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중계 - 작가를 만나다]


“내 영화의 어른들은 다들 어른 같지 않다”

- 조성희 감독의 <탐정 홍길동>



주성철(『씨네21』 편집장) <탐정 홍길동>을 처음 봤을 때 조성희 감독이 모든 전형성으로부터 탈주하려고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전작인 <남매의 집>, <짐승의 끝>, <늑대 소년> 등을 보며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지점들을 이 작품에서 악착같이 돌파하려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맥락에서 <탐정 홍길동>을 시작할 때의 마음가짐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조성희(감독) 이 작품을 시작할 때는 전형적이지 않은, 특이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야심은 없었다. 그냥 흥행이 잘 되는 영화를 만들려고 했는데 잘 안됐다(웃음). 신기한 캐릭터, 내가 본 재밌는 드라마나 만화책들을 흉내 내고 싶었다.

주성철 동료들과 조성희 감독 영화의 매력은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예전 작품들은 SF 같기도 하고, <전설의 고향> 같은 설화적인 느낌도 난다. 물론 이 영화에는 ‘홍길동’이라는 원전이 있지만 스토리를 어디서 출발했는지 물어보고 싶다.

조성희 내가 글을 잘 쓰거나 스토리에 능숙한 사람이 아니라서 나만의 특별한 방법이 있지는 않다. 나는 내가 재밌게 본 것들을 많이 따라하고 싶어한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책 같은 것들 말이다.

나는 ‘내’가 재밌게 느끼는 것들을 쓰려고 한다. <탐정 홍길동>도 마찬가지다. 목표를 향해 가려다가 눈앞에서 놓치는 과정들이 이어지면서 음모들이 밝혀지는, 그런 전개를 재밌어한다. 그런데 지금 시나리오를 두 편 쓰고 있는데 이게 <탐정 홍길동>과 비슷해지고 있다. 다음에는 내가 시나리오를 안 쓰려고 다짐 중이다(웃음).

주성철 이 영화를 본 분들은 누구나 김하나 양(말순 역)의 매력에 빠졌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김하나의 연기는 절반이 애드리브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전작에서도 그렇고 아역 배우와의 호흡이 정말 뛰어나다. 성인 남자 감독으로서는 굉장히 드문 경우라고 생각한다.

조성희 말순을 연기한 김하나 양은 촬영을 시작할 당시 여섯 살이었고 촬영을 할 때는 일곱 살이었다. 처음에는 의사소통이 거의 안 됐다. 지금도 잘 안 된다. 서로 말이 안 통하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많이 어려웠고 그 어려움이 끝까지 해결되지도 않았다(웃음).

나는 아역 연기의 특징이 여백이 많은 것이라 생각한다. 같은 표정을 지어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성인 연기자의 연기는 상대적으로 명징하기 때문에 여백이 없는데 아역의 연기는 그렇지 않다. 실제로 하나 양이 펼친 연기 중 자신이 어떤 감정을 갖고 한 것은 없다. 일단 후시 녹음으로 50번 정도 녹음을 한다. 그 다음 적절한 것을 골랐고, 어떤 대사는 거의 음절 단위로 잘라서 붙인 것도 있다(웃음). 대사의 내용을 이해 못 하고 연기한 장면도 있다.

그런데 우리가 김하나 양을 캐스팅한 이유는 훈련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연기를 할 때 말투나 행동 같은 것들이 정말 그 나이 또래 그 자체였다. 작업 과정에서는 힘들었지만 결과적으로 옳은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주성철 아이들과 홍길동이 나중에 화해할 것이란 건 당연히 예상 가능하다. 다만 그 과정이 작위적이고 느끼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탐정 홍길동>은 그렇지 않아서 좋았다. 일단 느끼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성인 남성이 어린 아이들과 최선을 다해 관계 개선을 하려고 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그리고 그런 부분이 한국 영화에서 조금 부족한 정서가 아닐까 한다.

조성희 나는 반대로, 진한 남자만의 세계를 그리는 걸 하나도 쓸 수 없다. 왜냐하면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어른들도 다 어른 같지가 않고 ‘남자’ 같지도 않다. 반성하고 있는 부분이며 앞으로는 정말 남자 같고 어른 같은 인물을 그리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

주성철 지금 한국 영화계의 젊은 감독 지망생이나 갓 데뷔한 감독들에게 느껴지는 공통점이 있다. 뭔가 남자들의 진한 세계를 그리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 함께 상영한 <4등>의 정지우 감독이나 조성희 감독은 그런 욕심이 안 느껴져서 좋다. 지금 충무로에서 매우 소중한 감각이 아닐까.

조성희 그런데 남자 관객들이 별로 안 좋아한다(웃음). 그런 ‘남자’ 캐릭터에도 도전해 보고 싶다. 지금 조금씩 한계를 느낀다. 내가 만든 캐릭터 중에 어른 캐릭터가 없는 것 같다. 전부 약간 피터팬 같고 철이 없고 유아적이다. 계속 이렇게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관객 1 <탐정 홍길동>은 특히 인물들의 눈 부분에 빛을 많이 사용했다.

조성희 옛날 영화에 그런 게 많다. 얼굴에서도 눈 부위만 유난히 밝은 그런 조명. 그런 게 근사해 보여서 따라해 봤다. 요즘 영화에는 잘 없는 것이다.

주성철 나는 이 영화의 표현주의적인 면이 좋았다. 한국 영화 얘기를 다시 하자면, 요즘은 이야기나 스타일 측면에서 리얼리즘에 대한 강박이 너무 과하다. 하지만 <탐정 홍길동>의 안개 속 총격전 같은 표현주의적 연출이 좋게 느껴졌다.

관객 2 영화를 보기 전 이 영화를 두고 ‘한국형 히어로물’이라 평하는 말을 많이 들었다.

조성희 영화와 전혀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한국형 히어로라는 말은 마케팅을 위해서 만들어낸 말이다. 그리고 나는 개인적으로 ‘한국형’이라는 말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히어로’라기 보다는 그냥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반-영웅 캐릭터 말이다.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고 도덕적이지도 않은 캐릭터를 그려보고 싶었다. 그게 출발 지점이었다.

주성철 <탐정 홍길동>의 최종 관객수가 150만 명 정도였다. 좀 애매한 숫자지만 나는 150만  명이 그렇게 적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비소 주인으로 나왔던 유승목 배우가 <늑대 소년>에도 출연했었다. 영화를 정말 많이 찍은 배우인데 조성희 감독과 작업할 때 제일 재밌다고 말했었다. 리얼리즘이 아닌, 감독의 어떤 터치가 들어간 작품을 해서 재미있고 배우로서도 뭔가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이야기했었다. 그런 맥락에서 조성희 감독을 응원하고 싶다. 남성적이어야 한다는 강박이 없고, 현실의 무언가를 다루어야 한다는 강박도 없다. 나는 그런 정서를 정말 좋아한다. 지금 늦게까지 남아 있는 관객들도 그런 감독님에 대한 지지를 보내주신 거라고 생각한다.


일시 ㅣ8월 14일(일) <탐정 홍길동> 상영 후

정리김창섭 관객에디터

사진 ㅣ장혜진 포토그래퍼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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