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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시네토크]“연기라기 보다는 그냥 그 사람 같았다” - 정재영 배우의 추천작 <아들>

“연기라기 보다는 그냥 그 사람 같았다”

- 정재영 배우의 추천작 <아들>



지난 2월 13일, 정재영 배우가 다르덴 형제의 <아들>을 관객들과 함께 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부끄러운 듯 자신의 생각을 들려주었지만 영화와 연기에 대한 정재영 배우의 태도를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자리였다.





정지연(영화평론가) 정재영 배우는 평소에 영화를 많이 보는지, 그리고 어떤 장르를 좋아하는지 궁금하다.

정재영(영화배우) 내가 아무래도 영화 쪽에서 일하는 사람이다 보니 우리 가족들보다는 많이 보는 것 같다(웃음). 오늘 추천한 작품은 다르덴 형제의 <아들>이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르는 SF다. <프로메테우스>(2012)나 <마션>(2015)도 챙겨봤다.

정지연 다르덴 형제는 국내에도 팬이 많은 감독이다. 작년 영화제에서 GV를 하루에 세 번 진행한 적이 있다. 각 감독들에게 영향을 준 감독을 물었는데 모두 다르덴 형제라고 답을 했다.

정재영 사실 다르덴 형제의 영화는 이거 한 편만 봤다(웃음). <방황하는 칼날>(2013)을 준비할 때 감독이 추천해주어 보았다. 처음에는 영화가 너무 불친절하니까 무슨 내용인지도 잘 모르겠고, 끝까지 봐야 하나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몰입이 되더라. 복수에 대한 이야기인 줄 알았더니 용서와 화해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도 아버지이기 때문에 만약 이 영화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다면 복수심을 가장 먼저 가질 거라고 생각하는데 영화를 보고 난 후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멍하게 보고 있었던 기억이 있다.

정지연 이 영화의 배우들은 다들 연기를 너무 잘한다. 다르덴 형제의 작품을 많이 보신 분들은 이미 아실 텐데, 다르덴 형제의 영화에 많이 나온 올리비에 구르메가 주인공 올리비에 역을 맡았다. 올리비에 구르메는 연극을 많이 했고, 영화에서처럼 실제로 목수 일을 하기도 했다. 다르덴 형제의 특징은 연기 경험이 거의 없는 비전문 배우와 함께 작업한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배우들에게 친절한 감독은 아닌 것 같다. 이를테면 리허설만 28번, 테이크만 또 28번을 간다고 한다. 배우들에게 매번 친절히 디렉션을 하는 게 아니라 어떤 상황 속에 놓였을 때의 너 자신을 연기하라고 시킨 뒤 그들의 연기를 끄집어내고 다듬어서 아주 정교하게 찍는다고 한다.

정재영 연기라고 얘기하기 미안할 정도다. 연기를 했다고 느껴지지 않고 그냥 그 사람 같다. 거의 핸드헬드 근접촬영을 하는데, 사실 배우들에게 부담스러운 방식이다. 우리 눈에는 스크린 속 배우만 있는 것 같지만 그 옆에는 많은 스텝들이 있다. 굉장히 가까운 곳에 카메라와 사람들이 있는데 없는 것처럼 연기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리허설 없이 한 번에 연기할 때보다 오히려 반복적으로 같은 장면을 몇 차례 연기할 때 인위적인 것이 끼어들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르덴 감독은 아예 아주 많은 테이크를 가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보면 사실 배우에게는 상당히 힘든 작업이었을 거다.




정지연 여러 감독들과 작업했을 텐데, 어떤 현장이 가장 편했는지 궁금하다.

정재영 더 편했던 현장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 자리에서 말할 수 없다(웃음). 사실 배우들은 현장이 불편하면 연기를 할 수 없다. 시작이 아무리 불편했다고 하더라도 촬영이 들어가기 전에 편한 상태로 만들어 놓은 다음에야 연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장 자체가 불편하면 연기도 절대 편하게 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감독의 스타일이나 영화의 방향성 같은 것들을 미리 알아두고 맞추는 편이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모두 다 편했다(웃음).

정지연 아까 <아들>의 배우들이 연기를 한 게 아니라 정말 그 인물인 것 같다고 말씀하셨는데, 개인적으로 정재영 배우에게 비슷한 인상을 받은 적이 있다. 김수현 감독의 <귀여워>(2004)에서 정재영 배우의 용역 깡패 연기를 봤을 때 정말 그 일을 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정재영 김수현 감독의 스타일도 있었던 것 같다. 감독이 소개해줘서 실제 건달과 두 달간 함께 생활하기도 했다.

정지연 다르덴 형제의 영화에 계급 문제와 더불어서 등장하는 것은 윤리의 문제다. 이 영화도 계속해서 ‘나라면 저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만든다. 영화의 결말에서 정답을 얘기하는 것도 아니다. 아까 화해와 용서라는 말씀을 하셨지만 목공소를 나가도 두 사람이 계속 잘 지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 고민을 유발하고 각자의 방법을 생각하게 하는 영화인 것 같다. 정재영 배우가 만약 올리비에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했을 것 같나.

정재영 일단 적어도 한 대는 때렸을 것 같다(웃음). 캐릭터에 공감하며 보는 영화와는 달리 <아들>의 경우에는 주인공이 왜 저럴까 계속 생각하게 된다. 말씀하신 것처럼 영화 속 두 사람이 계속해서 화목하게 지낼지는 의문이다.

정지연 다르덴 영화는 항상 엔딩에 정답이 없다. <아들>도 불현듯 끝나버린다. 올리비에가 저 소년을 계속 보면서 끊임없이 자신의 상처를 떠올릴 것 같기도 하고, 희망의 기운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다르덴 형제는 음악도 거의 안 쓰고 대사도 많이 쓰지 않아 영화가 느슨한 다큐멘터리처럼 보일 수 있지만, 아까 말한 대로 정말 촘촘하게 연출한 작품이다. 그렇기 때문에 음악 없이도 몰입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정재영 올리비에가 프랑수아의 목을 조르다가 그만두는 장면부터 엔딩까지의 장면은 너무 좋다. 사실 그때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감정은 감독이 배우들에게 설명하기도 힘들었을 것 같다.

관객 1 영화 속 올리비에 역을 맡은 배우에게 놀라웠던 점은 시종일관 무표정하다는 거였다. 그런 표정으로 연기하는 건 꽤 어려울 것 같다. 만약 정재영 배우가 저 역할을 맡았다면 어땠을지 궁금하다.

정재영 내가 저 역할을 했다면 올리비에가 복수의 캐릭터가 되지 않았을까(웃음). 내가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표정의 문제가 아니라 영화가 달라질 거다. 아무리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더라도 배우의 것이 남아있기 마련이라고 생각한다. 외피를 감춰도 배우 특유의 감정 표현은 항상 남아있다. 만약 내가 저 캐릭터를 연기했다면 올리비에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나타날 것 같다.

정지연 <아들> 같은 시나리오가 들어오면 어땠을까?




정재영 던져버렸을 것 같다(웃음). 배우들이 시나리오를 볼 때 사실 상업적 측면을 따질 수밖에 없다. 홍상수 감독이 대본을 먼저 주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웃음). <아들> 같은 대본을 보고 좋은지 안 좋은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내게는 많지 않은 것 같다. 예전에 <러브레터>라는 영화를 아주 좋게 봐서 후에 시나리오를 구해서 본 적이 있는데 너무 재미없더라. 그냥 감독을 믿고 하는 거다. 다르덴 감독이 날 불러주면 좋겠다(웃음).

관객 2 SF 장르를 좋아한다고 했는데, 정재영 배우의 필모그래피에서 SF라고 할만한 작품은 <열한시>(2013) 정도밖에 없는 것 같다. SF 영화에 출연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정재영 <열한시>도 SF를 너무 하고 싶어 찍은 거다. 한국에서 SF영화는 만들어지는 게 없다고 보면 된다. 이전 작품 중 흥행에 성공한 것도 없다. 관객도 그렇고 제작자도 그렇고,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지는 SF는 리얼리티가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내가 알기로 시나리오도 거의 안 만들어지는 편이다.

관객 3 정재영 배우는 작품의 역할에 빠져드는 속도, 그리고 빠져 나오는 속도가 빠른 편인지 궁금하다.

정재영 빠른 편이다. 촬영할 때만 역할에 들어가 있다고 보면 된다(웃음). 일부러 배역에 몰입하려 노력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대신 촬영 기간 중에는 작품과 관련되지 않은 다른 사람들을 잘 만나지 않는다. 촬영지가 수원이면 수원에서 자는 경우도 있다. 집으로 돌아가면 현실이 보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방해될 때가 있다. 역할에서 못 빠져 나와 고생한 경험은 없다. 다만 내가 폭력성이 강한 역할을 맡을 때 약간씩 거칠어진다고 주변 사람들이 가끔 얘기한다. 스스로는 잘 의식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정지연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셔서 감사하다. 요즘 촬영하는 작품은 어떤게 있는지 마지막으로 듣고 싶다.

정재영 홍상수 감독의 신작에 잠깐 나온다. 그리고 예정대로라면 여름쯤에 뭔가를 찍지 않을까 싶다.

정리 황선경 자원활동가

사진 장혜진 포토그래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