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토크] 성기완이 말하는 로버트 알트만과 그의 영화 속 음악

로버트 알트만의 영화에 애정에 바치는 사람은 많다. 그중 지난 11월 29일 저녁 밴드 ‘3호선 버터플라이’ 멤버이자 시인 성기완이 로버트 알트만 특별전을 찾아 관객들과 함께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네토크 시간을 가졌다. <내쉬빌> 상영 후 ‘내쉬빌, 미국 고향냄새’라는 주제로 열린 그 현장을 여기에 전한다.


허남웅(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가수이자 시인이신 성기완 씨를 모셨다. '내쉬빌, 미국 고향냄새'라는 주제로 강연을 해 주실 예정이다. 이 영화를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하다.
성기완(‘3호선 버터플라이’, 시인): 좋은 영화 보여주셔서 감사하다. 필름에 스크래쳐가 많은데 보다 보니 굉장히 환상적인 느낌이 들었다. 많은 종류의 음악들이 등장해서 그 음악을 듣는 재미만으로도 즐겁게 볼 수 있는 영화였다.

허남웅: 이번 강연은 영화에 대한 내용보다는, 영화에 나온 내쉬빌이라는 지역성에 대한 부분과 컨트리 음악에 대한 부분에 중점을 둬서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모셨다. 영화 구조도 상당히 음악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성기완: 구조가 굉장히 복잡하더라. 굉장히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마치 19세기 프랑스 소설가 발자크의 인간희극 시리즈의 인물들 같았다. 다양한 인물들의 초상화를 보여준 달까. 발자크는 사람들을 하나씩 등장시키면서 그 사람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인 측면들에 대해 아주 현실적인 구조 안에서 그려내는 반면에, 알트만 감독은 현실적이기도 하지만 거기서부터 떨어져나와 아이러니컬하게 다루는 방식까지 동시에 쓰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브레히트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물의 전형적인 면에 대한 문제제기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알트만이 특이했던 게 어떤 사람을 볼 때, 어떨 땐 진지하고 어떨 땐 아이러니컬하게 바라보는 게 아니라 늘 진지하면서 동시에 아이러니컬하게 바라본다는 점이다. 음악을 다루는 방식도 그렇다. 모든 음악이 다 비꼬는 방식으로 활용되면서도, 모든 음악이 다 진지하며 감상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등장한다. 그와 겹치는 것이 시간적인 구조다. 이게 1970년대 중반 정도에 나왔는데, 70년대는 사실 의심의 시대였다. 히피족도 한 물 갔고, 사람들은 '깨어진 꿈' 같은 것을 안고 있었다. 케네디처럼 정치적인 희망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세력이 아주 잔인하게 죽거나 분산된 후에 과연 뭐가 남을까 라는 생각을 했던 시대였다. 이런 생각은 히피에서부터 나왔지만, 그것이 하나의 태도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70년대가 아닌가 싶다. 그런 시대에 사람들이 갖는 시간관은 과거로 휘는 것 같다. 처음으로 자꾸 돌아가게 되는 신화적인 시간관이랄까. 이것을 노래로 치면 후렴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노래가 시작되는 지점을 알려주는 것이 후렴구인데, 담론 입장에서 봤을 때는 그것이 신화적인 담론인 것이다. 그 당시 본 영화 중에서 <대부>가 그렇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로 시간을 미래로 가는 한 줄기의 수단으로 보는 게 아니라, 휘어서 ‘우리가 어디서부터 왔지’라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 시간관인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휘어서 후렴구로 돌아가는 그 대목에 노래나 음악이 배치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일종의 같은 시간대로 놓는 것으로 노래가 쓰이는 것 같다. 또 하나는, 다 각자의 시간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라는 사회가 주로 이민 온 사람들이 사는 나라다. 그래서 각기 뿌리가 다르고 각각 자신의 시간이 다 있는 것이다. 특히 멤피스 같은 도시는 백인 노동자들, 특히 폴란드나 동유럽 ‧ 북유럽 쪽에서 많이 와서 세례를 받고 살게 된 곳으로 알고 있는데, 그래서 사실 남에게 관심이 없을 수 있는 것 같다. 이런 방식으로 자기 시간을 살아가는 것이라서 여러 시간들이 겹치게 때문에 복잡하게 되는데, 그때그때마다 하나의 타임라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노래가 감당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노래가 나올 때 마다 시간이 휘어서 그 사람들이 출발한 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허남웅:
<내쉬빌>의 첫 편집본이 나왔을 때 다섯 시간이 넘었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내쉬빌 레드>, <내쉬빌 블루> 이렇게 두 편으로 해서 개봉을 하다가 다시 2시간 40분으로 줄였다는 일화가 있다. 30명에 달하는 출연진이 나오기 때문에 그만한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사실 이 영화에서는 내쉬빌이라는 배경이 가장 중요하게 기능한다. 그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린다.
성기완: 음악으로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전기를 번역한 적이 있는데, 그 과정에서 미국 남부라는 게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을 하긴 했었다. 엘비스는 멤피스에서 태어났는데 사실 생각보다는 내쉬빌보다 멤피스에 더 유명한 가수가 많은 것 같다. 더 뿌리로 내려가면 뉴올리언스가 있다. 거기 음악을 '딥 싸우스Deep South'라고 하는데, 질척하고 더운 날씨에서 나오는 끈적거리는 음악이다. 그런 것들을 들으면서 자란 백인들의 음악이 멤피스 음악인 거 같다. 내쉬빌은 '딥 싸우스'의 끈적거리는 블루스적 자장의 끝머리에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블루지한 느낌이 보다 옅게 나타난다. 이후 내쉬빌 음악은 백인 노동자들의 음악이 되고, 그런 사람들의 음악의 뿌리인 컨트리의 한 거점이 된다. 내쉬빌의 '내쉬'는 원래 독립전쟁 당시의 장군 이름인데 그래서 애국주의의 느낌이 강하다고 한다. 그런 만큼 컨트리와 군가의 느낌이 섞이기도 하는데, 그러면서 진지하면서 동시에 아이러니컬하게 바라볼 수 있는 지점이 생긴 것 같다.

허남웅: 컨트리 음악 자체가 보수적인 느낌이면서 고향의 음악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컨트리 음악이 미국에서 갖는 의의는 무엇인가.
성기완: 컨트리 음악에 관심이 있는 분은 국내에서는 '바비 빌'이란 사람들의 음악을 찾아보시면 좋다. 홍대 '스트레인지 프룻'에서도 자주 들어보실 수 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음악들의 박자를 정리해 보면, 처음에 해밀턴이 부르는 음악은 컨트리 풍인데 사실 그 반주는 군가였던 것 같다. 그 이후에 나오는 가스펠은 진지하면서도 매우 웃기게 박수치면서 열광적으로 부른다. 컨트리 이전에 군가와 가스펠이 나오는 게 특이하다. 그 다음 중간에 컨트리 음악이 나오는데 특이하게 박자를 앞에서 친다. 두 박자짜리 군가 같은 박자의 음악이다. 그 다음에 세 박자의 음악이 나온다. 어떤 장면이든 처음에는 두 박자로 시작했다가 점점 끈적해지는 방향으로 진행되더라. 가령 스트립쇼 장면에서도 나중에는 블루스로 변한다. 컨트리 음악의 특징은 1인칭이라는 점에 있다. 자기를 까서 보여주는 거. 컨트리는 자기가 겪은 이야길 하지만,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나도 겪었다는 느낌을 준다. 영화에서도 모든 여자들이 다 자기 얘기라고 생각하고 쳐다본다. 그 다음에 블루스적인 게 등장한다. 맨 끝에 거지로 보이는 여자가 마이크를 받아 노래를 했을 때, 결국엔 컨트리가 아니라 블루스 풍의 가스펠로 끝나서 인상 깊었다. 이 영화는 얼핏 컨트리가 주인공인데, 그것을 감싸는 것이 군가, 가스펠, 블루스이다. 이런 식으로 다양한 음악이 등장하는데, 그것들이 영화에서 다 각자의 시간을 이룬다고 생각된다. 이런 음악들이 충돌하고 서로 바라보는 효과가 있더라.

허남웅:
각자의 음악을 부여했다고 말씀하셨는데, <내쉬빌>의 시나리오 자체가 대략적인 이야기만 완성한 채, 각 연기자들이 좋아하는 음악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연주를 직접 할 수 있도록 연습하면서 음악들에 대해 구분을 지었다고 한다.
성기완: 내쉬빌에 '홍키통크'라는 이름이 바가 있는데 '홍키'는 백인을 뜻하고 '통크'는 피아노의 상표다. 누가 오면 바에 올려서 노래도 시키고 하는 시골스러운 분위기다. 영화에 정치적인 색채도 집어넣었는데, '희망'이라던 사람도 선거자금을 모으려고 여자한테 스트립쇼도 시키지 않나. 이런 것들이 70년대 중반의 미국이라는 복잡한 시대를 드러내는 것 같다. 몰락의 시기랄까. 몰락의 전조랄까. 무언가 반추해볼 만한 시대를 대표하지 않나 싶다.
허남웅: 마지막 장면을 보면 최근에 보여지는 한국적인 상황과 흡사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통령 선거를 통해서 벌어지는 충돌도 있고 자동차 충돌도 있다. 영화 속에서는 혼란스러운 상황을 표현하기 위해 자동차 충돌을 넣은 게 아닌가 싶었다.

관객1: 내쉬빌도 그렇고 미국 영화에 국기가 자주 나오는데, 그게 어떤 심리로 그러는지 궁금하다.
성기완: 영화에서 기름통에 국기가 새겨진 오토바이를 타고 국경을 넘어서 멕시코에서 마약을 가져오는데, 그런 반체제적인 부분에서 국기를 사용했다. 성조기를 자주 활용하는 건, 내 생각에는 하나로 모을 게 없어서 그런 것 같다. 미국이란 나라가 워낙 인종도 종교도 모든 게 다양하고 가지가지이기 때문에, 뭔가 하나 포장할 게 필요한데 그게 성조기가 아닐까 싶다. 그것들의 밑바닥에 있는 게 뭘까. 미국사람들이 흑인 노예를 부렸지 않나. 그 사람들이 가졌던 죄의식과 그 죄의식 아래에 아프리카에서 가져온 리듬인 블루스가 죄다 밑바닥에 있는 것 같다. 무의식의 밑바닥에 있는 거다. 이게 신화의 핵심인 것 같다. 그런 식으로 어떤 신성화된 지역이 있는 거고, 그런 게 '딥 싸우스'가 된 것 같다. <내쉬빌>은 각 지역의 음악적인 여러 모델들이 결합하는 방식들을 보여주는 영화인 것 같다. 그리고 미국 남부 사람들이 간직했던 음악적 리듬들이 전 세계로 퍼지는 게 20세기 대중음악의 흐름이 아닐까 싶다.


관객2: 박자 설명이랑 음악 설명이 도움이 많이 됐다. 한국 사람들에게 가장 익숙한 박자가 있다면 무엇일지 궁금하다.
성기완: 외국의 박자는 맥박에 맞춰져 있는데, 우리는 호흡에 기반 한다. 농악의 장단은 흑인 음악의 비트 운용 방식과 비슷한데, 커다란 비트로 엑센트를 주면서 세부적인 비트의 다발들을 묶어나가는 것이다. 묶인 다발들이 레이어를 쌓아가면서, 그것들을 다시 풀어서 엮어나가는 방식들이 있다. 지금 전 세계에서 각 지역마다의 로컬한 리듬의 다발과 흑인들에게서 나온 미국적 대중음악의 리듬을 어떻게 결합시키는지 주목할 만하다.

관객3: 블루스를 이해하면 모든 음악을 이해할 수 있다는 말도 있고, 남부 음악에서 영향을 받은 유명한 밴드도 많다. 미국 내에서 지역 색채가 강하며 영향력이 큰 것 같은데 이에 대해 말씀 부탁드린다.
성기완: 컨트리의 가사는 자기 시점으로 '내가 어떻게 어렵게 살았나' 얘기하는 거다. 자기 얘기를 하는 걸 들어보는 기회, 그런 뿌리 깊은 어떤 것을 컨트리가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음악적인 당당함과 쿨함, 그리고 자기 얘기들, 그리고 여전히 유럽적인 방식으로 감싸고 있는 리듬들 때문에, 백인들이 놓치기 어려운 것 같다.

정리 박영석(관객에디터) | 사진 임유정(자원활동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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