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작가를 만나다 -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

지난 21일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작가를 만나다’ 프로그램으로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겨줬던 불멸의 걸작,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를 상영하고, 상영 후에 장준환 감독이 직접 참석하여 관객과의 만남을 가졌다. 씨네21 주성철 기자의 진행으로 이뤄진 이 자리는 유수 영화제와 평단의 호응에도 불구하고 개봉 당시 쓴 맛을 보아야 했지만 여전히 영화적 힘을 갖고 있는 <지구를 지켜라>에 관한 못다 푼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차기작이 기대되는 장준환 감독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그 현장을 전한다.


주성철(씨네21기자): 돌이켜 생각을 해보면 <지구를 지켜라>가 2000년대 한국영화 중 크게 흥행하진 못했지만, 끊임없이 얘기되고 있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컬트영화가 아닌가 싶다. 병구는 지구를 지키느라 애썼는데 우리는 이 영화를 지키지 못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전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큰 충격을 받았었다. 모든 장르를 아우르면서도 그 어떤 장르도 아닐 뿐 더러, 병구의 개인사로 시작해 인류의 역사로까지 나가는 영화였기 때문에. 너무 슬퍼 울었던 기억도 난다. 처음엔 단지 개인적인 복수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마지막에 지구를 폭파시키는 장면으로 까지 나아가자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마케팅이나 홍보 방식에 있어 좀 더 다른 방향으로 했었다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감독님은 처음에 어떻게 이 영화에 접근했었는지 궁금하다.
장준환(영화감독): 영화를 보시고 영화 마니아가 만든 게 아닐까 많이들 생각하시는데, 자라오면서 봐왔던 영화들이 자연스럽게 시나리오에 녹아든 것 같다. 이 영화에는 다양한 영화들에 대한 오마주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

주성철: 유인원 연기를 신하균 씨가 직접 하셨다고 들었다.
장준환: 그 땐 왜 그랬는지 고집을 피웠다. 병구와 유인원의 눈빛이 연결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신하균 씨가 꼭 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웃음) 태안반도의 해수욕장에 암석이 많은 곳이 있는데 거기서 마지막 촬영을 했다. 찍고 보니까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와 정말 비슷하더라. 전엔 그렇게 까지 비슷할 줄은 몰랐었는데 말이다.

주성철:
백윤식 씨의 출세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장준환: 사실 그때만 해도 배우들이 영화와 텔레비전의 활동 구분이 많았는데 백윤식 씨는 삼십 몇 년간 텔레비전 활동만 거의 하셨다. 백 선생님이 맛깔스럽게 연기하시는 부분들이 좋아서 백 선생님께 배역을 드리기로 마음먹었었다. 보셔서 아시겠지만 고생을 너무 많이 하셨다. 옷도 거의 못입고. (웃음) 근데 데뷔작이라 열의가 너무 많아서 일부러 제가 고생시키는 줄 아시고 사실 초반엔 오해도 좀 있었다. 머리를 면도하는 것도 그렇고, 많이 괴롭혀드렸는데, 너무나 열심히 하시고 끝날 때는 영화적으로 친구가 되었다.

주성철: <지구를 지켜라>는 얼마 만에 다시 보시는지?
장준환: 저도 극장에서 굉장히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오늘 보니까 영화의 강도가 최근의 <악마를 보았다>라든지 <아저씨>같은 영화들 못지않은 것 같다. 인육을 개한테 먹이는 장면도 있는데 <지구를 지켜라>에선 안 잘리고 들어가 있다. 강도 높은 장면들 중 고심 끝에 뺀 장면들도 있다.
주성철: 그 당시에는 연쇄살인마의 공간 같은 것을 이렇게 미술적으로 표현한 영화가 거의 없었는데 오히려 지금 다시 보니 놀랍다. 시대를 앞서간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관객1: 캐스팅하실 때 배우들의 반응이 어떠했는지?
장준환: 신하균 씨 같은 경우는 꼭 같이 하고 싶었다. 신하균 씨의 취향이 이런 류의 영화를 워낙 좋아하는 것 같다. 작업하면서 신하균 씨는 완전 영화에 빠져있었고, 결과도 너무 흡족하다. 백선생님은 당시 시나리오를 받고 하루는 하고 싶다가도 하루는 너무 힘들 것 같아 망설이고 그렇게 며칠을 고민하다가 아드님이 특이하고 재밌을 것 같다고 추천을 해서 결국은 함께 작업을 하게 됐다. 그리고 목화라는 극단에 박희순 씨와 친구여서 자주 가서 공연을 봤는데, 황정민 씨가 연기를 너무 잘해서 저 친구는 꼭 한번 같이 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순이 캐릭터는 어떻게 보면 남자가 가지는 ‘대지와도 같은 구원의 여인’이라는 판타지가 들어가 있다.

관객2:
2003년 봄에 개봉 당시 함께 영화를 본 사람들이 이 영화를 대부분 코미디영화라고 생각했다. 호러도 나오고 SF도 나오고 해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장준환: 당시 조폭 코미디를 비롯해서 코미디 영화가 대세였다. 마케팅팀에서도 이 영화를 보고 어디에 맞춰야 할지 난감해하다가, 코미디가 대세니까 그렇게 밀고가자고 했던 것 같다.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게, 그건 사실 영화에 대해 거짓말을 한 거였다. 한 부분만을 뽑아서 그게 전부인 것처럼 설명한 셈이니까 말이다. 마케팅 업계에서는 이 영화가 실패의 한 사례로 계속 회자되기도 했다. (웃음)

관객3: <지구를 지켜라>가 영상적으로도 뛰어나지만 스토리가 굉장히 독특한데, 어떻게 구상하시게 되었는지? 그리고 처음에는 병구라는 인물의 복수극으로 착각했다가 결국 모든 게 진실인 것으로 가는데, 처음부터 염두에 둔 것인지?
장준환: <미저리>란 영화를 너무 재밌게, 손을 땀을 쥐며 봤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 결국에 미저리가 처참하게 죽게 되는데, 가슴에 뭔가 남게 되었다. 영화에서 케시 베이츠는 악녀, 미친 사람으로만 표현되어있다. 그 사람이 그 정도까지 갔다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슬픔이나 어떤 고통이 있었을 텐데, 그런 부분이 보이지 않고 끝나버리는 부분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그들의 입장에서 풀어나간다면 어떨까 생각했었다. 지구가 폭파되고 병구의 다큐멘터리 같은 일상사가 보여진다는 것은 이 영화의 스토리를 생각하면서 분명히 머릿속에 그려져 있었다. 어려웠던 것은 관객들과 일종의 게임을 하는 것이었다.

관객4: 감독님 팬으로서 차기작이 기대된다. 요즘의 큰 관심사는 무엇인지?
장준환: 오랜만에 필름 작업한 게 있다. 부산프로젝트라고 해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기획한 영화다. 한국, 태국, 일본의 세 감독이 부산을 배경으로 만드는 사랑이야기다. 올 겨울에 만들었고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보이게 된다. 제목은 <러브 포 세일>이라는 SF다. 머릿속의 사랑의 기억을 사람들에게 팔게 되면서 그것이 상품이 되고 밀거래가 되기도 한다. 최근의 관심사는 제 다음 작품은 뭘까이다. (웃음) 사실 솔직히 요즘 ‘나는 왜 하고 싶은 얘기가 없지’ 이런 생각이 든다. 뭔가 나를 막 끌어 오르게 하는 그런 게 안 생기는 게 요즘의 고민이다.

관객5:
영화를 보면서 설마 했던 일들이 진짜 진행되어 놀라웠다. 일종의 자신감의 표출이었을 것 같고, 사람들이 이래서 천재감독님이라는 얘기를 하나보다 싶었다. (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님에게 제일 망설여졌던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
장준환: 제일 망설여졌던 부분은 마지막에 지구를 폭파하는 장면이었다. 여러 가지 필터가 자꾸 걸리면서 이렇게 까지 하려면 내가 이 영화에 진실한 감정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화 안에 웃음도 많고 패러디도 많지만 이 영화를 장난으로 생각해서는 안 되겠다, 진심을 가지고 마들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세상에 대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 어떤 메시지를 담았다기보다는 제게는 이 영화가 어떤 물음표다.

주성철: 병구의 노트는 직접 다 만드신건지?
장준환: 제가 한 부분도 있고, 미술팀이 한 것 도 있다. 그 작업도 해보니까 상당히 쉽지 않더라. 병구의 마음이 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작업이다. 나름대로 즐거운 작업이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그 노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겠다.

관객6: 감독님 영화엔 판타지의 경향이 많은데, 원래 판타지 문학도 좋아하는지?
장준환: 사실은 책도 많이 안 읽는다. 우연히 보다가 재밌는 거 같으면 좀 읽고 하는 식인데, 아이작 아시모프 단편 같은 걸 굉장히 재밌게 봤다. 인류사 같은 종류의 책들을 관심 있게 본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어렸을 때부터 과학 잡지들을 좋아하고 재밌게 보곤 했다. 지금도 인터넷 뉴스를 보면 과학 기사들을 재밌게 보기도 한다. 텔레비전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관객7: 지구를 폭파하고 난 이후에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왕자는 지구엔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저지르는 포악한 짓에 병구는 저항을 하는데, 왜 병구의 그런 저항을 보면서도 희망이 없다고 하는지 궁금하다.
장준환: 영화상에서 설명되는 것으로는 고통을 많이 받는 사람들이 유전자 결합구조가 느슨해지기 때문에 그 사람들을 실험대상으로 쓰게 되고, 그 유전자 구조가 바뀔 수 있으면 성공이니까 고통 받는 사람들을 찾았던 거다. 괴롭힘을 일부러 주기도 했었다는 부분도 있다. 이란의 사람들이 치타들을 관리하듯 관리하다가, 병구에게 납치 되는 것을 계기로 인간의 마음이 되어서 느끼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병구의 일기를 보면서 울부짖는 장면이 있습니다. 관리직으로서 실험대상들을 보는 것이 아니라, 진짜 희망이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식으로 감성적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성철: 마지막으로 못 다한 말씀이 있다면 해달라.
장준환: 더운데 많이들 오셔서 이 오래된 영화를 봐주시고, 질문도 해주셔서 실은 저한텐 좋기도 하고 부담이 되기도 한다. 즐거운 부담이라고 생각한다. 할 이야기가 없어 고민이었는데, 제 안에서 이제는 조금 시동이 걸리는 것 같다. 다시 좋은 영화로 찾아뵐 수 있기를, 무지개 너머 어디에 더 재밌고 아름다운 영화가 있기를 바란다. (정리: 장지혜)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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