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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샹탈 아커만 회고전] 망명자의 위대한 여행: 샹탈 아커만의 영화세계

[샹탈 아커만 회고전]


 



망명자의 위대한 여행: 샹탈 아커만의 영화세계




나는 위대한 여행을 만들고자 한다...나는 모든 것을 찍고자 한다. 나를 움직이는 모든 것을. 얼굴들, 거리들, 지나가는 승용차와 버스들, 기차역과 비행기들, 강과 바다들...대지와 공장들, 그리고 더욱 많은 얼굴들. 음식, 실내, 문, 창문, 준비되고 있는 식사들.

- <동쪽> 영상 설치작품에 함께 게시된 문구(1995)

1.

돌이켜보면 샹탈 아커만은 손쉬운 규정을 벗어나는 감독이었다. 조너선 로젠봄은 아커만의 작업이 페미니즘과 같은 어떤 하나의 정치적 프로그램에 귀속되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우리는 이 점을 아커만의 대표작이자 문화적으로 커다란 성공을 거둔 <잔느 딜망, 코메르스가 23번지 브뤼셀 1080 Jeanne Dielman, 23 quai du Commerce, 1080 Bruxelles>(이하 “잔느 딜망”)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편으로 아커만은 스스로 이 영화를 페미니즘 영화로 규정한 바 있다.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의 틀에 구획된 주류 영화에서는 배제된 여성의 반복적 가사일을 여성에 대한 관음증적 응시를 벗어나면서 포착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남성적 응시를 벗어나는 방식이 아니라, 요리와 목욕, 장보기와 같은 일상적 행위들을 전개하는 몸짓과 그 몸짓의 리듬을 예민하고도 낯설게 기록했기 때문이다. 여성의 몸과 심리에 대한 아커만의 관심은 여성적 자아의 욕망을 일상의 실험적인 수행들로 극화한 <나, 너, 그, 그녀 je tu il elle>(1974), 그리고 남성의 욕망이라는 감옥을 벗어나 다른 여성을 찾고 스스로 성적 경계의 이행을 체현하는 <안나와의 랑데부 Les rendez-vous d’Anna>(1978)와 <갇힌 여인 La Captive>(2000)의 주인공들로 연장된다. 이 모든 증거들에도 불구하고 아커만은 자신이 페미니스트 감독으로 불리는 것을 거부했다.

어디에도 쉽사리 속하지 않는 아커만의 정체성을 가리키기 위해 망명이나 이주와 같은 키워드를 떠올릴 수 있다. 포스트-누벨바그 시대에 작업했으면서도 벨기에 출신의 유태인 여성이었다는 그의 주변적 위치는 이런 키워드를 자연스럽게 연상시킨다. 하지만 망명이나 이주라는 키워드는 그의 출신성분이나 전기적 이력(그리고 이런 이력이 허구적이거나 자전적으로 반영된 영화들인 <미국 이야기 Histoires d'Amérique>(1989), <저기 Là-bas>(2006), <노 홈 무비 No Home Movie>(2015)와 같은 작품들)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1970년대 그의 문제작들은 뉴욕에서의 거주 경험으로부터 탄생했고, 1990년대 이후의 다큐멘터리들은 하나의 체제에서 다른 체제로 이행하는 사회나 국경 부근에 잠정적으로 체재하는 이주민들과 같은 경계의 공간과 경험에 주목했다. 그러면서도 그의 중요 작품들은 아파트와 같은 한정된 실내 공간을 포착했고, 물리적 공간이 어떻게 인물의 내면과 연결되는가를 탐구했다.

아커만은 장르와 제작양식의 경계 또한 넘어섰다. 2015년 11월 『카이에 뒤 시네마』에 실린 인터뷰에서 필립 가렐은 아커만이 자신과 더불어 개인적이고 장인적인 방식으로 영화를 만드는 포스트-누벨바그 세대의 두 언더그러운드 감독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아커만의 필모그래피 한편을 채운 작품들은 뮤지컬 <황금의 80년대 Golden Eighties>(1986), 로맨틱 코미디 <카우치 인 뉴욕 Couch in New York>(1996), 로맨틱 멜로드라마 <이사 소동 Tomorrow We Move>(2004)와 같은 생동감 있는 장르 영화들, 그리고 <하룻밤 Toute Une Nuit>(1982), <밤과 낮 Nuit et Jour>(1991)과 같은 사랑에 대한 다층적 내러티브 영화들이다. 그는 1980년대의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70년대까지의 언더그라운드 작업을 벗어나 메인스트림 속에서 소통하기를 원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로 인해 종종 메인스트림 영화 제작 시스템과 조우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커만은 개인적인 작업과 영화적 실험을 멈추지 않았다. 마치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경계를 넘나들고 영화 제작과정에 대한 성찰과 상업문화와의 유희를 뒤섞으면서 35mm와 비디오 포맷을 과감하게 공존시킨 그의 영화 <80년대 Les années 80>(1983)처럼.

손쉬운 규정을 벗어난다는 것은 아커만의 작업이 겉으로 보기에는 대립되는 여러 쌍들을 정교하게 공존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영화에는 롱 테이크와 장시간의 트래킹 쇼트 속에 담긴 일상성의 순간들이 있다. 그러나 이 일상성은 육체의 에너지와 풍경의 변화, 사운드의 농밀한 흐름으로 채워진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듯한 침묵으로 그 일상성을 말할 수 있더라도 이 침묵은 그러기에 긴장 속의 침묵이다. 이 침묵은 <잔느 딜망>에서 자신이 구입한 분홍색 잠옷을 살펴보고 고객과의 성행위 전에 거울 앞에서 조심스럽게 옷을 벗는 잔느를 비추는 순간들에서처럼, 미묘한 불편함과 예기치 않은 정서적 폭발을 감추고 있기도 하다. 사실 이 예기치 않은 정서적 폭발의 이면은 한정된 실내 공간에서, 또는 여러 공간들을 가로지르며 펼쳐지는 욕망의 무정부적 분출과 신체의 역동적 리듬이기도 하다. 충격적이고 재기발랄한 데뷔작 <내 마을을 날려 버려 Saute ma ville>(1968)에서 아커만 자신이 연기하는 소녀의 자유분방한 노랫소리(이 음이탈된 듯한 여성의 노래는 <안나의 랑데부>와 <갇힌 여인>에서 반복된다)는 적요한 그의 아파트에 자기파괴적 활기를 불어놓는다. <배고프고 추워 J'ai faim, j'ai froid>(1984)에서 파리에 무작정 도착하여 무전취식과 우연한 만남을 즐기는 두 브뤼셀 소녀의 리듬감 있는 대화, <1960년대 말 브뤼셀의 한 소녀의 초상 Portrait d'une jeune fille de la fin des années 60 à Bruxelles>(1993)에서 소년과 소녀 사이를 왕복하며 사랑과 우정을 배워나가는 주인공의 수다스러움도 이런 연장선에 있다. 말과 목소리의 리듬은 1980년대 그의 작품들에서처럼 비록 장르 영화의 얼개를 취하더라도 몸짓의 리듬으로 연장된다.



                                                  <잔느 딜망>

                                                   <내 마을을 날려버려>

<집에서 온 소식>

2.

아커만의 규정 불가능한 위상이 가장 두드러지는 대목은 모더니즘 영화 제작의 상이한 두 전통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조합하고 체화했다는 점에 있다. 이본느 마굴리스가 지적하듯 이 두 전통들은 북미 아방가르드 영화와 유럽 모던 시네마다. 70년대 뉴욕에서의 체험은 아커만에게 다양한 형식적 자양분들을 제공했다. 앤디 워홀과 마이클 스노우는 그에게 가장 지대한 영향을 미친 두 명의 감독이었다. 이들은 아커만의 주요 영화를 특징짓는 고정 카메라와 트래킹 쇼트, 롱 테이크의 미학만을 제공한 것이 아니다. 아커만은 이들로부터 영화 형식과 영화적 구성 요소의 기능에 대한 구조주의적 탐구를 넘어 영화적 지속이 갖는 복잡한 시간성과 관람 경험의 현상학적 차원을 배웠다. 또한 미국 구조영화의 번성에 영향을 주었던 미니멀리즘과 포스트-미니멀리즘 미술은 관람자의 지각을 영화적 경험의 본성으로 상정했던 아커만의 이념은 물론 그의 주요 영화들을 특징짓는 계열적 반복을 형성했다.

이 모든 교훈들은 <잔느 딜망>은 물론 그가 뉴욕에서 제작한 영화들인 <방 La Chambre>(1972), <호텔 몬터레이 Hotel Monterey>(1972), <집에서 온 소식 News from Home>(1976)에서 구체화되었다. <방>에서 파노라마처럼 360도로 패닝하는 카메라는 움직임과 정지 사이에서 진동하는 영화 매체의 본성을 성찰한다. <호텔 몬터레이>에서 고정 카메라로 포착된 복도는 표면으로서의 이미지를 넘어 선과 면으로 추상화되고, 복도를 따라 이어지는 수직적 트래킹 쇼트는 심도의 환영에 대한 지각을 일깨운다. <내 마을날려 버려>에서 처음 꽃피웠던 감각하는 몸의 수행적 활기에 대한 관심은 이본느 레이너 Yvonne Rainer 등과의 교류를 통해 <나, 너, 그, 그녀>에서의 다채로운 퍼포먼스로 승화되었다. 그러나 아커만의 영화들에는 영화의 물질성에 대한 북미 아방가르드 영화의 형식주의적 탐구를 넘어서는 다양한 유럽 모던 시네마의 전통들이 내장되어 있다. 극적 사건이 배제되고 잉여적으로 취급되는 일상적 시간에 대한 네오리얼리즘적인 관심, 캐릭터의 연극적인 깊이감을 지우고 표면으로서의 세계를 구축하는 로베르 브레송과 칼 테오도어 드라이어의 영화들, 그리고 영화장치에 대한 반-환영주의적 성찰을 재현의 정치라는 문제로 승화시킨 고다르의 교훈 등이 아커만의 미니멀리즘적 방법론에 스며들어 있다.

이 다양한 영향들로 인해 아커만의 영화들은 사실적이면서도 사실적이지 않은 듯한 이중적 느낌을 자아낸다. 마굴리스가 아커만의 영화를 하이퍼리얼리즘 영화 hyperealist cinema라 명명했던 것은 바로 이 이중적 느낌 때문이다. 현실의 평범한 디테일들이 너무나 두드러지기에 현실의 재현적 측면을 환기시킴은 물론 이러한 측면을 구성하는 영화의 물리적이고 물질적인 측면마저도 관람자의 육체를 자극하는 그런 사실주의다. 아커만의 영화를 일차적으로 규정하는 고정 카메라는 프레임 내부의 기록된 현실을 지속적으로 지시하면서도 프레임이 형성하는 경계(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에 대한 지각을 일깨우고, 평면성과 깊이감 모두를 전달한다. 연장된 지속으로서 체험되는 실시간 real time이라는 시간성은 아커만의 하이퍼리얼리즘을 규정하는 중요한 미적 요소다. 카메라로 기록된 지속은 일상의 극적인 시간성은 물론 그 시간성을 형성하는 영화장치의 물질적 국면들을 지향한다. 프레임 내부의 시간은 그것이 현실의 시간과 근접하면서 연장될 때 역설적으로 프레임 바깥으로 흘러나온다. 이로부터 두 가지 시간성들이 환기된다. 카메라의 작동으로 형성되는 시간성, 그리고 스크린상의 이미지가 지속하는 동안 관람자가 몸으로 체험하는 관람의 시간성. 아커만은 이처럼 일상성의 시간을 이미지로 구축하는 유럽 모던 시네마의 전통을 놓지 않으면서도 프레임 바깥의 차원들에서 구성되는 영화적 시간성들에 대한 아방가르드 영화의 관심을 자신의 방식으로 포용했다. 이러한 다층적 시간성들의 공존은 아커만이 구스 반 산트, 아핏차퐁 위라세타쿨, 차이 밍량, 지아 장커 등 오늘날 ‘슬로우 시네마 slow cinema’라는 – 분명히 의심스러우며 논의의 여지를 남기는 – 비평적 용어로 묶이는 감독들의 선구로 간주되면서도 그들과 구별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 두 전통들의 조합 이외에도 아커만의 영화세계에서 또 다른 흥미로운 조합을 발견할 수 있다. 실험영화와 다큐멘터리라는, 얼핏 보면 서로 대비되는 두 영화적 실천 양식의 조합이 그것이다. 이 둘의 조합이 최초로 이루어진 <집에서 온 소식>은 여행기로서의 에세이 영화에 대한 모범사례다. 그러나 이 둘의 조합이 본격적으로 구체화된 작품들은 <동쪽 D’Est>(1993), <남쪽 Sud>(1999), <국경 저편에서 De l'autre côté>(2002), <저기>로 이어지는 1990년대 이후의 일련의 실험적 다큐멘터리들이다. 사회주의 체제 이후의 동유럽의 황량한 경관과 거주자들의 불안정한 상태를 기록한 <동쪽>, 미국 텍사스주에서 일어난 흑인 살인사건 이후의 공동체와 풍경을 탐구한 <남쪽>, 그리고 멕시코와 미국 국경의 불법체류자들의 위태로운 삶과 황폐한 자연을 기록한 <국경 저편에서> 등에서 다큐멘터리와 실험영화는 서로를 생산적으로 보충한다. 고정 카메라와 장시간의 트래킹 쇼트로 대표되는 아커만의 실험적 기법들은 영화매체 자체에 대한 성찰을 넘어 민속지적 탐구로 연장된다. 이 기법들은 다큐멘터리를 구성하는 지표적 이미지의 진정성을 해체하면서도 물리적 풍경에 심리적이고 지정학적인 차원을 더한다.



<나, 너, 그, 그녀>


<방>


<밤과 낮>


                                                        <노 홈 무비>


                                                         <동쪽>

3.

이 자리를 빌어 국내 시네필들에게는 아직까지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는 아커만의 영상 설치작품들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말하고 싶다. 1990년대 중반 <동쪽>의 영상 설치작업 버전을 제작한 이후 아커만은 극장을 넘어 미술관에서 영화적인 비디오 설치작품들을 제작해 왔다. 니콜 브레네즈와의 인터뷰에서 아커만은 설치작품에 대해 “굴욕적인 제작 조건들이 없는 영화이자 영화의 모든 부담들로부터 자유로운 영화”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언급은 1980년대에 주류 영화계와 작업하면서 고충을 겪은 아커만에게 미술관이 자신의 영화적 실험과 장인적 제작 방식을 연장하고 영화적 지속의 경험을 보존할 수 있는 대안적 플랫폼으로 다가왔음을 드러낸다. <텅 빈 냉장고 속의 구두끈을 따라 걷기 Marcher à côté de ses lacets dans un frigidaire vide>(2004), <앤트위프의 11월의 여자들 Femmes d’Anvers en Novembre>(2007)과 같은 다채널 설치작품들에는 아커만이 극장용 영화에서 탐구한 주요 키워드들이 포진해 있다. 안과 밖의 분리와 중첩, 이주와 잠정적 거주의 경험, 일시적 정지와 이행의 공존, 물리적 공간과 정신적 공간의 혼융, 무위와 불안의 교차 등이 이 작품들의 이미지와 스크린 건축술에 반영되어 있다. 줄리아나 브루노가 적절하게 요약하듯, 아커만의 설치작품들은 스크린을 이행과 경계의 장소로 구축하면서, 그의 극장 기반 영화들이 추구했던 거주와 여행의 미학을 갤러리에서의 보행적이고 수행적인 관람성으로 연장시킨다.

아커만의 마지막 영상 설치작품 <지금 NOW>(2015)은 극장과 갤러리를 넘나들었던 그의 영화적 실험이 죽음 직전까지 경계 횡단과 잠정적 체재로 이루어진 여행이었음을 입증한다. 2015년 베니스비엔날레 파빌리온에 전시된 이 작품은 5개의 스크린을 V자 모양으로 배열한다. 각 스크린을 채우는 이미지들은 아커만이 자신의 블랙베리 휴대폰으로 달리는 차 안에서 촬영한 사막 지대의 풍경들이다. 모래 평원과 갈색 언덕, 푸른 하늘의 풍경들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펼쳐지면서 서로 겹쳐진다. 가장 가운데의 스크린은 이 풍경들의 차이와 중첩을 포착할 수 있는 소실점처럼 자리한다. 아커만은 관람자가 스크린들 사이를 가로지르거나 이 스크린들 전체를 멈춰 선 채 조망하면서 이동과 일시적 정지의 경험을 몸으로, 눈으로 만지듯이 느낄 것을 권유한다. 그런데 아커만의 실험적 다큐멘터리 작품들을 연상시키는 이 사막의 풍경들은 중립적인 자연이나 공적 공간의 건축술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 작품이 설치된 방 천장에는 두 개의 프로젝터가 설치되어 있고 그것들은 아커만의 침대 커버 이미지를 바닥에 투영한다. 전시장 중심에 견고하게 자리잡은 이 모호한 이미지는 아커만이 기록한 사막의 풍경들이 물리적 공간을 넘어 심리적 공간임을 암시하면서 안과 밖, 스크린과 스크린 바깥의 경계를 드러내는 동시에 지워버린다. 그리고 전시장 전체를 두텁게 채우고 스크린들 사이의 경계들을 넘나들면서 불협화음을 이루는 사운드들이 있다. 종달새의 지저귐, 총성, 전화 통화음과 흐느낌, 엔진 소리, 헬리콥터의 이착륙음. 사막의 풍경이 일차적으로 환기하는 비어 있음을 채워버리는 이 모든 사운드들은 순수한 표면들로서 지속하는 사막 이미지들에 깊이를 더한다. 이 소리들이 더해질 때 스크린의 자연적 풍경들은 기억과 감정이 서린 지정학적, 사회문화적 경관들로 승화된다.

이 사막들은 지금 우리를 둘러싼 지역적, 인종적, 종교적 갈등의 여러 구체적 장소들을 환기시킬 수 있다. 그러면서도 이 사막들은 어떤 특정한 지정학적 장소에 정박하지 않으며, 아커만이 실천했던 영화적 여정과 그 여정 속에서 예민하게 담아낸 변화하는 풍경 자체일 수도 있다. 그의 다채로운 영화적 여정은 지상에서는 멈췄지만, 극장과 갤러리를 넘나들며 우리와 조우하면서 영화적인 것과 그 너머의 문턱으로 우리를 데려갈 것이다.

김지훈 영화미디어학자, 중앙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