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무협영화가 아닌 무협영화”

- 허우 샤오시엔 & 이창동 대담



“2016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는 특별한 친구가 함께 했다. 바로 허우 샤오시엔 감독이다. ‘허우 샤오시엔 데이’ 였던 지난 1월 28일에는 그의 추천작인 <부운>, <무셰트>와 신작 <자객 섭은낭>을 연달아 상영했다. 그리고 자신을 기다리는 관객들로 가득한 상영관을 찾은 허우 샤오시엔 감독은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차분히 들려주기 시작했다.





김영진(영화평론가) 영화 잘 보셨나요. 허우 샤오시엔 감독님과 이창동 감독님을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허우 샤오시엔(영화감독) (한국말로)안녕하세요. <자객 섭은낭>을 여러분이 좋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영진 이 자리에 오기 전 식사를 하면서 ‘소맥’을 두 잔 마셨는데, 오늘 무슨 말을 할지 많이 걱정이 된다. 이창동 감독께 먼저 <자객 섭은낭>을 어떻게 보았는지 물어보고 싶다.


이창동(영화감독) 나는 소맥을 먹지 않았지만(웃음), 이 영화를 본 여러분들의 상태가 소맥을 두 잔 정도 먹은 상태가 아닐까 싶다. 허우 샤오시엔 감독님이 무협영화를 찍는다는 소문을 들은 게 거의 십 년 전이었는데 그때부터 계속 이 영화를 기다려왔다. 현존하는 감독들이 만든 어떤 무협영화보다도 가장 보고 싶었던 것이 바로 허우 샤오시엔의 무협영화였다.

<자객 섭은낭>을 보고 처음 든 생각은, 이 영화가 무협영화의 경계를 넘는 무협영화라는 것이었다. 무협영화가 아닌 무협영화 - 이 말에는 많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어떤 말로 설명하기 좀 곤란한 느낌이다. 그 생각을 이 자리에서 말로 전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김영진 이창동 감독의 이 말에 대한 허우 샤오시엔 감독님의 생각이 궁금하다.


허우 샤오시엔 술은 다 같이 마셨는데 이창동 감독님은 멀쩡한 것 같다(웃음).


김영진 이창동 감독도 이야기를 했지만 허우 샤오시엔 감독이 만든 무협영화는 어떨지 예상을 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니 이건 진짜 허우 샤오시엔이 만들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자객 섭은낭>은 조그만 단편에서 가져온 이야기라 알고 있다. 특이한 건 여자가 주인공이고, 여자들의 무공이 출중하다. 제일 처음 이 단편의 어떤 주제에 끌렸었는지, 원작의 어떤 부분을 영화로 길게 보여주고 싶었는지 듣고 싶다.


허우 샤오시엔 <자객 섭은낭>의 원작 소설은 내가 대학시절 때 읽었다. 어릴 때부터 무협소설을 좋아해서 자연스레 빠졌다. 처음 소설을 읽고 받은 느낌은 무협이라기보다는 ‘일반 소설’ 같다는 것이었다. 그냥 당나라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을 묘사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 받은 특별한 느낌이 있었기 때문에 언젠가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대학 때부터 했었다. 결국 삽십 년, 사십 년이 지나서야 만들게 되었다.

어린 시절, 형님이 무협을 좋아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도 따라봤다. 학교 도서관에서 소설책을 한 셋트씩 빌려서 봤었다. 그렇게 무협소설과 무협영화를 많이 보면서 무협에 대한 나의 생각을 키워왔다. 무협영화를 빨리 찍어야겠다고 생각을 한 건 내가 곧 있으면 나이 70이 되기 때문에 더 빨리 찍지 않으면 시간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왜 여성이 주인공인 <자객 섭은낭>이 첫 작품이었나. 어떻게 보면 서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기 뿐 아니라 장첸, 원경천, 쓰마부키 사토시 등 이 영화의 배우들은 모두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이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의 특징은 배우로서 뿐만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매우 훌륭한 인품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평소 행실도 바르고 정직하다.


김영진 이창동 감독께 다시 묻고 싶다.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내용을 끼워맞추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깊은 인상을 받았다. 왜 그런가 생각해봤더니 이 영화만큼 배우의 움직임에 집중을 하게 만드는 영화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대부분 무협영화의 움직임은 퍼포먼스처럼 기계적인데 이 영화는 매우 효과적이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수직과 수평의 움직임은 그 자체가 섭은낭이란 인물을 뛰어나게 묘사한다. 방금 무협영화의 경지를 뛰어넘었다고 했는데, 특히 어떤 연출에 꽂혔는지 듣고 싶다.


이창동 말로 쉽게 이야기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내용을 파악하기 힘들다고 했는데, 사실 이 영화의 서사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객 섭은낭>은 무협영화이면서 무협영화가 아닌, 무협영화의 관습을 벗어난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스타일을 보여준다.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다른 영화도 그렇듯이, 서사가 필요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중요시되지는 않는다. 서사는 영화를 통해 보여주려 하는 것을 전달하는 최소한의 장치일 뿐, 결코 서사를 따라가지는 않는다. 그런데 우리가 보통 아는 무협소설과 무협영화는 서사성이 굉장히 강한다. 관습적으로 서사가 복잡하게 흘러가다 마지막에 하나로 이어지는 방식이다.

반면 <자객 섭은낭>의 서사는 서사 그 자체를 따라가지도 않을뿐더러 서사를 분명하게 전달하려고 하지도 않고, 어떤 면에서는 흐릿하게 처리되어 있다. 관객들이 서사의 흐름 때문에 긴장을 하거나 서사를 따라가는 걸 가로막고 있다는 느낌이다. 최소한의 상황을 보여줄 뿐이다.

그리고 무협영화의 경계를 넘어섰다고 말한 건, 물론 서사에 관한 말이기도 하지만, ‘무협’ 자체보다 ‘아름다움’을 추구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은 사실 모든 예술 작품이 추구하는 것이지만 이 영화의 아름다움은 특별하게 느껴진다. 아름다움은 아름다움 그 자체로 클리셰일 수 있다. 가령 달력 그림이나 소위 ‘이발소 그림’ 같은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아름다움을 보여주려는 것 자체가 클리셰나 어떤 표준이 되기 쉽다. 그런데 이 영화의 아름다움은 그런 아름다움을 넘어서는 아름다움이다. 진짜로 아름다운 건 아름다움의 ‘선 線’을 넘는 것이라는 걸 느끼게 해준다. 그래서 <자객 섭은낭>에 구현된 아름다움은 어떤 스크린이나, 미술관이나, 박물관 벽에서도 볼 수 없는 것이다. 관객에게 그런 미적 쾌감을 느끼게 하는 영화를 찍을 수 있다는 건 어떤 말로도 설명하기 어렵다. 나도 영화를 찍는 사람이지만 어떻게 저게 가능할까 라는 생각을 했다.


김영진 나도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영화에 나오는 서기가 매력적이라고 늘 생각을 해왔다. 이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슬프지만 슬플 수 없는 표정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걸음걸이도 그렇다. 그런데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영화를 본 뒤 남는 것도 항상 동작이나 표정 같은 것들이다. 그런 맥락에서, 배우들과 이런 연기의 영역을 어떻게 조정하는지 궁금하다. 배우의 원래 모습에서 따온 것인지, 아니면 영화 속 어떤 인물을 상정하고 거기에서 만든 것인지 궁금하다.





허우 샤오시엔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이 ‘섭은낭’이란 이름이었다. 이 소설에 매력을 느낀 포인트가 바로 그 이름이었다. ‘섭聶’이란 글자는 귀耳가 세 개 모여서 만들어진 한자다. 그리고 ‘은낭 隱娘’은 숨어있다는 느낌이다. 즉 ‘섭은낭’을 떠올리며 어딘가에 숨어서 무엇을 듣고 있는 여자의 모습을 상상했다.

최초의 시나리오를 쓸 때 생각한 장면은 섭은낭이 나무 위에서 눈을 감고 주변의 변화를 소리로 느끼다가 때가 되었을 때 나무에서 뛰어내려 대상을 단칼에 죽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촬영이 시작되고 서기를 와이어로 묶은 뒤 나무에서 뛰어내리게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서기가 ‘악’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때까지 우리는 서기가 고소공포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 서기도 우리에게 말을 안 했다. 스스로 한 번 해보려고 했던 것 같다. 결국 그 장면은 만들 수 없었고, 지금 여러분이 본 장면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나는 기본적으로 서기나 장첸에 대해 느낀 감정을 매우 중요시한다. 나는 배우들의 특징에 맞춰 상황을 조정해나가는 편이다.


김영진 이창동 감독은 배우들의 연기에서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특이하게 1인 2역을 한다.


이창동 일단 서기 이야기부터 하자면, 나도 서기를 매우 좋아한다. 특히 <쓰리 타임즈>에서 당구장 부분에 나오는 그녀의 모습을 굉장히 좋아한다. 허우 샤오시엔 감독 특유의 인물들이 연출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냥 우연히 찍힌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당구공이란 것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것이다. 특히 그 장면에서 연출되어 있지 않은 리액션이 나오는 것이다.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으로 서기와 함께 일주일 동안 있을 때 그 장면을 연기한 비결을 물어봤다. 그렇게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연기 연출을 한수 배우려 했다. 그런데 서기의 대답은 “될 때까지 찍었어요” 였다. 그 이야기가 너무 와 닿았다. 그 말이 모든 걸 이야기해주는 것 같았다.

1인 2역이란 건 지금 처음 들었다(웃음). 공주와 여도사가 1인 2역이라고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나는 그게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1인 2역이거나 말거나. 왜냐하면 아까도 서사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서사를 따라가는 건 인과 관계라는 필연성을 따라가는 것이다. 그런데 허우 샤오시엔 감독에게 필연성은 최소한으로 주어져있는 것이다. 아까 당구장처럼 우연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런 영화이기 때문에 ‘이 영화의 스토리가 어떻게 되지?’ 같은 건 별로 신경도 쓰지 않았다. 오히려 서기와 장첸의 어떤 미묘한, 정확히 무슨 감정인지 잘 모를 그런 감정. 그리고 그런 감정을 직접 표현하지 않고 주변의 풍경이나 소리, 불빛, 연기로 표현하는 연출을 즐기고 있었다. 때때로 명상에 잠기기도 했다.


김영진 <오아시스>에 배우로 출연한 류승완 감독에게 똑같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류승완 감독이 이창동 감독의 영화에 출연해 연기 연출의 비밀을 배워오겠다고 했다. 나중에 비결이 뭐냐고 물어봤더니 “별거 없었다. 될 때까지 계속 시키더라”고 말하더라(웃음). 영업 비밀을 안 밝히려는 것인지.


이창동 변명은 아닌데, 연기 연출은 인간과 인간, 감독과 배우의 어떤 화학 작용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어떤 비결이나 방법론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다. 서기 같은 배우도 “될 때까지 했어요”라고 말했지만 그게 사실 될 때까지 한다고 해서 되겠는가(웃음).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허우 샤오시엔 사실 배우들은 내가 반복해서 촬영을 하는 목적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촬영을 할 때 뭐가 제일 좋은 건지 잘 모를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잘 안 되면 다른 장면을 이틀 정도 찍다가 다시 그 장면을 찍기도 한다. 그러다 어느 날 좋은 결과물이 나올 때 오케이를 한다. 감독으로서 내가 생각했던 장면이 안 나올 수 있고, 순조롭지 않을 수 있다. 결과물이 내가 원한게 아니면 도저히 오케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럴 때는 그 장면을 잠시 내려놓고 다른 장면을 찍다가 다시 돌아오고는 한다.


김영진 <자객 섭은낭>은 따뜻한 무협영화라는 느낌을 받았다. 대의를 위해서 희생하고 비극적으로 끝나는 이야기와는 다르다. 섭은낭은 “사사로운 정”에 좌우된다. 그리고 끝도 아주 흐뭇하다. 결말을 보면 ‘잘 살겠구나!’ 이런 생각이 든다(웃음). 무협영화의 많은 클리셰를 정면으로 어기는 셈이다.


이창동 섭은낭이 감상적이라는 말은 극 중에서 두 번 반복된다. 허우 샤오시엔 감독이 방점을 찍어서 관객들에게 이야기를 하는 걸로 느껴졌다. 그게 이 영화의 주제라면 주제이기도 하고, 감독님이 지금까지 자기가 찍은 영화에 대한 말로 느껴지기도 했다. 무공은 완벽한데 인간의 감정에 매여 있다는 건 그 무엇보다 인간의 감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무협영화이기는 하지만 ‘무협이 얼마나 대단한가’, ‘액션영화로서의 쾌감이 얼마나 강한가’ 같은 걸 그렇게 많이 신경 쓰지 않은 것 같다. 인간의 감정을 중요시한다. 그런데 그 감정이 분명한 감정도 아니다. 로맨스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애매한 감정, 그야말로 ‘감상’이라 부를 수 있을 것 같은 인간의 감정을 중요시한다.

결말 역시 이 사람들이 모든 걸 버리고 행복을 찾아서 떠난다, 의 느낌도 아니다. 그냥 어딘가로 가는구나 라는 애매한 안도감을 줄 뿐이지 그걸 ‘해피엔딩’으로 보여주려는 의도도 없어 보인다.





허우 샤오시엔 모든 영화를 통해 모든 걸 명확하게 이야기하는 건 재미가 없는 것 같다. 화면을 통해 모든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도 재미가 없다. 섭은낭의 감정이 모호하지만, 말을 하지 않았을 뿐 행동이 다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에 사부에게 칼을 한 번 휘두르는 것 같은 장면이 자신의 감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유일하게 은낭이 확실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건 부모를 걱정하는 모습이다. 사실 은낭이란 인물은  무술의 고수이지만 자신의 감정을 처리하는 건 잘 모르는 사람인 것 같다. 마지막 임무에 성공한 뒤 떠나는데, 어찌보면 외롭고 고독한 인물이다. 결국 이 영화는 무협이란 형식을 빌어 사랑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신라국’을 거쳐 일본으로 간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신라는 물론 지금의 한국이다. 아마 속편을 찍을 수 있는데, 속편을 찍으면 은낭이 신라에서 일본으로 가면서 아이를 두루 셋 정도 낳을 수도 있다. 아직 어떻게 할지 결정은 하지 않았지만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다.


김영진 정말 신선하다(웃음). 속편이 기대가 된다.


관객 1 : 영화 중간에 화면 비율이 바뀌는 장면이 있다.


허우 샤오시엔 이창동 감독님, 화면 비율이 바뀐 걸 눈치채셨나요?(웃음) 화면 사이즈가 바뀌는 건 별다른 건 아니다. 칠현금이 길다보니 스탠다드 화면을 고정하면 칠현금의 끝부분이 잘리기 때문이었다. 이 영화는 물론 필름으로 찍었지만 디지털로 변환을 했기 때문에 화면비 조정이 편했다.

여러분이 만화를 볼 때는 컷 사이즈가 계속 고정되어 있지 않다. 무어을 강조하는냐에 따라 그렇게 바뀐다. 디지털로 작업을 하면서부터 영화의 화면비라든지, 칼라-흑백의 조정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졌다. 영화에 담는 게 무엇인지가 중요하지 형식은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영화를 만들며 하나의 원칙이 있다. 기본 스토리가 있지만 인물에 따라서 표현의 방식은 시시각각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편집할 때 수정을 많이 하는 편이다. 찍을 때 아무 생각 없이 찍었다가도 편집할 때 괜찮다고 생각하면 남기기도 한다. 내용에 연결되지 않아도 상관없다. ‘괜찮다’고 느끼면 아무 상관 없다. 내 영화를 이론, 상식에 맞춰서 봐주지 않으면 좋겠다. 영화를 몇 번 더 보면 더 잘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관객 2 ‘친구들 영화제’의 추천작으로 <부운>과 <무셰트>를 선택해주었다.


허우 샤오시엔 영화 두 편 다 괜찮았죠? 질문하신 분이 재밌게 보았으면 된 것 같다. 나도 그 영화를 좋은 영화라고 느꼈다. 굉장히 오래 전에 처음 봤었고 생각이 나서 다시 보기도 했었다. <무셰트>는 그 소녀 배우를 캐스팅한 것이 탁월한 선택이라고 본다. 그 소녀가 아니었으면 그 영화를 완성시킬 수 있었을까 싶다.

<부운>은 그 ‘시대’를 묘사한 것이 독보적이다. 우리가 지금 그 시대를 배경으로 영화를 만든다면 그 수준으로 만들 수 없을 것이다.


관객 3  <자객 섭은낭>을 찍을 때 세운 원칙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허우 샤오시엔 어떤 일정한 제한을 둔다는 원칙을 세웠다. 중력의 법칙을 거스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새가 아니기 때문에 마음대로 날아다니는 건 말이 안 된다. 물리적인 현상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찍으려 했다. 리얼리즘을 워낙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중력의 법칙을 지키려 했다. 그리고 인물의 상태, 사람을 중심으로 담아내려고 햇다.


관객 4 감독님의 전작인 <비정성시>, <남국재견> 등 대만의 현실을 그린, 리얼리즘에 입각한 영화를 봤었다. 그런데 <자객 섭은낭>은 그런 것과 거리가 있어 보인다.


허우 샤오시엔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항상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앞에서 찍은 영화들이 대만의 역사를 말했고, <자객 섭은낭>은 당나라를 배경으로 찍었지만 결국 사람에 대한 원칙을 이야기한 것 같다. <자객 섭은낭>이 당나라를 배경으로 했지만 그 시대가 정말 어땠는지는 지금은 아무도 알 수 없다.

지금 시대를 살아가든 과거 시대에서 살든 사람은 많이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물론 생활상에 따라 표정이나 태도는 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영화를 시작할 때 스탭들에게 한 말이 있다.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당나라로 가서 보고 오면 좋겠다, 그런데 당나라를 직접 보고 오면 오히려 영화를 만들지 못할 것 같다, 고 했다. 결국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을 통해 생각하는 것이고, 당나라라는 형식을 통해 사람의 존재 가치와 사람이 지켜야 할 원칙을 알려준다고 본다. 주인공이 자객이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사람은 없다.





김영진 굉장히 오랜만에 영화를 찍었는데 다음 영화는 언제 찍을지 궁금하다.


허우 샤오시엔 이창동 감독과 함께 연구를 해보겠다(웃음).


이창동 나는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영화를 매우 좋아한다. 외국에서 흔히 받는 질문인데, 누구의 영향을 받았나, 누구를 좋아하냐고 물으면 그것만큼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 없다. 사실 뭘 만드는 사람은 모두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는다. 제일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은 아버지, 어머니이다. 그리고 꼭 위대한 작품에만 영향을 받는 건 아니다. 흔히 ‘쓰레기’ 같은 작품을 통해서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누구에게 특정한 영향을 받는 건 매우 어렵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곤혹스럽다. 그런데 나는 편하게 허우 샤오시엔 감독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감독이 있어서 참 좋다. 스필버그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한다(관객 웃음). 해석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을 말하기 마땅하지 않다. 그런데 허우 샤오시엔 감독을 좋아한다고 하면 질문자도 더 이상 묻지 않는다(웃음).

내가 허우 샤오시엔 감독을 좋아할 때 같이 좋아하는 사람이 많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꽤 많은 분들이 좋아한다. 그래서 참 좋다. 내가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도 참 좋고 행복하다. 앞으로 혹시 신라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찍는다면 내가 뭐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웃음). 나도 다음 영화를 만들 수 있게 노력하겠다.


허우 샤오시엔 안녕하세요(한국말로). 한국에서 이런 예술영화관을 운영하는 게 어려운 일일 것이라 생각한다. 나도 타이베이에서 이 정도 규모의 영화관을 운영하고 있다. 예술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이 많지 않으니 운영에 어려움이 많을 거라 생각한다. 이런 영화관을 운영하는 분은 영화를 진정으로 좋아하는 분들일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영화관이 있기에 여러분은 행복한 관객이라고 본다. 많은 지지를 보내주면 좋겠다.

이런 일이 있었다. 타이베이 문화국의 예산을 받아 타이베이영화제를 운영하는데 문화국에서 지원을 끊어 문제가 일어났었다. 대만의 영화인들이 단결해 문제를 해결했다. 그런데 지금 부산영화제가 비슷한 일을 겪고 있다. 부산영화제는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영화제이며 많은 영화인들이 지지를 하고 있다. 영화는 관객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예술이다. 나는 어릴 때 무협영화를 정말 많이 봤고, 그런 것이 나의 상상력을 풍부하게 해주었다. 여러분들은 영화계에 일어나는 일들을 가볍게 생각하지 말고 많은 지지를 보내주었으면 한다.



정리ㅣ김보년 프로그램팀

사진ㅣ장혜진 포토그래퍼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