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反)영화: 작가, 요시다 기주의 작품 세계

 

 

 

 

 

주로 요시다 요시시게로 알려진 요시다 기주(이하 요시다)는 1933년 2월 16일 후쿠이현 후쿠이시의 직물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거의 집에 들어오지 않고, 동경 니혼바시에 있던 지점에서 지냈다고 한다. 요시다가 태어난 지 2년 후에 어머니가 결핵으로 요절하게 되는데, 그의 영화에서 드러나는 부재의 흔적은 아마도 이 시절부터 내재화되어 있던 것인지도 모른다.

 

요시다는 2차 대전 중 대공습을 피해 동경으로 이사 간 이후부터 프랑스어를 배우고, 본격적으로 구미의 여러 영화들을 섭렵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 사르트르의 소설 『구토』를 읽고 매혹되어 대학 시절에는 사르트르의 작품에 심취한다. 그런 문화적인 영향 탓일까, 요시다는 동경대학교 문학부 불문과에 진학해 대학교수를 지망했다. 하지만, 이전부터 눈이 좋지 않던 아버지의 실명으로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문제에 직면한 그는 쇼치쿠 오후네 촬영소 연출부에 조감독으로 입사한다. 요시다는 거기서 입사 10일 만에 현장에 보내져, 1년 선배인 오시마 나기사와 알게 되고 그가 소속된 팀의 조감독으로 일하게 된다.

 

요시다의 본격적인 영화활동은 그 후, 신인감독으로 1년 정도 활동한 시기에 오리지널 시나리오에 대한 창작 활동을 펼치면서 나기사를 비롯한 7명과 동인잡지 『7인』을 편찬하면서 시작했다. 이때 썼던 『해변의 묘비 海辺の墓標』가 기노시카 게이스케의 눈에 띄었고, <노을진 구름 夕やけ雲>(1956)부터 <후에후키강 笛吹川>(1960)까지 4년간 기노시타의 조감독으로 지내면서 그에게 스튜디오 시스템 안의 제작방식에 대해 지도받았다. 물론 굳이 요시다 감독의 작품 속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을 말한다면 오즈 야스지로일 것이다. 그가 오즈 야스지로에게 영향을 받고 계승했던 것은 단순한 형식의 모방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오즈만이 지니고 있는 모더니티, 항상 긴장감을 지니고 ‘지금/현재’와 맹렬하게 투쟁하는 동시대인으로 존재하는 것에 대한 계승을 말한다. 2003년도에 나온 15년 만의 신작 <거울의 여자들 鏡の女たち>이 그 대표적 작품인데, 요시다는 영화에서 ‘본다’는 행위에 대한 모더니즘적 과제를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라는 미명 아래, 빠르게 재편성되는 전후 일본사회 속에서 소외를 바라본 그는 스튜디오 시스템 속에서 ‘하나의 의미’만을 전달하는 ‘영화’라는 제도=장치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품었다. 때문에 그는 전후 일본이라는 상황과 작가로서의 주체성을 문제 삼는다. ‘하나의 서사’를 전달하기 위해 등장인물과 관객을 동일시하고 의미를 조종하는 상업 영화에 대한 그의 비판은 무조건적으로 공유되는 ‘일본’이라는 서사를 뒤흔드는 새로운 작품으로 전진하기 위한 것이었다.

 

 

도약: 패턴화에 대한 강한 거부

 

 

 

 

요시다 감독의 <쓸모없는 녀석 ろくでなし>, <피가 마른다 血は渇いている>등의 초기 작품은 기존 상업 영화의 패턴화된 반항과 감동적인 휴머니즘이란 것에 조소하는 작품이다. 그에게 기존의 형식을 빌려 작업을 하는 것은 패배를 의미하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동시대의 전위영화 작가들도 기존의 형식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이 형식이 내포하고 있는 사상에 자신이 가둬지는 것을 의미했기에 거부했었다. 하지만, 요시다는 거기에서 더 나아가, 자신이 만든 형태를 관객에게 강요하는 것도 관객에게 사유할 자유를 빼앗는 것이 된다고 생각했다.


요시다 기주는 만드는 자와 보는 자의 어디까지나 평등한 대치, 이것이 영화의 본질이라 생각했다. 따라서 그는 영화 속에서 작가에 의해 확실한 결론이 맺어진다던지, 감정에 호소하여 어떤 특정 생각에 가치를 부여하는 영화를 피하고자 했다. 그것은 관객의 자유를 빼앗는 작가가 지닌 권력에 의한 폭력적 개입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요시다는 자신의 작품 속에서 등장인물 중, 누가 옳고 누가 틀렸는지를 확실히 알아볼 수 있도록 묘사하지 않았다. 기존 상업 극영화에서 보이는 선악의 구분은 작가라는 권력을 지닌 한 사람의 가치판단으로 결정된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극 중 인물들의 행동이 서로 연쇄를 이루고, 이러한 행동들이 서로 전체적으로 이어져 중층적 상황으로 겹쳐진다.

 

그렇다고 그의 작품 속에 나타나는 전체성이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로 구성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마치 점과 점을 이어주는 연결 고리로 각각의 점들은 언제든지 끊어짐과 이어짐을 반복한다. 이는 똑같은 것의 반복, 즉 자기복제가 아니라 자기부정을 통한 반복, 변주를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요시다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작품 전반에서 작가가 지닌 특유의 개성이 발견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전작을 부정하고, 사고의 부단한 운동으로서의 영화를 모색해왔다. 자기모방으로 인한 패턴화된 작품들이야말로 그가 경멸하며 피하고자 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 어떠한 패턴화도 거부하고, 쇼치쿠라는 거대 영화사를 나온 그가 틀에 박힌 상업 영화에 던진 화두는 일본 영화뿐만 아니라 영화라는 ‘제도’가 지닌 터부를 폭로하는 것이었다. 요시다는 카메라 저편에 위치한 권력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에 있어, 영화가 지닌 남성적 재현방식을 오카다 마리코(岡田茉莉子)라는 배우의 신체성을 통해 탈구축화하였다. 그는 영화가 지닌 허구성에 대해서 자각적인 시선을 지니고 그러한 허구성을 전경화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융합과 반발의 중층적 세계, 요시다의 영화들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구축된 그물망과도 같은 연결조직은 앞서 언급한 <거울의 여자들>에서 그 집대성을 이룬다. <거울의 여자들>은 통속적 멜로드라마에 회의적인 시선을 지닌 요시다가 비평적으로 만든 멜로드라마이다. 이 영화의 연관성은 요시다와 오카다가 함께 작업한 최초의 작품 <아키츠 온천 秋津温泉>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두 작품 모두 ‘바라본다’라는 행위에서 나타나는 표상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할 것인가에 대한 화두에 접근하고 있다.

 

<거울의 여자들>에서 요시다는 등장인물들의 시선이 서로 연결되지 않는 극을 일종의 내적 규범으로서 구축하면서, 시선의 일치가 이루어지는 180도 법칙을 어느 특권적 순간을 위해서 보존하고 있다. 외화면을 바라보는 여성들의 시선은 배역으로서 그녀들의 내면을 나타내고 있다기보다 오히려, ‘본다’라는 행위 자체가 강조되고 있다. 마치 그녀들은 스스로에게 부과된 ‘목격자’로서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제도적 영화 제작에 항상 반발하고 도전해 왔던 요시다는 영화가 지닌 허구성을 스크린 앞으로 드러낸다. 그는 배우를 영화가 지닌 허구성의 상징으로서 사용하는 한편, 허구성 그 자체를 은폐해버리는 형식으로서의 리얼리즘에 의혹을 품고 있는 듯 보인다. 이러한 허구의 현실성 속에서 오카다 마리코라는 여배우의 신체를 통해서 요시다는 서로 마주보고 있는 거울mise-en-abîme의 세계를 구현해낸다.

 

 

오카다 마리코라는 여성, 배우, 타자 그리고 환상

 

 

 

 

한 살 때 무성영화 스타였던 아버지 오카다 토키히코(岡田時彦)를 여의고 어머니의 뜻에 따라 배우가 되어, 그 이후 150편의 경력을 지닌 오카다 마리코는 한 명의 여배우로서, 제작자로서, 그리고 인생의 동반자로서 요시다 영화를 이해하는 데 빠져서는 안 될 존재이다. 요시다와 결혼하기 전에는 토호와 쇼치쿠의 간판 여배우로 활약해 왔던 그녀였다. 만약 그녀와의 긴 시간 동안 공동 작업이 없었더라면, 현재의 요시다 기주의 영화세계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요시다의 영화에서 오카다 마리코라는 존재는 구조적으로 조직되어 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오카다 마리코에게 집약된 요시다 영화의 여성상은 여배우라는 페르소나와 사적인 개인 간의 대립이 아닌, 어디까지나 여성성이 지닌 허구성을 스크린 안에 드러내는 것이다. 그의 작품 속에서 허구로서의 여배우와 여배우 자신의 현전성 사이의 미묘한 관계성에 요시다 자신이 상상하는 ‘영화적 제도’가 지닌 모순과 허구를 겹쳐 제시하고 있다. 요시다는 배우라는 육체, 여배우의 육체가 연기라는 틀을 넘어서 관객과의 연결을 만들어내는 장소가 되는 것에 절대적 신뢰를 두고 있었다. 배우의 육체를 통해서 영화의 의미는 작가/남성의 시선이 부여한 의미를 벗어나 무한히 확장될 수 있다.

 

여배우와 여성이라는 경계, 즉 여배우라는 허구와 여성이라는 허구의 경계가 무너지고, 오히려 여배우라는 허구의 리얼리티가 부각된다. 요시다의 작품 속에서 여배우란 존재는 그 스스로 ‘거울’이 되는 존재이기 때문에 타인의 시선 속에서 살아간다. 그녀들은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가장하거나, 화장하는 것으로 영화의 형식을 동요시킨다. 요시다에게 있어 ‘여성 속에 내재한 여배우성’은 남자에게 있어서는 바라볼 수밖에 없는 타자의 시선을 비추는 거울처럼 굴절된 자신의 이미지를 받아들이는 특별한 존재가 된다. 따라서 그의 영화가 지닌 타자성은 항상 여성을 매개로 하여 나타난다.

 

오카다 마리코가 지닌 특이성은 그녀 스스로의 타자성, 부재성을 비추는 거울이 되고, 그녀가 부재를 반영하는 것에 의해 그 존재감을 나타내는 것에 있다. 이러한 부재성이 역으로 제도적인 젠더 규범에 대한 강렬한 반항으로 작용한다. 타자성을 존재로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단지 ‘거울’로서 반영함으로써 남성들이 숭배하는 ‘여성’이란 젠더를 이화시킨다. 오카다 마리코라는 배우의 신체를 통해서, 그녀의 시선을 통해서, 그 목소리를 통해서 요시다 기주는 자신만의 독자적 이야기를 완성시킨다.

 

 

 

다시 시선으로 돌아가서 말하자면, 요시다 영화 속에서 외화면을 바라보는 오카다의 시선은 외화면에 존재하는 대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외화면의 텅 빈 공간만을 바라보고 있다. 외화면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클로즈업된 얼굴과 외화면의 텅 빈 공간이 서로 겹쳐지면서 의미의 부재와 신체적 행위의 현전 속에서 다층적 의미가 생성된다. 환상과 현실이 정해지지 않는 세계, 영화에서 그녀의 클로즈업은 묘한 매력을 더하며 두 세계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그의 영화에서 환상이 나타내고 있는 것은 주체가 지닌 ‘욕망의 대상’이 아닌 ‘장면으로 현전하는 무대’이다.

 

요시다 기주는 자신의 타자성을 여배우성=여성성으로 전이시킴으로써 이야기를 탈구축하는 형태로 원인-결과를 추구하는 고전적 극적 구조를 부정하고 해체시킨다. 이런 ‘영화’라는 제도=장치에 대한 도전과 반발의 정점에는 오카다 마리코라는 여성, 배우, 타자가 있었다. 감독은 오카다가 바라보는 외화면에 존재하는 대상으로 자신을 위치시켜 ‘보는 주체’에서 ‘관찰되는 객체’가 되어 타자성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영화라는 제도=장치 안에 내재된 권력적 시점을 드러낸다. 스크린 너머의 남성성으로 상징되는 권력의 부재는 관찰자와 관찰되는 자를 시각적으로 같은 위치에 놓아 제도가 지닌 허구성을 전면에 드러내고, 새로운 관계성을 모색하게 만든다. 요시다는 비판적인 시각에서 영화를 해체하고 계승하면서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 낸 작가이자, 그의 작품들은 ‘영화’라는 제도=장치에 대해 반대한다는 의미에서 반(反)영화라 할 수 있다.

 

 

한태준│일본영화 연구자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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