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작가를 만나다 - 전계수 감독의 <뭘 또 그렇게까지>

10월 작가를 만나다에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다섯 감독들이 만든 프로젝트 영화, 한국의 만나다의 춘천편인 전계수 감독의 <뭘 또 그렇게까지>를 함께 보고, 감독과의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새로운 스타일을 구축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영화세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는 전계수 감독과 함께한 시간을 담아본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먼저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와, 춘천을 영화의 배경으로 설정한 이유를 말씀해 주신다면.
전계수(영화감독): 원래는 아리랑 TV에서 한국의 아름다움을 외국인들에게 소개하기 위해서 TV 영화를 만드는 기획이었다. 저를 포함해서 다섯 분의 감독님들이 도시를 하나씩 선택해서 그 도시가 영화의 배경이자 주제가 되는 영화를 만들기로 했다. 다른 감독님들이 외국인들도 알 수 있을만한 대도시들을 선택하시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소도시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서 춘천을 선택하게 되었다. 춘천에 연고가 있는 것은 아니고, 한두 번 바람 쐬러 갔던 적 밖에 없지만 그 기억을 살려서 만들어 보았다.

김성욱: 처음에 남자주인공이 등장할 때 니체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을 읽다가 기차에 두고 내리는 장면 이후로 니체가 종종 영화에 언급되는데 처음부터 구상했던 것인지.
전계수: 사실 남자주인공 조찬우처럼 저도 니체를 하나도 모른다. 그런데 촬영을 시작할 무렵 정신없는 와중에 우연히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을 읽게 되었다. 내용은 잘 생각이 안 나지만 표제가 마음에 들었다. 처음엔 그 제목을 이 영화의 제목으로 할까도 생각했고, 처음에 찬우가 기차에 두고 내렸던 책을 나중에 찾게 되는 것으로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지만 여건상 그렇게 찍을 수가 없었다.

김성욱:
세계 최초로 특정 카메라를 사용한 영화로 알고 있는데 장비에 대한 설명을 해주신다면.
전계수: DSLR 중에 캐논 5D Mark 2라는 카메라의 동영상 기능으로 촬영했다. 제작비 문제도 있었지만 실제로 테스트 촬영을 했을 때 일반 필름 카메라나 HD급 카메라만큼은 아니겠지만 대단히 영화적인 느낌이 있어서 이 카메라로 촬영하게 되었다. 그런데 워낙 작은 카메라로 찍다 보니까 영화 현장 같은 느낌도 별로 나지 않고 사고도 많았다. 촬영 시기가 여름이라 카메라가 굉장히 빨리 뜨거워져서 촬영 중간 중간에 부채질을 해줘야했다. 사실 큰 화면에서는 어떻게 보일까 걱정을 했는데 화면이 잘 나온 것 같다. 역시 카메라가 워낙 작다 보니 모니터 할 때도 불편함이 좀 있긴 했지만, 그런 사소한 문제점들을 제외하고는 독립영화나 저예산 영화를 하시는 분들이 쓰시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김성욱: 극중에서 찬우와 민호가 서로 뱉은 술을 마시는 장면은 컷이 나누어져 있어서 영화상으로는 확인이 불가능한데, 배우들이 실제로 그렇게 했는지.
전계수: 실제로 하긴 했다. 나는 만류했는데 배우들이 그렇게 했다. 그래서 편집 과정에서도 고민이 많았다. 배우들의 노고를 생각하면 끊지 않고 갔어야 했는데 한 테이크로 가자니 좋은 호흡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잘라 붙였다. 사실 전체적으로 배우들의 노고가 매우 컸다. 주인공 찬우 역의 이동규 씨는 원래 몸이 탄탄하고 매끈한 사람인데 배 나온 장면을 만들기 위해서 화장실을 일주일 동안 안 갔다고 한다. (웃음)

김성욱: 찬우가 맨 처음에 김유정역에서 내리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고, 여자주인공의 이름도 김유정인데.
전계수: 원래는 춘천역에서 찍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헌팅을 갔다가 역 이름이 너무 신기하고 주변 풍경이 워낙 예뻐서 김유정역을 쓰기로 했다. 여자주인공을 김유정이라고 한 것도, 개인적으로 배역 이름에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인데 헌팅 가서 ‘김유정역에서 김유정을 만나다’라는 컨셉으로 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관객1:
유정을 따라다니는 대학생 이민호라는 캐릭터에 대해 설명해주신다면.
전계수: 민호는 20대고 찬우는 30대인데, 민호는 저의 20대 때 모습이고 찬우는 저의 30대 때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20대 때의 철없고 한심하고 무책임한 모습과, 모든 게 무의미하고 가치 없게 느껴지고 따분한 지금의 모습을 충돌시켜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둘이 막걸리를 마시는 장면에서도 20대의 민호는 자기가 10년 후에 저런 모습이 될 것 같아서 화가 나고, 30대의 찬우도 자신이 20대였을 때의 무책임하고 어리석고 집착하는 모습이 보여서 화가 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관객2: 유정 역의 여배우와 작업 중에 어떻게 서로 소통했는지 궁금하다.
전계수: 사실 여배우를 촬영 이틀 전에 캐스팅 했다. 워낙 정신없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프로덕션이었고, 그 배우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데 내일 모레 촬영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한두 시간 정도 인터뷰를 했는데 도저히 배우에 대해서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 채로 남겨둬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처음엔 여배우가 많이 낯설고 어색해했다. 촬영 중에도 밤마다 세 배우가 방에 모여서 영화와 전혀 상관없는, 이를테면 커피 같은 것을 소재로 각자의 캐릭터에 맞춰 역할극을 하기도 했다. 캐릭터에 대해 배우들에게 설명하거나 하는 시간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역할극을 통해서 스스로 만들어가는 방식으로 해보자고 이야기 했었다.

관객3:
영화에 고통과 예술의 관계가 계속 언급된다. 감독님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시는 게 결국은 고통 없이는 예술이 없다는 것인지.
전계수: 제 생각은 ‘뭘 또 그렇게까지’라는 거다. (웃음) 물론 고통 없이는 예술도 없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지금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해답은 없다. 시나리오 쓸 때도 너무 고통스러워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왜 이렇게 고통스러워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조금씩 글이 써지긴 하니까 때로는 고통이 하나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결국은 그게 상황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생기는 자기연민이라는 생각으로 귀결되었다. 영화와는 무관하게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행복하게 살고, 기회가 있을 때 행복하게 작업했으면 좋겠다는 거다.

김성욱: 극중의 예술제에서 상영되었던 영상은 직접 촬영한 것인지.
전계수: 직접 촬영한 것이다. 촬영 전에 헌팅을 갔을 때 마침 춘천마임축제를 하고 있어서 스케치 차원에서 캠코더로 촬영한 것이다. 포커스도 시험 삼아 날려봤고, 거기에 걸맞는 내레이션도 써본 것이다. 사실 이 영화는 아리랑 TV에서 방영될 땐 50분 분량으로 나가야 하는데, 50분으로 편집을 하던 도중에 장편으로 늘리라는 이야기를 들어서 헌팅 때 찍어두었던 장면들을 많이 활용했다.

관객4: ‘뭘 또 그렇게까지’라는 말 자체가 주는 일반적인 어감이 있다. 그게 사람간의 관계에서 쓰일 수 있는 말이기도 하지만 주인공의 성격 또한 드러내주는 것 같다. 그런 제목이 와닿으면서도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는데 어떻게 짓게 되셨는지.
전계수: 원래 극장개봉 목적은 아닌 영화였지만 올 봄에 개봉을 했었는데, 그 때 네이버 평점을 봤는데 ‘뭐 제목이 이따위야’라는 인상적인 코멘트도 있었다. (웃음) 그냥 놔버리고 싶었다. 원래는 <나쁜 충동> 아니면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같은, 주제와 연관되고 다소 철학적인 척하는 제목으로 지었다. 그런데 후반작업 하면서 ‘내가 얘기 하려고 하는 게 이렇게 거창한 게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바꾸게 되었다. 뒤늦은 판단이었지만 제목을 바꾸기는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관객5: 영화 안에서 충동이라는 단어를 상당히 많이 들을 수 있었는데 감독님이 생각하시는 충동이란 무엇인지.
전계수: 사실 영화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다 충동이다. 찬우가 김유정역에 내리는 것부터모든 일이 충동을 따라 흘러가다가, 나중에 유정이 화가의 길을 가지 않고 스튜어디스가 되겠다고 하는 것도 어떤 충동의 발로다. 개인적으로는 충동적인 것들이 고민하는 것보다 훨씬 더 건강하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 움직이게 하니까. 오늘 오랜만에 다시 영화를 보면서 스스로 깨달은 점도 있는데, 이제는 말이 오가는 영화보다는 충동적일지라도 몸으로 부딪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김성욱: 대사에서 ‘춘천은 충동적으로 오는 곳’이라는 표현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런 면에서 춘천이 충동과 어울린다는 생각도 든다. 마지막으로 지금 준비하고 있는 영화에 대해 이야기 해주시면.
전계수: 작년 친구들 영화제에 하정우 씨와 함께 왔을 때 하겠다고 말씀드렸던 영화다. 하정우 씨가 주변에 민폐나 끼치는 소설가로 나오는데, 그 부분은 판타지긴 하지만 소설이 너무 안 풀려서 자기가 쓴 소설의 주인공들에게까지 욕을 먹는 인물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겨드랑이 털을 기르는 여자를 만나서 일이 술술 풀린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여배우들이 잘 안하려고 한다. 누군가 캐스팅 된다면 그 여배우분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주셨으면 한다. (웃음) 작년 친구들 영화제 때 <히스 걸 프라이데이>로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은데 그때 저를 매료 시켰던 스크루볼의 느낌으로 영화를 찍으려고 준비하고 있다.
김성욱: 최근에 별로 좋지 않은 일도 꽤 많은데 관객분들 모두 영화를 보시면서 즐거움을 느끼셨으면 좋겠다. 전계수 감독님도 빨리 영화 작업에 들어가셔서 내년에 관객들과 만나기를 빈다. (정리: 박예하)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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