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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경계도시 특별상영

흑백논리의 제국을 집요하게 파헤치는 영화

[영화읽기] 홍형숙 감독의 <경계도시>와 <경계도시2>


<경계도시>와 <경계도시2>는 간첩혐의로 입국금지처분을 받은 제독철학자 송두율 교수의 귀국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2000년에 촬영을 시작해 2002년에 제작되었던 <경계도시>는 홍형숙 감독이 베를린에 머물며 송두율 교수의 한국방문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다룬다. 2000년 송두율 교수는 꿈에 그리던 고국방문을 눈앞에 둔 상황이었고 영화는 한국에 돌아오기를 준비하는 송두율과 그의 부인 정정희 여사의 설레는 마음을 깊게 밀착해서 잡아낸다.

<경계도시>는 송두율 교수가 조국으로부터 부당한 피해를 받는다는 것을 전제로 한 채 시작된다. 영화의 초반, 홍형숙 감독은 과거에 장벽으로 둘러싸였던 베를린의 거리를 보여주며, 베를린 사회 속에 남과 북의 경계인으로서 살고 있는 송두율이라는 인물에 다가선다. 송두율 교수의 집에 머무르며 그의 모든 생활을 카메라에 담아내고, 한국행이 좌초될 때마다 송 교수가 남몰래 뱉는 깊은 한숨이 영화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경계도시>의 카메라는 송두율이라는 인물을 인간 대 인간으로 대하며 그에 대한 공감을 관객에게 보여주기를 갈망한다. 다시 말해 <경계도시>는 송두율이 처한 사회적 문제와 경계인으로서의 고민에서 조금 벗어나 그를 인물다큐멘터리의 피사체로 보는 지점이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반면 2003년과 2004년에 촬영된 <경계도시2>는 <경계도시>의 접근방식에서 완전히 다른 태도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송두율 교수의 귀국이 확정되면서 그의 한국행을 다룬 <경계도시2>는 송두율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경계도시>의 연장선에 있지만, 송 교수라는 인물을 떠나 한 국가 내의 이념논쟁이라는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기 시작한다. <경계도시>에서 송두율이라는 인물을 다루는 방식이 <경계도시2>로 전환될 때의 상황은 실로 놀랍다. <경계도시2>는 <경계도시>가 끝나는 지점, 다시 말해 송두율의 입국이 좌절된 지점에서 시작된다. 입국좌절을 겪고 난 후 예기치 않게 바로 그 다음해에 송 교수는 한국 땅을 밟았고 카메라는 전편의 연장으로 송두율을 팔로잉한다. 하지만 베를린에서 평온을 유지했던 카메라는 한국으로 넘어오며 급격한 혼란에 빠지게 된다. 송 교수가 한국에 머무는 동안 모든 언론과 각계 대표들이 그를 주목하는 과정은 <경계도시>가 놓쳤던 모든 것들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약 40년간을 경계인으로 살았던 송 교수는 한국사회의 이념대립에 의해 강제귀화 당한다. 타의로 인한, 그리고 이유가 불분명한 ‘전향’이 이뤄진 셈이다. 단 열흘 만에 송 교수는 '경계인'이라는 입지를 잃게 되고 그에게 일방적인 폭력을 가했던 제 3자들은 침묵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과정에서 <경계도시2>의 카메라가 스스로 혼란스러움을 인정하고 그것을 숨기려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경계도시2>에서 송 교수와 정 여사 그리고 송 교수의 변호사를 포함한 측근들이 밤새 대책회의를 벌이는 장면은 홍형숙 감독 자신조차 몰랐던 한국사회의 이분법적 추태를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다. 진실보다는 '상황종료'에 치중하는 인물들의 대사 속에 올곧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정 여사 뿐이다. 송 교수는 입을 닫고 언론들은 걸러지지 않은 텍스트들을 받아쓰기 바쁘다. 카메라가 대상에게서 벗어나 대상의 주변인들을 아울러 담아낼 때 '송두율 사건'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명백해진다. <경계도시2>는 송두율이라는 거울을 통해 한국이라는 집단을 보여준다. 정말 중요한 것은 송두율이라는 인물이 아닌 그가 속해있는 사회의 병폐다. 무섭도록 놀라운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경계도시>가 인물의 곁에 선 채 다큐멘터리로서의 충실함을 수행한다면 <경계도시2>는 인물을 철저하게 사회의 일부로 편성시킨다. 확고하게 믿었던 인물이 사회 속으로 전환되는 순간 생각지도 못했던 사회의 상징성들이 인물에게 투영된다. '경계'라는 말을 용납하지 못할 정도로 흑백논리에 빠진 사회. 불편한 드라마지만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진실이자 기록이다. (강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