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6 시네바캉스 서울

[지상중계 - 작가를 만나다] “딸의 진실을 찾는 과정이 곧 자기를 또 알아가는 과정” - 이경미 감독의 <비밀은 없다>

[지상중계 - 작가를 만나다]


“딸의 진실을 찾는 과정이 곧 자기를 또 알아가는 과정”

- 이경미 감독의 <비밀은 없다>




손희정(문화평론가) 오늘은 주로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진행해 보려 한다. <비밀은 없다>를 보고 이 영화는 시대가 요청하는 작품이라는 생각도 했다.

이경미(감독) 페미니즘과 관련한 맥락에서 호응을 얻을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나는, 물론 의도한 것도 있기는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움직이는 부분이 많다. 어른 여자가 어린 여자와 화해를 하고 다시 만난다는 내용은 영화를 처음 구상할 때부터 계속 변함이 없었다. 그런데 영화를 만들 때 이런 점을 전부 하나하나 분석하면서 만들지는 않는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내가 만든 모든 영화가 그런 지점을 갖고 있다. 나의 첫 번째 단편 영화는 여고 동창생 두 명이 장례식장에서 우연히 만나는 약간 에로틱한 분위기의 영화였다. 그리고 학교 입학 시험을 칠 때는 <처녀들의 저녁식사>(임상수) 이후의 이야기를 동성애로 풀기도 했다. 왜 이런 테마를 자꾸 선택하는 걸까 생각해 봤다. ‘연대’라고 해야 할까, 두 여성이 서로 만나서 어떤 이상적인 교감을 나누는 것에 대한 판타지가 내게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실현될 때 어떤 희망을 보는 것 같다.

손희정 그렇다면 감독님이 생각했을 때 스스로 자신의 ‘서명’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이경미 내가 이야기하는 인물들은 조금 결핍이 있다. 사실 다른 이야기의 주인공도 결핍이 있지만 나는 그 결핍을 좀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편이다. 그리고 다른 영화들은 결핍의 원인에 대해 설명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 사람이 결핍을 가진 이유를 초반에 미리 설명해 줘서 관객의 동정심을 사게 하고 싶지 않다. 이를테면 해당 인물이 어떤 결핍을 갖게 된 전사를 플래시백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이게 내가 좋아하는 내 인물의 소개 방식이다.

손희정 이 영화를 ‘모성 복수극’으로 바라봤는데 심혜경 프로그래머는 ‘자기탐구 복수극’, 즉 자기 탐구의 과정으로 해석했다. 그만큼 주인공 연홍은 굉장히 풍부한 해석의 결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이다.

이경미 ‘자기탐구 복수극’이라는 표현이 재밌다. 모성애를 가져오기는 했지만 모성보다는 자기 탐구에 좀 더 가깝다는 생각을 했었다. 사라진 딸의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이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과 겹치는 순간이 중간중간 있다. 같은 맥락에서 딸이 가장 사랑하는 공간을 부수는 일 역시 자기 파괴와 연결되기도 한다. 그래서 더 가슴이 아프기도 하다.

손희정 감독님의 여주인공들은 분명 매혹적이지만 ‘비호감’인 부분도 있다.

이경미 <비밀은 없다>의 주인공이 여자라서 사람들이 불편해하고 기분 나쁘게 생각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글로리아>(존 카사베츠, 1980)의 주인공은 정말 멋지다. 그걸 보면서 기분 나빠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다. 그런데 왜 <비밀은 없다>를 보면서는 기분이 나빠질까 생각해 봤다. 단지 여자가 주인공이기 때문은 아닌 것 같다. <글로리아>도 있고, <친절한 금자씨>도 있다. 이 영화들에서는 여자주인공이 굉장히 멋있게 나온다. 그리고 그 캐릭터들도 자신이 멋지다는 걸 알고 있고 이를 과시하기도 한다. 그때 관객이 보기에도 멋진 순간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비밀은 없다>나 <미쓰 홍당무>에서는 여자들이 멋있게 보이는 순간들이 별로 없다. 내 영화는 무너지고 붕괴되는 것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캐릭터에게 매혹당하기가 조금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있다.

나도 내 영화 속의 캐릭터들이 좀 멋있으면 좋겠다. 나도 <글로리아>를 좋아하고, 관객으로서 영화를 볼 때는 그런 멋진 인물들에 매력을 느낀다. 그런데 막상 내가 이야기를 만들 때 주로 감정 이입을 하는 부분은, 그리고 나를 움직이게 하는 감정은 아무래도 연민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하게 하는 어떤 것’이랄까. 이런 것들에 에너지를 느끼는 편이다.



손희정 상대적으로 배제된 여성 캐릭터들이 있다. 이 영화의 손소라 선생이나 <미쓰 홍당무>의 황우슬혜가 연기했던 얄미운 캐릭터들이 있다. 심지어 둘 다 직업이 교사다. 그러고 보니 <비밀은 없다>의 처음 시작이 ‘여교사’라는 제목의 시나리오인 걸로 알고 있다.

이경미 그래서 학교 선생님들이 진짜 기분 나빠한다고 들었다(웃음). <미쓰 홍당무> 때도 정말 속상해한 현직 교사분이 있었다. ‘여교사’라는 제목은, 나도 왜 ‘여교사’냐고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그냥 그 제목이 너무 하고 싶었다.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제인데, 우리나라의 고질적이고 이상한 시스템 문화가 있다. 이해할 수 없는데 반복되고, 고치기 힘들 거라고 여기는 그 수많은 비상식적인 일들. 나는 이런 것들의 대부분은 교육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교육이 너무너무 문제인데, 잘 안 고쳐지다 보니 그 답답함이 내게 계속 있다. 내 영화 속에 학교가 등장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인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결과적으로 교사가 내 이야기 속에서 희생이 되고 있다.

관객 1 기존의 다른 영화들에서 소녀의 이미지가 신비롭고 순수한 이미지로만 그려져서 불만이 많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착하고 순수한 존재가 아닌 선과 악을 동시에 가진 독립적이고 복잡다양한 캐릭터로 나왔다.

이경미 그런 ‘소녀’의 이미지가 원래 내게 있지 않았나 싶다. 엄마는 이래야 된다, 애들은 이래야 된다, 나는 이런 걸 깨고 싶다. 소녀가 다 그렇게 ‘소녀소녀’하지 않다고 반발하고 싶었다. 예를 들어 미옥이 연홍을 만날 때 드럼을 치는 장면이 있는데, 콘티에는 ‘미옥이 다리를 벌리고 앉아 드럼을 친다’라고 써놨었다. 어릴 때 여자들은 다리 오므리고 앉으라는 말을 많이 듣지 않나. 그래서 나는 좀 ‘쩍벌’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배우한테도 못할 짓이고 배우 어머니도 현장에 계속 계셔서(웃음), 그 부분은 뺐다.

관객 2 영화 안에 지역 정서를 굉장히 노골적으로 대비시킨 장면이 있다.

이경미 살아오면서 이 사회에서 부조리하고 부당하다고 느끼는 편견이나 현상을 이 영화 안에 다 넣었다. 여자가 그걸 넘어서서 뭔가에 도달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그리고 정치를 다루는 영화로서, 지역감정은 뺄 수 없는 한국적인 특징이었다. 이걸 두고 지역감정 조장으로 오해하는 분들이 조금 있던데, 그건 강력하게 항변하고 싶다. 연홍이가 미옥을 안으면서, 전라도가 경상도를 부둥켜안고 우는데, 이런 화합의 이야기가 어디 있나? (웃음).


일시ㅣ 8월 7일(일) <비밀은 없다> 상영 후

정리ㅣ권세미 관객에디터

사진ㅣ장혜진 포토그래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