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세 번째 장편영화인 <궁지>는 폴란스키가 할리우드로 가기 직전에 영국에서 연출한 영화다. 그 해 베를린영화제 금곰상을 수상한 이 영화는 폴란스키의 데뷔작 <물속의 칼>과 마찬가지로 한 여자와 두 남자를 둘러싼 고립된 공간에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다만 <물속의 칼>이 권태기에 접어든 부르주아 부부 사이에 등장한 섹시하고 위험한 젊은 남성이 불러일으키는 긴장감을 다루고 있다면, <궁지>에서 세 사람의 관계는 좀 더 초현실적인 측면이 있다. 부상당한 두 명의 미국인 범죄자가 불가피하게 부르주아 부부가 살고 있는 대저택에 몸을 숨기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 영화의 이야기의 시작은 흔한 스릴러 의 그것과 같지만 전개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흘러간다.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치는 듯 보이는 전형적 범죄자형 인간인 리처드 디키(라이오넬 스탠더)와 그의 유약한 동료 앨비. 리처드는 인적 없는 바닷가에서 고장 난 차와 앨비를 남겨두고 공중전화를 찾으러 가다가 외딴 곳에 자리 잡은 대저택을 발견한다. 리처드는 집에 들어가 여기저기 뒤지고 다니며 동태를 살핀 후 저택에 살고 있는 조지와 테레사(프랑수아 돌리악) 부부를 협박하여 앨비와 함께 그 곳에 머물며 보스의 연락을 기다린다. 탈진한 동료 앨비가 죽자, 리처드는 조지를 위협하여 바닷가에 땅을 파고 앨비를 묻는다. 조지를 묻고 함께 술을 마시던 세 사람은 술에 취해 신세타령을 하며 기묘한 우정에 가까운 관계로 발전한다. 기다리던 보스로부터는 아무런 소식이 들려오지 않고, 조지의 신경쇠약과 거의 어린아이의 정신 연령에 가까운 테레사의 장난은 어느 순간 도를 넘는다. 범죄자와 인질에서 시작해 기묘한 동거자로 발전한 세 사람의 관계는 무어라 규정지을 수 없는 독특한 방식으로 타협점을 찾는다.

 

폴란스키는 어느 인터뷰에서 세 사람을 둘러싼 <궁지>의 이야기 전개 방식이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와 유사한 방식이라는 이야기를 한 적 있다. 실제로 흥미진진한 스릴러의 방식으로 시작되는 듯 했던 <궁지>는 리처드가 부부가 머물고 있는 저택으로 들어오고 동료인 앨비가 사망한 순간부터 일종의 부조리극으로 탈바꿈한다. 그들이 머무는 저택은 마치 폐허처럼 정돈되어 있지 않으며, 인적 없는 바닷가와 더불어 시공간을 초월한 듯한 정서를 전달한다. 고도를 기다리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처럼 리처드는 보스가 자신을 구해주러 오기를 기다리지만, 보스는 결국 끝까지 영화 속에 등장하지 않는다. 남아있는 것은 오직 세 사람을 둘러싼 장광설과 쾌와 불쾌를 오가는 그들의 관계망에 있다. 폴란스키는 고립된 세 사람의 심리 분석에 치중하는 대신 성격과 사회적 배경이 판이하게 다른 그들의 외양과 행동 방식에 보다 관심을 기울인다. 마치 괴물처럼 느껴지는 침입자 리처드의 거대한 몸집과 거친 외모와 말투, 그에 반해 작고 소심하고 열등감에 가득 찬 조지, 마치 어린애처럼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난잡한 여인 테레사의 외양은 화면 안에서 물리적으로 대조를 이루며, 폴란스키는 매 순간 이러한 외적 차이들을 극대화시키는 구도와 앵글을 선택함으로써 이미지의 긴장감을 주조한다.

이렇듯 <궁지>는 시공간을 초월한 듯한 대저택에서 서로 다른 욕망과 성격을 지니고 있는 세 사람이 각자의 앞에 놓인 긴장감을 견디는 과정에 치중하고 있다. 보스는 과연 리처드를 구하러 오기는 하는 것일까. 조지와 테레사 부부는 이 기묘한 인질극에서 놓여날 수 있을 것인가. 조지와 리처드는 죽은 앨비를 땅에 묻는 과정에서 서로의 불안감을 은연중에 토로하고, 백치에 가까운 테레사는 그들 주변을 맴돌며 아이 같은 장난을 되풀이한다. 이 영화에서 배경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는 쇠락한 대저택은 그 자체로 세 사람이 머물고 있는 유일한 세계이자 요새, 성으로 자리매김한다. 조지와 테레사 부부의 떠들썩한 친구들이 저택을 방문했을 때, 급작스럽게 모든 상황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폴란스키 감독은 세 사람을 둘러싼 무언의 절망과 권태를 이야기를 끌고 가기 보다는 그들의 의미 없는 행동 하나 하나를 주시함으로써 하나의 거대한 분위기로 표현한다. 영화의 초반부 리처드가 저택을 뒤지고 다니는 장면들은 필요 이상으로 길게 보이며, 영화의 대부분은 세 사람의 의미 없는 행동을 좇아 마치 저택을 구심점으로 맴도는 꼭두각시처럼 인물들을 묘사한다. 폴란스키는 <궁지>를 통해 어디로도 탈출할 수 없는 거대한 삶의 부조리에 직면한 인간의 내면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글/ 최은영(영화평론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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