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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100편의 시네마오디세이2-친밀한 삶

[Cinetalk] 거울이나 그림 앞에 서 있을 때의 경험과 유사하다

<게르트루드> 상영 후 한창호 영화평론가 강연

 

지난 4월 21일, 칼 드레이어의 유작 <게르트루드> 상영 후 한창호 영화평론가의 시네토크가 있었다. “거울과 그림”이라는 테마를 중심으로, 영화 속 미장센의 특징부터 드레이어의 생애까지 폭넓게 조망해볼 수 있었던 자리였다. 그 현장의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한창호(영화평론가): 오늘 보신 <게르트루드>는 기승전결의 일반적인 서사를 가지고 있는 영화가 아니다. 때문에 처음 보신 분들은 보고 나서도 스토리를 요약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쉽게 스토리가 요약이 안 되는 영화를 보는 경험은 거울이나 그림 앞에 서 있을 때의 경험과 유사하다. 그래서 “거울과 그림”이라는 테마를 잡아 보았다. 드레이어는 <잔 다르크의 수난>(1928)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그 때는 몽타주에 신경을 많이 썼지만 <게르트루드>에서는 몽타주가 배제되어 있다. <게르트루드>는 드레이어의 초창기와는 아주 다른 작품이다. 미장센이 어떤 식으로 화면에 드러나는가에 집중하는 것이 <게르트루드>의 특징을 즐기는 데 좋을 것이다.

드레이어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책이 두 권 있다. 1982년에 프랑스의 모리스 드루지에 의해 드레이어 전기가 출간된다. 드레이어 연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책이다. 그리고 1년 뒤에 데이비드 보드웰이 드레이어의 작품론을 쓴 책을 발간한다. 이 두 권의 고전이 연달아 나오면서 드레이어에 대한 새로운 평가들이 많이 나오게 됐다. 드루지가 쓴 전기는 영어로도 번역이 되어 있지 않아서 우리가 직접 읽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후 드레이어 연구자들이 모두 그 책을 참고했기 때문에 인용이 많이 된 편이라서 그 부분을 먼저 설명 드릴까 한다. 모리스 드루지가 책을 쓰던 당시는 정신분석 비평이 굉장히 큰 영향력을 가졌던 시기다. 드루지 역시 프로이트주의자고, 그러한 방법론으로 드레이어의 전기를 썼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사람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시기가 유아기이기 때문에 특히 부모와의 관계에 대한 조사가 철저한 편이다. 드레이어가 인터뷰를 통해 어린 시절의 불행에 대해 조금씩 밝힌 적은 있지만, 드루지의 책이 나오면서 드레이어의 어린 시절이 정말 남달랐다고 우리가 뒤늦게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드레이어의 어머니는 조세핀 닐슨이라는 사람인데, 스웨덴 출신으로 덴마크 농장에서 일하고 있는 하녀였다. 조세핀 닐슨은 아이의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른 상태에서 원치 않은 임신으로 코펜하겐으로 출산을 하러 떠난다. 그 아이가 바로 칼 드레이어 감독이다. 드레이어의 친모는 자신이 아이를 키울 수 없기 때문에 입양 보내려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결국 드레이어는 몇 달간 고아원에 맡겨지게 된다. 대략 1년 정도 지나 가까스로 입양부모를 구했는데, 그 사람들이 코펜하겐에서 인쇄업을 하고 있던 드레이어 부부다. 드레이어는 그때서야 성을 갖게 됐다. 친모는 그 당시에도 둘째를 임신 중이었다. 드레이어를 입양 보낸 상태에서 뱃속의 아이를 낙태 시키려고 황을 마셨지만 유황 중독으로 죽었다. 그때부터 드레이어는 양부모 입장에서 볼 때 양육비도 받을 수 없는 버려진 아이가 된 거다. 친모가 죽어버린 이후 드레이어는 양부모로부터 자신의 친모를 모욕하는 말을 들으며 자라야만 했다. 양부모 집안에서 드레이어는 굉장히 힘들게 자랐지만, 학교에 가서 공부에 재능을 보이고, 10대 중반에 전신회사에 취직을 해서 독립생활을 한다. 드레이어가 19살 때 자신의 친모가 누군지 궁금해서 스웨덴으로 여행을 간다. 그 이후로 드레이어는 코펜하겐에 돌아와서 저널리스트가 됐다. 영화사에 글도 써주고, 자막도 쓰고, 글쓰기와 관련된 일을 하면서 영화계에 들어오고, 편집도 하다가 영화감독이 됐다.

 

 

드레이어의 영화에는 일관되게 수난 받는 여성에 대한 묘사가 있다. <잔 다르크의 수난>과 <게르트루드>도 그 쪽으로 분류할 수 있다. 한편, 드레이어의 영화 속에서 한 여성은 박해받는 피해자로 그려져 있고, 또 다른 여성은 악녀로 그려져 있다. <분노의 날>(1943)에 나온 시어머니는 악녀-양모와 비슷할 것 같다. 드레이어는 양모를 박해자이면서 악녀로 정형화시켜놓았고, 친모를 피해자이고 희생양으로 만들어놓았다. 그래서 남성이 육체적인 사랑으로 여성에게 어떻게 피해를 주는지에 대한 문제에 집착하게 됐다는 해석이 감독 드레이어를 이해하기 위해 일정한 역할을 한다고 본다. 드레이어가 <게르트루드> 전에 만든 영화들에서는 친모와 양모가 분리되어 제시됐다. 하지만 <게르트루드>에서는 한 여성에게 두 모습이 공존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게르트루드는 피해자이지만, 마지막에 남편에게 하는 말을 보면 잔인한 면도 있다는 데에 여러분도 동의할 것이다.

한편, 보드웰은 형식주의자답게 중요한 자료들을 다 찾아서 드레이어가 어떻게 자신의 미학을 발전시키게 됐는가를 써 나갔다. <게르트루드>에도 잘 나와 있듯이 독일 표현주의 영향을 받은 조명, 흑백의 콘트라스트, 밤 장면을 탁월하게 찍는 능력, 실내 장식 등을 언급한다. 그리고 그림 등 예술 작품을 이용하는 솜씨가 있다. 제 나름대로 말하자면, 드레이어는 회화주의 미학을 갖고 있다. 오늘은 그 쪽으로 이야기를 맞춰 보려고 한다.

<게르트루드>는 원작이 있는 영화다. 영어로 번역되지는 않았지만 스웨덴에서는 스트린드베리와 함께 유명한 쇠드베리(Hjalmar Söderberg)의 희곡을 각색한 것이다. <게르트루드>에서 가브리엘과 게르트루드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쇠드베리의 희곡이 도움이 될 것 같다. 1906년에 희곡 <게르트루드>가 발표되는데, 쇠드베리의 실제 자전적인 이야기가 들어 있다. 스웨덴의 마리아 폰 플라텐(Maria von Platen)이라는 여가수는 게르트루드처럼 나이차가 많이 나는 남자와 결혼한 상태였다. 그녀는 다른 예술가들과 어울리면서 희곡작가 쇠드베리에게 당신의 작품을 읽고 반했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다. 이후 두 사람은 사랑을 하게 된다. 하지만 쇠드베리는 유부남이었고, 마리아 폰 플라텐도 한번 결혼했던 때였다. 쇠드베리가 새로운 결혼을 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조건에서 두 사람은 5년간 열애를 한다. 시간이 지나고 쇠드베리가 결혼생활을 정리할 수 있게 됐는데, 하필 그때 플라텐은 젊은 남자 작가와 사랑에 빠졌다. 쇠드베리에게 플라텐의 애인은 문학계의 후배인 셈이다. 게다가 그 작가가 영화 속 에를란드처럼 플라텐을 자기가 ‘정복’했다고 자랑스레 떠드는 걸 듣자 쇠드베리는 너무나 화가 나서 코펜하겐으로 가서 <게르트루드>를 쓰게 됐다.

드레이어는 <게르트루드>가 쇠드베리의 자전적 희곡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운명 같은 것이, 플라텐이 결혼생활 초기에, 그리고 에필로그의 게르트루드처럼 죽기 전에 살던 곳이 드레이어 생모가 살던 곳과 정말 가까운 곳이었다. 드레이어 입장에서는 <게르트루드>가 가족 로맨스였던 거다. 드레이어는 플라텐에게 생모의 이미지를 찾으려고 했다. 프로이트 식으로 말하면 자기 어머니를 현실과 다르게 이상화 시키는 거다. 드레이어는 마리아 폰 플라텐의 집까지 방문하게 된다. 마지막 에필로그는 플라텐이 직접 살던 곳을 촬영지로 쓸 수 없게 되자 스튜디오 안에 비슷하게 만든 것이다.

 

<게르트루드>에서는 총 다섯 개의 시퀀스와 에필로그가 나온다. 5분이 넘는 롱테이크는 예사다. 스토리 전개가 논리적인 인과율에 따라 전개되는 게 아니다. 시간도 친절하게 과거-현재-미래 순이 아니다. 비(非)서사를 미장센 중심으로 표현하는 것이 이 영화의 특징이다. 행위가 진행되고 행위 속에서 인과율이 있어서 어떤 스토리가 전개되는데, 그 부분을 일부러 놓치게 만든다. 대신 미술관에서 그림을 볼 때 상상력이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경험이 있다. 논리적으로 정리되지는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림 앞에서 상상했던 것들이 나의 재산이 되는, 그런 식의 매력이 이 영화에서는 더 크다.

<게르트루드>는 시간상으로 사흘간의 이야기다. 응접실-공원 데이트-에를란드와의 밤-시인의 환영식-공원 데이트-응접실로 이루어진 대칭 구조다. 그리고 마지막에 에필로그가 붙어 있다. 에필로그 장면은 원작에 없는 것으로, 감독이 만들어낸 것이다. 첫째 날은 응접실에서 시작한다. 게르트루드가 무대를 통해 들어오는 것처럼 등장한다. 여기서 미술 작품을 인용하는 것이나 그것들로 이야기를 보조적으로 끌고 가는 능력 등 드레이어가 갖고 있는 미장센의 특징이 쏟아져 나온다. 응접실 안에 있는 그림들은 계몽주의 시절의 로코코 그림들이다. 게르트루드와 남편이 어떤 사회적 위치의 사람들인지 배경이 제시를 하고 있다. 응접실에서 게르트루드는 가브리엘로부터 받은 거울에서 자기 모습을 바라본다. 게르트루드의 나르시시즘이 강조되어 있다. 이후 게르트루드는 공원으로 나가 에를란드를 만난다. 공원에서 호수의 수면이 거울처럼 너무나 평화롭다. 무슨 일도 일어나지 않은 상태, 두 사람이 평화로운 관계라는 느낌을 전달한다. 반대로 두 번째 공원 씬에서는 수면에 잔물결이 인다. 드레이어는 그런 식으로 대단히 세심한 곳까지 신경을 썼다. 대사나 과도한 연기를 이용하지 않았다. 마치 브레송의 배우들처럼 연기하는 식이다.

게르트루드와 에를란드가 같이 밤을 보내는 방에 걸려 있는 미래지향적인 초상화는 에를란드라는 음악가의 성격을 잘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카메오(양각으로 조각한 장식)가 두 사람이 관계 맺으리란 것을 암시하고 있다. 중요한 장면에서는 거의 다가 화면 내의 다른 소재를 통해 설명되고 있다. 이렇듯 큰 픽션 안에서 다른 픽션이 들어와서 설명하는 건 바로크 시절 화가들이 많이 취하던 방법이다. 드레이어는 보드웰이 말한 것처럼 미술에 굉장히 풍부한 교양을 갖고 있었다. 그림 속에 그림이 있듯, 화면 속에서 현재의 장면을 설명하고 앞으로의 일을 암시하는 건 드레이어가 잘 하는 방법이다.

둘째 날, 악셀이 왔을 때 게르트루드가 그림을 바라본다. 게르트루드는 자기가 꿈을 꿨다고 얘기한다. 꿈속에서 자기는 발가벗고 있고 개들이 자기를 따라왔다는 꿈이다. 그 꿈의 내용이 그림에 나와 있다. 옷을 벗고 있다는 건 죄가 없고 결백하다는 의미인데, 역시 나르시시즘의 생각이 많이 들어 있다. 그 상태에서 육욕, 색욕 등이 개들의 공격으로 표현된 듯하다. 게르트루드는 남자들이 자신의 육체만 좋아하며, 남자들의 희생자가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게르트루드 그런 염려가 꿈속에 나와 있고, 그것이 그림으로 형상화 되고 있다.

 

 

마지막 날 응접실 시퀀스로 넘어오면, 게르트루드는 처음으로 검정색의 드레스를 입는다. 예사롭지 않다. 가브리엘이 거울 옆 촛불을 켠다. 불은 열정의 상징으로, 아직까지 게르트루드에게 미련이 남아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남자는 거울을 통해 게르트루드를 보고, 게르트루드는 반대로 가브리엘을 보고 있다. 이것은 처음의 거울 이미지와 다르다. 나르시스트로서의 게르트루드가 아니라 성찰적인 게르트루드를 영화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가브리엘은 게르트루드에게 같이 떠나자고 종용한다. 두 사람 모두 사랑으로부터 버림받아서 대단히 외로운 상태다. 등을 돌리고 나란히 서 있는 이미지는 뭉크의 그림에 많이 나와 있다. 그런 이미지 앞에서 두 사람이 얘기하고 있다. 이제 게르트루드는 가브리엘이 켜놓은 촛불을 끈다. 두 사람 사랑은 끝이 난 것이고, 게르트루드의 불도 꺼진다. 게르트루드의 사랑 이야기도 더 이상 없는 것이다. 응접실에서 게르트루드는 퇴장한다. 검은 드레스를 입은 게르트루드는 무대 뒤로 사라져버린다.

에필로그에서 악셀이 찾아온 게르트루드의 집은 구스타프의 집과는 굉장히 다르다. 구스타프의 집은 로코코풍의 장식품이 너무나 많고, 세월의 규율, 법, 남성적인 코드들이 가득 차 있었다. 반면 이 집은 굉장히 편안하고, 자연스럽고, 억압을 덜어낸 것 같은 공간으로 만들어져있다. 덴마크의 함메르쇠이(Hammershoi)라는 화가는 드레이어가 대단히 좋아하던 화가였다. 함메르쇠이의 그림은 메마르고, 심플하다. 아무것도 없이 살짝 죽어 있는 공간이다. 영화의 에필로그도 그렇게 그려져 있다. 그리고 의자와 함께 닫힌 문을 보여주는데 전형적인 정물화다. 고요하기도 하고, 게르트루드의 죽음을 암시하며 영화가 끝난 것이다. 이것을 쓸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게르트루드의 대사처럼 ‘모든 것이 사랑이다.’ 다시 말해서 상처받은 것도 자신의 사랑이자 삶이었으니까 결코 연민의 대상은 아닌 것이다.

 

정리: 송은경 관객 에디터 | 사진: 최미연 자원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