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토크] 이해영 감독이 추천한 조지 밀러의 <매드 맥스>

지난 20일 오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 '친구'로 처음 참여하게 된 이해영 감독이 <매드 맥스>로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았다. 함께 영화를 본 관객들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폭주족과 그들을 추격하는 경찰들의 강렬한 속도감에 놀랐고 복합장르의 원전답게 숱한 문화 현상들을 흡수하며 창조해낸 이야기를 만끽했다. 상영 후에는 허남웅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의 진행으로 이해영 감독과 함께 나눈 풍성한 관객과의 대화의 시간이 이어졌다. 그 일부를 여기에 전한다.


허남웅(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친구들 영화제'에 '친구'로서 처음 참여하게 된 소감을 듣고 이야기를 시작할까 한다.
이해영(영화감독): 그동안 관객석에서 ‘친구들’을 동경하는 무리 중에 한 명으로 지켜봤었다. 보통 친구들 영화제에 ‘친구들’로 나오시는 감독님들이 훌륭한 감독들이지 않나. 나도 끼면 훌륭해 보이지 않을까 하는 로망과 판타지를 갖고 있었다. (웃음) 이번에 처음 참여하게 되면서 어떤 영화를 추천하는 게 좋을까 고민했다. 소위 말하는 낯선 영화들, 작가주의 아트 영화를 추천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 그보다 영화에서 다루고 싶은 생각들이나 욕망을 어떤 틀에 담아서 소통할 것인가, 상업주의 작가주의 이런 구분보다 감독들이 어떻게 하면 관객과 편하게 소통할까 하는 개인적인 화두가 있었다. 결정적인 계기는 <페스티발>의 흥행 스코어와 상관있을 것이다. (웃음) 그런 고민을 하다 보니, 관객 분들이 영화를 편하게 쉽게 보게 되는 안전장치가 장르라는 약속이라는 생각에, 장르적 컨벤션이 생겨날 때 초석 같은 역할을 했던 영화를 보면 어떨까 해서 추천작 몇 개를 적었다. <글로리아>, <미지와의 조우>, <이블 데드>, <매드 맥스> 같은 영화였다. 사실 <매드 맥스>는 똑 떨어지는 장르 영화라기보다 짬뽕 장르 같은 영화다. 웨스턴부터 SF 등등 여러 가지가 섞여있고 복합장르 영화의 최초 원안 같은 역할을 했다. 사실 <매드 맥스>가 유명한 영화고 제목은 다 알고 있지만 스크린에서 볼 기회가 많은 영화는 아니다. 다시 보게 되면 당시 관객들을 열광시켰던 어떤 것들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이 작품을 추천하게 됐다.

허남웅:
감독님은 30년 전에 비디오로 보았다고 했고 많은 관객 분들도 비디오로 보지 않았을까 싶다. 30년 만에 영화를 보시니 기억이 매우 새로울 것 같은데 어떠신지?
이해영: 사실 제가 나이가 어려서 정확히 30년은 아니고 (웃음) 굉장히 오랜만에 보긴 했는데 이 영화에 대해 갖고 있던 기억은 내러티브에 대한 것보다는 이미지에 대한 기억이다. <터미네이터>나 <다이하드> 같은 청소년기에 본 다른 영화들은 정확히 플롯으로 기억되고 이야기의 앞과 중간과 끝이 삼장구조로 똑 떨어지는 데 반해 <매드 맥스>는 플롯보다 이미지로 기억되어있던 영화다. 자동차가 질주하고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충돌하거나 폭발하고 전복되는 이미지로 기억됐었고, 그걸 스크린으로 다시 보면 정말 즐겁지 않을까 생각했다. 호환마마보다 무섭다는 조악한 화질의 삐짜 테이프로 배불뚝이 텔레비전 앞에 친구들과 모여서 본 기억이 난다. 여기서 다시 보니까 강렬하게 기억했던 이미지가 아직도 강하게 느껴져서 놀랐다. 무엇보다 다시 보니까 멜 깁슨의 젊었을 때의 얼굴이 놀랍다. 많이 달라 보인다. 약간 인종이 달라진 느낌이다. (좌중 웃음) 멜 깁슨의 클로즈업 숏들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역시 봄날을 가는구나. 저렇게 질 줄 아는 꽃이었으면 아예 피지 말 것을.’ 하고 생각했다. (좌중 웃음) 아름다웠지만 스산한 느낌마저 든다. (웃음)

허남웅: 어떻게 보면 살 빠진 러셀 크로우 같은 느낌도 있는 것 같다. 원래 멜 깁슨이 오디션을 보는 날 전날 바에서 싸움을 해서 얼굴에 멍이 많이 들었었는데 조지 밀러가 그것을 보고 저 녀석이 주인공 하면 딱이겠다 싶어서 캐스팅됐다는 일화도 있다. 이런 남성적인 이미지가 있는데 감독님은 멜 깁슨의 매력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이해영: 멜 깁슨은 당시 무명이었다. 잘 생기고 몸도 좋으면서 연기도 좀 할 줄 알았지만 할리우드에 비해 변방인 호주 출신이니, 사실 혜성처럼 등장한 셈이다. 그 포문을 연 것은 <매드 맥스> 시리즈지만 할리우드에서 이 사람의 매력이 본격적으로 발현된 것은 <리썰 웨폰>이다. <리썰 웨폰>에서 멜 깁슨을 기억하는 건 굉장히 능글맞은 눈빛과 농담과 느끼할 정도로 유머 섞인 모습들이었고 그게 이 사람을 더 섹시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때까지는 딱딱하고 경직된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유들유들하거나 능글맞은 자기 특유의 코드를 만들기 이전이어서 나름대로 신선했다. 여타 터프한 남자들의 이미지와 비교하자면 눈매가 언제나 촉촉하고 깊어 보인다. 눈빛 자체로 멜로와 사랑을 말할 수 있는 배우여서 상품성이 두드러질 수 있지 않았을까. 아까 러셀 크로우 말씀도 하셨는데 러셀 크로우도 요즘은 살이 좀 많이 붙었지만 전성기 때 모습을 보면 소도 맨손으로 때려잡을 수 있을 터프가이 이미지인 동시에 눈빛은 멜로를 얘기할 수 있는 눈빛이다. 웃을 때 그 웃음도 굉장히 선하고 그래서 여심에 다가갈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러셀 크로우는 보디가드를 향해 전화기를 던졌다거나 호텔 프런트에서 누구에게 욕을 해서 소동이 벌어졌다거나 하는 이야기가 들림에도 계속 안전한 남자, 사랑을 얘기할 수 있는 남자로 통용된다. 멜 깁슨도 그런 코드를 갖고 있어서 굉장히 신선했다. 본인이 아직 그런 코드를 갖고 있다고 자각하기 전의 모습인 것 같다. 그것을 계발하기 전에 원석을 보는 느낌이어서 흥미로웠다.

허남웅:
<매드 맥스>가 할리우드로 넘어가서 개봉할 당시에는 멜 깁슨이 너무 무명이어서 미국판 예고편이 만들어질 때 자동차 액션 장면만 치중해서 나오고 멜 깁슨은 아예 안 나왔다. <리썰 웨폰>을 거치면서 대스타가 돼서 흥미로운 인생역전을 맞이한 일화도 있다. 그런데 <매드 맥스> 자체가 일화가 굉장히 많은 작품이지 않나. 조지 밀러 감독 같은 경우만 해도 의사를 하며 단편을 계속 찍다가, 의사 일로 모은 돈으로 <매드 맥스>를 찍었다. 제작비를 아끼려고 멜 깁슨이 입고 있는 경찰복만 유일하게 가죽으로 하고 다른 사람은 다 비닐로 했다고 한다. 감독님이 알고 계신 <매드 맥스>와 관련된 인상적인 에피소드가 있으신지?
이해영: 저예산으로 미래를 찍고 있는 것이지 않나. 미래의 영화를 찍고 있는데 배경을 그리기가 굉장히 어려웠다는 게 보인다. 감독이 사비를 털어서 찍다보니까 계속 영화의 배경이 평야, 바다, 숲 이런 식이다.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심형래 감독님이 초기에 만들었던 <우뢰매> 같은 영화를 보면 숲에 가서 굉장히 많이 싸운다. 파워 레인저도 숲과 자연을 배경으로 많이 싸운다. 사실 도시를 배경으로 하거나 랜드마크가 될 만한 어떤 것을 만들기 시작하면 제작비가 엄청나게 오버된다. 그래서 엉뚱하게도 자연친화적인 영화처럼 보이게 된다. 예산 제약 때문인 게 뻔한데. 엄밀히 말하면 <매드 맥스> 시리즈에서 2편이나 3편에 비해서 1편이 와이드 릴리즈된 것도 아니고 엄청 흥행한 것도 아닌데, 특정한 문화적 아이콘으로 작용하고 있다. 외국에 나가면 LGBT, 말하자면 레즈비언, 게이 이런 분들이 퍼레이드를 한다. 그런 퍼레이드를 에스에머(SMer)들도 하는데 에스에머들에게 <매드 맥스>가 특정한 아이콘으로 작용하고 있더라. 에스에머들은 특정한 코스프레를 하진 않는데, 그럼에도 반드시 들어가는 게 <매드 맥스> 코스프레다. 맥스 캐릭터나 나이트라이더 추종자들을 코스튬 하는 것이다. 이 영화 보면서 놀란 것이 에스엠 코드가 있더라. 가죽 소품이나 마지막에 악당에게 수갑을 사용하는 방식도 그렇고, 여성 피해자 목 쇠사슬 같은 게 걸린 것도 그렇다.

관객1: 무릎과 팔이 밟히면서도 절뚝거리며 가는 것이 장철 영화 느낌도 난다. 중간에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은 장면이 나오기도 해서 밀러 감독이 홍콩 영화 취향이 있지 않았나 생각했다. 70년대의 타란티노 같은 느낌도 난다. 그런데 나중에 만든 영화를 보면 이렇게 막 나가는 스타일도 없는 것 같아서 <매드 맥스> 시리즈가 연대기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하다.
이해영: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은 클로즈업 장면은 홍콩 영화의 느낌이기도 하고 얇게 나오는 미국 만화의 느낌, 팝아트의 느낌도 있다. 웨스턴의 영향을 받아서 모사를 하고 있거나 자기 방식으로 변주하는 느낌도 영화 속에 명징하게 보인다. 또 79년도 작품이니까 80년대에 본격적으로 팝 문화가 폭발하기 전에 징후 같은 것이 많이 엿보인다. 이를테면 폭주족 부두목 캐릭터로 나오는 분의 눈 화장이나 폭주족 우두머리가 왼쪽 오른쪽 눈썹을 달리 해서 반은 스모키고 반은 문신한 눈썹처럼 만들어놓은 메이크업이 80년대 팝 밴드들의 이미지 메이킹에 굉장히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 봐도 신선하게 느껴지는데 여기 나온 여러 가지 코드들이 당시에 굉장히 첨단의 트렌드를 섭취한 것이라고 본다. 플롯이나 캐릭터 이런 것들이 뜬금없고 불균질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고, 어떤 것은 편의에 의해서 마구 갖다 쓴 느낌이 있다. 영향 받은 코드들을 자기 그릇에 유기적으로 섞어서 뭔가 하나를 만들었다기보다는, 코드들을 마구 펼쳐놓는 쾌감이 있다. 감독 본인도 느꼈을 것이다. 맥스가 살고 있는 집의 내부 미술 인테리어를 보면 히피 같은 느낌이 든다. 색감이나 패턴이나 집 안에 화초 같은 식물이 있는 것이 히피적인 문화 코드를 여과 없이 반영하고 있다. 패브릭을 늘어뜨린 해먹이 있는 것도 의도적으로 세팅된 것 같고. 조지 밀러는 당시 문화적인 세계의 흐름을 잘 읽으려고 노력했고 첨단의 트렌드가 어떤 것인지 나름의 기준이 있었고 그것을 갖다 쓰는 것에 크게 주저하지 않았던 사람인 것 같다. 하지만 여러 가지 코드를 자기화해서 어떤 것을 갖고 와도 자기 것으로 배설하는 타란티노 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그 점이 조지 밀러의 후기 모습과 연관되어있는지도 모른다.


관객2: 이 영화는 서부극보다 형사 영화에서 발전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더티 해리>가 당시 제일 유명하기도 했고. 또 변방이란 느낌에서 타란티노보다 로버트 로드리게즈에 가깝지 않나. 둘 다 미국은 아니고 떨어져 있는데 다양한 문화를 흡수한 상태고 상징적인 코드들을 많이 담은 느낌이 있다. 그런 점에서 어떻게 보셨는지?
이해영: 로드리게즈에 빗댄 것은 크게 공감한다. 로드리게즈도 할리우드에서 메이저에서 영화를 만들 때보다 자국의 언어로 만들 때 더 돋보이고 날카로운 느낌이 있다. 그리고 <더티 해리>는 사실 원톱의 영웅물이지 않나. 또 <더티 해리>가 이미 웨스턴에서 현대물로 파생된 것으로 봐서 상류로 올라가면 결국 웨스턴이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물론 웨스턴이란 게 여전히 현대 영화에서 선과 악을 어떻게 배치시키고 그들의 대결을 어떻게 비장하게 보여줄 것인가 하는 데 관해서 선구가 되는 레퍼런스이기 때문에, 굳이 이 영화만의 특수한 상황은 아닐 수도 있다.

(정리: 최용혁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관객 에디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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