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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Cine talk

“폭력에 대한 분노감, 증오가 꽤 매혹적이다”

[시네토크] 이명세 감독이 추천한 샘 페킨파의 <겟어웨이>

지난 21일 두 번째 시네토크로 이명세 감독과 함께 그의 추천작 샘 페킨파의 <겟어웨이>(1972)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영화가 끝나자 객석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오락적 요소들과 장르적 쾌감으로 충만한 영화였던 만큼 즐겁고 고양된 분위기가 시네토크까지 내내 이어졌다. 이 영화의 어떤 장면과 요소들이 우리를 흥분케 하는지 그 ‘즐거움을 나누며’ 웃음 터뜨리던 유쾌한 시간을 전한다.


허남웅(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고등학교 때 <겟어웨이>를 보셨다고 들었다.
이명세(영화감독):
아니다. 고등학교 때 봤던 샘 페킨파의 영화는 더스틴 호프만이 나오는 <어둠의 표적>이었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대사 중에 “하나님이 그 왕국을 만든 이래 폭력이 멈춘 적이 없었다”라는 구절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당시 유신정권 하에서 어딘지 모르게 느끼고 있던 폭력에 대한 분노감, 증오 같은 게 있었는데, 이런 면에서 페킨파의 영화에 매혹되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겟어웨이>를 극장에서 본 것은 나중에 뉴욕에 갔을 때였다. 관객 여러분도 오늘 보셔서 아시겠지만 페킨파는 소위 액션 영화에 많은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영향을 끼쳤다.

허남웅: 어느 인터뷰에서 폭력이라기 보단 아름다운 액션이라 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던데 어떤 지점에서 그렇게 생각하셨는지?이명세:
폭력은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흔히 페킨파를 폭력 미학의 거장이라고 평가하는데, 과연 폭력이 아름다움이 될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사람들이 왜 페킨파에 매혹되는 것인지도 궁금하다. 생각해보면 그건 단지 폭력의 미학이라기 보단 우리 안에서 도태되어버린 원시성, 동물성이 가진 아름다움 그 자체를 보여주었던 게 아닌가 싶다. 왜 요즘 초식남이란 말도 있잖은가. 이런 식으로 잃어버린 야성성의 미학을 보여주어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같다. 아, 요즘 짐승돌, 짐승남 같은 것도 이래서 유행인가보다. (좌중 웃음)

허남웅:
영화에서 스티브 맥퀸이 알리 맥그로우를 차 밖으로 내보내며 때리는 장면이 대본에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알리 맥그로우가 매우 놀랐다던데, 이런 점에서 맥퀸이 연기에 어느 정도 본능적 감이 있었던 것 같다. 그에 비해 인정은 별로 못 받은 배우다. 감독님이 매우 좋아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의 연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이명세:
맥퀸 뿐 아니라 연기 그 자체에 대해서 말하자면, 보통 ‘연기’라고 하면 마구 소리 지르고 ‘널 죽여 버릴 거야’라며 울부짖는 그런 것만 높이 평가하는 것 같다. 하지만 사실 영화 매체에서의 연기란, 단지 클로즈업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연기하고 있는 것이다. 맥퀸도 표가 많이 나진 않지만 일종의 메소드 연기를 하는데 군더더기 없는 연기, 영화 매체적으로 훌륭한 연기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연기는 전문가들도 잘 몰라본다. 개인적으로 윌리엄 허트가 <브로드캐스트 뉴스>에서 보여준 연기를 좋아한다. 예를 들자면 <미션>을 보고 사람들이 로버트 드니로랑 제레미 아이언스 중에 누가 더 연기를 잘했느냐 많이 얘기 했었는데, 학점으로 치면 나는 냉정하고 드라이한 제레미 아이언스의 연기에 A+을 주고 싶다. 드니로의 액티브한 연기에는 A-나 B+정도? (좌중 웃음)

허남웅:
사실 페킨파의 영화들 중에는 <겟어웨이>가 너무 대중적이란 이유로 가장 저평가되는 작품이잖은가. 다른 작품과 비교해서 어떤 점이 매력적이었나?
이명세:
곳곳에 조금씩 매력이 있다. 페킨파가 세르지오 레오네와 영향관계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둘의 악당은 그야말로 악당이란 공통점이 있다. 보다보면 죽었으면 좋겠다 싶을 만큼 정말 추악하고 나쁜 놈들이다. 인간의 본성 중 가장 더러운 것만 보여줄 수 있는 배우들을 악당으로 적절하게 잘 골라서 정말 적절한 순간에 그 악당들을 샷건(장총)으로 통쾌하게 처리한다. 사람 죽어 자빠지는 게 통쾌하다기 보단 이런 것들이 소심한 우리들의 욕구를 대변해주는 매력이 있다. 또 오늘은 곳곳의 작은 유머들이 너무 재미있었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트럭 운전수와 땅바닥에 주저앉아서 흥정하는 부분은 마치 성경에서 예수가 ‘이 중 죄 없는 자만 돌을 던져라’라고 할 때 땅바닥을 끼적이고 있는 느낌도 나고 해서 아주 재밌게 보았다.

허남웅:
한편 굉장히 남성적인 영화기도 하다. 처음에 맥퀸이 감옥을 나오기 위해 맥그로우를 이용해 놓고 나중에는 '왜 그 때 (관리와) 잠을 잤냐'며 탓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는데, 이런 점은 여성관객들에겐 불편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이명세:
마초적인 동시에 어떤 면에서 페킨파도 조잡한 인간이었겠지. (웃음) 사실 나 같아도 그럴 것 같다. 빨리 감옥에서 나가서 영화 찍고 싶은데, 막상 또 그런 식으로 나가면 그 문제에 소심하게 매달려 있을 것 같고. 그런 거 아닌가. 이런 이중성이 여러 캐릭터의 모습 속에서 곳곳에 나타나는 것 같다. 그 동물병원 여자의 전형성도 그렇고. 또 심리학적으로 볼 만한 부분인데, 페킨파는 꼭 폭력의 현장에 아이들을 등장시킨다. <와일드 번치>에서 전갈 태울 때에도 아이들이 나오고, 또 아기 울음소리라든지, 상당히 종교적인 것들이 배어있는 것 같다.

허남웅:
샘 페킨파를 말할 때 그의 폭력미학을 슬로우 모션과 연결 짓는다. 이 영화에서는 시간이 역순으로 진행되는 도입부의 편집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또 소리로 감옥을 만들어 맥퀸을 가두는 듯한 사운드 편집도 독특했는데, 이런 부분들에서 어떤 인상을 받았는가?
이명세:
지금도 이런 편집방식은 상당히 새로운 것 같다. 오늘은 이 영화의 편집을 통해 구현되는 사운드 디자인을 보았다. 혹 영화연출에 관심이 있다면 도입부의 감옥장면을 눈여겨 볼만 하다. 인물 소개부터 감옥 생활, 현재 처한 상황까지 정말 짧은 시간 내에 편집으로써 이렇게 잘 보여주지 않는가. 또 감옥 방직 기계의 끼이는 듯한 소리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눈부신 철창살의 황금빛 등, 많은 묘한 요소들이 편집을 통해 재밌게 잘 조화를 이룬 것 같다. 편집 작업할 때 생각해볼만 하다.

허남웅:
어떤 장면이 감독님께 가장 인상적이었는지?
이명세:
라디오 구입 후 샷건을 들고 나왔을 때. '아 저것이야 말로 영화다!'싶었다. 샷건이 무엇인지 영화만의 방식으로 보여주었다. 슬로우 모션의 리듬감과 단 몇 개의 클로즈업 숏으로 정확하게 불의 느낌과 힘을 표현해 냈다. 오늘도 그 힘이 아주 강력하게 다가왔다.
허남웅:
개인적으로 쓰레기 하치장 장면은 남성적인 힘을 과시하면서도 전쟁에 피어난 꽃 같은 여성적인 느낌도 주는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이명세:
아마 아웃풋의 문제겠지만, 원래 그 장면에 대한 내 기억 속 이미지는 쓰레기가 아름답게 오색으로 날리는 거였는데 오늘 보니까 아니었다. 착각이었던게지. 우리가 영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뭔가를 만드는 것 같다. 기억엔 네모난 쓰레기건초더미가 슬로모션으로 공중에서 아름답게 해체되면서 거기서 사람이 풀려나오는 장면이었는데...... 오늘 본건 내가 갖고 있던 이미지보단 덜 했던 것 같다. (웃음)
허남웅:
실망하셨는지? (웃음)
이명세:
아니 실망은 아니고...관객 여러분도 <부당거래>나 두기봉 영화들, 소위 말하는 누아르 영화 보며 느끼셨을 테고, 또 오우삼 감독의 경우 대놓고 샘 페킨파와 장 피에르 멜빌로부터 영화를 배웠다고 하듯이, 정말 페킨파가 후배 영화인들에게 곳곳에 아이디어와 영향을 줬다는 생각이 확실히 들었다.


관객1:
혹시 감독님께서 만든 영화 중 샘 페킨파에게 오마주를 바친 장면이 있는지?
이명세:
이번에 있어보려 한다. 페킨파의 힘을 좋아하지만 아직까지 오마주라고 할 만한 건 없었다. 다만 아까도 말했지만 <겟어웨이>는 상업적으로 성공했을 뿐 아니라, 미장센, 리듬감, 사운드 편집 등 영화적 측면에서 다시 발견할만한 부분도 많다. 특별히 어느 장면을 오마주하기 보다는 이런 점들에서 페킨파가 표현했던 원시성, 야성성, 리듬감 같은 걸 다음 영화에서 적절히 활용할 생각이다.

관객2:
<형사>, <M>부터 영화에서 서사보다는 다른 쪽의 매력을 부각시키는 작업을 하시는데 앞으로도 이런 영화 형식적인 실험을 계속 하실 건지 궁금하다.
이명세:
아. 조용히 있으려고 했는데. (웃음) 소재를 약간은 관객들이 편안하게 볼 수 있는 걸로 맞추려한다. 반발자국 뒤로 물러서서 찍으려고 생각 중이다. 영화가 나와 봐야 아는 것이고 아직은 모른다. 머릿속엔 이미지들만 떠돌고 있다. 페킨파의 리듬만 갖고 올지 오마주를 만들지 어떨지 모르겠고. 어쨌든 이번엔 페킨파의 영화가 보여주는 힘, 구로자와 아키라가 보여주는 화면의 힘 같은 걸 보여주고 싶다. 이들은 내 영화학교의 초빙교수들이다. 원래 내 영화학교의 주임교수는 오즈 야스지로, 찰리 채플린, 자크 타티, 페데리코 펠리니, 버스터 키튼인데 이번에는 초빙교수 쪽으로 가려고 한다.

(정리: 백희원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관객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