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은 스티븐 킹이 1977년에 발표한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공포영화의 고전이다. 146분이라는 긴 상영시간을 인지하기 힘들 정도로 흡입력 있는 화면과 스토리가 맞물려 있다. 인간의 이성을 넘어선 초월적 존재에 대한 불안이 가져오는 원초적 공포가 인물들을 마치 꼭두각시 인형처럼 조작하면서 극을 마지막까지 빈틈없이 몰아세우기 때문이다. 인물의 불안 심리를 세세하게 극대화시켜주는 미장센은 초자연적인 현상이란 불안감을 시각적으로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콜로라도 주 오버룩 호텔의 관리인 직을 얻게 된 잭 토랜스(잭 니콜슨)는 겨울 내내 텅 빈 호텔을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지켜야한다. 그에게는 호텔 관리 외에 가족들을 부양해야 하는 가장으로서의 의무가 있다. 영화 내내 관철되는 헤드 룸과 부감쇼트는 머리숱도 얼마 없는 잭을 더욱 짓누르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결국 멀쩡하던 그는 점점 환각을 보게 되고, 정체불명의 그래디라는 인물에게 자신의 진짜 사명에 대해 듣게 된다. 그의 사명이란 자신의 가족을 죽이는 것이다. 광기에 사로잡힌 잭은 결국 가족을 죽이려고 고군분투한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잘 짜여진 공포물에 머무는 것은 아니다. 큐브릭은 도리어 공포물의 옷을 입은 사회극을 보여주려 한다. 역설적으로 사회극이 더 공포적일 수 있음을 능글맞게 펼쳐 보이는 것이다. 가령, 잭 토랜스와 그래디라는 인물과의 관계, 가족과 오버룩 호텔의 관계를 생각해보자. 잭은 평범한 중년 백인 가장으로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지만, 그의 광기는 단지 이러한 의무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호텔은 인디언의 무덤 위에 세워졌고, 흑인 요리사는 잭의 도끼에 희생된다. 큐브릭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결국 자신마저 죽음에 이르게 하는 광기의 역사의 반복이 자아내는 공포인 것이다. 그래디는 잭에게 ‘당신은 늘 이곳에 있었다’고 말한다. 이는 곧 언제든지 액자에서 빠져나와 다시 가족을 그리고 자기 자신마저 죽일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큐브릭의 섬뜩한 경고는 이 영화가 왜 진정한 공포영화의 고전임을 강변하고 있다. (김준완: 에디터)

1.15(일) 14:00 상영 후 이명세 감독 시네토크
2.2 (목) 17:00
2.14(화) 19:00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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