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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Cine talk

“요즘 어떤 영화 보세요?”

[시네클럽] 정가형제 감독이 생각하는 ‘좋은 영화’ 보기

지난 26일 오후에 열린 두 번째 시네클럽 행사는 <기담>의 정가형제 감독과 함께했다. "요즘 어떤 영화 보세요?"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행사에서는 유년 시절을 영화광으로 보낸 정범식, 정식 감독이 ‘좋은 영화’에 대한 생각들을 이야기하고 데뷔작 <기담>의 작업 과정에 대해서도 들려주었다. 소탈하고 내밀했던 현장의 분위기를 전한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요즘 어떤 영화를 보는지?
정식(영화감독): 영화감독을 하게 되니까 영화를 더 못 보게 된다. (웃음) 작업을 하면 시간이 많지 않게 돼서.
정범식(영화감독): 중2 때부터 영화를 많이 봤다. 영화를 안 보면 입에 뭐가 돋을 것 같았다. 그런데 <기담>을 만들고 나서 느낀 것이지만 보는 영화와 만드는 영화가 다르더라. 볼 때는 미학적인 면으로 보지만 만들 때는 산업적인 측면으로 보게 된다. 만들어지는 과정을 많이 알게 되니까 작년부터 영화를 보는 것에 소원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본 영화가 많아져서 그렇기도 한데, 요새 뜨겁게 다가오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 영화제에 <록키>를 추천하기도 했다.

김성욱:
어떤 영화를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고, 어떤 영화를 나쁜 영화라고 생각하는지?
정범식: 미술 하는 분들은 문외한들이 보면 '저런 걸 어떻게 좋다고 할 수 있지?' 싶은 작품도 좋게 평가할 수 있다. 영화도 그런 게 있는 것 같다. 꼭 이야기를 중심으로 보지는 않는다. 시나리오에 중점을 둔 영화라고 하면 드라마투르기를 보지만, 그런 것이 아니고 형식을 추구하는 영화라면 형식을 본다. 나는 오손 웰스의 영화 같은 형식미 있는 영화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어눌한 화법을 취하든 기막힌 형식미를 갖추고 있든 내용을 담는데 얼마나 충실한가에 초점을 맞춘다. <기담> 만들 때는 우리가 갖고 있는 내용은 별 것 아닌데 포장이 지나친가 하는 내적 고민도 했다.
정식: 솔직하지 않은 느낌이 나는 영화가 제일 싫다. 주제를 포장하기 위한 형식적인 가식들로 채워졌거나 '상을 타기 위해 만들어내는 장면이구나' 하는 것이 느껴지는 영화가 가장 싫은 영화다. 우리만의 편견일 수 있는데 그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같은 의견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 영화가 왜 가식인가' 하는 의견을 나눌 때 몇몇 사람들과는 의견이 너무나도 잘 일치한다.
정범식: 영화도 사람 만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인간관계에서도 진심과 가식이 느껴지지 않나. 이건 영화니까 하고 다른 잣대를 갖고 보시는 분도 있을 것 같은데 사람들 만나는 것, 뭔가를 접하는 것과 다른 게 없다.

관객:
<기담>에서 배우와의 작업를 위해 준비하셨던 게 있으신지 또 실제 작업하면서 ‘다음엔 이렇게 하겠다’는 교훈을 얻으셨는지 궁금하다.
정범식: 생각보다 영화 찍기 전에 연기 연습들을 많이 안 한다. 대중 영화라면 앉아서 몇 번 리딩하는 정도? <다크 나이트>의 히스 레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하비에르 바르뎀 같은 연기가 그냥 나오지는 않는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두 달 동안 캐릭터 만들고 말투 만들고 몸짓 만드는 분들도 있지만 전체적 환경이 그렇지 못하다. 우리는 작업실을 구해서 씬 연습을 많이 했다. 동선을 다 긋고 동선에 따른 자세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콘티를 짰다. 배우들 중에서도 연극작업에서부터 연기를 전통적으로 공부한 분들은 '이런 것에 목말라했었는데 너무 좋다'고 했고 그냥 편하게 그날그날 하는 배우는 '왜 이렇게 해야 하지' 하는 당혹감을 표현하더라. <기담>의 연기에 대해 한 평론가 분이 말투가 어눌하다고 했는데 그건 사실 그렇게 만들어놓고 간 거였다. 시대색으로. 물론 자의식이 강한 배우는 이런 연습을 반기지 않을 수도 있어서 사람마다 잘 조절해야 할 것 같다.
정식: 무엇을 준비했는지 안 보여주고 있다가 즉석에서 딱 보여줬을 때 모두에게 찬사 받을 수 있는 순간이 있지 않나. 현장에서 그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을 선호하는 배우가 있다. 그런데 <기담>에서는 어느 한 순간 재치를 보여주는 연기가 거의 없다. 웃겨야 한다거나 기막힌 동선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고 영화 프레임 안에 가둬놓는 형식을 취했기 때문에 연습이 꼭 필요했다.


정범식: 그리고 배우가 이전에 있었던 모습을 씻어내지 않은 상태에서 똑같이 반복하는 게 싫었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얘기하고 그 안에 들어올 수 있는지를 먼저 물었다. 이런 저런 훈련을 제안하기도 하고, 의견을 듣고 변형시키기도 하고. 촬영 준비를 하고 콘티를 짜는 와중에도 어떤 훈련을 했으면 좋겠는지 얘기한다. 그게 되는 분들이 있고 ‘왜 날 가둬두느냐’ 하는 분도 있다. 그런 걸 해줄 수 있는 사람을 주로 만난다. 봤던 걸 또 보는 건 관객의 입장에서 재미없지 않나.

(정리: 최용혁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관객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