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한 세계들의 중첩

- <에브리바디 원츠 썸!!>(리처드 링클레이터, 2016)


리처드 링클레이터는 인터뷰에서 <에브리바디 원츠 썸!!>이 전작 <보이후드>(2014)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보이후드>의 엔딩에서 차를 몰고 떠나던 메이슨은 <에브리바디 원츠 썸!!>의 첫 장면 야구부 합숙소로 향하는 제이크와 이어진다. 감독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두 개의 영화를 픽션적 상상력으로 엮는 이 말이 예기하는 것은 서로 다른 세계를 교차시키는 <에브리바디 원츠 썸!!>의 특질이다.



영화 속 야구부 단원들은 자신이 프로가 되지 못한다면 어떤 삶을 살게 될지에 대한 불안감을 갖고 있다. <에브리바디 원츠 썸!!>은 삶의 가능한 많은 길을 교차시키며 이에 해답을 제시한다. 고등학교에서 제이크와 같은 야구부였지만 지금은 야구를 그만둔 저스틴을 보는 관객에게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를지 모른다. 어쩌면 제이크도 저스틴처럼 될 수 있었다고. 가혹하게 말하자면 저스틴이라는 캐릭터는 제이크의 ‘실패한 버전’처럼 비춰질 수 있다. (혹은 제이크가 앞으로 야구를 포기하게 된다면 당면할 미래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는 그들의 공존을 보여준다. 제이크는 저스틴이 초대한 파티에서, 저스틴은 제이크가 초대한 파티에서 곧잘 어울린다.




링클레이터의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 시간성을 말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는 단순히 ‘리얼 타임’ 스타일(<비포 선셋>)이나, 제작 기간과 비례하는 영화적 시간의 무게(‘비포 시리즈’, <보이후드>) 때문만은 아니다. 그간 링클레이터의 영화들은 현재의 시간에 자리하는 과거의 순간을 조명하곤 했다. <비포 선셋>에서 에단 호크가 연기한 제시는 이런 말을 한다. “한 남자가 있어요. 좋은 직장, 좋은 아내가 있는. 어느 날 남자의 다섯 살짜리 딸이 드레스를 입고 춤을 춰요. 아주 사랑스럽게. 그런데 그 순간 남자는 열여섯으로 변해요. 그의 여자 친구가 춤을 추죠. 딸이 그랬던 것처럼요. 두 개의 시간이 동시에 공존하는 거예요. 삶의 모든 순간에는 또 다른 시간이 겹쳐 있고, 시간의 영속성은 깨어져버리죠.” 링클레이터의 ‘비포 시리즈’는 겹쳐진 과거의 순간들이 현재 안에서 펼쳐지는 것을 바라보게 되는 영화이며 <보이후드> 역시 그렇다.



<에브리바디 원츠 썸!!>이 보여주는 시간의 중첩은 이전 작품들의 것보다 확장된다. 개인이 가진 과거와 현재의 중첩을 넘어, 가능한 모든 세계와 시간들의 공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야구 훈련 장면에서 페인트칠하는 사람을 가리키며 그가 사실 야구부원이지만 지금은 변장 중이라는 장난스러운 대사가 들릴 때 ‘내가 누구인지’의 문제는 고착된 것이 아니라 유동적인 것으로 느껴진다. 나와는 관련 없을 것 같던 사람이 불쑥 내 삶과 영화 안에 들어오고, 개인들 사이의 관계는 범우주적으로 넓어진다. 그러니 제이크가 앞으로 프로에 진출할지 말지는 영화의 주된 관심사가 아니다. 수많은 가능성의 세계들이 그 주변에 이미 공존하고 있고, 이들과 맺는 초월적 관계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가장 신비로운 캐릭터인 윌러비는 칼 세이건을 인용해 말한다. “생명체의 아름다움은 구성하는 원자가 아니라 그 원자들이 결합하는 방식에 있다”고.



황선경 l 관객에디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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