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이하 <아메리카>)>는 갱스터가 된 이민자들의 상실감을 기이한 시간성을 통해 드러내는 영화이다. 미국은 태생부터가 이민자의 나라였지만, 이민자가 미국 사회에 동화되고자 하는 욕망과 그로 인한 비극은 70년대 이후 갱스터 영화의 단골 소재였다. 가령 브라이언 드 팔마의 1983년작 <스카페이스>에서 주인공은 돈과 권력으로 미국 사회에 성공적으로 편입되었다고 믿으며 '여성'을 만나 '가정'을 꾸려 미국 사회에 완전히 뿌리내릴 것이라는 허상에 집착한다. 일 년 뒤에 개봉한 <아메리카>의 주인공 누들스도 '데보라'(실제로 그녀는 훗날 할리우드라는 대표적인 아메리카 드림의 구현 공간에 무사히 안착한다)라는 동화되고 싶은 미국 사회의 은유를 향해 폭력도 불사하는 강한 집착을 보인다. 그러나 우정과 유년의 추억을 아메리칸 드림과 맞바꾼 맥스로 인해 맥스와 짝을 이루듯 사랑을 대가로 꿈을 성취한 아메리칸 드림의 체현자 데보라를 소유하는 데에 실패한다. 사랑과 우정을 모두 상실한 누들스에게 어릴 적 기억은 아편을 하고난 후의 몽롱한 기억 속에만 존재한다.


아메리칸 드림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아메리카>가 위험해보이기보다 서정적이고 깊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데는 기이한 시간성이 연관된다. 28번이나 반복되는 전화벨 소리를 타고 금주법의 폐지를 자축하던 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어제 yesterday'로부터 '갑자기 suddenly'의 비틀즈의 '예스터데이'를 들으며 35년의 세월을 머금은 누들스의 노쇠한 얼굴을 보게 될 때 <아메리카>는 무엇보다 플래시백의 영화임이 명백해 보인다. 하지만 영화의 시작이자 끝에 주인공 누들스가 위치하고 있는 시공간은 금주법이 폐지된 지 조금 후인 1933년 뉴욕의 아편굴이다. 누들스는 시종일관 아편을 피면서 누워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과거의 자신을 추억하고 미래의 자신이 어떤 비극 앞에 놓이게 될 것인가를 예견하는 것이다. 수미상관적인 구조 말고도 시간의 모호성은 등장인물들의 불변의 생김새와 성격, 그리고 언제 어디에서나 현존하는 사물들이다. 기차역과 누들스 일당이 도원결의했던 물건 보관함 앞이라는 장소가 노년이 된 누들스 앞에서도 현존하고 보관함의 열쇠도 마법처럼 누들스 앞에 주어진다. 회중시계라는 물건도 유년의 추억과 중년인 현재와 노년의 예견된 삶이 별개가 아님을 못 박는다. 누들스를 둘러싼 사람들과 사물들을 토대로 그려진 것은 현재의 연장으로서의 미래, 현재로 미루어본 미래일 수밖에 없다. 거의 나이를 먹지 않는 데보라의 모습도 누들스의 상상 속에 인물들이 존재한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관객은 미래를 예견하는 누들스의 꿈속에 자리하고 있다. 이로 인해 관객은 현실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적막하고 끔찍한 맥스의 최후를 꿈을 매개로 얼떨떨하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누들스의 노년은 꿈이라고 단정하기에 너무 리얼하고 또한 충분히 예견 가능한 것이다. 세르지오 레오네는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는 자신의 영화를 ‘어른들을 위한 우화, 성인들을 위한 옛날이야기’라 불렀다. <아메리카>는 시간의 기묘한 통제 속에 유년 시절에 대한 회상을 배치해 현실 속에 잠복해있는 상실감을 불러일으킨다. 동화적인 세계에서 출발해 끝내 각성과 비애를 유발하는 <아메리카>는 단연 그의 대표작이다.(최용혁: 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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