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토크]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김조광수 감독과의 대화 “영화를 왜 영화관에서 보아야 하는지 느끼게 해 주는 작품이다”

2015. 2. 3. 11:272015 10주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Cinetalk

“영화를 왜 영화관에서 보아야 하는지 느끼게 해 주는 작품이다”

2015년 1월 31일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 김조광수 감독과의 대화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2007년에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상영했지만 오늘만큼 많은 관객이 오지는 않았다. 김조광수 대표의 인지도 때문인 것 같다.

김조광수(영화감독, 청년필름 대표) <인터스텔라> 때문이 아닐까(웃음).

김성욱 설마 그 재밌는 영화를 보고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보러 오셨을까(웃음).

김조광수 감독의 개인적 취향과는 꽤 거리가 있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 감정선을 보면 굉장히 차가운 영화다. 어떤 이유로 추천했는지 궁금하다.

김조광수 말씀하신 것처럼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스타일의 영화는 아니다. 그러나 시네마테크란 공간에서 관객들과 함께 보며 이야기하기에 적절한 영화라 생각했다. 사실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본 것은 나도 처음이다. 즉 ‘온전히’ 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오늘은 앞과 뒤에 나오는 음악을 온전히 들을 수 있었지만 DVD로 보면 아무래도 그 음악 부분들은 적당히 넘기면서 보고는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렇게 같이 보기를 잘했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왜 영화관에서 보아야 하는지, 그리고 영화가 TV 등의 영상매체와는 다른 감상 문화가 있다는 것을 다시 느꼈다. 그리고 이런 것이 시네마테크의 중요한 기능이라 생각한다.

다시 보면서도 이게 정말 1968년 작품이 맞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 본 것 같은’ 장면들이 많은데, 그게 전부 이 영화가 처음 시도했던 것들이다. 세상에 나온 지 47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근래의 SF영화들에 영향을 주고 있고, 반복과 모방의 대상이 되고 있다. 경이로운 일이다.

김성욱 공개했을 당시 비평가들의 평이 이랬다. “상상력이 부족한 기념비적인 작품”, “놀라울 정도로 지루하고 유감스런 실패작”, “너무 차갑고, 너무 공허하고, 너무 길다” 등등. 극단적으로 큐브릭 감독에게 영화계를 떠나라고 한 반응도 있었다. 드라마도, 플롯도 없는 것 같고, 이해도 잘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동안 많은 사람들이 극장에서 보기 원하는, 어떤 컬트 영화로 자리잡았다. 말씀하신 것처럼 영화를 ‘같이 본다’라는 체험적인 요소가 강조된 독특한 영화로 남았다.


김조광수 1983년, 대학 1학년 시절 비디오로 이 영화를 처음 봤다. DVD란 게 없던 시절이라 4:3 사이즈 화면에 화질도 정말 안 좋았다. 그 조그만 텔레비전에 소리도 들릴락 말락하고, 어떤 건 무슨 소린지 구분도 안 되는 상태로 봤는데 일단 비주얼에 압도당했다. 큐브릭의 다른 영화들을 찾아보면서 역시 내 취향은 아니라고 실망했지만 말이다(웃음).

그 후로도 이 영화의 비주얼이 준 충격은 계속 남아 있었다. DVD를 통해 다시 보니 처음보다 더 많은 것이 보이고 더 많은 것이 들렸다. 이후로도 작은 스크린으로 몇 번 보았지만 언젠가 꼭 극장에서 큰 스크린으로 보고 싶었다. 그래야 큐브릭 감독이 어느 장면을 왜, 어떤 의도로 연출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사실 오늘 이렇게 보고서도 감독이 무슨 말을 하려는건지 파악은 잘 되지 않는다(웃음).

김성욱 얼마 전에 누가 이 영화가 원래 세 시간짜린데 이번에 트는 건 짧은 버전이 아니냐고 물어보더라(웃음). 영화가 하도 지루해서 세 시간이라고 체감했거나 집에서 중간에 쉬면서 보느라 세 시간이 걸린게 아니었을까. 이 영화의 체감 시간은 종잡을 수 없다. 제작자 입장에서는 이렇게 길고 대사도 별로 없는, 그리고 뚜렷한 플롯도 없는 영화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모험으로 느껴졌을 것 같다.

김조광수 맞다. 크리스토퍼 놀란이 <인터스텔라>를 이런 식으로 만든다고 했으면 아마 투자를 못 받았을 것이다. 불친절하고 생략도 많고 관객들에게 지루함을 안겨주는 여러 요소를 갖춘 데다, 제작비까지 많이 드는 영화다. 하지만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고, 그 때 당시의 MGM이라서 가능했던 영화라 본다.

김성욱 이 영화가 나오고 얼마 뒤 <혹성탈출>(프랭클린 J.샤프너)도 개봉했다. 1968년 자체가 사회적으로 대단히 큰 변화의 시기였고, 그런 점에서 본다면 사람들이 무언가를 다른 방식으로 감각하고 느끼고 이해하기를 원했던 시기였다. 바로 그 새로운 감각 자체가 다른 어떤 플롯보다 중요한 영화의 메시지였으며, 이 영화가 안겨주는 경험이 관객들에게 상당한 호응을 이끌어냈던 것 같다. 영화라는 건 결국 특정 시대의 특정한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관계가 있다는 점에서 기술에 대한 것 말고도 이야기할 것이 있을 것 같다.

김조광수 당시엔 68혁명 등 여러 가지 사회적 사건들이 많았다. 그런 맥락과 분리해 이 영화를 정확하게 해석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제작자 입장에서 감상할 때는 의미 이전에 촬영을 포함한 기술적 측면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이 영화는 인류가 달에 가기도 전에 나온 영화고, 즉 우주에서 지구가 어떻게 보이는지도 몰랐던 시절이다. 하지만 큐브릭은 이토록 압도적인 영상을 구현해냈다.




김성욱 감독의 입장에서 특별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있다면.


김조광수 오늘은 블랙홀 통과하는 장면을 보며 ‘와 <인터스텔라>랑 진짜 비슷한데?’라고 생각했다. CG도 없이 필름에 효과를 줘서 만든 건데, 그때 그런 상상력이 대체 어떻게 나왔는지 놀랍다.

김성욱 고백하건대, 극장에서 보기 전에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한 번도 처음부터 끝까지 본 적이 없다. 볼 수가 없는 영화였다(웃음). 큐브릭의 다른 영화는 그래도 재밌게 봤는데 이 영화는 힘들었다. 극장에서 처음으로 봤을 때 정말 놀라웠던 건 참 아무것도 아닌 장면이었다. 우주선 본체와 포드(소형 우주선)가 웨스턴 영화의 결투 장면처럼 딱 마주 서 있는 장면. 아무래도 큰 스크린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정한 감각인 것 같다. 서울아트시네마가 새로운 시네마테크 전용관으로 옮기면 70mm관을 만들어서 틀어보고 싶다.

김조광수 맞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대한극장 등 70mm 상영관이 몇 군데 있었는데 지금은 한국에 한 군데도 없다.

김성욱 영화 체험이라는 측면에서 질문을 하나 드리자면, 예를 들어 옛날에는 영화를 70mm로 만들어서 몇 천 명이 동시에 본다는 걸 전제로 하고 이미지를 구상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장면도 나오는 것이다. 큐브릭도 어떤 크기의 스크린에 얼마만큼의 사람들이 보는가 하는, 그 최적의 규모를 정확하게 계산하고 찍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감독들도 그런 ‘크기’에 대한 고민을 갖고 있는가.

김조광수 TV나 컴퓨터, 심지어 스마트폰으로도 영화를 보는 세상이 됐다. 작은 화면으로도 관객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가지는 고민이 오히려 늘어난 것 같다. ‘스크린 상영을 전제로 촘촘하게 화면에 무엇을 넣으면 관객들이 캐치하지 못 한다’, ‘강렬한 무언가를 준비하지 않으면 관객을 놓친다’ - 이런 이야기가 자꾸 나온다. 그러다 보니 47년 전과 지금의 영화는 굉장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 어떻게 보면 요즘 감독들이 훨씬 더 고민도 많고,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관객1 영화관에서 감상한 건 처음인데 다른 데서 볼 때보다 청각적인 요소가 분명하게 와 닿았다. 숨소리를 따라 가면서 극의 완급이 조절되는 것도 독특하다. 이 영화의 청각적 측면에 대해서는 어떻게 느끼셨는지 궁금하다.


김조광수 영화 전체를 끌고 가는 중요한 두 곡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이다. 큐브릭이 일부러 베를린필에 연주를 맡기고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가고도 몇 분 동안 계속 음악을 들려준 것에는 분명한 의도가 있었을 거다. 시각적으로도 그렇지만 청각적으로도 확실히 극장에서 보아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영화다.

숨소리든 무음이든,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어내는 리듬이 분명 존재한다. 거기에 집중해서 본다면 막연하게 지루하기만 한 영화는 아닐 것이다. 시각이든 청각이든 자유자재로 다루는 큐브릭의 재능에는 매번 주눅이 든다.

김성욱 큐브릭의 다른 영화들과 비교했을 때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참 묘한, 전적으로 체험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극장을 찾을 이유를 발견하게 하는’ 영화다. 일 년에 한 번씩은 극장 상영을 해 줬으면 좋겠다 싶다.

소리에 관련해서는, 음성으로만 존재하는 HAL 컴퓨터와 그것에 대적하는 인간의 말이란 차원에서 목소리의 역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최근 개봉한 <그녀>가 떠오르기도 한다.


관객2 사전 정보가 전혀 없는 채로 관람을 했다. 제목만 보고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와 유사한 내용을 기대했는데 명시적으로 그런 메시지가 드러난 것 같지는 않다. 제목의 ‘오디세이’가 영화 전체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해석에 도움을 주신다면.

김조광수 제목에 “2001”이 붙지 않나. 그때쯤이면 인류가 목성에 가 있겠지, 인류 이외의  고등 생명체의 존재도 발견을 하겠지라는 1968년 당시의 상상에서 출발해 인류와 생명의 기원을 우주적 여정을 통해 그리는 내용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사실은 메시지보다는 처음부터 시청각 효과를 통한 영화적 체험 자체에 감독의 관심사가 집중되어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김성욱 이 영화와 다른 듯하면서도 비슷한 영화가 <샤이닝>이라고 생각한다. <샤이닝>은 집안 내부를 돌아다니는 공포물이고,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우주 공간을 돌아다니는 SF인데 그 두 가지 배경 안에서 조금씩 다른 버전의 판타스틱한 여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한 편의 영화를 관람한다는 체험 역시도 하나의 여정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특정한 방향성 없이 떠돌아다닌다는 측면과 무중력성의 느낌에 비춰볼 때 <인터스텔라>보다는 <그래비티>에 좀 더 가까운 영화라 할 수 있겠다.

관객3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설문 조사 등에서 <블레이드 러너>를 누르고 항상 사상 최고의 SF영화로 꼽히는 작품이다. 어떤 점에서 그토록 모범적이고 가치가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그리고 영화를 볼 때 상영관의 스크린과 영사기, 사운드 설비 등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인데, 특정 영화를 감상하기에 최적의 환경이 어떤 것인지 가이드를 주시면 좋겠다.




김조광수 SF의 최고봉이자 교과서적인 영화로 계속 회자되는 건 이 영화를 기점으로 SF영화에서 다양한 시각적 시도들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소위 말하는 ‘어디서 많이 본 장면’들이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기댄 것들이다. 그리고 Sci-Fi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과학적 요소가 받쳐줘야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단순한 판타지가 아니라 본격 SF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사람들이 이 영화를 1위로 놓는 건 호감보다는 경외심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SF영화 중 <블레이드 러너>를 제일 좋아하긴 하지만 영화사적 의의와 경이로움의 측면에서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능가하기 힘들 것 같다.

그리고 일단 웬만한 영화는 다 극장에서 보기를 권해드리고 싶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최근 개봉한 <마미>(자비에 돌란)를 예로 들어보겠다. 그 영화는 화면 비율이 정사각형이다. 감독이 굳이 1:1 비율을 선택했을 때는 그 비율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공간에서 보는 게 가장 좋은 것이다. <마미>가 기자시사회를 타임스퀘어 CGV 스타리움관에서 가진 것도 그렇게 해야만 1:1 비율의 화면을 조금이라도 더 크게, 그리고 감독의 의도대로 감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보려고 하는 영화의 화면 비율을 고려해 그 비율을 제대로 구현하는 상영관을 찾는 게 좋은 방법 중 하나다.


김성욱 참고로 4:3 화면의 비율을 가진, 주로 50년대 이전에 만들어진 영화는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보기를 권한다.

관객4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스릴러이자 공포물로 보았다. HAL 컴퓨터의 악랄함도 그렇고, 초반에 헤이우드 박사가 모노리스의 발견을 의도적으로 은폐하는 부분은 흡사 히치콕의 스타일을 연상케했다. 후반에는 <샤이닝>의 SF버전이라는 느낌도 받았다.

김조광수 그렇게 보실 부분도 있다. 특히 HAL이 문 안 열어줄 때(웃음). 무섭지 않나. 저러다 죽는 거 아냐? 하면서. 그래도 이 영화는 공포영화라고 할 때 기본적으로 익숙한 장치들 - 음악, 효과음, 컷의 나눔과 연결 같은 것들이 완전히 공포영화의 스타일을 따르는 건 아니다.

김성욱 굉장히 쿨한 공포영화가 아닐까. 차갑고 냉혹하다. 그런데 대체로 오래 살아남는 영화는 감정이 과한 영화가 아니다. 관객수 천 만이 넘어가는 영화들은 시간이 흐르고 나면 상당히 보기 힘들어진다. 그때 그 강렬한 감정이 몇 년 지나면 촌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반면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그 반대 지점에서 보편성을 가지는 것 같다. 그런 점이 여전히 사람들에게 흥미를 줘 1위로 뽑히는 게 아닐까.

또 한 편으로 보면 이제는 이런 영화를 기술이 아니라 투자 때문에 못 만든다. 세월이 지나도 중요한 영화로 꼽히는 건 어떤 반성적인 입장이 들어간 것도 아닐까. 이제 이런 영화는 앞으로 못 만드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 말이다. 그리고 영화 만드는 사람들도 더 이상 관객이 이런 영화를 찾을 거라고 믿지도 않는다.

김조광수 여러 이유로 다시 볼 수 없는 영화다. 여러분들은 오늘 이 자리에서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게 어떤 것인지 느끼셨을 것이다. 그걸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 주면서, 다시 또 극장에서 만나기를 희망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그리고 서울아트시네마 말고는 이런 소통의 기회가 마련되는 곳이 정말 흔치 않다. 이 소중한 공간을 함께 잘 지켜냈으면 한다.

정리 장윤정 자원활동가

사진 최미연 자원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