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토리얼]




감미로운 공포


클레르 드니를 처음 만난 것은 2002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이다. 그녀는 뉴커런츠 심사위원의 자격으로, 그리고 신작 <금요일 밤>을 들고 부산을 찾았다. <금요일 밤>은 엠마뉴엘 베른하임의 소설을 각색한 영화로, 자신이 살던 아파트에서 나와 애인의 방으로 이사하려는 한 여성의 불안한 심리를 그렸다. 그녀는 운송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꽉 막힌 도시의 한복판에서 자신의 차 안으로 들어오려는 남자를 거부하며 차창 바깥의 세계를 쳐다본다. 그리고 우연히 한 남자를 받아들인다. 낯선 이를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타자와의 접촉과 만남. 여기에 침입이 발생한다.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녀의 모든 영화는 어떤 도착, 어떤 만남, 혹은 어떤 방문을 그린다. 여기에 낯선 이에 대한 매혹, 그(녀)를 받아들일지의 주저와 결정, 두려움의 감각과 미묘한 쾌락, 그리고 갱신되는 욕망들이 있다. 그녀는 침입으로 인해 발생하는 두려움을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삶에는 그런 무수한 침입이 있기 때문이다.


드니와의 두 번째 만남도 부산에서이다. 2004년, 이번에 그녀는 <침입자>를 선보였는데 이 작품의 일부 장면을 부산에서 촬영했다. 심장이식 수술을 받은 남자가 잠깐 머무는 장소가 부산이다. 그녀는 부산이 <침입자>의 두 부분, 즉 지옥과 천국의 중간 지대인 림보의 공간에 해당된다고 말했다. “부산은 전반부의 어두운 분위기와 후반부의 따뜻한 이미지를 연결하는 공간으로, 생동감과 활력으로 가득한 공간라는 게 그녀의 설명이다. 하지만 당시 관객들은 그렇게 받아들였던 것 같지는 않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자신을 부산 관객이라 말한 몇 명이 던진 날선 질문들을 기억한다. 심장이식 수술을 받은 주인공 (백인) 남자가 부산의 호텔에서 맹인 (한국인) 여성의 마사지를 받는 장면이 구설수에 올랐다. 마사지를 하는 맹인 여성의 손가락이 남자의 피부를 만지고, 그의 몸에 있는 상처를 건드릴 때 남자의 희미한 신음소리가 들린다. 이 장면에 관객들이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은 결코 이상하지 않다. 그만큼 특별한 순간이다. 어쩌면 이 영화의 중심이라 말할 수도 있겠다. 드니는 여기서 맹인 여성이 손으로 타인의 몸과 접촉할 때의, 피부를 접할 때의 감각과 고통을 영상에 가져오고 있다. 서로 다른 피부, 타자의 외관을 넘어서 접촉을 시도하는 것이다. 남자의 몸에 있는 수술 자국들, 검붉은 기미, 주름들이 마치 풍경처럼 펼쳐지고 있는데, 이는 낯선 세계를 여행하는 이방인이 접하는 감각적인 풍경 같다. 서로 다른 문화적, 사회적, 인종적 배경을 가진 인간들이 서로 섞이고 침투하는 세계의 모습이다. 관능적이고 감미로운 공포의 세계이다.


이후 나는 드니를 부산에서, 그리고 전주에서 다시 만났다. 헤어질 때 언제나 그녀에게 ‘서울에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었다. 이번에 열리는 대규모 회고전은 그런 작은 소망이 실현되는 기회다. 국내에서 그녀의 근작 <돌이킬 수 없는>이 개봉하긴 했지만(한국에서 유일하게 개봉한 작품이다), 여전히 관객들에게 드니의 작품은 낯설다. 그런데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이 그것이다. 드니의 영화를 본다는 것은 결국 그런 낯섦에 접근하는 것이다.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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