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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경계도시 특별상영

‘송두율’ 그는 누구인가, 개인에 대한 밀착과 거리두기

[영화읽기] 홍형숙 감독의 <경계도시>와 <경계도시2>


<경계도시2> 중반부에 송두율 교수가 방에 들어왔을 때, 감독이 더 이상 영화를 찍는 것을 진행시켜야 되는지에 대해서 고민하는 장면(대사)이 있다. 만약 그때 카메라의 전원을 껐다면 아마도 우리는 이 작품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상황에서 제기되는 두 가지의 고민은 아마 영화를 찍는 일을 계속 진행해야 하는지와 계속 찍는 것을 선택한다면 송두율 교수와 카메라의 거리를 어느 정도로 유지할 것인가 일 것이다. 이는 총체적 문제의식이다. 즉 <경계도시>와 <경계도시2>는 진행(혹은 지속)과 거리두기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으며, 이는 영화 속 인물과 관객에게도 무관하지 않다.

송두율 교수는 경계인으로서의 삶을 지속하기 위해 남과 북에 거리를 두려고 하지만(그것은 그의 이론이기도 하다) 실천이 그렇게 마음처럼 쉽지 않다. 그를 둘러싼 사람들과 상황들이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의 초점은 입국의 시도와 좌절을 겪는 독일에서의 송두율 교수를 담은 <경계도시>에서 그가 한국에 입국과 동시에 벌어지는 사건사고들을 다룬 <경계도시2>로 옮겨간다. 한 개인에 밀착해 있던 카메라가 다음 작품으로 이행하면서 개인에게서 물러서서 그 사람이 속한 사회상을 담아낸다. 물론 두 작품은 끊임없이 밀착과 거리두기의 진자운동을 반복하고 있다. 무엇을 보여줄 지와 어느 정도 다가갈 건지에 대한 선택에 적절한 대답을 하고 있는 듯이.


<경계도시>는 송두율 교수에 초점이 맞춰져있는 만큼 개인적인 관심에 대해 피력한다. 가령 어떻게 독일에 왔으며, 어떻게 공부를 했고, 어떤 이론을 펼치고 있는지, 그리고 왜 조국에 입국할 수 없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영화는 조국에 입국하기 위해서 고분 고투하는 과정과 사회적인 모순들도 담아내지만, 밀착된 카메라 때문인지 입국의 좌절로 인한 애처로움이 더 강하게 표현된 듯하다.

그에 반해 <경계도시2>는 한국의 근현대사의 난점을 그대로 드러낸다. 영화 속에서 국보법, 빨갱이콤플렉스, 보수와 진보의 대립, 구 운동권들의 모습, 기자들의 난상 등 분단국가로서의 한국의 맹점들은 송두율 교수를 둘러싼 여러 문제와 갈등들로 폭발해버린다. 두 작품의 연결 지점은 송두율 교수와 그의 입국을 둘러싼 문제인데, 이는 영화 속에서 인물들이 어떻게 이 문제에 대해서 거리를 두거나 대립하고 충돌하고 있는지에 따라서 다채로운 색을 띈다(심지어 지나가는 법원 앞에서 지나가는 행인의 인터뷰를 담아내기도 했다).



이렇듯 대한민국의 인간군상과 사회적 병폐들이 밀집되어 있는 <경계도시>와 <경계도시2>에 대해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자화상' 같은 표현을 쓴다. 이 말을 따른다면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한 진실에 맞섰다는 것인데, 나는 보는 중에 끊임없이 이 불편한 진실을 보는 것을 지속할 것인지 그리고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들었다. 그리고 그 고민에 대한 해답은 영화가 끝남과 동시에 풀렸고, 영화가 끝난 뒤 그 결심은 현재까지도 여전히 유효하다. (최혁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