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영화의 풍경]



교환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 김수현 감독의 <우리 손자 베스트>



김수현 감독의 신작 <우리 손자 베스트>를 보았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교환은 하드코어 ‘일베’ 유저다(영화 속에서는 ‘일간베스트’ 대신 ‘너나나나 베스트’를 줄인 ‘너나베스트’로 등장한다). 교환은 단순히 게시글을 읽거나 댓글만 다는 정도가 아니라 ‘베스트’에 오르기 위해 직접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사람이다. 그는 세월호 유가족 단식 농성장 앞에서 폭식 시위를 벌이며, 노동자들의 집회 영상(고 백남기 씨가 쓰러졌던 바로 그 현장의 영상이다)을 우스꽝스럽게 편집해 낄낄거린다. 또한 여동생의 속옷 노출 사진을 찍어 게시판에 올리고, 자신에게 약점이 잡힌 여성에게 사건을 무마해주는 대가로 섹스를 제안한다. 교환의 나쁜 행동은 멈추지 않는다. 그는 ‘종북 세력’들의 모임 현장을 찾아가 사제 폭탄을 던지려고 하며, 자신을 경찰에 신고했던 여성을 몰래 쫓아가 납치하고, 한 노인을 산 채로 땅에 파묻어 죽게 만든다. 또한 길에서 본 여성을 몰래 스토킹하는 것이나 자해 공갈 사기를 도와주는 것도 포함시켜야 한다. 다시 말해 이 영화의 교환은 관객에게 불쾌감을 주는 캐릭터이며 우리가 단호하게 비판해야 하는 인물이다.



<우리 손자 베스트>를 볼 때 느끼는 첫 번째 당혹감은 여기서 찾아온다. 교환이 하는 행동들은 그 자체로 너무 혐오스럽기 때문에 관객은 그에게 거리를 둘 수밖에 없다. 물론 우리는 악당(연쇄살인범, 테러리스트, 인신매매범, 포주 등)이 주인공인 영화들을 많이 보아 왔다. 하지만 이 영화들의 대다수는 픽션이나 장르라는 방패를 내세우는 반면 <우리 손자 베스트>의 교환은 우리 사회의 실제 현실을 직접적으로 가리킨다. 감독은 이를 숨길 생각이 없다. 교환이 정수에게 보여주는 ‘인증 사진’을 보자. 감독은 광화문 앞 세월호 농성장의 실제 사진을 조잡한 합성 기술로 약간 변형한 뒤 보여준다. 교환이 자랑스럽게 꺼내드는 이 사진에서 우리는 세월호 참사와 당시 있었던 일베의 시위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영화 후반부의 사제 폭탄 에피소드도 마찬가지다. 이 사건은 지난 2014년 한 고등학생이 ‘종북 세력’에게 사제 폭탄을 던졌던 실제 사건을 노골적으로 인용한다. 이런 정보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관객이라면 교환의 행동을 보는 순간 즉시 현실의 일베를 떠올릴 수밖에 없고, 저절로 그에게 거리를 둘 수밖에 없다. 즉 교환은 <우리 손자 베스트>라는 영화 속 가상의 인물인 동시에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속 인물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관객이 교환의 캐릭터에게 동일시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며, 영화를 보던 나는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해 자주 혼란을 느껴야 했다.

하지만 흥미로운 건, 영화가 단순히 교환의 추악한 행동과 말을 보여주는 데만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교환을 이해하려 노력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영화는 진지하게 교환이 이런 짓을 벌이는 이유를 찾아보려 한다. 이때 영화가 제시하는 첫 번째 이유는 교환의 가족 환경이다. 교환은 소위 ‘콩가루 가족’의 구성원이다. 자세한 맥락은 알 수 없지만 어머니는 딸과 서로 기절할 때까지 목을 조르고, 아버지는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개입하지 않는다. 어머니는 젊은 남자와 바람을 피우는 것 같고, 아버지는 집에 들어가는 대신 그냥 회사에서 자는 쪽을 택한다. 그리고 부모는 자식들에게 별로 관심이 없어서 교환이 무슨 행동을 하든 방관하며, 교환의 여동생 역시 부모를 용돈 주는 사람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서로를 “븅신”과 “씨발년”이라고 부르는 교환과 여동생의 관계는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삭막한 가정 환경에서 자란 교환이 일베라는 커뮤니티에서 나름의 정서적 유대와 소속감을 느끼는 건 꽤 그럴 듯한 설정으로 보인다.

두 번째 원인은 좀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찾을 수 있다. 교환은 자존감이 굉장히 낮은 동시에 인정 욕구가 몹시 강한 캐릭터로 그려진다. 그는 남에게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하지만 현재로서는 그럴 만한 재주가 마땅히 없다. 이를 위해 성실하게 노력할 마음도 없어 보인다. 그런 교환이 쉽게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은 남들이 차마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강력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다. 단식 투쟁을 하는 사람들 앞에서 피자를 먹는 것, 잠든 여동생의 사진을 몰래 찍어 게시판에 올리는 것, 사람들에게 화염병을 던지는 것이 전부 그런 수단이다. 이런 행동은 교환으로 하여금 (일베라는 공동체 안에서) 가장 손쉽게 타인의 관심과 인정을 받을 수 있게 해준다. 게다가 교환은 남에게 인정받지 못해서 생기는 결핍을 다른 사람을 향한 분노로 손쉽게 바꾸는 인물이기도 하다. 성우 김상현, 가수 강산에 등이 참여하는 공연에 폭탄을 던지기로 결심한 교환이 공연장에 찾아가기 전 ‘소셜테이너’를 비난하는 대사를 보자. “사회적 가치의 재생산에 힘써야 하는 연예인들이 소셜테이너니 뭐니, 그런 이상한 말 붙여가지고 정치판 똥구멍이나 빨고 앉아가지고, 그런 놈들이 또 돈은 어마어마하게 벌어요.” 이 대사의 방점은 마지막 문장이다. 교환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무언가를 다른 사람이 누리는 걸 견디지 못한다. 심지어 세월호 참사의 피해자들이 “부모님 사랑을 받”는 것까지 질투를 할 정도이다. 영화는 교환의 이런 뒤틀린 심리 상태를 아주 꼼꼼하게 묘사하며 교환의 캐릭터를 설명한다. 그러다 보니 교환이 스스로를 “쪼다”라 부르며 자기 비하하는 장면이나 가족들에게 무시당하는 장면들을 볼 때는 순간 그에게 동정심을 느낄 정도다. <우리 손자 베스트>는 이런 접근을 통해 교환이라는 캐릭터를 어떻게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문제는 영화가 아무리 공들여 교환을 설명해도, 또는 변명을 대신 해주어도 교환의 혐오스러운 행동을 명확히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교환의 인간적인 약점이나 행복하지 못한 가정 환경이 교환이 저지르는 파렴치한 행동의 원인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콩가루 집안’에서 자랐고 인정 욕구가 남들보다 강하다고 해서 모두 세월호 피해자들을 모욕하고 사제 폭탄을 던지는 사람으로 자라는 건 아니다. 여기엔 여전히 설명하지 못한 무언가가 있다. 영화는 130분 동안 다양한 관점을 통해 교환이 저렇게 추하게 살아가는 이유를 찾으려 노력하고 때로는  변명도 대신 해주지만 교환의 머릿속 깊은 생각은 마지막까지 알 수 없는 무언가로 남는다. 즉 우리는 이 영화에서 교환이 왜 저렇게 비윤리적이고 반인간적인 행동을 계속하는지 이해하는 데 결국 실패한다.



<우리 손자 베스트>가 끝나는 지점도 바로 여기이다. 이 영화는 반복적으로 나쁜 짓을 하는 교환이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 보여준 다음(즉 교환이 살인을 저지르는 것까지 보여준 다음) 교환이 이렇게까지 망가지는 이유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는다. 또는 설명하지 못한다. 나아가 그 후로 교환이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해서도 보여주지 않는다. 나에게는 영화가 선택한 이 ‘열린 결말’이 매우 아쉽게 느껴진다.

마지막 시퀀스와 엔딩 시퀀스를 좀 더 자세히 생각해 보자. 지금 교환은 ‘어버이별동대’ 소속인 정수의 삶을 통해 자신의 미래를 간접적으로 경험한 참이다. 정수는 교환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존재를 남에게 인정받으려 하는 인물이며 그런 그의 마지막 소원은 국가유공자 훈장을 받는 것이다. 하지만 정수는 심사에서 탈락하고 지금까지의 인생이 송두리째 부정당할 위기에 처한다. 결국 정수는 스스로 현충원에 묻히기를 선택하고 교환의 도움을 받아 이 “프로젝트”를 성공시킨다(이 과정에서 교환은 살인자가 된다). 정수는 죽고 이제 남은 건 교환이다. 교환은 남의 인정을 받기 위해, 또는 자신의 열등감을 해소하기 위해 여러 가지 행동을 실천에 옮겨 왔고 그 과정에서 살인까지 저질렀다. 더 이상 강력한 프로젝트가 있을까 싶지만 교환은 여전히 “저 이제 뭐하죠?”라는 질문을 던진다. 믿기 어렵지만 그는 계속해서 다음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싶어한다. (미수에 그치기는 했지만) 폭탄 투척에 납치, 살인까지 저지른 교환에게 과연 어떤 프로젝트가 남았을까. 어쩌면 이 다음 이야기야 말로 교환을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영화는 교환의 현재에 대해 더 자세히 이야기하는 걸 멈추고 그냥 엔딩크레딧을 올리는 쪽을 택한다. 머리를 깎은 채 광화문 광장에 등장한 교환은 밝은 미소와 함께 “내가 찾은 팩트는 바로 나다”라고 말하며 혼자 춤을 춘다.

이 결말이 어떤 뜻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두 가지 가정을 해볼 수 있다. 첫 번째 가정 - 그렇게 남들의 인정을 받으려 했던 교환은 더 이상 남의 판단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을 “팩트”로 삼기로 한다. 그는 이제 과도한 인정 투쟁을 벌이지 않고 자기 자신을 기준으로 삼아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두 번째 가정 - 교환은 이미 미쳐버렸다고 볼 수도 있다(배우 구교환이 탁월하게 연기해낸 그 기묘한 표정과 춤을 떠올려 보자). 정수의 비참한 마지막을 지켜본 교환은 타인이나 국가의 인정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궁극적으로 불가능함을 깨닫지만 그렇다고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지도 못한다. 만약 ‘나’라는 팩트가 이미 구제불능으로 밝혀진다면 어떻게 더 손을 쓸 수 있겠는가. 더 이상 교환은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다.


유감스럽게도 <우리 손자 베스트>는 이 두 가지 가정 사이에서 모호한 입장을 취하며 끝나는 영화다. “내가 찾은 팩트는 바로 나”라고 말하며 광화문 광장에서 춤을 추는 교환의 모습에서 관객은 그가 ‘제대로’ 된 삶을 살기로 한 것인지, 아니면 그만 미쳐버리고 만 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 교환이 지금까지 벌인 행동을 꼼꼼하게 설명하고 교환의 환경을 정성스럽게 묘사하던 영화가 정작 교환의 현재 삶을 보여줄 순간이 왔을 때는 말끝을 흐리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교환과 같은 청년이 등장한 이유는 누구도 정확히 파악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이유를 찾지 못했다고 해서 <우리 손자 베스트>를 비판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이 영화가 선택한 그 애매한 결말은 다른 문제이다. <우리 손자 베스트>는 최근 한국 극영화 중 우리 사회의 가장 문제적인 현실을 포착하는 데 성공하지만 동시에 그 문제와 정면으로 마주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남긴다. 정답을 바란건 아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교환의 삶을 통해 중요한 문제를 제기한 다음 가장 결정적인 순간 그 문제에 답을 내놓기를 피하거나 미룬다. 그런 맥락에서 나는 교환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렇게 한바탕 춤을 춘 교환은 지금은 사회 안에서 과연 어떤 역할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김보년 프로그램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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