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 마르케의 <아름다운 5월> 상영 후 정지연, 김성욱 평론가 대담 지상중계

 

지난 12월 9일, 크리스 마르케의 작은 회고전을 마무리하며 정지연 영화평론가와 김성욱 프로그래머의 좌담이 열렸다. 이 날의 좌담은 <아름다운 5월>의 방법론과 접근법, 크리스 마르케의 정치성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그 현장을 여기에 옮긴다.

 

 

정지연(영화평론가): 크리스 마르케 영화를 처음 본 건 세네프에서 주최한 크리스 마르케 특별전이었다. 그때 <붉은 대기>를 보고 감동 받았다. 어제 <아름다운 5월>을 보고나서 <붉은 대기>를 <아름다운 5월>로 착각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고 조금 놀랐지만 그래도 좋았다. 어젯밤엔 <붉은 대기>를 다시 봤는데 지금 시점에선 <아름다운 5월>이 더 좋은 것처럼 느껴진다. <아름다운 5월>은 이브 몽땅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이브 몽땅의 고혹적인 목소리만으로 모든 게 용서될 정도로 아름답다. 그리고 정치적인 영화라는 관점에서도 <아름다운 5월>의 접근법이 더 재밌는 부분들이 있는 것 같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영화평론가): 이 영화가 만들어진 시대적 배경이 흥미롭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선 존 카사베츠가 <얼굴들>(1968)을 만들던 때였다. 크리스 마르케라는 감독을 생각했을 때, 이 사람은 정말 소비에트적인 감독인 것 같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와 알렉산더 메드베드킨에 대한 다큐멘터리도 찍었다. 실제로 1967년에 메드베드킨을 처음으로 만나서 그의 <행복>(1934)이라는 영화를 복원, 재상영을 시도하기도 했다. <아름다운 5월>에서도 ‘행복’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온다. 그리고 2부에서는 두려움과 더불어 행복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크리스 마르케의 영향을 많이 받기도 했던 고다르는 <필름 소셜리즘>(2010)에서 이런 말을 한다. “러시아와 행복이 결합되기 전에는 죽고 싶지 않다.” 크리스 마르케가 소비에트적이라고 하는 건 소비에트 영화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2,30년대 소비에트 영화에 대단한 존경과 영화인으로서의 자부심, 긍지를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근본적으로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소비에트 영화감독들도 그랬지만, 마르케는 영화라는 기계가 만들어졌을 때 자신을 프로메테우스라고 생각했었다. 영화라는 기계를 통해서 노동자 계급에게 새로운 무기를 전달해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크리스 마르케는 평생을 통해서 영화를 통해 민중, 노동자, 거리의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전달하려고 했던 사람이다. 그리고 당시에 메드베드킨이 시도했던 <시네트레인>이라는 건 러시아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사람들과 사람들의 연결을 만들어내려 시도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크리스 마르케가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영화를 만들었다는 건 하층 계급들에게 하나의 무기로서 영화를 전달했다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의 만남을 통해서 관계를 형성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영화의 고전기 시기에서 5, 60년대 이후 극영화가 바뀌어가는 관점 중 하나는 사람과의 만남을 영화를 통해서 구현해내는 관점이라고 생각한다. 고전기 영화가 극화성을 가지고 있다면, 크리스 마르케의 영화나 다큐멘터리, 혹은 카사베츠의 영화엔 사람들과의 만남을 영상화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들이 있었다. 그러한 관점에서 마르케가 지극히 소비에트적인 것 같다. 그리고 그 특징이 가장 잘 구현된 작품이 오늘 보신 <아름다운 5월>이라는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지연: 김성욱 프로그래머가 소비에트적이라고 하는 건 두 가지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일단 크리스 마르케는 강인한 좌파적 신념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고, 자기 작품 안에서 실제로 혁명과 역사에 대한 질문, 또한 민중들의 개별적인 삶이 어떻게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요인들과 만나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했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 1917년 러시아 혁명과 그 이후의 혁명 영화들은 너무나 이상적인 것들처럼 보였을 것이다. 마르케는 자기 작품 안에서 그런 이상들에 대해 직접적으로 탐구하려고 했던 감독이다. 또 한편으론 몽타주 실험이 많았던 것 같다. 1920년대 몽타주라는 개념은 샷과 샷이 만나면서 어떻게 의미들을 만들어 내는지에 집중한다. <아름다운 5월>에서도 오프닝과 엔딩에 쓰인 몽타주가 재미있다. 오프닝에서 이브 몽땅의 내레이션은 아름다운 5월의 파리, 누구나 연상하는 파리라는 도시에 대한 이야기다. 거기서 배경에 깔린 사운드는 사이렌 소리, 도시의 소음 등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있다. 또 시작은 파리를 상징하는 에펠탑이라는 근대적 조형물인데 마지막에 와 닿는 건 감옥이다.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감옥을 보여주고, 감옥 이후에는 명대사가 나온다. “감옥이 있는 곳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 슬픔이 있는 곳에서는 행복할 수 없다. 가난한 자가 있는 곳에서 부자가 나올 수 없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이미지와 실질적인 삶을 충돌시키면서 배치하는 전략들이 눈에 띈다.

크리스 마르케는 이론가고 지식인이었다. <아름다운 5월>은 자본주의 사회로서의 프랑스, 제국주의로서의 프랑스, 근대화 과정 속에서 피폐해지는 프랑스라는 이론적 프레임 안에서 진행이 된다. 그런데 그런 프레임은 지식인들의 관념 속에서 파악되는 것이다. 거기서 그곳의 개인들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가령 프랑스 시민들에게 5월에 가장 인상적인 건 이상기온이고, 노동자들의 파업도 소음 때문인 것이다.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삶이 근대성, 자본주의, 제국주의 등 지식인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역사적 국면과 어떻게 탈구되고 구성되는지를 재미있게 질문하고 답한다. 마르케는 ‘정치적 수준과 일상적 수준이 어떻게 만날 수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그 스스로 내부적인 것으로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김성욱: 저 역시도 오프닝이나 엔딩 장면들이 생각이 난다. 맨 처음 등장하는 장면은 첨탑 같은 데 사람이 올라가는 장면이다. 100% 확신할 순 없지만 거긴 파리의 도서관인 것 같다. 레네가 만든 <세상의 모든 기억>(1956)이라는 영화가 파리국립도서관에 관한 다큐멘터리인데 그 건물과 비슷하게 생긴 것 같다. 2막의 첫 시작은 무덤에서 시작한다. 2막 끝 무렵, 감옥 나오기 바로 직전엔 개선문이 있는 에뚜아르 광장이 나온다. 로메르의 <에뚜아르 광장>(1965)이란 영화에서도 묘사되듯이 그곳은 굉장히 남성적인 공간이다. 훈장 달고 있는 사람들이 특별한 기념일에 과거의 영예로운 남성성을 과시하기 위해 모이는 곳이다. 관광객들이 많이 가지, 파리 시민들은 잘 가지 않는다. 그 다음에 감옥이라는 공간이 나온다. 저는 방금 얘기하신 내레이션 직전에 나온 대사가 인상적이었다. 감옥에서 벌어질 수 있는 두 가지 기적이 있는데 하나는 안에서부터 문이 열리는 것, 또 하나는 거리를 자유스럽게 계속 질주해 가는 것. 그러면서 바깥을 향하는 것 같이 자동차를 타고 나가는 장면이 나온다. 도서관, 무덤, 감옥 등이 있고 그와 대조적으로 개선문, 에펠탑을 찍은 장면들의 배치는 레네와 비슷한 것 같다.

또 하나 이 영화가 근본적으로 다루고 있는 건 1962년이라는 시점의 파리라고 하는 도시 안 풍경과 사람들이다. 극장 스크린으로 이 영화를 보니까 재빨리 넘어가는 컷들이 보인다. 1부가 처음 시작할 때 마치 르네 클레르의 <파리는 잠들다>(1924) 같은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공간이 묘사되다가 순간적으로 한 컷에 여자 얼굴이 들어온다. 그 다음에 파리 사람들 얼굴에 대해서 얘기하는데 그건 ‘고독’이라고 얘기한다. 그리고 이 영화 2부의 거의 마지막은 거의 다 얼굴들을 비추고 있다. 그들은 왜 그렇게 불안한 표정과 근심어린 표정을 짓고 있을까? 거의 동시대에 고다르가 만든 <국외자들>(1964)에서 안나 카리나가 지하철에서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서 “왜 파리 지하철 안 사람들의 얼굴은 피곤함으로 가득한 걸까” 이런 대사를 한다. 여기서도 사람들의 얼굴에 담겨진 불안함에 대해 얘기를 한다. 방금 몽타주 얘기 때문에 생각이 났는데, 그와 더불어서 나오는 대사가 “죽음에 대한, 육체의 소진에 대한 두려움일까. 그런 한계적인 두려움을 넘어서는 것으로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 예술이었다”라는 대사였다. 그 대사는 50년대 바쟁적인 논의와 비슷한 것 같다. 바쟁이 영화 예술에 대한 근본적 충동을 ‘미라 콤플렉스’라고 얘기할 때 그건 죽음에 대한 저항이었고, 최종적 단계에 도달한 게 사진이나 영화라는 것이다. 이 영화 말미에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표정들을 다루면서 뜬금없이 예술에 대해 얘기를 하고, 그러고 나서 방금 얘기하신 그런 대사가 나올 때, 이 영화는 어떤 점에서 보면 사람들의 얼굴을 담아내려고 했던 시도라고 생각이 든다. 1962년이라는 시대 안에서 파리의 풍경을 담아내면서 그 안에서 사람들의 얼굴을 담아내는 것이다. 그 얼굴이 크리스 마르케 영화를 특징짓는 핵심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1958년에 크리스 마르케가 북한을 방문했었다. 거기서 첫 번째 챕터와 마지막 챕터를 장식하는 건 얼굴에 대한 거였다. 마르케가 북한에 가서 제일 크게 느낀 게, 서구 사람들은 미소가 사라지고 나면 그 뒤에 싸늘함, 냉정함이 남는데, 북녘 사람들의 얼굴은 그렇지 않아서 흥미로웠다고 했다. 그리고 북한 여성들의 얼굴사진이 굉장히 많이 등장한다. 마지막엔 이런 표현을 쓰고 있다. “웅변가는 수다쟁이에 불과하고, 심지어 하나의 구호이고, 정치는 변하고, 통계는 날조된다. 동맥은 깨지고, 귓불은 빛을 발한다. 하지만 인간의 얼굴은 그것이야말로 태양이요, 달이다. 나를 향해 돌아보는 얼굴 바로 그것이 나와 진정한 관계를 맺고 있다.” 크리스 마르케가 책 거의 마지막에서 얘기하는 구절이다. 얼굴이라고 하는 것, 얼굴과의 만남을 통해 그들이 나를 통해 바라보는 것, 그것이 나와 진정한 관계를 맺게 되는 것, 그것을 포착해 나가는 것이 마르케의 영화적 작업이라고 생각이 든다. 이 영화 말미에 당시 사람들이 불안해하는 표정들이 스쳐 지나갈 때 그건 초상 작업 같은 것이다. 또한 그것이 에드가 모랭과 장 루슈가 만든 <어느 여름의 연대기>(1961)라는 작품과의 차별점 아닐까. 실제로 <어느 여름의 연대기>는 <아름다운 5월>에 굉장히 큰 영향력을 줬다. <어느 여름의 연대기> 촬영감독이 <아름다운 5월>의 촬영감독 미하일 롬의 스승이었다. 많은 다이렉트 시네마를 찍은 사람이고, 장 루슈는 캐나다에서 온 이 사람과 함께 <어느 여름의 연대기>를 촬영했다. 그 촬영감독의 제자가 <5월>을 찍은 미하일 롬이다. <아름다운 5월>은 촬영 자체가 흥미롭다. 동시에 이 영화나 장 루슈 영화가 가능했던 이유는 50년대 말~60년대 초 프랑스에서 개발된 경량 카메라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기술적 부분들이 이런 촬영 방식과 사람과의 만남, 인터뷰를 영화로 찍을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이 영화는 촬영이 정말 대단한 것 같다. 몇몇 장면은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과시하듯 찍혔다. 이 시기 극영화를 찍은 감독들(고다르, 레네 등) 영화들보다 훨씬 더 테크닉에서 뛰어난 것 같다. 전문적인 사람들이 만들어 낸 일상적인 다큐멘터리라서, 미적인 관점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정지연: 제목은 <아름다운 5월>로 번역되는데 실제로 영화 시작부터 나오는 건 고독과 불안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 고독, 불안의 경우는 5,60년대 유럽의 모더니스트들이 지속적으로 시각화하려고 했던 근대적 소외나 불안의 이미지들과 연결되는 것 같다. 저는 이 영화를 볼 때 <어느 여름의 연대기>를 안 떠올릴 수가 없었다. 심지어 질문도 같다(“당신은 행복하신가요?”). <어느 여름의 연대기>에서는 카메라가 정박된 게 아니라 이동하면서 사람들을 향한다. 그런데 카메라를 들이댔을 때 과연 사람들이 이 낯선 물체 앞에서 자신의 진실을 말할지, 에드가 모랭과 장 루슈가 걱정했다고 한다. 그런데 의외로 사람들이 진솔한 자기 얘기를 해서 놀랐다고 전해진다. 그렇게 나온 게 시네마 베리테다. 시네마 베리테는 미국의 다이렉트 시네마와는 다르다. 다이렉트 시네마는 계속 관찰하면 진실이 드러난다는 것이고, 시네마 베리테는 질문 속에서 질문을 추동한다는 게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진실은 좀 객관화된 진실이다. 저는 이 작품이 현대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좀 더 중요하고 <어느 여름의 연대기>보다 의미 있는 실험이었다고 본다. 두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비슷하지만 차이가 있다면 <아름다운 5월>에서는 객관적 진실에 대한 믿음은 아니었던 것 같다. 후반부 내레이션에도 나오듯 진실은 목적이 아니라 여행 그 자체에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마르케는 사람들이 얘기하는 대답들 속에서 사유의 과정들, 사유의 단초들을 이끌어 낸다. 영화에서 해석하는 자, 사유하는 자의 태도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고정된 진실, 객관화된 진실이 아니라 이것들로부터 어떻게 사유를 이끌어 낼 것인지, 어떻게 해석해 낼 것인지, 해석자의 태도를 중요하게 여긴 것 같다. 이건 60년대 다큐멘터리에서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그때까지 다큐멘터리는 영화가 가질 수 있는 증언, 기록의 위상에 대단히 고착되어 있었다. <아름다운 5월>은 이미지 그 자체의 증언이 아니라 이걸 어떻게 붙이고 해석하느냐, 즉 해석자의 위치를 다큐멘터리에서 처음으로 부각시킨 것 같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도 그렇고 이후 작품에서 크리스 마르케의 인터뷰에서 했던 얘기가 ‘이미지의 비가시성’이었다. 다시 말해 이미지들이란 건 그냥 순간의 현상적인 표현에 불과하고 그 자체로 진실을 얘기하는 건 아니다. 결국 바라보는 사람이 그것을 연결함으로써 이미지에 대한 어떤 이야기를 말하는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마지막 볼셰비키>(1993)에서 오프닝에 조지 스타이너의 말을 인용한다. “우리를 사로잡는 건 과거 자체가 아니라 과거의 이미지일 뿐이다.” 여기서 ‘과거의 이미지일 뿐’이라는 건 누구에게나 객관적 과거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어떻게 과거의 이미지를 기억하느냐에 따라 그 이미지는 다르게 전유될 수 있다는 것이다. <환송대>(1962)를 보면 한 남자에게 각인된 과거 한 순간의 이미지에 대한 집착이 있다. 그런 이미지들을 연결함으로써 사유의 구성을 맥락화하는 게 중요했던 사람 같다. 그래서 본인에 대해서 ‘이미지의 사냥꾼’이라는 말을 했다. 차이가 있다면 사냥꾼은 찾아서 죽이는 사람이지만, 자신은 현상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이미지를 적당한 순간에 카메라로 포획함으로써 영속화 시킬 수 있기 때문에 ‘천사의 사냥꾼’이라고 말했다. <아름다운 5월>은 5, 60년대 다큐멘터리의 진실과 객관성에 대한 신화로부터 벗어나서 해석하는 자, 사유하는 자의 위상을 높였던 기념비적인 작품이 아닐까. 그렇지만 관념적인 좌파적 이상주의로 빠지지는 않는다. 크리스 마르케는 소비에트 혁명에 대한 이상적인 시선들이 있었고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 쿠바 혁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것들이 실패할 때 받은 상처도 컸던 것 같다. 파트리시오 구즈만과 크리스 마르케 사이에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파트리시오 구즈만은 마르케보다 20년 정도 후배다. 구즈만이 사회주의 실험기 1년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첫 해>(1971)를 찍었는데 마르케가 그 작품을 보고 인트로 영상이랑 더빙을 마르케가 직접 연출해서 프랑스에 소개를 했었다. 또 구즈만이 <칠레 전투>를 찍을 때 크리스 마르케가 생필름을 보내주기도 했다. 이후 구즈만이 <칠레 전투>를 칸에서 공개하게 되는데, 마르케가 구즈만에게 어떠한 연락도 취하지 않았다고 한다. 구즈만이 익히 짐작하기를, 마르케는 좌파적 신념이 굉장히 강한 사람이었는데 자기는 그런 관점에서 칠레 전투를 편집한 건 아니었고, 비무장한 민중들의 삶을 약간 휴머니즘적인 관점으로 찍었다고 말한다. 마르케도 그런 점에서 보면 참 완고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또한 구즈만은 크리스 마르케가 대단히 은둔하는 태도가 강하다고 얘기를 했다. 이브 몽땅은 자서전에서 크리스 마르케가 굉장히 신사적이고 지적인 사람이라고 전한다. 마르케는 작품도 재밌지만 사람도 독특하고 매력적인 것 같다.

 

김성욱: 개인사가 별로 안 알려진 감독이다. 사진도 거의 없고, 인터뷰도 거의 없는 편이다. 크리스 마르케의 정치성에 대해서 생각을 해 봤다. <아름다운 5월>은 2부가 되면서 조금씩 관계의 변화들이 발생한다. 마르케를 다큐멘터리 작가로 부르는 것과 에세이스트라고 부르는 것에 차이가 있다. 제 생각엔 랑시에르가 얘기했던 어법이 가장 적당한 것 같다. 에세이스트는 자기 머릿속에 있는 걸 바깥에다 표현한다. 다큐멘터리 작가는 무언가가 밖에 있고 그걸 어떻게 배치하고 결합하느냐에 몰두하는 사람이다. 마르케가 이 두 부분을 왔다갔다 하는 게 있지만 에세이스트에 가까운 것 같다. 근데 랑시에르 식으로는 다큐멘터리 픽션을 만든 사람이라고 얘기된다. 이 영화의 2부는 다큐멘터리 픽션이라는 생각이 든다. 상당히 많은 몽타주들이 동원됐고, 장면 장면과의 연결이 굉장히 의도적인 배치들도 있고, 내레이션도 마찬가지다. 마르케와 관련해서 가장 유명한 시네마 베리테에 대한 정의는, ‘시네마 베리테(영화 진실)가 아니라 시네 마 베리테(영화 나의 진실).’ 그게 이 영화를 보면 적합한 것 같다. 크리스 마르케라는 감독이 어떤 정치적인 활동을 했던 건 사실이다. 60년대 말~70년대 초 마르케는 영화 집단 ‘SLON’의 멤버였다. 당시 SLON은 우리나라로 치면 노뉴단 같은 것인데 트럭에다가 필름을 들고 다니면서 파업 현장을 기록했다. 그 기록들을 이태리에서 상영하고 상영료도 받고, 유럽에서 잘 나가는 영화제작집단이어서 ‘좌파의 MGM’이라고 불렸다. 여기서 메드베드킨의 영화도 상영을 했고, 구즈만 영화작업에도 관여를 했다. <붉은 대기>는 전 세계 다큐멘터리스트가 결합해서 만든 영화였다. 게다가 마르케는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카메라를 노동자 손에 쥐어준 작가로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5월>처럼 사람들의 말을 담아내는 게 지금으로선 어렵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대적으로 특정한 시간대의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담아내는 건 당시로선 텔레비전이나 신문이 할 수 있을 법한 거였다. 영상 르포르타주, 혹은 미디어가 보도하는 것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현실을 담아내려고 했던 시도라는 점에서 보면 첫 번째 미디어 실험가였다고 볼 수도 있다. 크리스 마르케라는 작가 자체가 갖고 있었던 정치성이 영화를 통해 어떻게 구현되었는가, 그리고 그것이 지금에 있어서도 의미를 가진다면 어떤 부분이 있을까, 이런 점들이 크리스 마르케 영화를 볼 때 떠올려보게 되는 지점들이다.

 

정지연: 크리스 마르케 영화들에서 그런 정치적인 관심들이 있다. 그런데 이 시기 1세계 지식인이라 자부했던 감독들의 영화를 보면 정치적 발언에 대한 책무가 트라우마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하게 드러난다. 61년 10월 파리에서 알제리인 대학살이 일어나고, 62년 7월에 알제리 독립선언이 일어난다. 이것들을 좌파 지식인이 목도하면서 어떤 책무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2부에서 사람들에게 계속 질문을 던진다. “뭐가 가장 중요합니까? 알제리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람들의 발언 속에는 국수주의적이고 제국주의적인 발언들도 있다. 크리스 마르케는 사람들 사이에서 정답을 이야기하기보다는 그런 역사적 국면이 일반인들에게는 어떻게 괴리되고 있는지, 무엇이 그들을 역사적인 이슈로부터 괴리시키고 있는지를 이미지로 보여주는 것 같다. 빈민가에 있는 텔레비전을 보여주면서 ‘공간이 작을수록 세계를 향한 건 TV를 통해서’라고 하는데, 50년대 텔레비전은 대중적인 탈정치화를 가속화시킨 매체였다. 마르케는 삶과 정치가 분리되는 메커니즘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이 영화에선 질문은 정치적인 쪽으로 유도를 하되 사람들의 빗나간 대답들을 관찰한다. 마지막에 갑자기 인간의 유한성을 극복하기 위해 예술이 나타났다는 대사가 나오는데, 결국 영화감독으로서 영화를 찍는다는 게 어떤 정치적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언급인 것 같다. 소비에트 영화처럼 직접적으로 민중을 계도하고 영화가 갖고 있는 선동력에 주목하기보다, 질문의 순간들, 사유의 순간들을 영화적인 기록으로 남김으로써 순간의 이미지를 영속화시키고, 그 사유의 이미지를 영속화 시키는 것 자체가 정치적인 행위라고도 봤던 것 같다.

 

김성욱: 마지막에 나왔던 예술에 대한 언급은 시간에 관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같은 시간대 만들었던 <환송대>랑 비교해보면 시간, 기억이라는 화두가 있었다. 시간이 어떻게 보존되는가, 현재 관점에서 보면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는가. 이 영화에서 5월 기억을 계속 떠올리게끔 얘기 하는 것에는 알제리에 대한 망각이 있다. 레네가 <밤과 안개>에서 당시 프랑스인들이 어떻게 아우슈비츠를 망각했는지 질문했던 것처럼, 마르케도 <아름다운 5월>에서 프랑스인들이 어떻게 알제리를 망각하고 있는지 질문한다. 바꿔서 얘기하면 어떻게 그것을 기억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망각된 현재 안에서 그것을 기억한다는 것은 영화를 통해서만 가능하겠다. 사람들은 말하지 않고 크리스 마르케는 망각된 사람들을 상기시키는 작업을 하는 건데, 그건 인터뷰의 말에서만큼은 완벽하게 나오지 않는 거다. 그랬을 때 기억이라고 하는 건 과거에 있는 것들을 재현해 가는 게 아니라 새롭게 구성할 수밖에 없는 역설적인 것이다. 그게 메드베드킨에 대한 다큐를 만들 때 마르케가 제기했던 질문이었다. 사람들에게 메드베드킨을 아냐고 물어보는데 아무도 모른다고 대답을 한다. 역설적인 건 아무도 모르는 사람에 대한 기억을 어떻게 영상화 할 것인가다. 아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기억을 만들어줄 수 있는 작업을 하는 게 영화작업이 됐던 거고, 그래서 과거를 회고하는 기억이 아니라 ‘미래적인 순간에 도래하는 것으로서의 기억’이라는 표현을 쓴다. 이 역설은 <환송대>에서도 마찬가지로 반복된다.

모든 정치영화는 두 가지를 다룬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방금 얘기하신 것처럼 집단성의 문제를 다룬다. 국가, 공동체, 권력집단, 대항하는 정치집단 등, 정치는 어쨌든 둘 이상의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나오는 집단성, 혹은 집단적 주체성을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에 대한 것이다. 이는 정치적인 영화들이 추가하고 재현해 가는 것이다. 두 번째는 타자와의 관계이다. 정치영화엔 이 두 가지가 결부되어 있다. 마르케 영화를 봤을 때 사람들은 모두 순수하게 개별적이다. 자기 앞에서 문을 닫아버린 프랑스 사람들이 어떻게 집단화될 수 있는가, TV으로만 세계와 관계 맺는 사람들에게서 어떻게 집단성이 일어날 수 있는가. 62년의 시점에서는 정치적인 집단적 주체성이 구현되지 않았던 것 같다. 이후 68년을 거치면서 <붉은 대기>는 그런 집단적 주체성, 집단적 이미지를 구축해가는 영화이고, <숨은 고양이 찾기>는 그런 것들이 사라진 이후에 새로운 형태의 집단적 주체성에 대한 질문이 들어가 있다. 가장 저차원적인 정치적인 영화들은 그 집단적 주체성을 고전적인 방식으로 만들어간다. 한국에서 나오는 대부분 상당부분의 정치영화들이 그런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 생각도 없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 생각도 없다. 집단적 대변자로서의 영웅적인 서사라든가, 집단성이라는 걸 인간적 드라마로 바꿔나가는 구조들이 대부분이다. 마르케가 5, 60년대에 시도했던 건 민중의 집단성을 표상하는 방식에 대한 것이었다. 이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굉장히 빠른 속도로 집단적으로 무리지어 움직여가는 이미지들이 있는데 그건 말하자면 군중이다. 군중은 숫자일 뿐이지 관계의 어떤 부분도 내재하고 있지 않은 집단적 무리다. 그와 다른 방식으로 집단성을 구현해나가길 시도한다는 것이 마르케 영화와 정치성이 관련해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 아닐까.

 

정지연: 크리스 마르케는 역사를 찍는다고 진실이 드러나는 건 아니라고 얘기하면서 기억상실의 이미지라는 말을 했다. 인간은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분쟁, 학살을 경험하는데, 어떻게 이를 끊임없이 망각할 수 있는지에 대해 얘기하면서 그런 망각으로부터 자신의 이미지 서사, 이미지 정치학을 통해 새로운 이미지들을 복권해내고 붙잡고 영속화시키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기억은 망각의 반대 개념이 아니라 그 이면이다. 우리는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역사를 다시 쓰듯 기억을 다시 써야 한다.” 승리한 자들이 기념비 세우는 역사가 아니라, 폐허 아래 묻힌 자들, 실패한 자들의 역사를 끊임없이 발화해야 하는 상기의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마르케는 이미지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역사적인 국면들을 사유케 만드는 것이 자신에게 중요한 이미지 정치학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미지 수사학이나 정치학을 구축한 그의 작품은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고 생각이 든다.

 

정리: 송은경(관객에디터) | 사진: 황초희(자원활동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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