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토크] <나의 아저씨> 음악인 성기완과의 대화 “시네마테크는 조용한 웃음소리를 만들어내는 공간이 아닐까”

2015. 1. 28. 14:002015 10주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Cinetalk

“시네마테크는 조용한 웃음소리를 만들어내는 공간이 아닐까”

2015년 1월 21일 <나의 아저씨> - 뮤지션 성기완과의 대화


김보년(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팀) 영화를 추천해달라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나의 아저씨>를 꼽았다. 타티의 다른 영화들 중 <나의 아저씨>를 콕 찍어 추천한 이유를 듣고 싶다.

성기완(뮤지션, 시인) 사실 타티의 영화를 다 보진 못했다. 옛날에 학교 다닐 때 프랑스 문화원에서 자크 타티 영화제를 한 적이 있다. 그때 타티를 처음 접한 이후 <나의 아저씨>를 보고 감탄을 했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은 타티가 얼마나 영화를 멋지게 만드는 감독인지 느꼈을 것이다.

이 영화를 추천한 가장 큰 이유는 소리 때문이다. 밴드를 하고 소리와 관련된 일을 하다 보니 소리에 관심이 많다. 특히 소리공간, 혹은 ‘청각공간’이라 할 수 있는 개념이 내 주요 관심사다. 하나의 공간은 여러 겹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생각을 한다. 시각적으로 지각하면 시각공간이고, 청각적으로 지각하면 청각공간이다. 그리고 이 영화에선 특히 청각공간이 두드러진다. 물론 시각적으로도 나무랄 데 없으며, 내러티브 또한 투명한 듯 선명하다. 하지만 이번에는 관객분들이 청각공간의 특징이 잘 나타난 영화를 감상해보면 어떨까하는 마음으로 <나의 아저씨>를 골랐다.

김보년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사운드디자인’을 가르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성기완 영화 쪽에서의 ‘사운드디자인’은 후반작업에서 사운드를 만지는 작업 전반을 가리킨다. 그런데 영화 뿐 아니라 넓은 범위에서 소리를 만지는 모든 일이 사운드디자인이다. 음악, 음향 등 소리와 관련된 작업 모두를 사운드디자인의 범주에 넣고 싶다. 그 큰 틀에서 소리를 다루는 모든 사람들을 사운드디자이너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고, 나도 그런 작업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중 하나다.

김보년 영화를 보면 시골 마을과 도시 공간의 사운드가 완전히 다르다. 특히 도시로 가면 어떤 소음이 계속 들린다. 그런데 그 소음이 사실적인 소리라고도 할 수 없다. 굉장히 특이한 느낌을 받았다.

성기완 모두 ‘만진’ 사운드다. 사운드 녹음하는 분들이 얼마나 고생했을 지 느껴진다. 요즘은 모두 디지털 프로그램을 가지고 소리를 만지며, 그것조차도 쉽지 않다. 그런데 <나의 아저씨>는 디지털도 없던 시대에 영화 전체의 사운드를 그렇게 만졌으니, 아마 ‘노가다’를 했을 것이다(웃음).

그렇게 영화 속 소리들을 모두 만질 때 그 하나하나에 작가의 의도가 숨어 있을 것이다. 말했다시피 이 영화의 소리는 현실적인 소리가 아니다. 예를 들어 첫 장면에서 개들이 뛰어갈 때 개발자국 소리는 나지 않는다. 그런데 말발굽 소리는 난다. 부각시킬 건 부각시키고 생략할 건 생략한다. 이런 소리의 재구성이 영화에 희극성을 기본적으로 부여해주는 것 같다.

김보년 사운드에 따라 공간의 성격도 나뉜다. 시골 쪽으로 가면 이완된 느낌으로 편하게 볼 수 있는데 도시 쪽으로 가면 긴장이 되고 불편한 느낌마저 든다.

성기완 그런 두 청각공간 사이의 긴장이 이 영화를 지탱하는 긴장이다. 이 영화는 1958년 작인데, 당시 프랑스의 시대 배경을 고려해보면 타티가 얼마나 일상적인 소리에 민감한 사람이었는지 알 수 있다. 1945년에 2차 대전이 끝난 뒤 드골이 집권하면서 ‘파리 재개발’이 시작됐다. 지금도 그 개발을 비판하는 사람이 많다. 68혁명으로 드골 정권이 무너지기까지 계속된 재개발 사업으로 옛파리의 건물과 시장 같은 공간들이 다 없어졌다. 그리고 <나의 아저씨>가 바로 그런 재개발의 풍경을 배경으로 한다.

처음에 개들이 뛰어다니는 무너진 공간을 보면 그 뒤쪽에 아파트를 짓고 있다. 그게 중산층 이하의 도시노동자들을 위한 대규모 아파트 단지이다. 그때부터 서민들이 많이 살기 시작했고, 지금은 슬럼 지역이 됐다고 한다. 그렇게 파리의 여기저기가 다 공사현장으로 바뀌고, 많은 것이 부서지고 옛 것은 없어졌다. 그에 따라 도시 풍경도 당연히 많이 변했지만 청각공간 역시 크게 변했을 것이다. 그리고 타티가 도시의 변한 소리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한 것 같다.

영화는 공사 소리로 시작해 공사 소리로 끝난다. 그리고 극 중 사장이 사는 집의 다양한 현대기구들이 작동하는 소리들은 소음에 가깝다. 부엌에서 조금만 움직이려 해도 모터가 ‘부웅’하고 울고, 그 소리 때문에 대화가 안 되는 상황까지 등장한다. 타티는 최첨단 집의 시각적인 면은 예쁘지만, 정작 청각적인 풍경, 즉 청각공간은 야외의 공사장과 다를 바 없다고 느낀 것 같다.

학생들을 가르치며 있었던 일을 하나 소개하겠다. 과제로 서울 시내의 청각공간을 조사해보라고 한 적이 있다. 그중 한 곳이 청계천이었다. 알다시피 청계천 복개공사를 거쳐 공원으로 변했다. 시각적으로 볼 때는 예쁘다. 그런데 그 공간에서 녹음된 소리는 전부 모터 돌아가는 소리, 차 소리와 같은 것들이다. 단적으로 말해 그 곳은 청각공간적 관점에서 공원이라고 할 수 없다. 청각적으로는 쉴 수 없는 곳인 것이다. <나의 아저씨>에 등장하는 시각적으로는 멋있지만 청각적으로는 공사장과 다를 바 없는 최신식 집을 떠올리게 한다.

또 하나 흥미로운 공간은 공장과 윌로씨의 집이다. 공장에는 내내 들려오는 특유의 소음이 있는데, 결국 공사장-공장-사장의 집이 청각적으로 같은 공간으로 제시된다. 그와 대비되는 공간이 윌로씨가 사는 다세대 주택이다. 그 집에는 새 소리와 애들 떠드는 소리, 주로 사람 소리가 많이 난다. 그런 소리가 겹쳐져 마치 합창곡처럼 들린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을 생각해보면 이 영화는 결국 윌로씨마저 그 공간을 떠나야 하는 이야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윌로씨가 떠날 때 집이 허물어지는 장면이 나온다. 새 소리와 사람들의 소리를 공사장 소리가 대체하는, 그런 프랑스의 풍경이다. 개발을 바라보는 파리 토박이들의 서글픔 같은 것이 느껴진다. 이를테면 광화문 광장을 지을 때 그 곳의 은행나무가 베어지는 걸 보며 눈물을 흘린 친척 할머니가 있었다. 바로 그런 안타까움이 <나의 아저씨>에서 느껴진다. 그런 맥락에서 당시 시대상을 정확하게 반영한 영화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김보년 영화에서 제일 좋았던 장면을 하나 꼽는다면.

성기완 너무 많아서 하나만 꼽기는 힘들다. 음악적으로 압권인 장면은 호스가 잘못 뽑혀 나오는 장면이다. 프랑크소시지처럼 나올 때는 통, 통, 통 하는 재미있는 소리가 난다. 또 다른 모양으로 나올 때는 뽕, 뽕, 뽕 한다. 그 리듬과 부웅 하고 돌아가는 모터 발진음이 엮이면서 재미난 조화가 만들어진다.

내가 좋아하는 작곡가 중 에드가 바레즈 Edgard Vardse란 분이 있다. 그는 이미 1930년대에 사이렌 발진음을 악기로서 사용했다. 현대 도시의 소리가 결국 음악이며, 기존의 오케스트라로는 현대 도시의 음악적 풍경을 재현할 수 없다고 생각해 일상의 소리 를 썼던 것이다. 호스 장면은 바로 그런 현대적인 공간의 소리의 조건에서 나올 수 있는 아주 듣기 좋은 오케스트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 공간에서는 음악이 전혀 없는데도 불구하고 굉장히 음악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 하나 꼽자면 공장 사장이 윌로씨가 사는 마을에 새로 산 차를 주차하는 장면이다. 마을 할아버지가 힘겹게 주차 안내를 해주는 것이 굉장히 상징적으로 느껴졌다. 과거의 주거공간, 구도시의 공간에 현대적인 걸 억지로 끼워넣는 것으로 보였다. 심지어 새로 산 자동차의 선명한 색깔을 본 마을 사람들은 “칠하다 말았다”고 말한다. 그것이 새로 현대화된 공간에 대한 옛날 사람들의 반응이 아니었을까. 개발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는 불편함과 낯섦을 그 작은 디테일을 통해 보여준다.

그밖에도 기억에 남는 게 너무 많다. 윌로씨가 유리 반사광을 이용해서 새와 노는 장면은 특별한 의미가 없어 보이는데도 인상에 강하게 남는다. 또 마지막에 윌로씨랑 친하게 지내던 아랫집 여자애가 윌로씨에게 인사를 하는 장면. 버스터미널에서 많은 사람들이 줄 서서 떠나는 장면. 마차가 달리는 장면 등. 정말 많은 장면들이 인상적이고 아름답다. 19세기 인상파 화가의 그림 같다는 느낌도 받았다.

김보년 이 영화의 OST 앨범을 따로 낸다면 트랙을 따로 나누지 않고 115분 짜리를 통으로 내놓아야 할 것 같다.

성기완 요즘 영화들 중 음악을 ‘바른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음악을 두텁게 쓰는 것들이 있다. <나의 아저씨>는 사실 굉장히 시끄러운 영화다. 소리가 너무 많아서 방해된다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복작복작한데, 음악은 사실 두 세 개 밖에 없다. 그걸 조금씩 톤을 바꿔가며 효율적으로 사용한다. 특히 마지막 장면은 무성영화 같은 느낌마저 준다. 훨씬 경제적인 것 같기도 하다(웃음).

김보년 그런 맥락에서 요즘 영화들 중 사운드 측면에서 흥미롭게 본 영화가 있는지 묻고 싶다.

성기완 최근 영화는 아니지만 <소름>(윤종찬, 2001)이 떠오른다. 실내 빗소리가 제일 처음 들리다가 실외로 가면 빗소리가 쏴- 하며 커진다. 그리고 그 소리에 시체를 묻는 삽소리가 섞여 들어간다. 서사적으로 중요한 장면을 사운드를 통해 잘 이끌고 간 경우라 할 수 있다.

외국영화 중에는 <그래비티>가 약간 과하다는 느낌도 들지만 듣기 좋은 전자음들을 시원하게 사용한다. 일상의 소리를 잘 활용하는 감독 중에는 물론 홍상수 감독도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최근 가장 인상적이었던 영화는 아핏차퐁 위라세타쿨의 <엉클 분미>였다. 압권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청각공간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특히 아들의 유령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프레임 바깥의 소리를 쓰는 장면은 정말 놀랍다. 잘못하면 서양영화의 ‘귀신 장르’가 되기 쉬운데 이 영화에선 너무 자연스럽게 이 영화의 세계관 자체를 드러낸다. 그 외에도 앰비언스를 포함해 프레임 바깥의 소리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며 영화의 주제와 형식 전반에 대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관객1 혹시 이번에 <나의 아저씨> 말고 생각했던 작품이 있는지.

성기완 내가 흑인배우 시드니 포이티에를 매우 좋아한다. 소식지에 실린 인터뷰에서도 얘기했었는데, 그 배우가 나오는 영화를 골랐다면 블루스라든지 다른 음악에 대해 이야기했을 것이다.

관객2 영화음악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작업 과정이 궁금하다. 만들어진 영화를 보고 ‘마음대로’ 작곡할 수 있는 것인가.

성기완 질문에 포인트가 있다(웃음). 마음대로 만들었는데 그게 감독의 의도와 잘 맞으면 정말 훌륭한 영화음악가일 것이다. 보통은 여러 번의 수정을 거친다. 나는 원래 밴드를 했으니 노래를 만들 때 멜로디나 가사를 명쾌하게 전달하려는 습관이 있다. 그런데 영화음악에서 그렇게 하면 무조건 ‘빠꾸’를 먹는다(웃음). 멜로디가 주인공처럼 이야기를 멋지게 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배우나 연출이 전달하는 것이고 멜로디는 그 밑에서 나머지 이야기를 해야 한다. 만약 밴드 음악을 영화음악처럼 하면 ‘훅이 없다’는 얘기를 들을 것이다. 영화음악을 하며 주로 듣는 얘기는 밴드할 때와 반대로 “다 좋은데 이건 뺄 수 없니?”란 말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너무 지루하게 가서도 안 되고, 그 선을 맞추는 것이 특별한 재능을 요하는 작업이다.

관객3 영화감독과 좀 더 효과적인 방식으로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성기완 내가 아는 분 중 대단한 영화음악 감독이 한 얘기가 기억난다. “그 영화를 감독만큼, 또는 감독보다 더 잘 이해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러니까 영화를 대충 본 다음 슬픈 장면엔 슬픈 음악, 기쁜 장면엔 기쁜 음악, 이렇게 메우려 들면 안 된다. 감독이 놀랄 정도로 영화를 면밀히 본 다음 100% 이해한 다음 음악을 만들어야 한다. 그럴 때는 다른 커뮤니케이션도 필요 없고 그냥 공유폴더 하나 놓고도 이야기할 수 있는 것 같다.

관객4 청각공간이라는 말이 굉장히 인상 깊다. 소리와 음악의 전문가시니 일상 속에서 소리를 더 예민하게 지각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알려달라.

성기완 나는 음향학을 배운 적은 없지만 음악 쪽 일을 계속 하다보니 소리에 관심을 갖게 됐다. 학생들과 워크샵 같은 걸 하면 한 학기 정도 지나 다들 소리를 듣는 귀가 달라져있다. 귀가 트이는 것도 훈련이 필요하다. 우리가 어릴 때부터 받는 교육은 거의 모두 시각 공간 위주로 짜여있다. 중고등학교때 음악을 공부하지만 소리에 대해서 공부한 적은 없지 않나. 미술에서는 삼원색이라도 배우지, 소리에서는 ‘도레미파솔라시도’만 배운다. 오히려 음대 학생들이 음계라는 체계에 갇혀 귀가 더 닫혀있는 경우도 종종 본다.

내가 권하는 방법은 자기 방의 ‘소리 지도’를 그려보라는 것이다. 가구 배치 같은 시각적 시도가 아니라 소리 지도 말이다. 그러면 자기 방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이쪽은 부엌과 가까워서 엄마 소리가 많이 들리고, 이쪽 벽은 바깥의 소리가 더 많이 들린다. 그렇게 내가 어떤 소리 환경에 놓여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바탕 소리’도 있다. <나의 아저씨> 속 사무실 비서가 아무리 예쁘게 말해도 그녀의 소리 바탕에는 기계 소리가 깔려있다. 그런 것까지 의식하고 들으려하면 귀가 조금씩 트일 것이다. 또 하나는 방에서 들리는 소리들을 멜로디적 요소와 리듬적 요소로 구분해 보는 것. 그럼 그 다음부터 방의 소리가 살짝 음악적으로 들린다. 똑딱똑딱, 징, 똑딱똑딱, 징, 하고(웃음).

김보년 영화를 찍을 때도 제일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앰비언스 ambience, 또는 룸톤이다. <나의 아저씨>는 그 기본 사운드가 엄격할 정도로 통일된 느낌을 준다.

성기완 <나의 아저씨>는 리얼리즘 영화와는 다르다. 리얼리즘 영화는 가능한 리얼한 소리환경을 보여주려 하는데 이 영화는 아예 별도의 틀을 만든 다음 작정하고 부르주아의 뽐냄과 허위 의식을 음악적으로 그린다. 리얼리즘과는 다른 방법으로 리얼한 소리지도를 기호화시킨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김보년 영화 보면서 가장 의아했던 것 중 하나가 윌로씨가 공장에서 온 전화를 받는 장면이었다. 수화기를 타고 마을의 배경 음악 소리가 들리지 않나. 깜짝 놀랐다.

성기완 완전히 비현실적인 장면이다. 처음에는 카페라서 음악을 틀어 놓은 건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타티가 그 마을의 기본 사운드 조건을 음악으로 파악한 것일 수도 있다. 마을의 모든 소리가 이미 하나의 음악인 것이다. 또는 영화의 본성에 대한 타티의 메타 논평일 수도 있다. 전화로 연결된 너머의 공간에서 나는 소리라면 수화기를 통해서도 들리는 게 오히려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같은 소리를 통해 두 공간을 동기화 시키는 것이 처음부터 당연한 것도 아니었다. 장 르누아르의 <게임의 법칙>을 보면 라디오를 통해 서로 다른 두 공간이 동기화되는 장면이 나온다. 오늘 날엔 너무 당연한 장면이지만 당시만 해도 매우 생소한 연출이었다. 방금 이야기한 그런 장면을 통해 타티가 영화사 전통에 대한 자신의 해석, 패러디를 무겁지 않게 던져 놓은 것 같다고 이해를 했다.

김보년 이제 성기완씨의 마무리 인사말을 듣고 마치도록 하겠다.

성기완 요즘 힘든 일도 많고 해서 웃는 영화를 보고 싶었다. 영화 안에 날카로운 시대적 비판 의식이 있는데 그걸 웃음으로서 잘 참아나가는 것 같다. 마지막 윌로씨가 떠날 때도 슬픈 감정을 잡을 것처럼 하다가 탁 덮고 유쾌하게 끝난다. 그런 것들이 좋았다.

그리고 오늘 관객들의 반응도 흥미로웠다. 박장대소가 아닌, 내향적인 사람들이 내는 조용한 웃음소리. 그런 웃음소리가 관객석에서 퍼질 때 좋았다. 사실 시네마테크가 그런 조용한 웃음소리를 만들어내는 공간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이사를 간다고 들었는데 지금 낙원상가도 재미난 청각공간을 가진 곳이었다. 오늘 자리가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


정리ㅣ이상현 자원활동가

사진곽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