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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서울아트시네마 개관 10주년 기념 존 카사베츠 회고전

[리뷰] 존 카사베츠의 ‘오프닝 나이트’

우디 앨런과 알모도바르의 사랑

 

영화 한 편이 새로운 장르가 되는 경우가 있다. 이를테면 무르나우의 <노스페라투>(1922). 하나의 영화가 ‘호러’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었다. 이런 작품을 영화사는 걸작이라고 평가한다. 그 정도는 아닐지라도 한 작품이 다른 작품‘들’의 모티브가 되는 경우도 있다. 그것도 소위 대가들에 의해. 최소한 수작 이상의 평가를 듣는 작품들이다. <오프닝 나잇>(1977)이 그런 영화다.

<오프닝 나잇>의 도입부에서 우리는 폐경기를 앞둔 연극 스타 머틀(지나 롤랜즈)을 본다. 리허설은 끝나고,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데, 극장 밖에서 팬들이 사인을 받으려고 난리다. 그 가운데 한 소녀는 차창을 두드리며 자신의 특별한 사랑을 간절하게 표현한다. 스타를 실은 차는 떠나고, 소녀는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밤의 빗길에서 다른 차에 치여 그만 죽고 만다. 지금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내 어머니의 모든 것>(1999)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게 아니다.

머틀이 지금 준비하고 있는 연극의 제목은 <두 번째 여성 Second Woman>이다. 정체성이란 게 일정한 게 아니라, 변하고, 다른 두 번째 것(Second)이 있다는 이야기다. 말하자면 10대 때의 머틀과 지금처럼 50대를 바라보는 머틀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머틀은 그런 변화 앞에 서툴고, 그 변화를 수용하는 데 애를 먹는다. 늙어가는 여성의 변화를 분신을 통해 표현하는 심리드라마다. 지금 우디 앨런의 <또 다른 여인 Another Woman>(1988)을 말하고 있는 게 아니다.

이처럼 <오프닝 나잇>은 페드로 알모도바르에 의해, 그리고 우디 앨런에 의해 사랑받고 다시 스크린 앞에 불러내진 작품이다. 특히 우디 앨런은 <또 다른 여인>에서 정체성 혼란을 빚는 여주인공으로 지나 롤랜즈를 기용하여, 자신의 작업이 카사베츠 영화의 연장선에 있다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드러냈다.

지나 롤랜즈가 연극스타로, 벤 가차라가 연극감독으로, 그리고 카사베츠는 연극배우로 나온다. 세 사람의 특별한 인연을 아는 관객에겐 몽롱한 기분을 선사하는 영화다. 지금은 카사베츠도 죽고, 벤 가차라도 올해 초 죽고, 지나 롤랜즈만 남았는데, 두 남자는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죽은 날짜가 같다. 2월 3일기 기일인데, 지나 롤랜즈 입장에선 남편이자 감독인 카사베츠, 그리고 동료배우인 가차라를 같은 날에 기억해야 하는 셈이다.

<오프닝 나잇>은 연극에 대한 연극, 영화에 대한 영화, 예술에 대한 예술, 그리고 무엇보다도 삶에 대한 삶을 이야기할 때, 자연스럽게 떠오는 작품으로, 우리를 끝없는 공상으로 이끈다. (한창호/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