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전후 독일 문학의 대표적 작가인 하인리히 뵐의 1959년작 소설 <9시 반의 당구>를 원작으로 한 <화해불가>는 장 마리 스트라우브와 다니엘 위예의 장편 데뷔작이다. 정치적 모더니즘 영화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던 1960년대 세계 영화의 흐름 가운데에서도 가장 급진적인 시네아스트이자 정치적 모더니즘과 미학적 아방가르드를 가장 성공적으로 결합시켰다고 평가 받는 스트라우브와 위예는 정치적 급진주의를 바탕에 깔고 문학과 음악, 연극, 회화 등 전방위적인 예술의 형태를 영화의 형식으로 전화하는 가운데에서 자신들의 미학을 설파한다.


그들의 1965년작 <화해불가>는 전후 독일 사회에서 경제 발전의 기치에 가려진 나치 시기의 청산에 대한 의도적인 망각에 대해 일침을 가하는 작품이다. 하인리히 페멜이라는 한 건축가의 집안을 중심으로 한 1900년대 초반부터 현재에 이르는 3대에 걸친 가족사와 독일현대사를 아우르고 있는 이 영화는 소설과 마찬가지로 하인리히 페멜의 80세 생일 하루 동안의 이야기를 현재로 하여 그와 그의 가족들의 과거를 회상 형식으로 넘나들고 있다.


저명한 건축가로 살면서 권력자들과 나치의 전횡에 눈을 감고 소극적으로 살아왔던 하인리히 페멜, 반면 반복되는 전쟁으로 아이들과 동생들을 잃고 적극적으로 황제와 나치에 대해 분노를 숨기지 못했던 나머지 정신병원에서 요양 생활을 해야 했던 그의 아내 요한나, 반나치주의자이자 폭파전문가로 고립된 삶을 살아온 아들 로베르트와 어릴 때 나치에 동화되었던 그의 형제들, 그리고 로베르트와 함께 망명 생활을 했던 친구 슈렐라 등 다양한 인간들은 서로 흩어진 채 자신만의 기억 속에 강박적으로 갇혀있다.



종전 이후 과거의 끔찍한 기억들은 그들의 현재를 잠식하고 있지만 그들은 서로 소통하는 대신 고립을 선택한다. 그러나 그들의 죽어있는 현재는 하인리히의 80세 생일에 요양원을 나온 요한나가 전투 동맹을 독려하는 장관에게 총을 쏘는 사건을 계기로 변화한다. 나치즘의 잔재, 과거에 대한 반성이 없는 회귀의 움직임에 대해 경각심을 보내며 여전히 청산되지 않은 역사에 대해 명징하게 기억하기 위해 하인리히의 80세 생일에 뿔뿔이 흩어져 있던 가족들은 함께 모여 케이크를 자른다.

“폭력이 지배하는 곳에서는 폭력만이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브레히트의 경구를 부제로 달고 있는 이 영화는 할리우드 고전 영화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시공간 구성을 취하지 않는다. 영화사에서 1960년대는 전 세계적으로 불어 닥친 뉴웨이브의 열풍으로 인해 전통적인 영화 형식을 타파하고 새로운 영화 형식에 대한 다양한 실험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졌던 시기이기도 하다. 부분적으로 르누아르와 브레송의 영향을 받은 스트라우브와 위예는 자의식적인 배우들의 연기, 전통적인 방식의 영화음악의 비사용, 시공간의 불명확한 경계 등 당시 뉴웨이브 영화들의 특징을 공유하면서도 대단히 미니멀한 방식으로 하인리히 뵐의 모던한 텍스트를 영화의 이미지로 재해석하고 있다.

최은영(영화평론가)

1.17(화)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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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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