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토크]<조디악> 봉준호 감독과의 대화 “집착의 정수를 보여주는 영화다.”

2015. 2. 10. 13:402015 10주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Cinetalk

“집착의 정수를 보여주는 영화다.”

2015년 2월 1일 <조디악> - 봉준호 감독과의 대화



정지연(영화평론가) 봉준호 감독의 선택작이 <조디악>이라고 들었을 때 사실 너무 당연하다는 느낌이었다.

봉준호(영화감독) 오늘을 기점으로 연쇄 살인의 세계와 이별하고 싶었다(웃음). 작년에 <살인의 추억> 10주년 행사 때도 배우와 스탭들이 다시 모여 실제 사건 얘기를 나누기도 했었다. 이제 좀 밝고 따뜻한 세상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조디악>을 비행기 안에서 처음 봤다. 초반부에 호숫가에서 아가씨가 칼에 막 찔리지 않나. 그걸 기내식 먹으면서 봤다. 그런데 핀처 영화를 그렇게 작은 화면으로 보는게 꺼림칙해서 거기서 꺼버렸다. 그리고는 DVD룰 통해 일반판과 디렉터스컷을 차례로 봤고, 오늘 이렇게 제일 큰 화면으로 보고 마무리하고 싶었다.

정지연 개봉했을 때도 <살인의 추억>과 비교가 많이 됐었다. 일단 실제로 일어났던 영구 미제 사건이 소재이고, 사건 해결의 실패 과정을 추적한다. 그리고 실제 사건을 다루었기 때문에 재현의 윤리 문제가 당연히 따라올 수밖에 없다는 공통점도 있다. 예전에 감독님을 인터뷰했을 때도 <조디악> 이야기를 잠깐 했던 게 기억난다. <조디악>이 먼저 나왔으면 <살인의 추억>을 못 만들 수도 있었다, <조디악>이 너무 훌륭하다, 이런 이야기 말이다.

봉준호 표절 시비에 휘말리고 그랬겠지(웃음).

정지연 이 영화가 다른 감독을 주눅들게 한다면 어떤 지점이 그럴까.



봉준호 과감한 영화다. 감독이 갖고 있는 집요한 성격이 잘 드러났고, 아주 이상한 영화이기도 하다. 이런 식의 선택을 하는 감독이 흔할 것 같지는 않다. 보면서 느꼈겠지만 드라마가 격렬해질 수 있거나, 감정이 상승할 수 있거나, 뭔가 파열할 수 있는 순간들을 다 건너뛴다. 거의 의도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다. 수도꼭지 끝에서 방울방울 떨어지는 차가운 물이 온몸을 뒤덮을 때까지 물을 확 틀어버리는 게 아니라 아주 서서히 적셔 가는 그런 리듬으로 끌고 간다. 매우 병적인 사람이 아닌가 싶다(웃음).

DVD에 실린 메이킹을 보신 분들은 이 영화가 고증에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알 것이다. 살해된 사람이 입었던 의상의 재현 같은 부분 말이다. <살인의 추억>은 경기도 화성이 이제 아파트 단지로 변해서 80년대 느낌이 남아있는 남쪽 지방에서 많이 찍었는데, <조디악>은 실제 장소에서 다 찍었다. 메이킹을 보면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경찰이 스탭들을 이끌고 범행 장소로 안내해준다. 그런데 사실 거기가 아니었다. 하도 오래된 일이라서 경찰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는데 핀처 감독이 그걸 짚어내고 정정해준다. 그 정도로 핀처가 이 사건에 심하게 몰두하고 집착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이크 질렌할이 연기한 주인공도 자기가 사건을 조사할 이유는 전혀 없는데 끝까지 매달린다. 그런 집착하는 심정은 나도 깊이 공감하고 잘 아는 게, <살인의 추억> 시나리오를 쓰기 전에 6개월 동안 조사만 했었다. 한 4-5개월 지나니 시나리오를 완성할 때 쯤에는 내가 범인을 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웃음). 정말 빠져들면 그렇게 된다. 실제 사건을 영화화하면 아무래도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는 면이 있다. 힘들기도 하고. 그래서 오늘 이 영화를 보면서 이제 완전히 기억을 지우고 싶은 마음이다.

정지영 핀처도 ‘조디악’ 역으로 네 명의 배우를 캐스팅했더라. 감독님도 <살인의 추억>을 연출할 때 범인 연기를 여러 사람에게 시켰다. 그중 마음 속으로 어느 정도 범인이라고 정해놓았던 사람이 박해일 배우였던 것인가.

봉준호 그런 마음을 안 품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물론 영화에선 박해일 씨가 99% 범인인 것처럼 나오고, 형사들도 범인을 잡고 싶은 마음을 박해일에게 투사한다. ‘이 사람이 범인이어야 한다’는 식이다. ‘이 사람은 오히려 결백한 피해자일 수 있다’라는 최소한의 여지를 1% 남겨두려고 안간힘을 썼는데, 도덕적인 문제는 있었던 것 같다. 박해일 씨 캐릭터도 실제 모델이 있는데 그 사람은 97년도에 폐암으로 사망했다. 아직도 이런 걸 줄줄이 기억하고 있다, 10년이 지났는데(웃음). 하여튼 그때 9차 사건으로 죽은 여중생 치마에서 정액 샘플이 나와 그걸 일본으로 보내 검사를 했는데 그 사람 것과 일치하지 않았다. 하지만 제이크 질렌할이나 마크 러팔로가 아서 리 앨런을 끝까지 범인으로 믿고 있던 것처럼 그 사람을 끝까지 범인으로 믿는 형사들이 많았다.

그리고 이런 점이 문학과 비교할 때 ‘보여주는 매체’인 영화의 힘든 점이다. 범인이 박해일인지 아닌지를 특정할 수 없는, 어중간한 어딘가를 만들기가 훨씬 힘들다. 그래서 박해일 씨가 실제로 연기한 장면도 있고 연영과 학생을 단역으로 출연시킨 것도 있고 우리 조감독이 연기한 장면도 있다. 그렇게 세 명이 섞여 있다. 사실 영화에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내가 이 인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도덕적 태도를 견지할 수 있었다.

정지연 학교에서 강의할 때 <조디악>을 틀어주면 학생들이 많이 잔다. 그만큼 잔잔하고 어떤 면에서는 지루할 수도 있는 영화다. 서사를 진행시킬 때 극적인 순간들을 배제시키지만 씬의 밀도는 굉장히 높다. 감독님이 생각하는 명장면이 있다면.

봉준호 따지고 보면 모든 장면이 다 뛰어난데 전체적인 리듬을 어떻게 조절하느냐가 관건인 것 같다. 핀처의 최근작 <나를 찾아줘>를 보면 로자먼드 파이크의 실체가 드러난 후 진행되는 리듬이, 거의 영화를 갖고 노는 수준이다. 한 손으로 영화 찍으면서 뭔가 딴 짓을 하고 있는데도 기차게 찍는 듯한 느낌(웃음). 제정신이 아니구나 이 분이, 이제 경지에 도달했나 보다 그런 생각을 했다.

이 영화에서도 상대적인 속도감의 변화는 있다. 질식할 것 같은 초반의 옐로톤 이후로 제이크 질렌할이 본격적으로 수사에 나서면서 블루톤으로 바뀌고, 템포들을 서서히 높여가는 것이 있는데, 뭐랄까 세면대의 물이 빠질 때 처음에는 거의 눈에 보이지도 않다가 갑자기 확 빠지는 걸 보는 느낌? 그런 조절이 정말 탁월하다. 그것들이 과연 편집실에서만 이루어진 것일까. 어쩌면 이미 찍을 때, 또는 시나리오를 쓸 때 벌써 계획하고 구축했던 리듬이 아닐까. 그런 지점들이 경탄스러웠다.


정지연 개인적으로 핀처 영화 중 <조디악>을 가장 좋아한다. <나를 찾아줘>도 재미있게 봤지만 <조디악>은 특유의 우아한 느낌이 있다. 특히 촬영이 압도적이다.

봉준호 <조디악>의 촬영감독은 이미 고인이 되신 해리스 사비데즈 Harris Savides 다. 구스 반 산트의 <엘리펀트>에서 노란색 티셔츠의 색감이나 이 영화에 나온 크로니클 사의 노란색 기둥 같은 것, 그런 아주 묘한 옐로우는 사비데즈의 촬영에서만 볼 수 있는 색채다. 색을 다루는 테크닉이 대단한 분이었다.


정지연 전에 김우형 촬영감독이 해리스 사비데즈 이야기를 하다 <조디악>은 색깔로 보면 너무 재밌다고 이야기했다. 거기에 유의해서 다시 봤더니 전체적인 톤이 초반의 노랑에서 중반의 블루톤으로, 그리고는 이 영화의 시그니처 컷이라고도 할 수 있는, 금문교에서 부감으로 찍을 때 나오는 아주 짙은 물빛, 정말 악의 심연 자체 같은 느낌을 주는 어두운 블루로 넘어간다. 이런 색채를 구현해내는 건 촬영감독의 역량이지만 그걸 요구하는 건 또 연출자의 몫이 아닐까.

봉준호 금문교 샷이 언급되었으니 말인데 의외로 CG가 사용된 장면도 많다. 고속도로에서 아기를 길 밖으로 던지는 장면이라든가 처음에 바다 위를 날아가면서 나오는 샌프란시코 도시 정경 전체도 애니메이션이다. 택시 기사 살해 장면에서도 도로를 걷는 행인들만 실제로 찍어서 합성한 것이고 나머지는 전부 컴퓨터 그래픽이라고 하더라. 핀처의 집요한 손길 아래에서 CG라는 티가 나지 않도록 컨트롤이 잘 됐던 것 같다. 미술과 촬영, 연출이 적어도 이 영화에서만큼은 완벽한 궁합을 보여주지 않나 싶다.


정지연 제이크 질렌할 대사 중 그런 게 있다. 아내가 왜 그렇게 범인한테 집착하냐고 물으니 자기는 기어이 범인의 눈을 한 번 봐야겠다고 말한다. 결국에는 리가 일하는 가게에 가서 눈을 이렇게 딱 쳐다보는 그 장면이 참...(웃음).

봉준호 그게 영화의 클라이맥스니까 얼마나 황당한가. 그냥 가서 한 번 보고 오는 거다. 쏴 죽이거나 불을 지르는 것도 아니고(웃음). 그런데 그 장면이 영화의 절정이 될 수 있게끔 빚어 나가는 핀처의 솜씨가 대단한 것 같다. 이 영화에선 그게 맞는 거다. 주인공의 그 심정이 매우 절실하게 와 닿았다. 만나고 싶고, 눈을 마주보고 싶다는 그 기분을 백 번 공감한다.

나도 <살인의 추억>을 하면서 무수한 사건 관련자들을 만났지만 사실 가장 만나보고 싶었던 사람은 당연히 범인이었다.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을 일 년도 넘게 많이 했기 때문에 나도 마음이 병드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를 만나면 던질 질문들을 리스트로 만들어서 갖고 다녔었다. 집착이 있는 사람들의 공통점이다. 순수한 집착은 이유가 별로 없다. 그걸 함으로써 어떤 이득이 없는데도 계속 매달리는 그게 진짜 집착이다. <조디악>은 그런 집착의 정수를 보여주는 영화다.

핀처도 아마 영화 속 인물들에 엄청 공감하면서 찍었을 거다. 예를 들어 초반에 제이크 질렌할이 자기가 그리던 만화를 보조석에 툭 던지는 인서트가 있다. 메이킹필름을 보면 그 장면을 찍는데 36 테이크 쯤 간다. 스탭이나 배우들은 아예 그걸 받아들이고 자기들끼리 ‘너는 몇 번에 오케이 날 거 같아?’ 질문을 던지며 즐기고 있는데, 핀처는 혼자 진지하다(웃음).

그런 비주얼에 관한 것 뿐 아니라 연기 연출을 할 때도 열흘 씩 우려서 끓인 사골의 진을 빼는 듯한 느낌이다. 제이크 질렌할이 말하기를, 보통 테이크를 15-20번 정도는 기본적으로 가는데, 컷을 외친 다음 연기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뒤에 있는 소품을 1인치 정도 옮긴다고 하더라. 정말 완벽주의자인 것 같다. 그런데 또 영화는 예산을 맞춰 찍고,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웃음).


정지연 감독님과도 좀 닮은 것 같다.

봉준호 아니다. 나는 매우 즉흥적이고 변덕을 부린다. 사실 <살인의 추억>도 고증에 별로 집착하지 않는 영화였다. <조디악>은 그 집착적인 고증 속에서도 이런 시각적 아름다움이 가능하다는 것이 놀라운거다.

정지연 사실 이 영화는 살인자의 심리나 살인의 의도에 큰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그보다는 추적하는 사람들의 집착적인 심리와 그 과정에서 어떻게 황폐해지고 상처 받는지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진다.

봉준호 중요한 점을 지적하셨다. 범인을 잡고 싶어 했던 사람들이 긴 세월에 걸쳐 마모되고 피폐해져가는 모습을 한편으론 우습게, 한편으론 씁쓸하게 그린다. 그 과정에서 제이크 질렌할을 포함한 인물들의 집착이 더 빛나게 그려진다.


정지연 상처를 줄 수 밖에 없는 시스템과 절차의 부조리함은 <살인의 추억>에서도 다루는 테마다.

봉준호 <살인의 추억>에서는 시스템이 너무 작동이 안 돼서 문제였는데, 여기는 거꾸로 시스템이 너무 잘 돼 있어서 문제다. 무슨 영장 하나 받는데, 이를테면 용의자 집에 한 번 들어가는데도 너무 오래 걸린다. 우리나라 같으면 벌써 집을 뒤지다가 뭘 발견했을 것이다. <조디악>은 오히려 너무 고지식하고 질식할 정도로 꽉 짜인 시스템에서 오는 고뇌를 그린다. 다시 말해 수사 중 얻은 것들이 ‘증거’로서의 효력을 가지느냐의 여부와 수사의 절차에 대한 제약이 너무나 강력하게 주인공들을 짓누르며 고통을 준다.

관객1 <살인의 추억>에서는 한국 현대사에 대한 분노나 반성, 경각심 같은 것이 느껴지는데 <조디악>은 어떤 역사적 고민을 담고 있지 않은 것 같다. 감독님이 핀처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과 앞으로 그의 작업에 대해 바라는 점이 있다면 듣고 싶다.



봉준호 핀처 감독에게 바라는 건 없다. 내 코가 석자다(웃음). 오히려 감독님이 앞으로 어떤 걸 하실지 예측할 수 없으면 좋겠다.

시대 얘기를 하셨는데 나도 <살인의 추억>을 구상할 때 ‘80년대를 담아야 한다’, ‘시대의 심장부로 들어가야 한다’ 같은 목표를 처음부터 세우지는 않았다. 시나리오를 쓰다 보니, <조디악>에도 나왔던 질문인데, 가장 핵심적인 질문이 나왔다. 바로 ‘왜 못잡았을까? 그때 우리가 왜 범인을 잡는데 실패했을까?’ 이다.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다 보니 시대의 분위기를 그릴 수 밖에 없었다. 말하자면 범인을 잡아야 할 사람들은 시대에 뒤처져 있고, 범죄는 시대를 약간 앞서 있는 느낌이었다. 긴 시간 자료조사를 하고 시나리오를 쓰면서 그 갭을 결국 좁히지 못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실패한 원인을 80년대란 시대에서 찾다 보니 당시 정권에 대한 아쉬움이나 경찰이 갖고 있던 한계도 다루게 되었다. 처음부터 ‘한 시대를 통째로 담는 연쇄 살인 영화를 찍자’라는 슬로건이 있었던 건 아니다.

<조디악>같은 경우는 모르겠다. <살인의 추억>보다 다루는 시대의 폭도 큰 편이고, 분명 각 개인의 필터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정지연 영화가 69년부터 시작하는데 당시 70년대 미국 사회가 워낙 격렬한 분위기였고 다양한 면모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시대 묘사가 들어가는 순간 영화 캐릭터들의 심리를 그리는 밀도가 낮아졌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관객2 필름으로 <조디악>을 본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감독님이 일부러 주최 측에 프린트 상영을 요청하신 건지 궁금하다. 그리고 평소 필름을 좋아하신다고 들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봉준호 필름이 옳고 디지털보다 우월하다는 주장을 하는 건 아니다. 그냥 개인적인 선호다. 어릴 때부터 환등기의 질감과 색을 너무 좋아했었다. 프랑스나 유럽의 이런저런 나라들은 아직까지 필름 프린트를 요구하는 곳도 있어서 <설국열차>도 미국에서 프린트를 몇 백 개 만들었다. 한국에도 좀 가져왔는데 그걸 ‘걸어서’ 틀 수 있는 극장이 거의 없다.

개인적으로 필름을 좋아하고, 힘닿는 데까지 필름으로 찍어보고 싶지만 사실상 한국에 있던 필름현상소가 다 문을 닫았다. 다른 나라 영화인들과 얘기해 봐도 상황이 비슷하다. 작년에 LA에서 타란티노 감독과 밥을 먹을 기회가 있었는데 몇몇 감독들이 모여 자비로 소형 현상소를 만들었다고 하더라. 필름 좋아하는 감독들, J.J. 에이브람스랑 크리스토퍼 놀란 등 말이다. 그런데 코닥이 필름 생산을 중단하면 소용이 없으니 그쪽이랑도 담판을 지었다고 했다. 일정 정도 생산만 해주면 그 물량을 다 소화해주겠다고 한 거다. 스튜디오 대표, 프로듀서와도 다 이야기를 끝냈으니 나보고도 자기 현상소 이용하라고, 싸게 해주겠다고 말했다(웃음). 뭔가 좀 처절한 느낌이다. 이렇게 빨리 필름이 없어질 줄은 몰랐다.

그런데 <조디악>의 경우는 좀 다른 케이스다. 처음부터 디지털로 찍은 영화다. 그리고 디렉터스 컷 버전을 상영하려 했는데 그건 블루레이로만 있다고 하더라. 그런데 마침 이 35mm 프린트가 있어서 틀 수 있었다. 사실 오늘 자리는 필름이냐 디지털이냐를 논할 계제는 아닌 것 같고, 개인적으로 큰 화면으로 보고 싶어 추천하였다.

정지연 감독님의 <설국열차>가 지금까지는 마지막 한국 필름 영화다. 그런데 정작 한국에서는 아직 필름으로 상영하지 못한 비운의 영화이기도 하다.

관객3 제이크 질렌할이 맡은 주인공이 신문사에서 만평을 그리는 만화가다. 실존 인물이라도 각색 과정에서 충분히 직업을 바꿀 수 있었을 텐데 굳이 만화가여야 했던 이유가 있을까. 또 데이빗 핀처가 자기 영화에서 저널리스트들을 많이 활용하는 것 같은데 그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봉준호 나라고 해도 만화가라는 직업을 바꾸지는 않았을 거다. 만화가가 수사를 한다는 것 자체가 재미있다. 수사하던 형사는 도리어 포기하는데 만화가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그 상황을 바꾸고 싶지 않았을 것 같다. 그는 연쇄살인마를 쫓는 데 가장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술, 담배 심지어 욕도 안 하는 얌전하고 소심한 사람이 구부정한 어깨를 하고 사건의 심장부까지 미친 듯이 가는 거다. 그 자체가 사실 참 재밌는 설정이고 오히려 그것 때문에 이 원작의 영화화를 기획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제이크 질렌할도 그 캐릭터에 너무 적역이다.

핀처 영화에 저널리스트가 반복적으로 나왔는지는 잘 모르겠다. 사실 기자들을 이용하는 건 작가나 감독에게 좀 비겁한 것이다(웃음). 진행되는 사건이나 드라마를 관객들한테 설명하기가 제일 편한 캐릭터가 기자다. 계속 질문하면 된다. ‘지금 이런 일이 생긴거죠?’ 그러면 관객들도 ‘아 그렇구나’한다. 기자는 스토리텔링을 쉽게 만들어주는 캐릭터다. 사건을 조사하고 질문하고 설명한다.



관객4 리듬을 많이 말씀하시는데 영화의 리듬이란 게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인지 궁금하다.

봉준호 나 자신에게도 늘 던지는 질문인데 사실 잘 모르겠다. 그 비밀의 열쇠를 알면 참 좋겠다. 그 리듬을 컨트롤할 수 있는 기회들이 많은데 그걸 내가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촬영이나 편집 때 불안해진다. 우리가 거장 내지는 마스터라고 부르는 감독들은 다들 고유의 리듬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폴 토마스 앤더슨의 <펀치 드렁크 러브>는 음악적 리듬이 노골적으로 영화를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다. <양들의 침묵>도 끝까지 한 번도 에너지가 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밀어붙이는, 리듬이 훌륭한 영화다.

무엇이 리듬을 규정하는 걸까. 글쎄 뭉뚱그려 말했을 때는 정보량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매우 포괄적인 의미인데, 샷에서 관객이 받아들이는 정보의 양을 두고 하는 말이다. 소리건 비주얼이건 움직임이건 감독들이 그런 부분을 조절하려고 한다. <블레이드 러너>가 지금은 하나의 전설이 된 작품이지만 당시에는 흥행으로도 비평적으로도 성과가 만족스럽지 못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이 어떤 인터뷰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 ‘그 당시에는 몰랐는데 지금은 왜 실패했는지 알 것 같다. 매 장면마다 정보량이 너무 많았다.’ 이런 얘기를 했다. 그리고 오시이 마모루는 <이노센스>를 만들 때 의식적으로 정보량을 극대화했다고 하더라. 결국 리듬은 영화가 완성됐을 때나 확인할 수 있는 것이지, 미리 설계한다고 100% 구현할 수 있는 것도 아닌 것 같다. 그렇지만 흔히 거장이라 불리는 이들은 자기가 머릿속에서 구상한 리듬과 극장에서 관객들이 봤을 때 느끼는 실제 리듬의 오차가 아주 작은 사람이 아닐까.

정리ㅣ 장윤정 자원활동가

사진ㅣ 장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