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같이 살고 있는, 내 주변의 누군가로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

- <우리 손자 베스트> 김수현 감독 시네토크




김수현(감독) 여러분들이 잘 보았는지 모르겠다. 나도 이 영화에서 다룬 소재나 내용에 대해 얼마나 파악을 했는지 확신이 없다. 나뿐 아니라 다른 감독들도 영화를 만들면서 성찰도 하고 성장을 한다. 시간이 지나야 좀 되새김을 하고 이 영화가 내게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정지연(영화평론가) 최근 본 영화 중 가장 원색적인 영화였다. 한국 사회의 전형적인 모습들이 나온다. ‘너나나나베스트’, ‘할아버지별동대’ 들이 나오고 팩트TV의 자료 화면들이 실제로 나온다. 처음에는 ‘우와 이거 뭐지?’란 느낌을 받았는데, 쭉 보다 보니 패기가 느껴졌다. 요즘 한국 영화에서 찾아보기 힘든 직설 화법을 통해 우리 사회의 논쟁적인 부분과 타협하지 않고 밀어붙이는 힘에 쾌감을 느꼈다. 그런데 또한 일베나 어버이연합의 일면적인 성격들만 나오는 게 아니라 그들 삶의 다양한 모습을 여러 시선으로 보여준다. 극악한 사람으로 묘사되던 사람들 이면의 외롭고 쓸쓸한 모습을 보여주고 연민도 갖게 한다.

 


김수현 처음 전주영화제에서 제작 지원을 받기로 결정됐을 때는 시나리오도 없었다. 막연하게나마 이십 대들의 방황을 다루고 싶었는데 그에 대해 내가 잘 몰랐다. 누구나 청년들의 어려운 현실을 사회 현상으로 다루면서 큰 걱정을 한다. 하지만 해결 방안도 없이 그냥 방치하다시피 한다. 이런 현실을 거창하지 않게 다루고 싶었다. 청년들의 문제를 다룬 원작들도 잔뜩 봤는데 좀 어려웠다. 그러다가 이 친구들, 소위 일베를 좀 늦게 알게 됐다. 사이버 공간에 있는 그들의 커뮤니티를 알게 됐고, 그들의 표현 방식도 찾아보았다. 그리고 이런 것들에 대해 사람들이 분노를 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내가 ‘한국 사회’에 관심이 많은 편은 아니다. 그런데 그 사이트에 들어가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좀 심각했다. 일단 이들이 왜 이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지 궁금했다. 안타까움 이상으로, 이해되지 않고 인정하기 힘든 부분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 친구들의 모습과 소위 ‘사회의 단면’을 고발하고 논쟁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냥 내가 알게 된 내용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담기만 해도 엄청났다. 사실 상상할 필요도 없었다. 그렇게 시나리오 초고가 나왔다.

나도 그렇고 모든 세대는 십대 때 기성 세대와 갈등을 겪는다. 동시에 기성 세대는 젊은 세대를 이해할 수 있는 폭에 늘 한계가 있다. 그래서 나도 내 세대의 기준과 가치로 이들을 판단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많이 고민을 했다. 결국 그 친구들을 나와 같이 살고 있는, 내 주변의 누군가로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소재도 그렇고 감독에 대한 평판도 좋지 않아서(웃음) 계획했던 예산이 쉽게 모이지 않기는 했다.

 

정지연 시나리오를 쓰면서 취재를 어떻게 했는지 궁금하다. 김수현 감독이 조감독으로 참여하기도 했던 <나쁜 영화>(장선우, 1997)에서 느껴지던 생생한 느낌도 있다.

 


김수현 첫 영화인 <귀여워>를 만들 때 취재를 하면서 즐거움을 많이 느꼈다. 그런데 두 번째 영화부터는 취재를 잘 안 하게 됐다. 왜냐하면 취재를 하면 내가 상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여지를 가둬두는 결과가 생기기 때문이다. 내 상상으로 채울 수 있는 부분에서 더 이상 못 나아가게 제한하는 경우도 있어 이번 영화에서는 취재는 거의 하지 않았다. 대신 실제 있었던 사건들을 가공하는 간접적인 방식을 취했다. 그리고 주연 배우인 구교환이 영화 속에 나오는 것과 비슷한 친구들을 실제로 두고 있더라. 영화 속 교환의 대사를 고치는 것도 직접 했고, 현장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내기도 했다.

<나쁜 영화>와는 비슷한 맥락이 있다고 본다. <나쁜 영화>에서는 십대의 몸부림을 그렸는데, 그게 지금 이십 대들이 사이버 공간에서 보여주는 부글부글한 에너지와 비슷하다고 본다. 꽉 막힌 것에 대한 항거 같은 것 말이다.

 

정지연 팩트TV의 실제 영상이나 사제 폭탄 사건 등 뉴스를 챙겨보는 사람이라면 알 법한 사건들이 나온다. 사실 일베와 어버이연합의 폭력적인 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되기 힘든 윤리적 문제를 안고 있다. 그들에게 연민의 시선을 보낼 수도 있지만 그와는 별개로 그런 행위를 그릴 때 윤리적 문제도 있을 것 같다.

 

김수현 어려운 문제다. 정치적, 윤리적 균형이나 기준을 나 스스로도 객관화시키기 어려웠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를 풀어놓으려 했다. 그런 문제에 대해 어떤 뚜렷한 확신을 갖기에는 나에게도 버거운 소재였다. 단 누구를 두둔하고 누구를 비방할 문제가 아니라 어쨌든 우리 모두가 같이 생각을 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정치적으로 극우인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는 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들이 엄청나게 예외적이고 특수한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알고 있는 정보 내에서, 함께 고민을 하는 장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려고 했다.

 

정지연 영화를 보면서 도시의 뒷골목 같은 소외된 공간이 잘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 공간에 대한 특별한 시선이 느껴진다. 파고다 공원이나 노량진의 학원가도 그렇고, 서울의 어두운 뒷골목을 중점적으로 보여준다.

 


김수현 종로는 다들 알겠지만 좀 웃기고 재미있는 공간이다. 종로라는 공간의 역사성을 만들어간 분들의 문화라는 게 약간 특이하다. 그리고 대한민국 수도의 한복판인데 변화하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 어떨 때는 흐뭇하고 뿌듯하고, 동시에 유치하고 촌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노량진도 마찬가지다. 워낙 오래된 공간이고 학원가가 많다 보니 노량진만의 특유한 문화가 있다. 내가 어릴 때 본 노량진과 지금 노량진이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고유한 느낌이 있다. 같은 장소에 가서 또 다른 영화를 한 편 더 찍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내가 이 공간을 찾아낸 건 당연히 아니고, 이미 수십 년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던 공간에 내가 도움을 받았다.


일시 10월 15일(토) 오후 6시 30분 <우리 손자 베스트> 상영 후 

정리 김보년 프로그램팀

사진 주민규 자원활동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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