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숨기고 웃음으로 무장한

어른들의 비구조화적 세계

- 존 카사베츠의 <얼굴들>

 

 

 

 

 고다르는 영화는 현실의 반영이 아닌 반영된 현실이라는 말은 한 적이 있었다. 정석적이라고 할 수 있는 많은 영화들이 그렇듯 영화 속의 현실은 언제나 잘 구조화 되어있다. 그러나 반대로 존 카사베츠는 현실의 반영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인물들 간 반응은 갑작스럽게 발생하며 짜여있지 않고 예측 불허하다. 어른들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나타낸 이 작품은 인간들과의 관계와 그에 따라 달라지는 인물들의 태도를 끈질기게 바라본다.

 

 

 영화의 서사는 칼로 자른 듯 깔끔하게 나뉘어져 있지 않다. 외려 관객들에게 찢어진 조각보들을 하나하나 던지고 관객들로 하여금 바느질로 잇게끔 한다. 표면적으로 편안해보이기만 했던 부부의 관계는 집을 떠나겠다는 남편의 고백으로 깨져버린다. 남편은 남편대로 친구와 젊은 매춘부를 만나 그녀의 집에서 이미 놀아났고, 아내는 남편이 집을 나간 후 클럽에서 어린 남자를 만나 그와 하룻밤 만에 사랑에 빠진다. 서로의 외로움을 달래고자 그들은 친구들을 만나고 이성과 달콤한 사랑을 나누려고 시도한다.

 

 

 집에서의 파티 장면에서는 급작스럽게 변화하는 상황들로 가득하다. 셋 이상의 사람들이 존재할 때 그들은 서로 농담을 주고받는다. 그러다가 갑자기 누군가가 진심을 담은 정곡을 찌르는 말에 잠잠해지고, 다시 누군가의 한 마디에 모두 연습했던 것처럼 웃음을 터트린다. 성인이라면 누구든지 의례적인 술자리에서 느꼈을 법한 공기가 영화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좋은 분위기를 망치지 않기 위해서 아슬아슬하게 유지하는 그들만의 암묵적인 규칙은 웃음과 가벼운 농담이다. 혹은 그들은 어른들의 세계에서 각자가 위치했던 지위와 체면을 잊어버린 채 유아적인 방식으로 춤을 추거나 상대방의 이름을 가사에 넣어 노래를 부르며 논다. 이 때 즐겁게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는 남녀를 뒤로 하고 소외된 이의 얼굴에는 또 혼자 남겨졌다는 상처가 남는다. 그리고 이를 드러내지 않고 상처받은 사람은 과장된 언행을 하거나 정해진 규칙을 깨고 돈으로 여자를 산거나 마찬가지라는 감춰졌던 진실을 폭로한다. 카사베츠는 이런 어른들 사이의 감정이 감춰지고 드러내는 갑작스러운 순간들을 숨김없이 발견하고 관객에게 드러낸다.

 

 

 그렇게 모여 있던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상처를 받아 떠나고 남녀 단 둘이 남았을 때, 그들은 조금 다른 모습들을 보여준다. 낯선 이들이나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 숨기려고 했던 자신의 외로움이나 약한 모습을 상대방에게 보여주며 위로받고 싶어 한다. 영화 속에서 등장한 '사랑은 항상 사람을 정복하게 만들 거야.'라는 재즈의 가사처럼 단 둘이 남겨진 그들은 세상에는 사랑밖에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하지만 그 관계도 돈으로 사거나 하룻밤의 호기심을 충족하려는 것뿐이다. 주인공 해리와 매춘부나 다를 것 없는 젊은 여자는 해리가 찾아온 밤부터 아침까지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여자는 해리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던 요리를 치우며, 해리가 볼 수 없는 부엌에서 여전히 즐거운 듯 노래를 부른다. 결코 해리가 원하는 여자가 될 수도 그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실을 깨달은 채, 눈물을 애써 닦으면서 말이다. 이처럼 행동과 반대되는 인물들의 심리 상태는 관객들의 숨마저도 순간 먹먹하게 만든다. 해리의 아내인 마릴라와 젊은 남자 채트와의 관계도 그러하다. 젊은 남자 채트는 눈물과 기침으로 얼룩져 콜록대는 마릴라에게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며 언제까지고 함께 있을 것처럼 굴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온 남편의 등장에 바로 줄행랑을 친다. 어른들에게는 사랑이 최상의 행복에 도달할 수 있을 것처럼 여겨지지만 실제 삶 속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뼈아픈 사실도, 역시 감독은 날카롭게 파고들어 관객을 찌른다. 이런 장면들과 서사를 통해 그는 어른들의 진실하지 못한 모습의 현실을 포착한다.

 

 

 그런 성인들의 아슬아슬한 행동들을 영화는 매우 자유로운 방식으로 포착하고 있다. 대조가 강한 흑백의 16mm는 빠르게 변화하는 인물들의 얼굴들에 주목한다. 단 둘이 이야기를 나누거나 혼자 남겨진 순간, 화면을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꽉 채운 그들의 눈과 코, 입은 매우 과장되어 아름답기보단 괴기스럽게 느껴진다. 신경질적이면서도 고독한 그들의 내면을 굳이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관객은 그들이 겪는 일상 속에서의 고통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시종일관 인물들의 표정에 집착했던 영화는 마지막에야 비로소 그들이 떠나고 남은 공간만 지그시 비추는데, 그 순간 이 영화가 가지는 진실을 폭로하는 힘을 관객들은 느낄 수 있을 거다. (윤서연 : 관객에디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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