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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전/페데리코 펠리니 회고전

만년의 펠리니가 바라던 세상의 모습

[영화읽기] 페데리코 펠리니의 <달의 목소리>


<달의 목소리>는 1993년에 세상을 떠난 펠리니의 마지막 작품으로, 1990년 칸영화제 비경쟁 부문으로 초청되었다. 그리고 이 영화에는 <인생은 아름다워>로 잘 알려진 로베르토 베니니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보름달이 뜬 밤, 우물 속에서 달의 목소리를 홀린 듯 들은 타지오(로베르토 베니니)는 자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환상을 오가면서 여러 사건들을 경험한다. 지붕에 올라가거나, 사다리에 올라가기도 하고, 우물이나 무대 밑으로 내려가는 것과 같은 상승 혹은 하강 운동을 반복하는 타지오는 그 때문인지 마치 달빛을 받아 땅으로 내려온 천사처럼, 혹은 무덤 속에서 살아나온 영혼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는 죽은 뒤 지상을 떠돌며 어린 시절 어머니와 살던 집을 찾아가거나 친구와 만나고 자신이 흠모했던 알디나를 만나기 위해 쫓아다니는 것만 같다.

아마도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타지오가 알디나가 던진 구두를 들고 신데렐라를 찾는 왕자님처럼 마이클 잭슨의 ‘the way you make me feel'이 울려 퍼지는 큰 공연장 안을 헤매는 순간일 것이다. 이 노래가 1987년 발매된 마이클 잭슨의 ’In bad‘의 수록곡 중 하나임을 상기해본다면 화려한 조명 밑에서 정신없이 춤을 추는 젊은이들의 모습은 바로 노년의 펠리니가 영화를 찍을 당시 젊은 세대를 바라보던 시각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이 노래를 중지시키는 것이 1867년 초연 당시 환영받지 못했던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왈츠인 것은 매우 흥미롭다. 이 영화의 세트 건축가인 단테 페레티는 “펠리니는 몽상가이다. 그는 항상 눈을 뜨고 꿈을 꾸곤 했다”라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메데아>에서 <살로 소돔에서의 120일>까지 파솔리니와 여러 차례 작업을 한 경험이 있는 그가 파솔리니는 ‘미술가’, 펠리니는 ‘몽상가’라고 말한 것은 어찌 보면 거의 같은 지점에서 출발한 이들의 행로가 이후에 얼마나 크게 달라졌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내주는 것이라 하겠다.

영화의 마지막 모든 우여 곡절을 겪고 타지오는 달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달과 마주하지만, 결국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달이 지치지 않길 기원하면서 소리를 기다리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세상이 조금만 조용해진다면 무언가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만년의 펠리니가 바라던 세상의 모습이다. (우혜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