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토크] 김태용 감독이 추천한 로우 예의 ‘수쥬’

지난 28일 저녁, 로우 예의 <수쥬>를 상영 후 이 영화를 추천한 김태용 감독과의 시네토크 가 이어졌다. 객석을 꽉 메운 관객들은 숨죽이며 김태용 감독의 이야기를 들으며 감독의 너스레에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진지하면서도 화기애애했던 그 현장의 일부를 여기에 전한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10년 전에 나온 영화인데, 오늘 다시 보시면서는 어떠셨는지?
김태용(영화감독): 말씀대로 10년밖에 안 된 굉장히 최근 영화이다. 정확히 어떤 내용인지는 헷갈렸지만 10년 전에 느꼈던 정서가 지금도 비슷하게 느껴진다. <수쥬>는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더라도 정서가 중요해지는 영화인 것 같다.
김성욱: 그 정서는 어떤 것인가?
김태용: 2000년 전까지는 중국 영화감독에 대해 편견 같은 느낌을 갖고 있었다. 장이모, 첸 카이거 감독의 영화에서 느껴지는 원형적이고 고전적인 느낌이었다. 일본 영화에도 젊은이들이 갖는 방황, 열정, 좌절을 다룬 청춘 영화가 있었고 한국에도 있었는데 중국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그러다가 지아장커와 로우 예의 영화를 보았다. 그 때 중국에서 90년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은 이렇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청춘과 시대와 장소를 바라보는 태도가 어쩌면 다른데 이상하게 이 영화가 끌렸다. 왜 그렇게 끌리는지는 모르겠지만 동시대 중국의 영화감독 중에는 지아장커가 제일 유명한데 기회가 되면 지아장커 영화 말고 <수쥬>를 보고 싶다는 느낌이 있었다. 이 영화를 십 년 전에 보고, 오늘 처음으로 다시 보았다. 십 년 전에 <수쥬>를 보고서 상해가 개발되면서 가장 아름다운 강이 가장 더러워지는 곳에서 청춘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중국의 현실을 꿰뚫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지적인 접근이 아니라 정서적인 느낌이었다. 더럽다, 처절하다, 변한다, 사라진다, 그리워한다. 영화를 열어주기도 하고 닫아주기도 하는 ‘내가 떠나면 나를 찾을 거냐. 평생’ 하는 대사도 사랑 얘기 같으면서도 현실 얘기 같았다. 정확히 무언가를 이해하지 못하는 가운데서도 끌림과 매혹을 정서로 이해했던 것 같다. 저우쉰이라는 여배우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당시 신인이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은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배우 가운데 하나가 됐다. 그 여배우의 힘이기도 하지만 어쨌건 그 시대의 처절함이 많이 느껴진 것 같다.

김성욱:
말한다는 것, 사랑 이야기를 한다는 것과 카메라를 들고 촬영하는 것의 대비와 충돌이 매혹적이었는다. 이에 대한 생각은 혹은 다른 흥미로운 점이 있으셨는지?
김태용: 그 점 때문에 매혹되기도 하고 헷갈리기도 한 것 같다. 로맨틱하고 목숨 건 사랑을 꿈꾸며 순진한 의미의 사랑을 하는 무단이 나오지만, 같은 배우가 맞나 싶을 정도로 사랑에 대한 신뢰가 전혀 없는 메이메이 같은 인물도 등장한다. 메이메이는 마르다의 이야기로 굉장히 흔들리게 되고, 화자에게 내가 떠나면 나를 찾을 거냐고 말하고 떠나버리기도 한다. <수쥬>에서는 사랑 얘기를 계속 하는데 말투를 들어보면 그 사랑 얘기가 정해진 원형의 사랑 얘기가 아니라 각색되는 면이 있다. 그 얘기를 원하는 사람만 들을 수 있고 말할 수 있고 그 얘기를 누군가에게 얘기할 때는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표현한다. 이 영화에서 좋아했던 점은 감상성이 컸는데 감상적인 느낌은 한 끗 차이로 유치해보일 수도 몰입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감상적인 것을 무기로 갖고 있지만 감상적이지 않도록 말한다는 것과 찍는다는 것이 계속 ‘흔들리고’ 있다. 카메라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처음에 말하지만 거짓말하는 느낌을 계속해서 준다. 또 옛날 얘기라고 하지만 현재에 계속 나타나면서 그 이야기가 갖는 힘을 다시 얘기하기도 한다. 한편 음악이 감상적으로 쓰이는데 감상을 경계하기보다도 감상에 흠뻑 빠지게 하기 위한 것 같다. 층이 계속 깔리면서 생기는 감상성은 지아장커 영화에서 볼 수 없는 점이고, 이러한 감상성 때문에 <수쥬>가 저평가될 수도 있고 어쩌면 더 끌릴 수도 있을 것 같다.

김성욱:
메이메이는 마다의 이야기를 거짓이라 생각한다. 눈으로 확인할 수 없어서 믿지 않는 것처럼. 눈으로 보는 것을 진실이라고 믿는 반면 말로 얘기되는 것은 거짓으로 여기게 된다. 한편 여자가 강에 빠지고 나서 인어가 되었다는 말이 퍼지고 이후 한 선원이 인어를 본 것 같아서 자기 눈을 의심하며 이상한 표정을 짓는 장면이 나온다. 단순한 장면이지만 인상적이다. 말해지는 것과 보이는 것의 충돌이 여기에 있다.
김태용: 말씀을 듣다보니 이 영화의 매혹적인 점이 ‘진실’이란 것도 컸던 것 같다. 오염돼서 쓰레기로 가득 찬 수쥬 강을 보여주고 ‘당장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것을 여러분은 믿을 수 있겠습니까?’라는 질문을 계속 던지고 있는 것이다. 메이메이가 무단의 이야기가 거짓말인 줄 알았는데 진짜였다니 하고 놀라는 장면이 있다. 비 오는데 시체를 바라보고 나서 갑자기 홱 돌아서서 카메라를 바라보는 메이메이의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드라마의 맥락에서 보면 메이메이가 그 얘기가 거짓말인 줄 알았는데 진짜구나 깨닫는 것은 그다지 굉장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엄청난 비밀을 발견했고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 것 같은 표정을 짖는다. 그 격해져있는 감정이 이야기적으로 훌륭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이 장면이 갖고 있는 엄청난 파워는 이 이야기가 '진실과 거짓, 눈앞에 벌어져 있는 모든 게 사실인지 아닌지,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태도는 무엇일지' 라는 질문을 계속해서 던지는 데서 오는 것 같다.


김성욱: 여자 배우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특히 납치되었다는 사실을 알게되는 순간 이후의 표정의 변화와 이어지는 장면의 연결에서 감정을 잘 표현하고 있다.
김태용: 이 영화의 압권은 무단이 납치돼서 실망하고 분노하고, 도망가서 자살하는 마음으로 뛰어내리는 부분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자유분방한 성격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뭐 저렇게까지?’ 하고 생각할 여지도 있다. 상황을 모면하는 다양한 방법이 있으니까. 그런데도 엄청난 신뢰에서 엄청난 실망으로 변했다가 자기 파멸에 이르는 것이 와 닿았던 것은 무단의 얼굴 클로즈업이 롱테이크로 이어지면서 ‘아 이게 장난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무표정이 보여지고, 눈물을 떨어뜨릴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가 분노로 바뀌고, 이어서 롱숏으로 무단과 마르다 사이의 거리감을 드러내는 일련의 표현 덕분이었다. 여기서 저우쉰의 연기는 매우 훌륭했다고 생각한다.

관객1: 사회적인 문제, 진실과 거짓말의 문제 말고, 이 영화의 뼈대인 사랑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궁금하다.
김태용: 이 영화는 사랑 얘기를 기본적인 바탕으로 깔고 있지만, 감독이 영화를 만들 때 ‘어떤 사랑 영화를 하고 싶다. 영원불멸한 사랑 영화를 하고 싶다’고 해서 수쥬 강으로 찾아간 경우 같지는 않다. 어떻게 <수쥬>라는 영화를 제작하게 됐을까를 추측해보면 이 공간에서 하염없이 강을 바라보다가 사랑 얘기를 하고 싶었을 것 같다. 이야기가 공간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싶은 느낌이 든다. 요즈음은 사랑하는 감정에 의문을 갖는 데서 시작하는 경향이 있는데 <수쥬>는 이와는 다르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있다. 나는 실제로 본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옛날에는 그런 감정으로 살았었대. 그 감정은 도대체 뭘까? 누군가가 떠나면 평생 찾는 감정일까?’ 이렇게 감정을 순수하게 연구하듯이 접근한다. 사랑하지 못한 것에 안타까워하거나 사랑하는 데서 오는 쾌감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에 접근하는 것 같은 영화이다.


관객2: 무단과 마르다는 다시 만났는데 죽어서 시체로 발견된다. 의미가 불분명했다.
김태용: 죽었다는 게 나도 뜬금없었다. 다만 사랑 이야기를 완성하기 위해 필요했던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신화적인 이야기의 완성은 죽음이지 않은가. 무단과 마르다의 이야기를 사랑 이야기의 반석 위로 올리려고 죽음을 가져온 것 같다. 이 영화는 어쩌면 시체는 이미 있고 시체로 발견된 두 명의 이야기를 쫓아가는 내용일 수 있다. 이야기의 기승전결에 맞춰서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과정으로써 이야기가 만들어지기보다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서 더 파워풀해지는 것이 있지 않을까 싶다.
김성욱: 말씀대로 이미 존재하는 시체에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죽음부터 시작해서 왜 죽었는지 얘기되다가 죽음으로 돌아가서 죽음이 중간에 삽입되는 것 같다.


관객3: 마르다와 화자가 처음 대면할 때 마르다는 미친 것처럼 보였다. 또 화자가 메이메이와 헤어지고 나서 한 여자가 부담스럽게 노래하면서 등장했는데 이런 특이한 장면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김태용: 이 영화는 서사, 이야기의 완결성 이전에 다른 에너지가 있는 것 같다. 영화 10분 보고 나면 무엇으로 만든 영화인지 보이는데 <수쥬>처럼 에너지로 만든 영화는 에너지로 보면 된다. 이 안에서 얘는 누구고 쟤는 누구고 하면서 머리를 쓰게 되면 덜 즐거운 느낌이 있다. 영화가 약간 머리를 써야 되는 느낌은 있지만 정서에 빠져 들어가면 재밌어진다. <수쥬>는 머리를 덜 써야 재밌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굉장히 날 것 같은 느낌으로 에너지 하나로 승부하는 영화이다. 영화를 즐겁게 볼 수 있으려면 내가 준비되어있어야 한다. 어떤 영화를 이렇게 보면 된다고 했을 때 다른 방향으로 보려고 하면 우리만 손해이다. 에너지로 보는 영화구나 하면 에너지로 보고 머리를 써야 되는 영화구나 하면 머리를 써서 쾌감을 얻으면 된다. 우리가 준비가 되면 영화가 즐거울 수 있는데 준비되지 않으면 덜 즐거운 때가 있는 것 같다.

(정리: 최용혁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관객 에디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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