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베츠와 액션영화의 교집합

 

 

<글로리아>는 존 카사베츠 개인적인 측면에서도, 장르영화의 측면에서도 독특한 위치를 점하는 영화이다. 이 영화는 명백한 ‘액션 영화’의 외양을 취하고 있어 총과 폭탄과 카체이싱, 협박, 살인 등이 무더기로 등장한다. 심지어 차가 뒤집히는 장면까지 나온다. 필름누아르 장르인 <차이니즈 부키의 죽음>조차 일종의 심리 드라마였음을 생각해보면 이 영화는 카사베츠에게는 거의 블록버스터나 다름없는 셈이다.

이런 특별한 기획이 가능했던 건 카사베츠가 이 영화를 연출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카사베츠는 애초에 시나리오만 쓸 생각으로 <글로리아>를 썼지만 시나리오를 읽은 지나 롤랜즈는 자신이 주연을, 그리고 존 카사베츠가 연출을 맡기를 원했다. 그리고 그렇게 <글로리아>는 존 카사베츠의 메이저 스튜디오 복귀작이 되었다.

출발이 ‘기획 영화’였던 만큼 <글로리아>는 서사의 기승전결과 장르적 요소가 뚜렷하다. 혼자 사는 여인인 글로리아는 떨어진 커피를 얻으러 이웃집에 갔다가 얼떨결에 어린 꼬마와 회계 장부를 떠안는다. 그리고 곧 마피아가 들이닥쳐 일가족을 몰살하고 어린 꼬마와 장부까지 찾으려 한다. 글로리아는 하루아침에 마피아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 것이다.

일상 속의 작은 감정을 예리하게 포착하는 작업을 주로 해온 카사베츠에게 이런 커다란 사건들로 이루어진 극적인 이야기를 연출하는 건 쉽지 않은 도전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이미 메이저 스튜디오와의 작업을 하며 크게 데인 경험도 있으니 더욱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평소 갱스터 장르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카사베츠는 과감하게 연출을 결정했으며, 그 결과 <글로리아>는 절묘한 균형감각을 갖춘 카사베츠 표 장르 영화로 만들어질 수 있었다.

 

물론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평자들은 <글로리아>를 그리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영화가 카사베츠의 또 다른 측면을 보여주는 영화이자 역설적으로 카사베츠의 개성을 잘 보여주는 영화라는 점은 분명하다. 특히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에 급작스럽게 등장하는 몇 번의 액션씬은 카사베츠의 독특한 리듬감에 대해 생각하게 해준다. 서부극과 필름 누아르 이래 헐리우드가 수십 년간 갈고 닦아온 액션연출의 교과서적 리듬을 이 영화는 거의 따르지 않은 채 평범한 일상과 분절되지 않은 장르적 순간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특히 지나 롤랜즈가 처음으로 총을 꺼내드는 순간은 어떤 액션 영화에서도 만나기 힘든 순수한 액션의 쾌감을 선사한다.

또한 어떤 스테레오 타입에도 들어맞지 않는 글로리아의 캐릭터 역시 인상적이다. 그녀는 모성이나 이타적인 희생심, 강철 같은 의지와는 거리가 먼 충동적이고 신경질적인 인물로서 그저 매순간 고민을 거듭하며 자신만의 길을 걸어간다. 또한 주로 남녀 간의 애정관계에서 강한 인상을 보여주던 지나 롤랜즈가 작정하고 거리의 악당들에게 에너지를 발산하는 모습은 분명 잊을 수 없는 느낌을 안겨줄 것이다. 카사베츠의 팬과 지나 롤랜즈의 팬, 그리고 장르 영화의 팬을 동시에 만족 시킬 수 있는 유일한 영화인 셈이다. (김보년 /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코디네이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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