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트시네마, 시네마테크의 존재

누구나 영화를 만나는 방식과 방법은 다르지만 영화는 기본적으로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상영되기 위해 태어난 예술이다. 이것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현재도 그리고 미래에도 없을 것이다. 속단하는 것은 이르지만 영화로 이루어진 곳이 극장이라는 것은 누구도 쉽게 부정하거나 반박할 수 없는 당연한 것이다. 극장은 영화를 상영하기 위해 백년이 훌쩍 넘는 시간을 지켜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일주일에 서 너 편씩 개봉하는 헐리웃 무비들과 교차상영을 무릅쓰고 상영할 수밖에 없는 작은 영화들, 그리고 멀티플렉스 극장들 간의 미묘한 경쟁의식 등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은 역사와 충돌을 거쳐 발전해왔으며 현재에 이르렀다.

시네마테크(서울아트시네마)는 개관한지 올해로 8년을 맞고 있고, 내가 처음 시네마테크를 방문했던 것도 2002년, 문화학교 서울에서 민간단체로 설립된 '서울아트시네마'의 시작부터였다. 극장에서 개봉되는 무수한 헐리웃영화들에 빠져 지내며 간간히 텔레비전을 통해 보여 지던 영화를 보곤 했던 내가 시네마테크라는 공간에 관심을 가지고 급격하게 매력을 가지게 되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시네마테크가 앞에서 말했던 멀티플렉스형 영화의 홍수에서 조금 벗어난 지점에서 필름 상영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단순 그곳이 고전영화를 상영하기 때문에 소중하게 느껴졌다는 것은 아니다. 시네마테크는 현재와 과거, 그리고 미래를 이어갈 수 있는 중간 지점에 영화를 놓아 끊임없이 담론을 제기하고 함께 보기를 권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빠르게 급변하는 영화의 디지털화 속에서 시네마테크는 극장의 본래 목적을 잃지 않는 필름상영(원본)과 더불어 영화의 미학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 관객과 소통하기를 갈망하는 공간으로 보였다.

이것은 다른 어떤 극장에서도 찾아볼 수 없던 충격이었고, 과거(고전)와 현재(동시대영화)가 이어지는 중간지점에 관객인 '나'가 위치한다는 것이 중요했다. 시네마테크가 영화의 박물관이 될 수는 없지만 그곳은 분명 영화의 존재가치, 다시 말해 영화에 대한 담론을 탐구하고 영화를 분석, 재평가하는 영화애호가들, 시네필들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네마테크에서는 관객과 영화간의 건전한 상호작용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시네마테크의 존립은 마치 영화의 탄생처럼 필수불가결한 것임이 분명했다. 더군다나 재개발과 거대자본을 통해서 레퍼토리시네마들이 잠식되어가는 현재의 한국, 현재의 서울 내에 시네마테크가 위태하지만 나름대로 굳건하게 발전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 중요하고 행복한 일이다.

시네마테크 사태와 관객운동


2009년 제 4회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열릴 당시만 해도 나는 늘 그랬듯 시네마테크를 즐겨 찾는 친구들과 시네마테크의 관객커뮤니티에서 상영작 업데이트를 기다리고 상영시간표를 바라보며 설레이고 있었다.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는 시네바캉스와 더불어 시네마테크의 연중 최대 행사로 다른 관객들과 마찬가지로 어떤 영화를 볼까에 대한 생각만이 전부였다. 그런데 2009년 2월 시네마테크를 위탁 지원하던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돌연 위탁사업을 공모제로 전환한다는 공문을 극장으로 보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극장의 사무나 실무적인 일에는 문외한이었지만, 시네마테크가 갑자기 위기를 맞이했다는 것을 극장의 공기로 체감할 수 있었다. 물론 시네마테크는 2002년 아트선재에서 대관형식으로 시작했을 때부터 극장의 공간과 존립에 관한 문제, 지원에 관한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어왔다. 타 건물에 세를 들어 사는 형식으로 존재했던 시네마테크가 위협을 받는 다는 것은 그리 새로운 일이 아니었지만 이번의 경우는 좀 달랐다. 2008년 서울시가 시네마테크 전용관 건립을 추진함과 동시에 복합상영관 설립을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시네마테크를 포함한 복합상영관의 추진은 시작부터 좌초되었지만, 문제없이 운영되어왔던 시네마테크의 기반을 흔드는 것이 시네마테크를 지원하고 있던 영진위, 그것도 정부기관이었다는 것이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공모제라는 이름을 걸고 민간으로 운영되어왔던 시네마테크의 운영을 소유하겠다는 어이없는 도발이었다.

2009년 친구들 영화제 행사가 한창 이뤄지고 있었던 당시 시네마테크는 긴급포럼과 감독들의 시네토크를 통해 현재의 시네마테크 사태가 매우 심각한 것이라는 사실을 관객에게 알리기 시작했다. 극장의 상영도 취소하고 포럼을 열어 토론하는 형식을 취한 것은 이례적이었고, 많은 관객들은 이에 동요했다. 때문에 당시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의 데일리팀으로 일했던 친구들(관객들)과 함께 2009년 2월 21일 새벽, 급하게 서명지와 관객의 이름으로 된 성명서를 만들어서 극장에 붙이고 오프라인 관객 서명 부스를 만들었다. 그리 탄탄하게 이뤄진 일은 아니었지만 친구들 영화제가 끝나면 각자의 삶으로 돌아갈 모든 관객들, 특히 영화제 기간만이라도 시네마테크에 들르는 젊은 관객들을 잡고 싶었다. 생각 외로 서명은 순조롭게 이루어졌으며 많은 관객들이 직접 서명지를 복사해 동네나 학교 등에서 서명을 받아오기도 했다. 동시에 몇 관객들은 시네마테크 관객 블로그를 만들어 오프라인 서명에 참여하지 못하는 관객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서명공간을 만들었다. 2009년 2월 21일부터 2009년 4월까지 오프라인 서명부스를 통해 서명한 관객들은 907명이었고, 온라인 서명운동은 2009년 한 해 동안 지속되었다. 애초에 데면데면 얼굴만 알고 조용히 영화만 보고 갔던 관객들이 처음으로 시네마테크 사태를 헤쳐 나가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쓰고 인적사항을 공개한 것이다.

오프라인 서명운동이 마감되고 난 후 영진위는 시네마테크 공모제 전환을 1년 연기한다는 미적지근한 입장을 밝혔고 당시 영진위 위원장을 맡고 있던 강한섭 위원장이 사퇴했다. 그 후임으로 조희문 위원장이 임명되고 난 후 1년 유보 선고를 받았던 시네마테크는 다시 1년 전, 그러니까 2009년 초의 상황으로 돌아갔다. 2010년 제 5회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개막하는 시점이 바로 영진위의 1년 유보, 그러니까 위탁지원을 공모제로 전환한다는 선언의 마지노선이었고, 극장과 관객들은 이에 대비하고 있었다. 2009년 12월을 기점으로 영진위의 지원 사업, 미디액트나 인디스페이스 등의 사업들이 강제적으로 공모로 전환되었고, 우리들은 그 다음 타겟이 시네마테크가 되리라는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 서울아트시네마의 관객커뮤니티에서는 많은 의견들이 오갔고, 한 관객분이 실질적으로 시네마테크를 도울 수 있는 방법, '시네마테크를 지키기 위한 자본을 마련하자'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를 시행하기위해서는 먼저 행동하고 홍보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했고 2010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웹 데일리와 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를 담당하고 있던 친구들(관객들)이 즉시 모금부스를 만들어 관객모금운동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1차적인 관객운동이 2009년의 관객서명이었다면 2차적인 관객운동은 2010년의 관객모금운동이었다.

관객모금운동은 영진위의 위탁지원이 중단될 시에 관객의 힘으로 극장운영비를 모아보고자 시작했던 것으로, 시네마테크 사태가 안정되지 않을시 이후 일시적이나마 극장을 지키는데 도움이 되고자 했던 관객들의 자발적인 운동이었다. 관객모금부스가 열리고 온라인 송금 또한 극장의 도움을 받아 관객들이 주체가 되어 이뤄지자 수많은 관객들이 이에 동참했다. 영화를 보러 극장에 왔지만 영화 대신 관객모금부스를 지키는 관객들도 있었고, 일주일 내내 극장에 상주하며 계속해서 시네마테크의 소식에 귀를 기울이는 관객들도 있었다. 영화가 상영되기 이전에 조금은 강압적이지만 효과적이라 생각했던 관객발언도 모금운동과 같이 이루어졌으며, 관객을 포함한 감독들과 배우들도 이 모금운동에 동참했다. 모금운동이 이뤄지는 동시에 관객들 몇 몇은 지난 1년 간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받았던 1,296명의 서명명단을 직접 조희문 위원장에게 전달했다. 서명지를 전달한 이후에도, 그러니까 관객들이 조희문 위원장과의 대면과 대화를 시도한 이후에 영진위는 결국 공모를 강행했다. 하지만 관객들은 이에 크게 동요하지 않고 모금운동을 계속했으며 그렇게 2010년 2월 한 달 동안 모았던 금액은 66459,000원(월 CMS: 2645,000원, 일반후원: 34719,000원)이었다. 2010년 친구들 영화제가 막을 내린 후 3월 12일에 있었던 '시네마테크 리로디드' 모임에서 관객들은 이 금액을 극장에 전달했다.

1차적인 서명운동과 2차적인 모금운동 모두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시민, 대중운동들에 비할만한 숫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관객들의 공모제 철회를 타겟으로 했던 이 운동들은 결국 정부의 강압에 대응했던 씨네필들의 운동이라 생각한다. 소극적인 관객들과 개인적인 관객들이 대부분이었고 나 또한 그래왔던 공간이었던 시네마테크에서, 자신의 이름과 지갑을 열어 극장을 수호하기 위해 십시일반을 보태는 관객들의 운동은 극장 바깥의 어느 것에도 비할 수 없을 만큼 값진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이는 결국 영화애호가들의 대중운동이었고 극장과 관객들 사이에서 영화를 보는 행위 외에 다양한 상호작용과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운동이었다.

시네마테크를 지키기 위한 젊은 시네필들의 필요성

관객서명운동과 관객모금운동이 마감된 지 2개월이 되어간다. 서명운동은 지난 2월 영진위를 방문해서 서명지를 전달하는 것으로 끝난 상태고 관객모금운동의 오프라인 부스를 지키는 관객들도 지금은 없다. 2010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막을 내림과 동시에 2월 한 달간 진행되었고 불을 붙였던 모금운동도 막을 내렸다. 영진위는 그동안 두 차례의 시네마테크에 대한 공모를 강행했지만 성과 없이 끝났고, 현재 시네마테크는 영진위의 지원을 받지 않은지 약 40일 가량이 지났다. 영진위의 지원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제외하면 관객들이 바라보는 극장은 외면상 전과 다를 것 없이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사실 극장의, 그러니까 시네마테크의 위기는 안정을 찾을 데까지 계속될 것이라 생각한다. 필름 수급과 상영관 문제 등 시네마테크 사업 또한 자본의 영향을 받고 있고, 이것이 해결되지 않는 한 시네마테크의 미래를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어쩌면 이제부터가 진짜 위기가 될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가 시네마테크로 영화를 보러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관객들은 시네마테크가 가지고 있는 최대장점인 영화의 필름 상영, 다시 말해 원본 상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어차피 극장이라는 공간 안에서 관객들은 각자의 영화를 보는 것이고 이것을 동상이몽이라고 할 수도 있으나, 영화가 개인에게 다가오는 것은 저마다 다른 이유와 상황이 작용하기 때문에 결국 관객과 관객보다 영화와 관객의 관계가 중요해진다. 시네마테크의 관객은 영화의 미덕, 영화의 미학이 필름을 통해 이뤄진다고 믿고 있고 시네마테크에서 상영되는 고전영화들과 소개되지 않는 동시대 영화들을 통해 영화 역사의 재현과 비평적 위치 등을 확고하게 다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보는 행위는 영화를 하나의 예술로서 인식하고(이것은 몇몇 국가에서 아직도 등한시되어지는 공공연한 사실이다) 영화에 경외를 바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보는 만큼 시네마테크를 알지 못하는, 혹은 영화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으나 극장을 자주 찾지 않는 관객들과의 거리가 생길 수밖에 없다.


앞서 말했던 경외로서의 영화, 굳이 영화를 신성시할 필요는 없지만 영화가 최소한 '예술'의 장르에 부합하는 장르라는 것을 이해하고 실행하는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과의 대립이 생긴다. 영화들은 과거에 스크린으로 만날 수밖에 없는 존재였지만 오늘날 영화는 소유의 대상이 되었다. 1910~20년대 얼리시네마에서부터 극장개봉조차 이뤄지지 않은 제 3세계 영화, 그리고 영화사의 위대한 거장들의 숨겨진 영화들까지 우리는 아주 손쉽게 영화를 취사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선택되어진 영화들은 스크린에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에서 복제되고 저장되어 하드와 DVD등으로 개인의 저장고에 존재하게 된다. 이렇게 쉽게 영화를 소비하고 소유할 수 있게 된 이후, 관객들은 극장을 찾지 않게 되었다. 집이 곧 극장이 되고 학교에서 강의를 들으며 심심할 때는 휴대기기로 영화를 볼 수도 있어졌기 때문이다. 환경에 의한 변화, 소위 말하는 디지털 시대로부터 도착한 외부영향이 짙어지면서 극장을 찾는 씨네필들은 점차적으로 휴대기기와 컴퓨터를 이용해 영화를 습득하고 공부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방법으로 영화를 선택하는 현상은 주로 젊은 관객들에게 쉽게 일어난다. 과거의 씨네필들은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으로 향해야 했고 극장이 곧 그들의 공동체였지만, 현재의 씨네필들은 영화를 보기 위해 굳이 극장에 갈 이유를 찾지 않는다.

이것을 과거와 현재의 괴리로부터 오는, 소위 말해 세대차이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면 오산이다. 영화를 스크린으로 보지 않고 아주 능동적으로 스킵과 줄거리 요약 등을 반복하며 컴퓨터 속에서 자신의 저장고를 만들어내는 관객들과 극장을 고수하는 관객들 사이의 대립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극장을 찾지 않아도 영화를 취사선택할 수 있는 젊은 관객들에게, '필름'이란 낡은 현상방식이며 구시대의 유물 정도만으로 생각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물어보면 해당 영화를 포함한 감독들과 배우들, 역사까지 줄줄 읊어내면서 정작 스크린으로 영화를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는 관객도 있다. 물론 이에 대해서 영화는 혼자 보는 예술인가 함께 즐겨야하는 예술인가에 대한 담론이 활발하게 제기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관객들에게 영화는 소비의 대상일 뿐이고, 영화가 상영되는 방식이 디지털인지 필름인지에 관해서는 아무런 쟁점을 찾지 못하게 된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시네마테크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불특정 대중을 상대로 하는 멀티플렉스의 극장은 말 그대로 자본을 가진 대중을 포섭해야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커뮤니티 자체가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레퍼토리 극장, 그리고 시네마테크는 다르다. 무크지 <필름에 관한 짧은 사랑>은 2010년 현재 이렇다 할 지원처를 찾지 못해 격월로 발행되고 있지만, <필름에 관한 짧은 사랑>이 창간될 당시만 해도 이런 문제의식을 느낀 학생들이 주가 되었다. 작년부터 갈 곳을 잃고 방황하는 <필름에 관한 짧은 사랑>은 엄청난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지만 결코 서울아트시네마에 잡지를 배포하는 것만은 배제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잡지에 뛰어들어 글을 쓰고 잡지 발행을 하게 된 지 이제 3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나는 <필름에 관한 짧은 사랑>이 사라져가는 젊은 시네필들을 극장으로 다시 불러오기 위해 위기의식을 만들어주는 잡지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항상 생각해왔다. 그것이 굳이 비평적인 입지를 가지고 있는 행동이 아니어도 좋다. 필름이 영화의 원형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 극장은 평생을 걸고서라도 수호해야만 하는 유일한 공간이 된다. 극장이야말로, 시네마테크야 말로 진짜 영화가 있는 공간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혼자 모니터로서는 결코 제기하거나 소통하지 못했던 영화의 담론이 극장이라는 공간을 통해서는 충분히 가능하다. 시네마테크의 프로그램인 시네토크와 시네클럽이 수행하는 기능도 이와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에 이르러서 영화는 더 이상 낭만을 노래하는 매체가 되지 못한다. 때문에 혹자들은 시네마테크를 고전만이 자리 잡아 과거시대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낡은 극장이라 말하기도 한다. 과거 영화읽기의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대학교의 영화동아리들은 점차적으로 사라져가고 있다. 정말 시네마테크는 구시대의 유물인가? 영화를 보기 위해 시네마테크만을 고집해야 하는 이유는 없지만 시네마테크의 존재 자체에 반기를 들 이유 또한 찾을 수 없다. 어떤 대학생으로부터 디지털로 촬영된 영화는 굳이 극장 상영이 아닌 모니터 등의 디지털 기기로 봐야한다는 주장을 들었을 때 나는 우리에게,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젊은 영화애호가들에게 영화란 어떤 의미로 존재하는 것일까 의문이 들었다.

지난 8년 간 시네마테크는 서울 종로의 일대에서 둥지를 짓고 버텨왔다. 사실상 서울에서 시네마테크의 역사는 10년도 채 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외부의 여러 영향으로 인해서 시네마테크는 10주년을 맞기도 전에 10년 전의 동아리 상영, 공동체 상영으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극단적 상황을 생각나게 할 만큼 상황이 좋지 않아졌다. 시네마테크를 흔드는 것은 외부적인 영향 외에 내부적, 그러니까 시네마테크의 관객들로부터의 영향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관객들로부터의 내부적 영향을 '젊은 시네필들의 부재'라고 말하고 싶다. 극장과 필름에 대한, 영화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을 지키고 이어나가고자 하는 젊은 관객들이 시네마테크에는 절실히 필요하다.

디지털 세대에 부합해 어디서든 영화를 볼 수 있게 되고 또한 그렇게 보아진 영화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별로 상관이 없다. 하지만 적어도 영화가 극장이라는 공간에 이르러서야 완전한 것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영화가 산발적으로 소비되는 시대에 역으로 영화에 대한 가장 생산적인 담론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바로 이것이 <필름에 관한 짧은 사랑>이라는 잡지가 서울아트시네마를 떠나지 못하는 유일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극장은 항상 관객과 만날 준비를 하고 있으며, 스크린이 있는 극장은 커뮤니티의 가능성이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시네마테크가 외부 관객으로부터 벽을 허물고 전반적인 입지를 다져가기 위해서는 젊은 관객들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컴퓨터로 저장되어있는 개인의 아카이브를 뛰쳐나와 '스킵 되지 않는' 두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는 젊은 관객들이 필요하다. 손에 손 잡고 <아바타>를 몇 번이나 극장관람 하는 시대에 시네마테크는 소외당하고 있다. 키튼의 영화를 좋아한다면 그 영화의 원본필름과 영화가 상영되었을 당시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느껴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닐까. 강요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영화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시네마테크는 지난 8년 동안 이러한 미덕을 실천하기 위해 고군분투했기 때문이다. (강민영)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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