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간 것들 사이에서 다가오는 것들

- <다가오는 것들>(미아 한센-로브, 2016)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나탈리는 학생들에게 다정다감한 선생님은 아니다. 가족들과 출판사 직원들 앞에서도 그녀는 자신의 의견을 쉽게 굽히지 않는다. 그녀는 시위로 교문을 봉쇄하는 학생들에 대해 “형편없다”고 말하고, 자신의 책 표지를 매력적인 디자인으로 바꾸려는 출판사 직원들에게 “이런 것과 싸워온 건데”라며 화를 낸다.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외도를 고백했을 때도 그녀는 “왜 나한테 그걸 말해? 혼자 묻어둘 순 없었어?”고 말한다. 이처럼 그녀에게 변화는 두려운 것이고 일상은 중요한 것이다.



영화 <다가오는 것들 Things to Come>은 제목과 달리 떠나가는 것들을 보여준다. 남편과 어머니가 나탈리를 떠나갔을 때 카메라는 그녀의 모습을 담담하게 담아낸다. 하인츠가 나탈리에게 처음 외도 사실을 고백했을 때 나탈리는 펑펑 울거나 그를 붙잡지 않는다. 배신감을 느끼지만 “별일 아니야. 삶이 끝난 것도 아니고”라고 파비앙에게 말하는 것처럼 그녀는 내색하지 않고 다시 일상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그즈음 나탈리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그녀는 또 한 번 소중한 것을 잃는다. 그녀는 슬픔을 털어놓으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지만 어머니가 키우던 고양이 판도라를 보살피면서 차분하게 상황을 받아들인다.



이런 상실 앞에서 슬픔은 잠시, 그녀는 우울해하지 않고, 오히려 끊임없이 움직이고 일상적인 무언가를 한다. 그녀는 자신의 학생들을 집으로 초대하는가 하면 혼자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기도 한다. 하인츠가 짐을 정리했을 때도 나탈리는 숭숭 비어있는 책장 앞에서 그를 그리워하기보다는 되레 그가 부탁한 책을 찾아 분주하게 움직인다. 관객은 혹여 나탈리가 외로움이나 허전함 때문에 그녀에게 호감을 표하는 낯선 남자에게 흔들리거나 건장한 제자를 유혹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또 동시에 기대하지만, 그녀는 상관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일상을 지키며 움직인다.


나탈리는 파비앙의 농장을 방문한 후에도 도망간 판도라를 찾아다니거나, 빈 접시들을 치우거나, 들과 계곡에서 책을 읽는 등 내색하지 않고 그저 움직인다. 그렇다고 이런 행동들이 나탈리의 마음을 쉽게 달래주는 건 아니다. 위로가 될 줄 알았던 파비앙으로부터 섭섭한 말을 들은 나탈리는 판도라를 껴안고 소리내어 운다. 마음에 난 구멍이 더 커진 기분이다. 다음 날 나탈리는 집으로 돌아가고 그리고 일 년이 지난다. 나탈리는 여전히 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있고, 그녀에게 어느덧 손주가 생겼으며, 파비앙과는 다시 사이가 좋아졌다.



나탈리의 마음에 큰 구멍이 생겼을 때 그녀에게 다가온 것들은 그녀가 늘 말하고 원했던 수수하고 일상적인 것들이다. 학생들을 집에 초대했을 때 순간적으로 그녀에게 드러나는 다정다감함, 슈만과 브람스가 아닌 포크송을 들었을 때의 즐거움, 약간의 자유와 어머니가 키우던 귀여운 고양이 판도라, 그리고 그녀의 손을 지나간 많은 철학책들까지. 그녀를 위로한 것들은 대단하고 거창한 것들이 아닌 작고 보잘 것 없는 것들이다.


영화 후반부에서 나탈리가 학생들에게 읽어주는 구절이 인상적이다. “원한다면 우리는 행복 없이 지낼 수 있다. 만일 행복이 안 온다면 희망은 지속되며 환영의 매력은 그것을 준 열정만큼 지속된다.” 행복이 떠나가면 희망이 다가오고,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진다면 상상이 그 자리를 메우는 것처럼 떠나는 것들을 보내고 나면 그 자체로 충족될 수 있는 다른 것들이 다가올 것이다. 떠나는 것들을 잘 보내기 위해 그리고 다가오는 것들을 잘 맞이하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는 나탈리가 아름답게 느껴진다.



김혜령 l 관객에디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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