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2일, 막스 오퓔스의 저주받은 걸작 <롤라 몽테스>의 상영 후 이 영화를 추천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장 프랑수아 로제 프로그램 디렉터와의 관객과의 대화가 있었다. 개봉 당시 상업적 이유로 제작자들에 의해 함부로 편집되는 불운을 겪었던 이 영화는 반세기가 지난 후에야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대대적인 복원 프로젝트를 통해 감독의 본래 의도에 가장 가깝게 재탄생되었다. 장 프랑수아 로제는 이 자리에서 영화에 관한 이야기 외에도 필름 보존 및 상영 뿐 아니라 복원에 있어서 시네마테크의 역할과 그 작업과정에 대한 뜻깊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훌륭했던 영화만큼이나 흥미와 공감을 불러일으킨 그 시간의 일부를 전한다.


장 프랑수아 로제(시네마테크 프랑세즈 프로그램 디렉터): 우선 이 영화의 역사에 대해서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프랑스의 초현실주의 영화 뿐 아니라 프랑스 영화계의 역사를 잘 상징해주는 영화다. 감독 막스 오퓔스는 1936년에 독일에서 망명하여 프랑스에서 영화를 만들다가 2차 대전 초에 할리우드에서 몇 편의 영화를 찍고 다시 프랑스에서 4편의 영화를 감독했다. 이 작품은 그의 마지막 영화다. <롤라 몽테스 Lola Montès>(1956)는 형식적인 측면에서 특히 높이 평가되는데, 영화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롱테이크와 복잡한 카메라 움직임을 좋아했다. 그래서 바로크적인 스타일의 감독으로 불린다. 이 작품은 가장 극단적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사실주의의 느낌이 사라지면서 꿈같은 것이 그 자리를 대체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인, 독일인 두 사람의 제작자가 이 영화를 제작했는데. 처음 공개 된 이 영화에 관객들은 거의 폭동 수준의 난폭한 반응을 보였고 평론가들은 완전히 혹평 했다. 상영기간 동안 영화를 본 관객들이 줄 서 있는 관객들에게 영화를 보지 말기를 권유하고 심지어는 경찰들이 자제를 시켜야 할 정도였다. 또한 대부분의 비평가들은 이 작품을 나쁜 취향, 나쁜 독일 취향의 예라고 말했다. 단지 몇몇 젊은 평론가들만이 이 영화를 지지했는데, 그 중 대표적으로 당시 카이에 뒤 시네마의 평론가였던 프랑수아 트뤼포가 있다. 그는 영화가 너무 전위적이어서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며 다소 공격적으로 이 영화를 옹호했다. 어쨌든 영화는 상업적으로 실패했으나 비용이 많이 든 작품이었기 때문에 제작자들은 영화를 변형시켜 재탄생시켜보고자 했다. 막스 오퓔스 감독은 요양소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몇 달 뒤에는 세상을 떠났다. 영화에 대한 평가가 그의 죽음의 영향을 다소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영화에서 첫 번째로 바뀐 부분은 모든 외국어 대사들, 즉 영어, 독어 대사들이 프랑스어로 더빙됐다는 점이었다. 제작자들은 세계주의적 경향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변화도 그다지 상업적 이익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2,3년 후 국제적으로 개봉 될 때 또 재편집하게 된다. 이 때 플래시백이 모두 사라졌고, 이야기는 순차적으로 재배치되었으며, 내용을 설명하기 위한 내레이션이 추가되었다. 또한 몇몇 장면을 편집해버렸다. 그래서 <롤라 몽테스>는 저주받은 걸작이 되었고 원래 감독이 의도한 부분은 60분 밖에 남지 않았다.

영화인들은 작품을 어떻게 복원해야할지 난감했는데, 1966년 이 영화의 제작사가 파산하면서 이듬해 제작자 피에르 브롱베르제가 영화의 상영권과 그 외 모든 자료들을 인수한다. 그는 처음에 오퓔스가 의도했던 영화로 돌려놓기 위해 이를 재편집했다. 우리는 2007년에야 오리지널 필름을 재발견했다. 오늘 상영된 작품은 이 버전으로, 오퓔스가 처음 편집한 영화와 가장 가까운 버전이다. 이를 위해서는 더 많은 다양하고 복잡한 노력들이 필요했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영화 박물관이다. 박물관의 역할은 보존과 전시다. 때로 보존 작업에는 복원도 포함이 된다. 이 역시도 시네마테크의 주 작업 중 하나이다. 이 영화를 처음 버전대로 복원하기 위해서 우리는 브롱베르제의 딸인 로랑스 브롱베르제가 가진 네거티브 필름을 빌려달라고 요청했다. 처음 봤을 때, 이 네거티브 필름은 온전치 못했으며 복원을 위해, 막스 오퓔스의 아들인 영화감독 마르셀 오퓔스로부터 그의 촬영 당시 제작 노트를 받았다. 그 후 유럽 전체에 퍼져있는 아카이브에서 이 영화의 다른 버전들을 찾았다. 그 중에서 벨기에에서 처음에 의도했던 편집과 가장 유사한 버전을 찾아냈다. 그래서 이런 여러 버전들을 처음의 오리지널 시퀀스대로 재편집을 했다. 이 네거티브 필름의 컬러가 다 사라졌었기 때문에 복원이 필요했으며, 다양한 필름들 간에 각각의 비율이 다르다는 문제도 있었다. 그래서 테크니컬러의 LA연구소로 가서 디지털 작업으로 복원하며 색을 되찾고 화면에 나타나는 잡티들을 제거했다. 또한 많은 버전들이 스테레오 사운드가 아니었기 때문에 음향을 손봐야 했다. 그리하여 영화는 디지털 프린트 되었고 이를 나중에 35mm프린트로 인쇄했다. 이 필름은 칸느 영화제의 클래식 부문에서 상영되었다. 오늘 상영된 것은 35mm 필름이다. 영화는 디지털 복사본과 35mm복사본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35mm를 좋아한다. 이 영화가 처음에 이 버전으로 만들어졌었기 때문이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시네마테크는 박물관이며, 이러한 발상은 영화가 예술의 한 형식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만약 영화가 예술이라면 스크린에 상영될 뿐 아니라 필름으로서 보존되어야한다. 복원은 보존의 한 방법이고, 파괴 된 영화를 구해내는 일이다. 이 경우에도 제작자들에 의해 파괴 되었던 막스 오퓔스의 영화가 50년 후에 본래의 버전을 되찾게 된 것이다.

관객1:
최근에 고전영화 복원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만약 오리지널 프린트가 온전히 남아있어서 그걸 복원할 수 있으면 좋지만, 우리나라 하녀의 예도 있고, 오리지널 프린트가 없으면 다른 판본 여러 개를 모아서 제작노트를 참고해서 복원한다. 그런데 이처럼 여러 판본이 있을 때 복원된 완전판만이 정통으로 인정받고 이전 판본들, 손상된 판본들은 잊혀져버리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판본들에도 접근 가능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장 프랑수아 로제: 그래서 영화를 복원할 때는 윤리적 바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이드라인을 보자면 처음에 감독의 의도가 무엇이었는가가 가장 중요하다. 그가 넣지 않기로 결정한 씬은 들어가지 않아야 한다. 오퓔스의 다른 영화인 <윤무>의 예를 들자면, 제작자가 감독이 이미 편집한 부분을 추가로 넣어서 상영했었는데 이는 옳지 않았다고 본다. 이것이 필요하다면 감독에 의해 덧붙여졌어야 한다. 몇 주 전에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편집된 17분이 발견되었는데, 이것이 영화 제작 과정에 있어 흥미로운 사실을 알려줄 수는 있겠으나 아무리 좋아도 영화에 다시 덧붙여서는 안 된다. 또한 영화 복원 중에 생겨난 다른 판본들은 당연히 보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여러 자료들은 이 영화의 역사를 이루는 것이고 이 작품에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알려주는 자료이기 때문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복원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먼저, 손상되었던 영화를 감독의 의도에 가장 가깝게 물리적, 기술적으로 되돌리는 작업이다. 하지만 두번째로, 그 뿐만이 아니라  기술적 복원과 함께 문화적인 재평가, 예술적, 비평적 논의가 병행해야만 한다. 최근 복원과 관련해서 이런 사회, 문화적 맥락까지 충분히 고려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그저 영화제에서 군중을 끌기 위한 쇼와 이슈로써만 이용되는 경향도 있어 보인다. 
장 프랑수아 로제: 복원의 과정은 영화에 대해서 알게 되고 배우게 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복원을 생각할 때는 조심해야한다. 복원자들 중에 유토피아적 자세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복원이 처음 개봉된 그대로의 영화와 같아야 된다는 생각 등이다. 그러나 우리가 영화를 경험하는 상황은 늘 다르다. 우리가 첫 번째 영화와 완전히 같은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는 기술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현재의 관객이 과거의 관객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의 복원은 영화의 삶의 한 부분이며 일종의 진화과정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관객2:
영화가 당시 대중들에게 그토록 격렬히 외면 받은 이유가 영화의 완성도 때문인지, 감독의 시각 때문인지, 아니면 혹 페미니즘 때문인지 궁금하다. 또한 이것을 복원하게 된 이유가 이 영화와 감독의 비극적 운명 때문인지 아니면 영화가 이후에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인지 궁금하다.
장 프랑수아 로제: 페미니즘과는 관계가 없고 영화의 전반적인 질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일단 서커스 같은 부분이 고급스런 취향으로 보이지 않았고, 여주인공인 당대의 스타 마르틴 캐롤이 영화 내에서 롤라 몽테스의 10대 연기를 하기에는 너무 늙었다고 여겨졌다. 또 감독이 독일 감독이었기 때문에 그의 스타일이 프랑스와는 다르고 좀 더 저질이라는 식으로 받아들여졌다. 영화 복원의 의미라 하면 우선 이 영화가 명작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50년대의 대표적인 영화이며 막스 오퓔스의 가장 극단적인 영화이다. 사실주의적 경향은 축소되고 점점 고독해져 가는 한 여자의 운명과 상상적인 부분이 결합되면서 이미지와 형식적인 부분이 강조된다. 막스 오퓔스는 가장 위대한 영화작가 중 하나이다. 우리는 이것을 다시 찾아내고 싶었다. 그 영화의 제작자들이 영화를 재편집했을 때 영화의 플래시백과 편집 순서, 보이스 오버 등을 다 바꿔버렸기 때문에 영화의 아름다움은 사라졌다. 우리는 영화 본래의 아름다움들을 되찾고 싶었다. 여러 시퀀스가 나눠져 있고 섞여 있고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 또한 서커스 장면의 어마어마한 세트, 이를 연출하기 위해 다양한 장치와 요소들이 들어가는데 이 다양성은 영화를 더 위대하게 한다.

김성욱: 두 시네마테크가 다 비영리 민간법인이라는 점이 비슷하다. 80%란 말로는 감이 안 오실 텐데, 100억 단위가 넘는 예산이기에 사실 비교할 것은 못된다.(좌중 웃음) <롤라 몽테스>를 보면 여자의 운명이 영화의 운명과 오버랩 되는 인상을 받는다. 오늘 이야기 되진 않았으나 이 영화는 여러 측면에서 서정적이고 정중하고 우아하고 아름답다. 그런데도 스타일적인 측면에서는 굉장히 급진적이다. 이것이 종종 관객들에게 받아들여지기 힘든 까닭은, 내용이 이해하기 어렵다기 보단 이런 형식적 급진성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정리: 백희원 서울아트시네마 관객에디터, 통역: 김준영)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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