진 예산을 쓰지 않아 시작도 하지 못한 채 복합상영관 설립은 좌초되었습니다. 그 이후 영진위는 ‘다양성영화 복합상영관’과 관련한 아무런 대안 마련 없이 독립영화전용관, 영상미디어센터 공모전환을 강행했고 이제 시네마테크전용관 운영자 선정을 앞두고 있습니다.

 

셋째, 공모제로의 전환과정, 합당한 평가 절차 등 보완되어야 할 사항들이 많음에도 그 어떤 개선도 이루어지지 않은 채 진행되는 공모제는 또 한 번의 파행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이미 진행되어 물의를 빚고 있는 미디어센터와 독립영화전용관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공모와 관련한 일련의 과정이 공개적이고 합리적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어떤 보장도 할 수 없습니다. 영진위는 앞선 공모제 진행에 관해서도 ‘문제없다’라는 입장만 개진하고 있을 뿐입니다.

넷째, 영진위는 시네마테크 사업에 대한 지원여부를 판단할 수는 있을지언정 민간이 설립한 서울아트시네마의 운영주체를 마음대로 결정할 권리는 없습니다.

한시협이 지난 2월 16일 공개한 질의서에도 담긴 내용이지만, 엄연히 서울아트시네마는 한시협이 개관하고 극장을 등록한 고유한 브랜드로 영진위가 마음대로 운영자를 모집할 법적 권리가 없습니다. 게다가 영진위가 허리우드 극장과 직접 계약을 하고 있는 한시협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허리우드 극장주와 계약을 시도하려는 의도를 보인 것은 명백한 운영권 침해 행위입니다.

 

 

시네마테크활동은 1990년대 초반부터 전국의 시네마테크 단체들이 활동을 시작하고 90년대 후반부터는 고전영화의 필름 상영회를 진행하며 영역을 넓혀갔습니다. 2000년대 초반에 이르러서는 고전영화의 필름상영회가 양적, 질적인 면에서 큰 도약을 이루면서 전국에 흩어져 있던 시네마테크 단체들은 좀 더 집중적으로 시네마테크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동력을 마련하고 안정적인 시네마테크전용관 설립을 위해 기존에 활동하던 전국의 15개 시네마테크 단체들이 연합하여 2002년 1월 25일 사단법인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를 출범시키게 됩니다.

같은 해 5월 10일에는 전국 시네마테크 단체들의 숙원인 시네마테크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가 서울 종로구 소격동에서 개관하였고 그 과정에서 영진위는 시네마테크 사업이 영화문화 다양성을 활성화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 2002년 전용관의 임대료를 지원하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한시협은 2002년 서울아트시네마 개관 이후 대관 행사를 제외하고 연간 90%의 고전영화, 영화사 거장들의 회고전 및 특별전 등의 프로그램을 개최하며 3,000편이 넘는 영화를 상영했고 40만 명의 관객이 영화와 새롭게 만났습니다.

 

한시협은 지난 8년 간 한 해 400편이 넘는 고전, 예술, 독립영화를 상영하며 민간 시네마테크의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해 왔으며, 평균 75%에 달하는 유료 관객회원 재가입율을 볼 때 한시협의 활동을 통해 고정적인 관객층이 형성되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한국을 대표하는 배창호, 이명세, 박찬욱, 봉준호 등의 영화감독들과 안성기, 황정민, 유지태, 류승범, 문소리, 김혜수 등의 영화배우들 그리고 정성일, 김영진 등 영화평론가들이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이라는 이름으로 매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를 함께 개최하며 시네마테크를 알리기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한시협은 전국적인 시네마테크 단체들을 대표하면서 국내에 시네마테크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하며 비영리 상영방식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왔습니다. 이를 위해 영진위의 일부지원금 외에도 다양한 자체 수익사업 및 후원사업으로 부족한 재원을 충당해 왔고, 국내외의 시네마테크와 많은 문화단체, 대사관, 관공서 등과 긴밀한 네트워크를 구축함으로써 국제적인 문화 활동을 지속해 왔습니다.

또한 시네마테크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 운영 외에도 지역 시네마테크네트워크 사업을 통해 전국의 시네마테크 단체들과 함께 연간 20여 건의 지역순회상영 지원, 지역자립형 사업지원, 지역인프라구축을 위한 지역인력교육사업 등 시네마테크 활동이 전국적으로도 확산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지난 8년간 커다란 성과를 내왔고 문제없이 진행한 시네마테크에의 지원사업을 공모로 변경하기 위해서는 이전 사업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새로운 정책의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가능한 것입니다.

그동안 한시협은 서울아트시네마와 시네마테크네트워크 사업을 운영하며 연간 4차례의 분기 보고서와 1년 동안의 실적 보고서를 제출했고, 2009년에는 세 차례의 감사를 받았지만 사업 수행에 결함이 있다는 지적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더욱이 2009년 4월 29일 있었던 시네마테크지원사업 수행평가에서는 평균점수 85점을 받으며 “‘사업계획’(30점) 영역에 따른 4개 항목, 6개 세부항목에 대한 평가는 다른 영역에 비해 월등히 높은 점수를 받았음. ‘운영목표의 명확성’ ‘시네마테크 전용관 사업 이해도 및 취지 부합성’ 등의 세부항목에 대한 평가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었음.”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하등의 문제가 없었기에 갑자기 시네마테크를 공모로 전환하겠다는 정책적 변경이 어떤 근거에서, 어떤 목적으로 진행되는 가에 대해 한시협은 영진위가 보다 책임있는 논의와 판단을 내려야 함을 역설해 왔습니다. 하지만 그동안의 경과를 보면 영진위는 정책결정자로서의 책임있는 논의와 절차를 제대로 진행하지 못했고, 급기야 시네마테크 지원사업을 공모로 전환하는 확실한 근거도 제시하지 못한 채 지난 2월 10일 일방적으로 공모안을 공고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는 이러한 문제들과 관련해 영진위가 정책기관으로서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공식적으로 납득할 만한 입장을 들려주기를 기대해 왔습니다. 하지만 영진위는 이와 관련해 아무런 노력도 보여주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한시협은 시네마테크의 지원사업에 대한 중장기적인 정책마련과 제도의 보완이 이루어지지 않는 조건에서 시네마테크의 공모제에 참여할 수 없음을 밝힙니다.

 

 

2010년 2월 17일

(사)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광주시네마테크, 대구시네마테크,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 대전시네마테크,

문화학교 서울, 시네마테크 부산, 씨네오딧세이(청주), 제주씨네아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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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이제 다가올 그 ‘말도 안 되는 시네마테크 공모제’ 때문에 극장 안팎이 떠들썩하다. 어떤 분들은 후원회원을 모집하기 위해 극장 로비에서 그 추운 날씨에 자리를 지키며 회원들을 기다리고, 어떤 분들은 온라인을 통해 시네마테크의 문제를 알리면서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작년 이맘때쯤부터 본격적으로 시네마테크에 출입하게 된 나는, 1999년 문화학교 서울 시절부터 이곳을 사랑하고 아꼈던 분들에 비하면 이제 갓 부화한 병아리 수준의 관객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글을 쓰고자 결심하게 된 이유는, 내가 지난 1년 동안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얻은 것들을 나누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시네마테크를 접하기 전 나에게 영화는, 그냥 친구들을 만나서 밥 먹고 수다 떠는 것 외에 무언가 조금 특별한 것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될 때 떠오르는 매체였다. 조금은 값싸게, 손쉽게 무언가를 즐길 수 있는 매체정도. 또 영화를 본다는 것이 그나마 ‘문화생활’이라는 걸 하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나에게 영화는 단지 즐거움을 위한 것이었다. 내가 사는 이 시대에 만들어져서 이 시대에 잠깐 개봉관에 걸렸다가 금세 사라지는 소모성 영화들을, 다른 사람들(지인이든 영화평론가이든 홍보물이든)이 이미 해놓은 평가의 도움을 받아 나의 취향에 맞는 것들을 골라 보는 것이 나의 영화보기였던 거다.

 

그런데 시네마테크를 통해서 개봉관에서는 접할 수 없는 생소한 영화들을 하나 둘씩 보기 시작하면서 난 다른 세상을 만날 수 있었다. 영화 속에서의 세상을 만나면서 현재 내가 몸담고 있는 이 세상이 조금씩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영화 속에서 다른 세상을 만남으로써 내가 현재 있는 이 세상이 다른 세상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영화는 단순히 즐거움만을 주는 매체가 아니었다. 시네마테크에서 본 영화들은 나로 하여금 끊임없이 무언가를 생각하게 했는데, 그것은 피곤함을 준다기보다는 기쁨을 주었다. 이 기쁨은 단순한 감정의 기쁨이 아닌 무언가를 알아간다는 것에 대한 기쁨이었다. 그동안 분명히 내 안에 존재했었지만 무언가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것이 갑자기 환하게 다가오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기쁨 때문에 나는 계속적으로 시네마테크를 찾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영화도 예술이라는 것을. 이 자명한 사실을 이제야 깨닫다니. 그 전까지 나에게 영화는 그저 오락에 지나지 않았다. 수익을 만들어내는 오락. 그런데 수익과 상관없이 영화는 존재하고 있었다. 바로 시네마테크에서 말이다. 그리고 그 영화들은 힘이 있었다. 내가 시네마테크에서 만난 영화들은 그렇게 수익과는 상관없이 힘을 가진 영화들이었다. 끊임없이 나를 생각하게 했고 변화시켰다.



 

시네마테크에서 내가 배운 것

내가 시네마테크 아트시네마에서 얻을 수 있었던 소중한 것들 중 하나는 영화를 보는 것 이외에 영화를 배우는 것이었다. 내가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고 혼자 사색하는 차원의 배움이 아닌 보다 객관적인 배움을 접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각 특별전 속에 포함되는 전문가들의 강연과 강좌, 감독과의 대화를 통해서였다. 그것은 혼자 영화를 보고 이해한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였다.

 

내가 처음 접했던 감독과의 대화는 2008년 유영길 촬영감독님 특별전 때 초대되었던 배창호 감독님과 이현승 감독님과의 대화였다. 영화 속에서는 볼 수 없는 비화들을 들을 수 있다는 즐거움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나의 뇌리에 강하게 남아있는, 첫 감독과의 대화에 대한 느낌은 놀라움이었다. 감독들이 영화를 바라보는 시각은 나의 상상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영화의 장면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많은 고민들이 감독들의 입을 통해 전달될 때 난 그들을 존경의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영화의 장면 하나하나를 붙잡고 고민했을 그들의 시간들이 내 눈 앞으로 스쳐 지나가면서, ‘왜 나는 그들의 깊이를 영화 속에서 느끼지 못했을까’라는 치기어린 생각을 하며 조금은 내 자신이 부끄러웠었다. 사람은 자신이 아는 만큼만 볼 수 있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고 할까.

 

영화가 감독의 의도대로 모두 관객들에게 전달되고 이해되는 것은 아니며, 감독의 의도가 아닌 것들을 관객들 스스로 찾아가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어떤 감독은 자신의 영화를 명확히 설명하기를 꺼려하며, 의도적으로 설명을 회피하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고 난 후 그 영화를 만든 감독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그 이야기의 내용이 꼭 방금 본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하더라도, 관객은 영화 속에서 보지 못했던 감독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게 되고, 영화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그 이해는 반드시 언어로 표현되고 기술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이해는 단순한 느낌이 될 수도 있고, 넘치는 감정이 될 수도 있고, 개인적인 기억의 회상이 될 수도 있고, 보다 포괄적인 세계에 대한 이해가 될 수도 있다. 명확하게 말로 표현은 안 되지만 자연스럽게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이다.

 

이처럼 특별전과 함께 기획되는 강연들은 작가와 작품을 이해하는데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 영화는 시대의 산물이고 역사의 산물이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대와 역사에 대한 지식은 내가 놓치거나 이해하지 못한 영화의 조각들을 하나로 연결할 수 있도록 해주었고, 어렵고 낯설었던 장면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해주었으며, 지금 시대에서 볼 때는 별것 아닌 것 같은 장면들이 갖는 의미와 의의를 잡아낼 수 있게 해주었다.

 

이렇게 얻어진 영화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이해는 앞으로 내가 보게 될 영화를 더욱 깊고 넓게 볼 수 있도록 해 줄 것이다. 그리고 영화에 대한 이해를 넘어서서 인간에 대한, 삶에 대한, 사회에 대한, 세계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것이 될 것이다.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의 의미

시네마테크의 공모제 문제가 불거져 나오면서 이런 말을 들었다. “DVD가 넘쳐 나고 인터넷으로 얼마든지 파일을 다운 받아 움직이는 번거로움 없이 혼자 조용히 영화를 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는데 왜 굳이 영화관을 고집하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어떻게 해야 할까?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의 의미를 아무리 설명한다 한들 그 느낌을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일까? 그 어두움 가운데 이루어지는 은밀한 공유, 공감의 감정이 어떤 것인지를.

 

그렇지만 특별히 지금같이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를 들이대며 이 공간을 위협하는 이들에게, 이미 은밀한 경험을 공유하고 누리고 있는 우리들은 이 경험이 얼마나 소중하며 사랑스러운지를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 시네마테크라는 공간 속에서 같이 수 년 동안 만들어간 무언의 것들을 알려야만 한다. 수많은 시네마테크의 관객이 시네마테크에서 얻은 많은 것들이 무엇인지를 알리고, 그것들은 하루아침에 세워진 것도, 세울 수 있는 것도 아님을 또한 강력하게 알려야 한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쌓아온 것들이 하루아침에 무너지지 않도록 함께 지켜야만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경험이 진정한 영화의 힘이며, 흘러가며 사라져버리는 단순한 즐거움이 아닌 진중한 고민들을 던지는 영화들의 힘을 우리 다음 세대들도 온전히 누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수많은 특별전들을 통해서 개봉관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특별히 고전영화들을 중심으로 상영하고 있는 시네마테크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가는 관객들보다는 시대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관객들을 대상으로 한다. 이들에게 영화는 삶이다. 가방 한 구석에는 항상 시네마테크 프로그램 스케줄이 있고, 이들의 하루 일과는 그 프로그램 스케줄에 맞춰 이루어진다. 이들은 진중하게 영화를 보고 생각하고 고민한다. 과거의 영화를 본다고 해서 과거에 묶여 있는 것이 아니라, 빛바랜 그 영화들을 보면서 지금의 나를 들여다본다.

 

시네마테크에서 상영되는 영화들은 수익과는 별개로 선택된다. 아니 선택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영화가 가지는 의미는 수익이 아니라 감동이고 배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영화가 선택될 때, 즉 수익에 의해서가 아니라 감동과 배움 때문에 영화가 선택될 때 영화는 진정한 힘을 갖게 된다고 믿는다.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배운 사람들은 이 힘을 알고 있다. 그리고 이 힘이 지켜지기를 바라고 있다. 세상논리, 돈의 논리에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모든 풍파를 굳건히 견뎌내고 현재까지 살아남은 고전영화들처럼, 흔들리지 않은 영화의 힘을 지켜내고 싶은 것이다.


 

에필로그

8년을 한 결 같이 그렇게 지켜온 이 공간을, 이 관객을, 영화의 의미도 모르는 누군가가 빼앗으려 하고 있다. 이 공간을 지켜온 것은 관객이며, 또한 역으로 관객을 지금까지 지켜온 것은 다른 누군가가 아닌 바로 지금의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다. 지금도 우리는 충분히 만족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충만하게 만족스러울 것이다. 논리도 안 맞는 말도 안 되는 것들을 들이대며 방해하지 말라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없어지는 것들이 있다. 역사 속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다. 그렇지만 없어지지 않고 영원히 남는 것들도 있다. 병아리 관객이지만 시네마테크의 한 관객으로서 시네마테크가 역사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남아 있어 주길 바란다. 그래서 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이 공간 속에서 영화를 만나고 영화의 힘을 배우길 바란다. 역사 속에서 살아남은 고전영화처럼, 시대를 거슬러 고전영화를 보러 오는 시네마테크의 관객들처럼, 고전영화와 함께, 관객들과 함께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가 영원히 남아 있어 주길 간절히 바란다. (방현주_관객회원)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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