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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시네바캉스 서울

[지상중계 - 작가를 만나다]“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두 사람이 첫눈에 반했다고 생각한다” -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확장판)

[지상중계 - 작가를 만나다]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두 사람이 첫눈에 반했다고 생각한다”

-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확장판)




이경미(감독) <아가씨> 확장판은 나도 오늘 처음 봤다. 역시 개봉판과 많이 다르게 느껴졌다. 특히 1부에서 숙희의 나레이션이 없어져서 처음부터 숙희와 히데코의 관계에 더 집중하게 되더라. 그래서 두 사람의 첫 베드신도 개봉판의 귀여운 느낌보다 더 뜨겁게 느껴졌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볼 때마다 놀라는 건 여배우들이 자신의 최고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내가 전에 박찬욱 감독의 현장에서 스크립터를 해봐서 아는데, 다른 감독들에 비해 연기 디렉션을 그렇게 구체적으로 주는 편은 아니다. 김태리 배우가 느끼기에 박찬욱 감독의 연기 연출은 어땠나.

박찬욱(감독) 다른 감독이랑 해봤어야 비교를 할 텐데...(웃음)

김태리(배우) 이게 나의 최고의 모습이면 큰일인 것 같다(웃음). 나는 확장판을 집에서 봤는데, 내 얼굴을 내 집에서 보니 못 보겠더라. 그래도 꾸역꾸역 열심히 봤다.

이경미 박찬욱 감독과 작업할 때 힘들었던 점은 없었나.

김태리 눈물 콧물 흘린 순간들이 물론 있지만... 우리 둘의 비밀로 남겨두면 좋을 것 같다(웃음).

이경미 침대에서 우당탕탕 굴러떨어지는 장면이나 유화 물감을 가져오라고 했을 때 비탈길을 뛰어내려가는 장면 등, 김태리 배우의 대사뿐 아니라 손과 발을 쓰는 장면의 느낌도 좋았다. 박찬욱 감독은 오디션을 볼 때 김태리 배우에게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궁금하다.

박찬욱 자기 할 말을 다 한다는 느낌이었다. 그때는 몸놀림까지 볼 겨를은 없었다. 대사 위주로 봤는데, 캐릭터와 상황에 대한 자기의 해석이 있고 무엇보다 틀에 박혀있지 않았다. 대본 리딩이 끝난 다음 대화를 나눌 때도 자기 할 말을 했다. 그런 건 배우에게 굉장히 중요한 자질이다. 이를테면 ‘네...’라든지, ‘몰라요...’라고만 대답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자기 할 말을 한다는 건 해석을 할 줄 아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는 거고, 다시 말해 독창적인 연기를 할 줄 안다는 이야기다.

이경미 오디션을 보면 연기를 잘하는 사람은 굉장히 많다. 그런데 ‘후킹’당하는 순간이 찾아오는 건 다른 문제다. 그런 보석 같은 순간이 참 신기하다.


관객 1 ‘골무 신’에서 카메라가 바깥에서부터 안으로 들어오는 무빙을 보여준다.

박찬욱 거기가 좀 이상하게 느껴졌는지? 다른 관객들은 어떻게 보았는지 궁금하다. 그렇게 연출함으로써 의도한 효과는 시간이 오래 걸린 듯한 느낌을 자아내는 것이었다. 골무가 이를 가는 사각거리는 소리, 숨소리 등을 10분 동안 계속해서 보여줄 수는 없다. 하지만 두 사람이 햇빛을 받으면서, 서로의 향기를 맡으면서, 숨소리를 들으면서 오감이 최고조로 흥분된 상태를 오래 누리고 싶은 마음은 있을 거라고 봤다. 그래서 카메라가 엉뚱한 곳을 봤다가 쓱 빠지면서 두 사람이 느낀 심리적 시간을 보여주려 했다.

이 장면에서 방의 벽지나 가구, 소품, 광선이 만드는 그림자 같은 것들이 어우러져서 묘하게 베르메르의 그림을 떠올리게 했다. 그런 안락하고 평화로운, 시간이 멎은 것 같은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장면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면이다.

관객 2 1부에서 코우즈키가 잠시 저택을 떠날 때 히데코에게 ‘지하실을 기억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1부의 숙희 시점에서는 그 대사를 들을 수 없을 것 같다.

박찬욱 정말 못 당하겠다(웃음). 사실 원래 시나리오에서 그 대사는 1부에 있는 대사가 아니었다. 엄격히 따지면 그 위치에 들어가면 안 되는 대사다. 편집 과정에서 편집 감독이 낸 아이디어였다. 관객이 영화를 보다가 ‘저게 무슨 소리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보길 바랐다. 관객이 어리둥절하게 되는 순간을 맞았다가 나중에야 ‘아, 저게 지하실이구나’하며 궁금증이 풀리면 재미있을 거라 생각했다. 나는 영화에 있어 좀 고지식한 편이라서, 그 대사를 숙희가 들을 수 없는 거리인 점이 좀 걱정스럽기는 했다.

이경미 고지식한 편이라고 말하니까 생각이 났다. <아가씨> 영화가 시작하면 코우즈키의 저택에 대해 길게 설명을 한다. 이 집은 왜 이렇게 생겼고 건축 양식은 어떤지 자세하게 설명을 한다. 또는 3부 마지막에 백작이 피우는 담배에 대해서도 친절하고 논리적으로 설명을 해준다. 나는 이런 태도가 박찬욱 감독의 취향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안의 세계를 이렇게 자세하게 설명하는 건 때로 결벽증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다.

관객 3 히데코와 숙희의 첫 만남 장면에서 히데코도 숙희를 못 쳐다보고 숙희도 마찬가지다. 둘 다 첫 만남에서 ‘미묘한’ 감정을 느꼈는지 궁금하다. 숙희는 언제 히데코에게 처음 사랑을 느꼈을까.

김태리 내 생각에는, 첫 만남 자리에서 숙희가 히데코보다 더 큰 ‘강타’를 느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상위 계층의 사람을 처음 만났는데, 그 상대가 너무 아름다운 사람이고, 멀리서도 향기가 날 것 같은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나는 시간이 흐르며 점차적으로 서로를 향한 마음이 더 커져갔을 거라고 생각한다.



박찬욱 이건 감독의 유권해석이라 생각하지 말고 관객의 한 사람으로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주면 좋겠다. 나는, 아침에 두 사람이 처음 공식적으로 인사할 때 서로 첫눈에 반했다고 생각한다. 대본 리딩을 할 때는 골무 신이 두 사람에게 결정적인 장면이 아닌가 이야기했지만, 관객으로서 보기에는 그냥 첫눈에 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경미 마지막으로 관객들에게 인사를 부탁한다.

박찬욱 언제나 그렇듯 여러분을 ‘실물’로 만나는 게 감동적이다. 얼굴을 맞대고 함께 웃으며 대화를 한다는 건 정말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다. 이제 <아가씨>는 극장에서 내려가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잠깐이라도 여러분의 마음을 건드릴 수 있었다면 무한한 영광일 것이다. 이제 블루레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주시기를 바란다(웃음).


김태리 듣기로는 이 자리까지 오는 길이 험난했다고 들었다. 너무 고생 많으셨다(웃음). 가끔 개봉 당시 무대 인사를 돌며 관객들과 만났던 기억을 떠올린다. 오랜만에 이렇게 또 만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이렇게 <아가씨>란 영화를 좋아해주는 분들이 많은데 내가 부족한 점이 없지 않아서... 마음에 걸리고 죄송하다. 그래도 이렇게 사랑을 보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일시 8월 27일(토) <아가씨>(확장판) 상영 후

정리 김보년 프로그램팀

사진 장혜진 포토그래퍼, 주민규 자원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