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사 적으로 가장 충격적인 데뷔작 중 한 편으로 꼽히는 로만 폴란스키의 장편 데뷔작 <물속의 칼>은 폴란스키가 유일하게 폴란드에서 연출한 영화이기도 하다. 해외 영화제에서 공개되자마자 약관의 폴란스키에게 쏟아진 찬사로 인해 <물속의 칼>은 베니스 영화제에서 수상하고 그 해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 영화로 단박에 유명해진 폴란스키는 창작 활동이 원활하지 않았던 조국 폴란드를 떠나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그리고 마침내 미국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궁지> <혐오> <악마의 씨> 등 화제작을 연거푸 쏟아내며 단숨에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혐오>와 <궁지>는 각각 베를린 영화제에서 은곰상과 금곰상을 수상하며 폴란스키의 재능을 전 세계에 각인시킨 초기 폴란스키 영화의 걸작들이기도 하다.

폐소공포증과 관음증, 섹슈얼리티 탐구로 특징 지워진 폴란스키의 영화 세계는 데뷔작부터 분명하게 드러난다. 권태에 찌든 부르주아 부부와 그 사이에 갑자기 끼어든 젊고 건장한 청년 사이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대결 구도, 육체적, 계급적, 지적 차이에서 비롯되는 긴장감은 세 남녀와 그들이 머물고 있는 개인용 요트를 배경으로 점차 증대된다. 폴란스키는 이 영화에서 인물의 성격과 그들 간의 관계의 심리적 줄다리기를 그리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타이트한 클로즈업 화면과 익스트림 롱 숏을 오가는 화면 구성 또한 그 긴장감을 관객으로 하여금 경험하게 하는데 있어 더 없는 효과를 제공한다.

스포츠 칼럼니스트인 안제이(리온 니엠직)와 그의 아름다운 아내 크리스티나(조란타 우멕카)는 주말의 요트 여행을 위해 차를 몰고 가던 중 우연히 젊은 히치하이커(지그문트 말라노위즈)와 동행하게 된다. 가진 것이라고는 젊음과 몸뚱이밖에 없는 이 청년은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안제이가 지닌 수컷의 본능을 일깨운다. 안제이는 만나는 순간부터 청년을 끊임없이 조롱하고 업신여기며 모든 면에서 청년을 누르려 한다. 이는 아내와 청년 사이에서 벌어지는 무언의 섹슈얼한 긴장감에 대한 열등의식과 불안, 질투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혈기 방장한 청년은 안제이의 위압적인 태도에 모욕감과 반항심을 느끼고, 세 사람의 요트 여행은 안제이와 청년의 팽팽한 심리적 대결 상태로 인해 시종일관 어색하고 불편한 상황 아래 지속된다. 청년이 애지중지하는 칼을 충동적으로 숨긴 안제이는 칼을 물속에 떨어뜨리고, 청년 또한 물속에 빠진다. 수영을 못한다던 청년이 익사했을까 노심초사하는 아내는 안제이와 말다툼을 벌이고 부부는 청년을 찾아 물속에 뛰어들지만, 청년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과연 청년은 익사한 것일까.

이 영화의 제목인 ‘물속의 칼’은 중의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청년이 지니고 있는 칼은 공격성과 동물적 위계의 상징처럼 보인다. 폴란스키는 유난히 자신의 작품에 물의 이미지를 자주 등장시키는데, 여기서 요트가 떠다니는 거대한 호수는 부르주아 부부의 평온한 주말 여행 아래 도사리고 있는 온갖 추악한 감정들을 감추고 있는 장막에 다름 아니다. 무엇이 있는지 모를 호수의 심연 아래 감추어진 것들을 폴란스키는 영화가 진행될수록 조금씩 끄집어낸다. 영화의 타이틀 시퀀스, 차창 안에서 가벼운 말다툼을 벌이는 부부의 대화는 마치 물속에서 벌어지는 일처럼 관객들에게 들리지 않는다. 곧이어 이어지는 불편한 부부의 침묵이 영화의 불길한 정조의 시작이라면, 안제이가 띄엄띄엄 들려주는 무모한 선원의 이야기, 배를 다루는 안제이의 명령조의 태도, 뜨거운 냄비를 둘러싼 소동, 배 안에서 벌어지는 게임의 에피소드들은 이러한 세 사람 간의 불편한 긴장감을 수렴하며 조금씩 배가시키는 장치이다. 그 중에서도 칼은 안제이와 청년 간에 은연 중 벌어지고 있는 주도권 싸움의 정점에 있는 가장 위험한 동물적 본능을 자극한다. 청년이 지니고 있는 육체적 젊음의 위용은 은연 중 안제이의 열등감을 불러일으키며, 칼을 가지고 위험한 장난을 치는 청년을 바라보는 안제이의 시선은 그 칼이 지닌 야성에 대한 질투와 매혹의 감정으로 가득 차 있다. 결국 칼이 물속에 빠지고, 곧이어 청년이 물에 빠지면서, 안제이가 가장 두려워하던 아내와 청년의 섹스가 이루어진다. <물속의 칼>은 치밀한 내러티브 구조를 통해 인간의 내면에 잠재한 폭력성을 탐구한다. 이는 단순한 게임에서 가장 잔인한 홀로코스트까지 확장될 수 있는 이성의 가면 너머에 존재하는 야성에 대한 폴란스키의 집요한 시선이기도 하다.

글 / 최은영(영화평론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