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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시네토크

“여러분들 핑계 대고 같이 보고 싶은 영화”

안성기의 선택, 밀로스 포먼의 <아마데우스> 시네토크


1월 30일 오후 3시, 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에게 짧은 경고(?)가 주어졌다. “혹시 90분이나 100분으로 알고 오신 분들께 미리 말씀드리면, 이 영화는 세 시간짜리 영화입니다.” 하지만 새롭게 디렉터스컷으로 관객과 만난 <아마데우스>는 시계를 확인할 틈도 없이, 하품할 여지도 주지 않고 그대로 달렸다. 따라 웃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모차르트의 기이한 웃음소리와 음흉함, 어두운 열정으로 차 있는 살리에르의 표정은 그들이 이 영화를 사로잡고 있다고 자신하는 듯 했다. 관객과의 대화까지 끝나니 이미 해는 떨어진지 오래. 친구는 관객을 핑계 삼아, 관객은 친구를 핑계 삼아, 서로 말보다는 영화로 마음을 나눴던 그 시간을 담았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오늘 보여드린 <아마데우스>는 새로 복원된 디렉터스컷 버전으로 처음 공개한 것이고 필름 상태도 좋았는데, 상영관 위에 뮤지컬 전용관이 있어서 영화의 음악을 듣는 데에 불편하셨을 것 같다. 올해 친구들 영화제를 하면서도 제대로 된 공간을 마련하자는 얘기가 계속 나오고 있는데, 최상의 상태와 조건에서 보여드리지 못해 죄송스럽다. <아마데우스>는 작년에도 안성기 씨가 같이 보고 싶어 하셨던 영화 중 하나다. 먼저 왜 이 영화를 꼽으셨는지, 오늘은 어떤 느낌으로 보셨는지 듣고 싶다.

안성기(영화배우): 영화를 보고 나면 얘기를 더 하고 싶은 영화고 있고 그냥 가만히 앉았다가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영화가 있는데, 후자에 속하는 영화인 것 같다. 더 얘기하면 뭔가 깨질 것 같다. 이 영화는 84년에 미국으로 <깊고 푸른 밤>을 찍으러 갔을 때 처음 봤고, 나중에 단성사에서 우리나라에서 개봉했을 때 봤다. 완전히 압도당했던 기억이 난다. 권투 선수가 제대로 펀치 맞으면 별이 보이고 힘이 빠지면서 행복하다고 하는데, 그런 펀치 맛을 오늘 또 한 번 느낄 수 있어서 대단히 기뻤다. 밀로스 포먼 영화는 대부분 좋아하는 편이고, 특히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와 <헤어>라는 영화를 좋아한다. <헤어>는 반전 영화였기 때문에 70년대 후반에 열악한 비디오테이프로 봤는데, 보고 정말 흥분했고 감동 받았다. 다시 볼 기회가 없었는데, 좀 전에 작년에 아트시네마에서 했다고 들었다. 그걸 왜 놓쳤는지 모르겠다. 하는 줄 알았으면 보러왔을 텐데. 앞으로도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여러분들 핑계를 대고 같이 봤으면 좋겠다.

아무래도 배우다 보니까 연기를 중점적으로 보게 되는데, 이 영화의 두 주인공은 오랫동안 사람들 마음속에 각인되는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그 작품을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지 눈에 선해서, 더 감명을 받았다. 그 이후로는 두 배우 모두 사실 이렇다 할 성공작이 없다. 살리에르 역의 F. 머레이 에이브러햄은 주로 악역 조연들을 하면서 빛을 못 받았다. 모차르트의 톰 헐스도 다음 연기부터는 힘을 못 썼던 것 같다. 어쩌면 모든 것을 이 영화에 쏟아 부어서 그런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김성욱: 두 배우는 살리에르와 모차르트로 가장 강렬하게 남아있는 것 같다. 마지막에 밤을 새면서 레퀴엠을 써나가는 순간에 두 사람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결과적으로 아카데미에서는 살리에르를 맡았던 에이브러햄이 상을 받긴 했지만, 두 배우가 모두 압권이다. 배우가 봤을 때 두 사람의 연기가 어떤 면에서 강렬하게 다가오셨는지.

안성기: 톰 헐스의 경우는 감독의 요구가 있긴 했겠지만, 직접 만나면 웃음은 누가 설정했는지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충격적이고 신선하게 다가왔다. 모차르트를 저렇게 맘대로 자유롭게 만들었다는 사실, 거기다 저렇게 잘 연기했다는 것까지 대단히 훌륭했다. F. 머레이 에이브러햄은 볼 때마다 그 배우 이상으로 감탄하는 연기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웃음) 무언가를 보거나 듣고 느낄 때의 리액션 연기가 대단하다.

영화를 보면서 음악의 힘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병원에서 회상을 할 때 음악이 많이 들어가는데, 한 번은 귀를 꽉 막고서는 연기만 봤더니 별로 볼품이 없더라. 음악이 웅장하게 들어가고 감정이 실리니까 감정의 폭이나 연기가 훨씬 커지는 것을 느꼈다. 물론 굉장히 좋은 음악을 써서 그랬겠지만, 음악이 영화의 힘에 미치는 역할이 큰 것은 확실한 것 같다.

 

김성욱: 어떤 감독은 음악과 소리가 연결된 연기의 패턴이 있는 경우에 음악을 진짜로 틀어놓고 작업하는 경우도 있더라. 그런 경험이 있으신지.

안성기: 같이 작품을 많이 했던 배창호 감독과 그런 시도를 몇 번 해봤다. 요즘에는 음악 작업 시기가 빨라졌지만, 예전에는 영화가 완성되고 나서 음악을 만들었다. 그런데 비슷한 감정을 이끌어낼 수 있는 비슷한 음악을 미리 가져와서 배우가 리허설 할 때 들려주면 감정이 잘 살아난다. 여배우들의 경우엔 특히 음악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감정의 폭이 넓거나 흐름이 눈에 보일 정도의 음악이 있다면 그런 식으로 작업했다. 물론 홍보 스틸이나 다른 사진 촬영 때도 음악을 많이 틀어놓는다. 작가들이 컨셉에 맞게 음악을 틀어놓으면 거기에 적응해서 좀 더 쉽게 촬영에 임할 수 있다.

 

김성욱: 모차르트는 하이든이 40세에 보여준 음악적 완성도를 이미 8살 때 보여준 천재적 음악가로 알려져 있다. 살리에르와 모차르트의 갈등도 범용한 예술가와 천재적 예술가 간의 갈등이다. 음악을 하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글을 쓰는 사람도 30, 40대가 넘어서 10대의 글을 보고 감탄하는 경우도 생긴다. 비슷하게 너무 젊고 경험도 별로 없는 것 같은 어떤 배우의 연기를 보고 놀랄 수 있지 않나. 혹은 가끔 본인의 재능에 대해 살리에르처럼 느끼거나, 아니면 모차르트처럼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연기자의 입장에서 재능이라고 하는 문제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안성기: 물론 재능은 중요한 부분이다. 아무리 해도 안 되는 사람도 있고, 조금만 해도 잘 되는 사람이 있다. 예술에 있어서는 불공평한 부분이 생긴다. 근데 배우들의 경우는 본인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어떤 연출자와 만나는가도 그만큼 중요하다. 어떤 배우가 어떤 감독하고 만났을 때는 호흡이 잘 맞아서 굉장히 빛나는 보이는 반면, 어떤 때는 굉장히 바보 같아 보일 때도 있다. 감독이 작품을 읽는 능력, 디테일에 대한 요구 같은 것들이 배우에게 감동이나 자극을 주면, 배우 속에 잠재되어 있던 것들이 발현된다. 그렇지 않으면 배우에게도 한계가 있어서 평범해지고 만다. 나 역시도 몇 번 그랬다. 배우나 감독의 관계엔 어느 정도 그런 등식이 성립한다고 생각한다.

 

김성욱: 어느 순간 자신이 너무 평범한 재능을 가진 것 같다는 의심이 들 때 작업을 지속해 나가는 동기나 믿음은 어디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안성기: 좋은 시나리오를 읽으면 자극을 받는다. 배우에게는 연기자 자신의 재능이나 연출자의 도움 이상으로 시나리오를 선택하는 능력도 매우 중요하다. 참 좋은 시나리오들이 있다. 읽으면 상상력이 생기면서 점점 디테일한 이미지들이 떠오르는 시나리오가 있다. 그런 건 반드시 해야 된다. 그리고 십중팔구 좋은 평가를 받게 된다. 반면 시나리오 자체는 좋은데 배우의 상상력이 일어나게끔 하지 못하고 캐릭터들이 자유롭지 못한 경우도 있는데, 그럴 경우는 결국 실패를 맛보게 된다.

 

관객1: 많은 관객들이 비교적 평범한 인물인 살리에르에 감정이입을 하면서 볼 것 같다. 안성기 선생님은 어느 캐릭터에 감정이입이 되셨는지. 만약 살리에르라면, 평소에 모차르트처럼 그런 감정을 느끼게 하는 상대가 있는지.

안성기: 살아가는데 여러 가지 비밀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밝히라는 말인데. (웃음) 영화 쪽에서는 천재성이라는 것이 통하는지 잘 모르겠다. 채플린 같은 사람을 보면 정말 천재라는 생각이 든다. 그 외에도 대단한 사람들은 많지만, 그들이 모두 천재라는 생각은 잘 안 든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우리 모두는 살리에르와 같은 마음을 품고 산다고 생각한다. 살리에르를 통해서 그려지는 인간의 안 좋은 욕심, 본성적인 부분, 질투심이나 증오 같은 감정들은 사람마다 크기는 달라도 조금씩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나도 <올드보이>의 최민식 씨를 보면 ‘죽였다, 정말.’ 이렇게 생각한다. 근데 내가 하면 그렇게는 못할 것 같다. 최민식이라는 배우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면 나로서는 그렇게 안 가는 게 맞다. 내가 어리숙한 연기를 잘하고 그러니까 최민식 씨가 반대로 갔을 수도 있겠지만. (웃음) 요즘 배우들은 자기만의 개성이 있지 않나. 다른 배우의 세계를 건드려서는 안 되겠다 싶으면 그쪽은 놔두고 자기의 세계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관객2(신연식 <페어 러브> 감독): <아마데우스>에서 톰 헐스가 피아노 치는 게 전문가 수준인 것 같더라. <피아노 치는 대통령>도 생각이 났다. 그 작품에서 피아노나 다른 영화를 통해 악기 연주를 직접 준비하신 적이 있으신지.

안성기: <피아노>에서 노래 한 곡을 꼭 쳐야했다. 중요한 부분이어서 안칠 수가 없었다. 근데 그 전까지는 피아노 손도 안 대본 사람이어서, 피아니스트한테 찾아가서 아무 것도 모른다고, 가르쳐달라고 해서 배웠다. 영화 <모정>의 주제곡이기도 하고, 우리에겐 앤디 윌리엄스의 목소리로 기억되는 ‘Love Is A Many Splendid Thing’이란 곡인데, 아시는지. (노래 한 소절) 배우는 데 왼손 한 달, 오른손 한 달, 같이 치는데 한 달, 합쳐서 석 달 걸렸다. 그게 마지막 촬영이어서 다섯 달 동안 연습했는데, 시간은 많이 걸렸지만 감독이 무척 좋아했다. 마음대로 카메라 갈 수 있었으니까. 아니면 카메라를 얼굴로 올렸다가 배경으로 돌리고 해야 했을 거다. 요즘 관객들은 빨라서 흉내만 냈는지 실제로 친 건지 다 안다. 흉내만 내면 벌써 영화에 방해가 된다. 그런 부분은 감독이 말하기 전에 배우가 만들어야 될 부분이다. 다른 악기도 다뤄보고 싶은데, 마음뿐이고 쉽지는 않다. 배우란 직업이 참 좋은 것이, 영화에 필요하면 돈 받아가면서 배울 수가 있다. 또 그런 기회가 생기면 열심히 배울 생각이다.

 

관객3: 아까 <모정> 얘기하시니까 나중에 여기서 <모정>도 볼 수 있게 되면 좋겠다. <아마데우스>는 85년도 개봉 때 처음보고 TV에서 할 때도 감동이 깨질까봐 안 봤는데, 오늘 극장에서 보니 그 때의 감동이 그대로 느껴진다. 그런데 두 배우가 그 뒤로는 다시 좋은 연기를 보여주지 못해서 안타깝다. 선생님께서는 정말로 좋은 작품 하나를 하는 것과 꾸준히 작품을 해나가는 것 중에 어떤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시는지.

안성기: 지금까지 계속 가늘고 길게 왔기 때문에 갑자기 짧고 굵게 가라고 하면 당황스럽다. (웃음) 물론 누구에게나 불같이 한 번 확 타올랐다가 꺼지고 싶은 생각들은 있을 것이다. 누구도 꼼짝 못하는 영화를 한번 만들어 보고 싶은 것이 영화인들이 꿈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것이 예술가의 아주 본질적인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내 영화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자면, 호흡조절을 잘 해서 끝까지 잘 도착하고 싶다. 운명론적 생각인지는 몰라도, 자기 그릇의 크기는 나름대로 정해서 있지 않나 생각한다. 그 그릇에 채워져 있는 것을 빨리 취할 것이냐, 조금씩 취하면서 살 것이냐 하는 문제인 것 같다. 내 그릇이 이만하다면, 그걸 조금씩 밧데리 용량 써나가듯이 조금씩 쓰고 있는 것 같다.

 

관객4: 살리에르가 과거를 회고를 하면서 영화를 진행시키는 면이 연기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 같다. 한 배우가 다른 시간의 인간을 연기하는 부분이 인상이 깊었다. 최근에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같은 영화에서처럼 한 배우가 다른 시간의 인간을 연기하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 선생님께선 실제 나이와 전혀 다른 나이를 연기하실 때 어떠셨는지.

안성기: 당시에는 살리에르의 분장을 비롯해서 무척 잘 만들어진 인물이었다고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개인적으로 스스로 아쉬운 작품은 배창호 감독과 했던 <흑수선>이다. 보통 15년 안팎의 세월 차이는 헤어스타일, 몸짓으로 커버할 수 있지만, 30년이나 40년이 넘는 경우에는 특수 분장이 필요하다. 그 때가 2003년이었는데, 75세 정도로 분장했어야 됐다. 그런데 같이 연기했던 이미연 씨가 두드러기가 나서 분장이 힘들어서 둘 다 약간의 분장으로 적당히 커버를 하려고 했는데, 감정이 안 실리더라. 그래서 관객들도 당황한 것 같다. 배창호 감독은 영화는 마음으로 보는 것이기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요즘 시대에는 워낙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보니까 생각만큼 영화가 잘 되질 않았다. 또 배창호 감독이랑 했던 <꿈>이라는 영화도 비슷한 경우였는데, 늙고 병색이 서려있는 모습이 연기로는 안 되는 거더라. 요즘은 충분히 가능하겠지만 당시 88년이라 기술적 한계도 있었다. 분장기술도 좋아졌고 주름도 잘 잡혀있는 편이니까, 앞으로 얼마든지 좋은 노역들을 많이 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김성욱: 시간이 많이 지났다. 처음 얘기하셨던 것처럼 이 영화는 같이 보고 집으로 그냥 돌아가 생각하고 싶은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장시간 대화를 나눠주셔서 감사하다. 마지막으로 하고픈 말이 있으시다면.

안성기: 관객여러분은 또 내년에 어떤 영화가 보고 싶으신지. (웃음) 덕분에 저도 보고 싶은 영화 봐서 좋았다. 아트시네마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런 시간, 좋은 영화를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아까 처음에 용감하게 말씀해 주신 분처럼, 모두 같은 생각을 갖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후원에 많이 참여해 주시길 바란다. 영화에 대한 사랑 간직해 주시기 바라고, 영화와 더불어 행복해 지셨으면 좋겠다. (정리: 이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