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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상영작 소개

서부 신화를 흥미롭게 변주한 존 포드의 <아파치 요새>



존 포드의 <아파치 요새>(1948)는 서부영화에서 특별한 위치를 점하는 영화이다. 서부영화는 기본적으로 충돌과 대립의 영화로 동부와 서부, 문명과 야만, 질서와 무질서, 그리고 선과 악이 치열하게 대립하는 충돌의 장이다. 이러한 구도를 확립한 존 포드의 <역마차>를 보자. 문제를 가진 공동체가 있고 공동체 바깥에서 서부의 사나이가 홀연히 등장한다. 둘은 충돌을 일으키지만, 결국 주인공의 탁월한 무력과 정의감으로 문제는 해결되고 다시 서부로 떠난다. <역마차> 이후의 모든 서부영화는 이 서사를 다양하게 변주한 것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아파치 요새>는 이 공식을 흥미롭게 변주한 영화 중 한 편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서부영화 속의 명백한 이항적 요소의 대립을 불확실한 것으로 바꿔 놓는다. 단순히 기존의 판단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아예 옳고 그름에 대한 구분 자체를 모호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영화는 아파치 요새로 부임하는 헨리 폰다에서 시작한다. 그는 한 눈에 보기에도 깐깐해 보이는 ‘동부의 사나이’인데 역시나 부임하자마자 아파치 요새의 질서를 바로 잡으려하며 기존 공동체와 충돌을 일으킨다. 이는 명백한 동부와 서부의 충돌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대립이 등장하는데, 바로 공동체 외부에서 ‘야만’을 상징하는 아파치 인디언들이다. 즉 공동체내부에서는 동부와 서부의 질서가 충돌하고, 밖에서는 공동체의 평화를 위협하는 인디언이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존 포드는 이 대립 구조를 선과 악의 구도로 풀지 않는다. 헨리 폰다와 존 웨인의 대립만 보아도 그렇다. 언뜻 보면 헨리 폰다는 지나치게 질서만을 강조하는 꽉 막힌 인물로 보이며 심지어 전투에서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는데 영화는 이를 부정적으로만 묘사하지 않는다. 마지막 시퀀스에서는 헨리 폰다를 긍정하는 제스처를 취하기도 한다. 특히 <아파치 요새>가 보여주는 서부 공동체와 인디언과의 관계는 지금 보아도 새로운 느낌을 준다. 존 웨인은 인디언들을 잘 이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과 평화 협정을 맺으려고까지 한다. 인디언들은 애초에 공동체를 위협하는 적이 아니며 오히려 영화에서 가장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것은 인디언들을 불행하게 하는 양심 없는 미국인들이다.

<아파치 요새>가 특별한 또 다른 지점은 이 영화가 갖는 서부영화로서의 자기 반영성이다. 이 영화는 아파치 인디언이 미 기병대를 전멸시켰던 서부 개척 시기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실화를 영화화했다는 것이 아니라 실제 역사가 신화로 변하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것에 있다. 헨리 폰다는 존 웨인으로 대표되는 기존 공동체와 음주에서 복장, 심지어 연애 문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갈등을 일으킨다. 이 과정에서 헨리 폰다는 부정적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역사적 사실대로 아파치에게 전멸 당한다.

하지만 영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시퀀스가 바뀌면 존 웨인이 기자들에게 ‘영웅’ 헨리 폰다에 대해 얘기하며 ‘4열 종대’로 아파치 인디언과 싸우러 나간다. 이는 지금까지의 갈등을 급격하게 봉합하는 것으로서 오히려 이질감을 줄 정도이지만 서부극의 성립 과정을 자기 반영적으로 드러낸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서부극은 결국 헨리 폰다의 죽음과 같은 역사적 사실들로 만들어진 것이나 후세의 사람들(존 웨인)이 이를 용감한 영웅들의 이야기로 신화화했던 것. 그런 맥락에서 <아파치 요새>는 메타 서부극으로도 불린다.

이처럼 <아파치 요새>는 많은 서부영화 중에서도 특별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영화에서는 어떤 지배적인 가치관을 찾기가 쉽지 않다. 존 포드는 어떤 면에서는 헨리 폰다, 어떤 면에서는 존 웨인, 또 어떤 면에서는 아파치 인디언들의 관점을 취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이를 처음부터 새롭게 다시 보기를 요청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에서 하나의 주제를 찾으려 하면 오히려 길을 잃을 수도 있다. 그 길을 찾는 방법은 물론 관객 각자의 몫이다. (김보년)

 ▶▶상영일정
1월 17일 (일) 19:00
1월 27일 (수) 16:00
2월 3일 (수) 1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