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 노동자, 메소드

 

존 카사베츠는 그리스계 미국인이다. 이민 2세로 뉴욕에서 자랐다. 말하자면 부모들은 미국이 이민을 본격적으로 받아들이던 20세기 초에 이주했다. 이들의 신분이 어땠는지는 쉽게 짐작이 될 터이다. 작고, 가무잡잡하고, 곱슬머리의 지중해 혈통 소년은 온전한 미국인으로 대접 받지 못 했다(지금도 그런 차별은 일부 남아 있다). 카사베츠의 사회 주변부에 대한 통렬한 시선은 운명적으로 새겨져 있는 것이다.

<영향 아래의 여자>도 그런 시선이 드러나 있다. 닉 롱게티(피터 포크)는 이탈리아계 미국인으로 L.A.의 건설노동자다. 주연을 맡은 피터 포크는 <형사 콜롬보>로 유명한데, 지중해 쪽 사람들과 외모가 닮은 유대인이다. 게다가 피터 포크의 오른쪽 눈동자가 인공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평생 육체노동만 해온, 그래서 사고를 한 번쯤은 경험했을 것 같은 40대 이탈리아계 노동자를 연기하기엔 이 보다 더 적합한 배우가 없을 듯싶다. 카사베츠의 영화는 캐스팅에서부터 이처럼 현실성이 강하다. 닉의 친구들도 거의 다 이탈리아 남자들이거나 흑인들이다. 신분이 불안하고, 사회로부터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다.

닉의 아내 메이블(지나 롤랜즈)은 전업주부다. 남편을 사랑하는데, 그 방식이 좀 지나치다. 일종의 조울증이다. 너무 사랑하고, 또 갑자기 너무 우울해진다. 다시 말해 기분이 취한 듯 종잡을 수 없게 변한다. 제목의 ‘영향 아래’라는 말은 그런 의미에서 나왔다. 닉은 정신병원으로 보내라는 주위의 조언을 무시하고, 자신의 힘으로 아내를 보호하고 싶다. 이들 부부의 역경이 주요 내용이다.

카사베츠는 원래 연극배우 출신이다. 연기도 하고, 또 심리 표현에 기반한 메소드(Method) 연기를 가르치면서 예술계에 진출했다. 그래서인지 카사베츠는 물론이고 동료들, 특히 지나 롤랜즈, 피터 포크, 벤 가차라 등은 전부 메소드 연기에 일가견이 있는 배우들이다. 1950년대부터 발전해온 이런 연기법은 지금도 할리우드의 자랑이다. 그런데 메소드 연기는 칼의 양날 같아서 잘못 쓰면 심리가 넘쳐, 보기 민망할 정도로 과장되고 유치해지기도 하는 위험이 있다. 다르덴 형제의 영화에 메소드 같은 건 없는 점을 떠올려보라.

나는 메소드는 누구에게나 맞는 연기법이기 보다는, 특정 배우에게 태생적으로 맞는 연기법이라고 본다. 그런 타고난 배우를 보고 싶으면, 지나 롤랜즈가 제격이다. 금발의 빛나는 외모를 갖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외롭고 불안한 눈빛을 자주 드러내는 롤랜즈의 연기가 <영향 아래의 여자>의 최고의 매력이다. 닉의 친구들이 모두 몰려와 이탈리아 사람들답게 왁자지껄하며 스파게티를 만들어 먹는 자리에서, 롤랜즈가 펼치는 흥분한 여성의 조증은 그게 연기인지 실제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다. 원래 이 작품은 카사베츠가 연극으로 발표하려 했는데, 주연을 맡은 롤랜즈가 너무 강한 심리 연기를 1주일에 8번 무대에서 펼치는 것은 무리라고 반대해, 영화로 바꿔 발표했다. (한창호 / 영화평론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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