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행제로>는 요즘 나오는 총천연색의 빠르고 박력 넘치는 액션과는 거리가 먼 영화지만 다른 면에서 은밀한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영화다. 품행점수 빵점의 문제아들이 일으킨 작은 반란을 다루고 있는 이 영화의 부제가 오죽하면 ‘학교의 작은 악마들’일까.

<품행제로>는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다’는 이유로 프랑스에서 1933년에 처음 공개된 직후 상영을 금지 당했다가, 세계2차 대전이 끝난 1946년에야 해금되었다. 하긴, 교장선생님을 난쟁이로 표현하고 학생 하나는 선생님에게 욕을 하며 대드는가 하면, 장관까지 참석한 학교의 기념식을 아이들이 작정하고 망치기까지 하니, 지금이라면 신문 1면과 9시 뉴스에 나오고 “요즘 애들은 쯧쯧...” 하는 탄식을 전국적으로 불러일으킬 만하다. 하지만 감독 자신이 실제로 8년을 기숙학교에서 보냈고, 그러한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화에서 아이들이 벌이는 ‘그들만의 축제’ 장면은 역사적으로 프랑스혁명을 형상화한 여러 회화작품들의 이미지와 겹치는 부분이 있다.

영화 속 학교가 아이들을 부당하게 억압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이 아이들이 벌이는 반란의 충분한 이유가 된다. 예를 들어, 타바르가 반란에 앞장서서 참여하는 이유에는 이 아이가 선생님에게 성추행을 당했을지도 모른다는 암시가 선생님이 타바르의 손을 능글맞게 쓰다듬는 장면을 통해 드러난다. 선생님이 학생의 손을 만진다고 모두 성추행은 아니지만, 영화에서 그 장면을 그렇게 강조해서 의미심장하게 보여준다는 건 단순히 ‘손을 만진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함축해서 전달하기 위해서다. 아이들의 소지품을 뒤지고 훔치는 사감 선생은 어떠한가? 아이들과 함께 격의 없이 어울리는 위게 선생님이 교장선생님에게 엄청나게 눈치를 받는 걸 보면, 평소 이 학교의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얼마나 죄수처럼 대해왔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거사를 치른’ 아이들이 지붕 위를 뛰어가는 장면을 비춘다. 그들 앞에는 그저 뻥 뚫린 하늘만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이 아이들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아마도 그리 좋거나 밝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이 벌인 한밤의 축제는 7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 관객들에게 여전히 깊은 울림과 해방감을 선사한다. 반짝반짝한 컬러와 엄청나게 빠른 편집의 요즘 영화들이 결코 전달해 줄 수 없는 기이하고 신비로운 아름다움도, 이 영화만이 전해줄 수 있는 특별한 가치다.

글/ 김숙현(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코디네이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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