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토크] 오승욱 감독이 추천한 로버트 알드리치의 '북극의 제왕'

지난 15일 저녁, 서울아트시네마는 유쾌한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언제나 영화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들을 맛깔나게 들려주는 오승욱 감독이 로버트 알드리치의 <북극의 제왕>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은 것. 더할 나위 없이 화기애애했던 그 현장을 전한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굉장한 영화를 한 편 보셨다. 이유도 맥락도 알 수 없이, 그저 무임승차하겠다는 사람과 그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사람이 벌이는 일종의 ‘다이 하드’이다. 이 영화는 역시 이런 분이 소개하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웃음) 오승욱 감독님을 모시겠다.

오승욱(영화감독):
사실 이 영화를 필름으로 본 건 오늘이 처음이고, 중학생인가 고등학생 때 AFKN에서 하는 걸 봤었다. 기억나는 건 어네스트 보그나인의 독수리 같은 부리부리한 눈,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몽키 스패너라고 기억하고 있었던 커다란 망치, 그리고 쇠몽둥이 같은 것을 기차 밑으로 보내서 사람을 때리는 장면이었는데, 그 장면은 지금 봐도 정말 무섭다. 사실 한 4년 전부터 <북극의 제왕>을 보고 싶어서 친구들 영화제 때마다 틀어보려고 했는데, 저작권 문제 때문에 상영이 어려웠다. 올해는 이 영화 안하면 ‘친구들 영화제 안 한다’고 했다. (웃음) 그래서 그런지 운 좋게도 올해 수급이 되었고, 프린트 상태도 정말 좋다. 이 영화는 어네스트 보그나인의 영화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흠모하는 악역들이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초등학생 때 봤던 <지상에서 영원으로>의 어네스트 보그나인과 <젊은 사자들>의 리 반 클리프를 어마어마한 악역이라고 생각했다. 무서워하면서도 보그나인을 정말 좋아했다. <지상에서 영원으로>에서도 무서웠고, <배드 데이 블랙 록>이라는 영화에서도 리 마빈과 조를 이루어서 뒤에서 스펜서 트레이시를 굉장히 괴롭힌다. 서있기만 해도 무서운 사람이다. <자니 기타>에서도 그렇다. 언제나 뒤에서 나와서 사람을 괴롭히는 역할이었던 것 같다. 1917년생인데 지금도 살아있고, 최근에 개봉한 영화에도 잠깐 나왔다. 대단한 사람인 것 같다. 오늘 큰 화면으로 보면서 정말 감탄했다. 보그나인의 얼굴이 나올 때마다 배우 보는 맛이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에서도 처음에는 리 마빈이나 키스 캐러딘의 클로즈업이 없는데 보그나인에게 클로즈업을 준다. 전체적으로 감독보다 배우가 더 멋있는 영화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를 찍을 때 보그나인은 50대 후반, 리 마빈은 50대 초반 가량이었을 것이다. 보기에는 그리 빨라보이지도 않고, 상판을 깔아두기도 했지만 달리는 기차 위에서 뛰어다닌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보는 내내 ‘저 나이에 저렇게 뛰어다니다니, 미쳤구나’라는 생각도 들더라. 사실 어느 영화든 영화에 따라 스태프들과 현장의 모든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이 영화는 후반으로 갈수록 광기가 넘쳐흐르는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까지 광기가 넘쳐흐르게 되는 영화가 썩 많지 않은 것 같고, 그걸 담아내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김성욱:
90년대 이후 할리우드에서는 하이컨셉 무비라는 일련의 영화들이 나오게 되는데, <북극의 제왕>은 그런 영화들의 전조적인 영화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기차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두 사람의 격돌만으로 거의 두 시간 가까이 영화를 끌고 간다는 사실이 경악스럽기까지 하다. 그것이 가진 긴장성과 느낌이 엄청나다. 로버트 알드리치의 영화적 유희성이 뛰어나다. 기차에 타려는 사람과 그를 떨어트리려는 자, 둘이 모두 그 공간의 주인이라고 생각한다. 사실은 둘 중 누구도 주인이 될 수 없는데, 거기에 따른 일종의 원칙을 갖고 있는 인물들의 격돌을 지켜보는 것이 흥미로웠다.

오승욱:
그런 영화가 재미있는 것 같다. 왜 싸우는지 이유는 모르겠는데 하여튼 싸우는 거다. 그런데 사실 이유는 있다. 나보다 더 센 놈이 있고 그것을 꺾겠다는 것이다. 그것을 관객들에게 설득하는 것이 찍으면서나 시나리오를 쓰면서도 굉장히 힘들다. 그런데 알드리치는 굉장히 잘 해낸 것 같다. 이 영화의 모든 인물들에게는 일종의 허세가 있다. 그것은 어떤 시대에서건 남자들이 버티는 힘 같은 것인 것 같다. 게다가 이 영화의 인물들은 50년 전에만 태어났다면 서부에서 총질하며 살았을 텐데 시대를 잘못타서 30년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사실 자본주의사회가 되면서 결국 남성들이 쓸모없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30년대는 그런 것의 징후들이 나타났던 시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의 남자들은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농장을 하고 있었는데 점점 부채가 늘어가더니 차압이 들어와 모든 것이 없어져버렸다’는 식이다. 그들은 결코 이것을 이해할 수 없다. 그때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사실 보그나인 역시 자본주의 속에서 하나의 부품이며, 언제든 부랑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를 이렇게 생각한다. 자본주의라는 것을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야성을 가진 남성들이 시스템에 똥칠하는 영화. 그리고 시스템에 소속되어 있지만 역시 야성을 가진 남자가 덤비는 부랑자들과 서로 똥칠하면서 대결하는 영화. 그런데 이런 대결의 영화에서는 언제나 대결하는 두 사람이 어떤 인물인가를 관객들에게 정확하게 알려준다. 동시에 잘 만든 대결영화에서는 둘은 맞으면서 서로 좋아하는구나, 그리고 서로 싸우면서 존경하는구나, 하는 디테일들을 확실하게 심어준다. 그 덕분에 영화가 성립하게 되는 것이다.
또 이 영화를 보면서 70년대의 알드리치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더라. 이 사람이 60이 되면서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지는 수많은 장르 영화들에서 보이는 정석들을 절대 거스르지 않게 된 것 같다. 사실 이 영화도 이야기의 측면을 포함해서, 씬이나 시나리오 구조들 역시 절대 거스르지 않는다. ‘할리우드 영화, 흥행 잘되는 영화처럼 만들고 싶어서 열심히 만들었는데, 어떻게 하다 여기까지 왔는지 몰라’하면서 껄껄껄 웃는 것 같은 느낌이 있다. (웃음) 좀 도가 지나치다. 할리우드 영화 같으면 라스트에서 시가렛과 에이 넘버 원의 우정을 집어넣어서 기분 좋게 끝냈을 텐데, 이 사람은 거기서 심술이 발동했는지 조금 더 가거나, 뒤틀어버린다. 분명 정석적인 영화인데 아이러니가 숨어있는 것 같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굉장히 찝찝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굉장히 쾌감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더티 더즌> 무렵부터 그런 것 같다. <울자나의 습격>, <허슬>, <롱기스트 야드> 모두 그렇다. 누가 말려주지 않으면 폭주기관차처럼 간다. 50년대 알드리치 영화는 씬의 지속 시간 등을 통해서 조금 더 가는 부분이 있었다. 물론 막가는 것과 더 가는 것은 다르다. 이를테면 <키스 미 데들리> 같은 것은 막가는 영화다. (웃음) 그런데 70년대 영화들은 도를 넘어서서 조금 더 간다는 느낌이 있다. <캘리포니아 돌스>의 마지막 장면도 막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가는 것이다. 알드리치는 마지막 영화를 너무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는 알드리치가 너무 건조하고 투박해서 조금 더 갈 때 감동을 일으키는 부분은 딱히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 영화에서는 감동까지 준다. 50년대에는 영화가 여기에서 끝나겠지, 하면 거기에서 10분 15분 정도를 더 나아가는 시간과 이야기의 연장이 있었다. 그런데 70년대가 되면서 원숙해진 탓인지, 이제 그런 부분들을 연장시키기 보다는 인물들이 갖고 있는 감정이나 관객들에게 불러일으키는 감정을 조금 더 진전시키고 확장시키는 것 같다. 알드리치는 내가 굉장히 좋아하고 모범으로 삼고 싶은 감독인데, 이건 어마어마한 재주인 것 같고 이 사람 말고는 아무도 하지 못할 일인 것 같다.


김성욱: 그런데 마지막에 리 마빈이 기차에 우뚝 섰다 할지언정 사실 그건 무임승차한 것일 뿐인데, 뭔가 대단한 일을 했다는 느낌을 전달해주고 있다. 이 영화에 나오는 물리적인 움직임과, 장비를 챙길 때의 진지함과, 조그만 것들을 들 때의 디테일 같은 것들, 불필요해 보이는 물건들이 전체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면서 그런 느낌들을 만들어내는 것 같다. 쓰레기 더미들도 인상적인데, 마치 SF 영화 같다. 핵폭탄 투하 후에 남은 것은 기차 하나 밖에 없고, 거기에 뭐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꾸역꾸역 올라서야만 하는 것이다. 영화의 배경이 1930년대 대공황 시기인데, 이 영화가 만들어진 1973년 무렵 또한 미국이 경제 위기에 처해있던 시기였다. 여러 가지 부분들이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관객 1: 신체적으로 굉장히 강한 자극을 주는 영화였던 것 같다. 초반에 보면 기차에서 싸우는 장면에서 안개가 굉장히 짙다. 다른 신들과 그 신의 느낌이 다른 것 같다. 그 부분의 느낌에 대해 말씀해주셨으면 한다.
오승욱: 1960년대 말부터 알드리치 영화가 굉장히 점액질이 된다. 점액질의 것들을 계속 등장시키는 것이다. <캘리포니아 돌스>에서도 마지막 경기는 진흙탕에서 엉망진창이 된 채로 벌어진다. 50년대까지 알드리치 영화에서는 감독의 의도가 보일 정도로 배우의 몸을 더럽히거나 하지는 않았다. 사실 영화 자체도 점액질의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가 있는 것 같다. 피나 땀 같은 것들을 굉장히 정성들여 묘사하는 감독들이 있다. 액션영화를 볼 때 이 감독은 점액질류고 이 감독은 아니다, 하는 식으로 구분해보시는 것도 굉장히 재미있을 것이다. (웃음) 알드리치의 경우에는 초기에서 후기로 가면서 이 부분이 변해간다는 점이 재미있다고 느껴졌다.

(정리: 박예하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관객 에디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