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운 감독이 추천한 파솔리니의 <마태복음> 시네토크

 

이번 시네마테크 친구들 영화제에 김지운 감독은 무려 열편의 영화를 추천했다 하는데 최종적인 선택작은 예수의 생애를 다룬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의 <마태복음>이 상영되었다. 지난 1월 31일 오후 그의 선택작인 <마태복음> 상영 후 진행된 시네토크에서 김지운 감독은 설마 <마태복음>이 뽑힐 줄은 몰랐다며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냐고 엄살(?)을 떨었지만 일단 마이크를 손에 쥐자 막힘없이 자신의 생각을 들려주었다. 백수 생활을 청산하기 위해 프랑스까지 날아가 <마태복음>을 처음 만났던 순간부터 김지운 감독이 생각하는 시네마테크의 의미까지 거침없는 이야기가 오갔던 그 시간을 전한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이번 시네마테크 친구들 영화제에 김지운 감독은 열 편의 영화를 추천했었다. 나중에 그 영화들만 따로 상영해도 재밌을 것 같은데, <대부 Ⅱ>, <지옥의 묵시록>, 브레송의 <온순한 여인> 등 테마를 가늠하기 어려웠다(웃음). 먼저 <마태복음>을 처음 접했을 때의 이야기를 들려 달라.

김지운(영화감독): 사실 꿈에도 이 영화가 선택될 줄은 몰랐다. 하나님이 나를 시험하는 게 아닌가 생각도 했다(웃음). 기독교인이 아니라 예수님 생애도 잘 모르는데 이 시네토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다. 하지만 주일(일요일)에 이렇게 은혜로운 영화를 보게 돼서 기쁘다. 90년대 초반, 그러니까 백수 7년차에 세상의 더 좋은 영화를 보고 싶어서 세상에서 영화가 가장 많은 곳이 어딘지 물어보니 누구는 베를린이라 하고 누구는 파리라고 하더라. 근데 파리에 가면 베를린도 런던도 갈 수 있다는 생각에 무작정 파리에 갔고 6개월 정도 무전여행을 했다. 근데 마침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카이에 뒤 시네마가 준비한 특별전을 하고 있더라. 거기서 말로만 듣던 파솔리니의 영화를 보게 되었다. 그 때는 이태리말에 프랑스 자막이라서 어떤 말을 하는지 몰랐다. 영화를 본 사람이 마태복음을 그대로 영화로 옮긴거라고 해서 마태복음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잠깐 다른 얘기를 하자면, 내 경험에서 시네마테크의 중요성을 볼 수 있다. 백수 7년차면 가족이 버리고 사회와 세상이 방치하고 버린 존재지 않나(웃음).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며 결정한 것이 세상에서 영화를 제일 많이 상영하는 곳에 가서 내 인생을 바꾸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시네마테크에서 <마태복음>을 본거다.

 

김성욱: 교인이 처음 신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고백하는 것 같다. 영화를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은 어땠나.

김지운: 우리가 살면서 갖는 큰 화두 중 하나가 종교 아닌가. 근데 <마태복음>은 기독교인들이 보면 당혹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비기독교인인 나는 오히려 영화를 보며 신을 영접하는 것 같은 영적 체험을 했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 예수를 신화적인 존재가 아니라 인간적인 모습, 농민, 노동자의 모습을 한 예수의 삶을 보여줬다는 것이 감동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살면서 사람들은 여러 가지 것들에 의지를 한다. 종교라든지, 예술이나, 또는 사랑하는 사람 등. 그리고 어려울 때는 숭고한 어떤 것을 경험하고 싶은 욕구도 생기고, 그런 맥락에서 신의 존재에 대한 심각한 질문도 하게 되는데, 나에게는 현실적으로 예수의 생애를 각인시킨 영화가 <마태복음>이었다. 예수가 그냥 성서에 나오는 신적인 존재가 아니라 우리와 가까이 있고 우리와 함께 호흡하고 생활하며 시대의 아픔과 모순들을 온 몸으로 싸워서 헤쳐 나가는 평범한 사람으로 그려져서 감동이 더 컸던 것 같다.

 

김성욱: 파솔리니가 <마태복음>을 만들 때 자신이 무신론자라는 것을 먼저 밝히고 예수가 신의 아들이란 걸 믿을 수는 없지만 그의 성스러움에 대해서는 믿는다며 이 역설을 영화로 표현하고 싶다고 말한바 있다. 이 영화에서 성스러움의 느낌이 어디서 나올까 고민했을 때 먼저 감동을 받은 부분은 인물들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굉장히 투박한 스타일의 다큐멘터리 같은 화면들이었다. ‘시네마 베리테’라고 불리는 스타일인데, 보통 예수의 생애를 다룬 영화는 매우 극화되어 있었던 반면 <마태복음>은 투박한 화법으로 인물들의 얼굴을 보여주며 이상한 감동을 준다. 감독님은 어떤 면이 인상적이었는지.

김지운: 2000년 전의 이야기를 마치 기록영화처럼 다룬 것이 인상적이었다. 제자들을 한 사람씩 만날 때 그 사람들의 표정을 보여주는 장면 등에서 파솔리니의 특징들이 나온다. 핸드헬드나 자연광을 사용하는 것이라든지, 현지에 가서 촬영하는 것, 그리고 비전문배우들을 기용한다든지 하는 것들 말이다. <마태복음>은 파솔리니의 이런 특성을 다 갖고 있는 영화 중 하나이다. 그리고 기교를 부리지 않고 무덤덤한 표정으로 상대를 응시하는 평범한 표정에서 파솔리니가 민중에 대해 갖고 있는 애정이 많이 담겨 있다고 본다. 예수를 연기한 사람의 경우도 그냥 대학생 같다. 평소 예수에 대해 생각하는 권위적인 모습과 다른 것 같다. 무척 곤두서있고 예민해 보이기까지 하지만 어린아이와 가난한자들, 병든 자들에게는 따스한 미소를 보인다. 이런 것에서 파솔리니의 시각이 나타나는 듯하다. 우리는 과학적인 태도로 삶을 살아가지만 숭고하고 신성한 순간을 경험하고 싶은 욕구가 있고 이를 통해 삶의 힘을 얻기도 한다. 그런데 <마태복음>에서는 예수가 설명 불가능한 존재가 아니라 납득 가능한 존재로 그려지기 때문에 현실과 와 닿는 느낌이 있다.

 

관객1: 고전영화들이 감독님 영화세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저를 포함한 영화 학도들이 현대가 아닌, 고전영화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게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듣고 싶다.

김지운: 나는 사실 현대영화의 매력에 빠져 있다가 나이가 든 뒤 고전영화를 찾아서 보게 된 경우다. 고전영화를 보면 놀랄 때가 있다. 지금까지 새로운 형식, 새로운 감각, 새로운 미적 의식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이미 존재해온 것들이더라. 이를테면 얼마 전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를 다시 봤는데 그렇게 시종일관 쿨한 무정부주의적인 감성을 보여주는 영화를 현대에서는 찾기가 어렵더라. 그 사람들의 ‘쿨’은 어떤 심연을 안고 있는 ‘쿨’이라서 현대 영화가 이런 ‘깊은 쿨함’을 보여줄 수 있을까란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고전을 보면 기술이전에 영화의 순수한 형태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나도 미장센을 채워 넣고 이쁘게 하는 것들을 고민하다 고전영화를 보며 영화의 가장 기본적이고 순수한 상태가 주는 감동을 뒤늦게 깨닫는다. 그 당시 영화를 만든 사람들에게는 영화가 어떤 매체고 영화를 통해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를 고민한 지점들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그런 것들이 나에게도 고민거리를 던져준다. 우리는 이미 지나온 것들을 보기 때문에 가볍게 생각하면 ‘지금 다 있는 거 아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고민의 결을 보는 것이 가장 큰 공부일 것이다. 영화의 본질은 무엇인가. 영화를 가지고 뭘 고민해야 할 것인가를 종종 잊어버리는데 고전 영화가 이런 질문들을 다시 생각나게 해준다.

 

관객2: 특히 이탈리아 출신 감독들의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것들이 많다. 비스콘티, 안토니오니, 펠리니, 베르톨루치 들의 영화는 어려운 시기에 마치 방부제처럼 그 시기를 버텨내게 하는 힘으로 작용했다. 시네마테크가 최근 처한 상황도 어렵다. 진보적 성향의 김지운 감독님이나 프로그래머님이 이 어려운 시기를 버텨내기 위한 작전이 있으면 들려 달라.

김성욱: 작전이라기보다는 마음의 기준점을 잘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좋은 영화를 머리로 보는 게 아니지 않나. 선동이 필요한 문제가 아니라 생각한다. 몇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다. 이를테면 시네마테크의 주인이 누군지를 물어야 한다. 영진위가 시네마테크를 공모한다는 것은 자기들이 주인이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하지만 시네마테크가 진짜 그들이 주인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가. 그럴 권리가 있는가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고 본다. 시네마테크의 진짜 주인은 누구일까를 고민해야 한다. 그 질문과 마주해서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해야 할 것이다. 나는 김지운 감독이 진보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네마테크의 친구인 감독들은 매우 보수적이다. 많은 사람들이 폐기 처분한걸 다시 보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옛날 것들을 끌고 와서 가치를 따지는 거다. 그 가치들을 무너뜨리고 과거는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진보적인 사람들이다. 반면 소수의 사람들과 모여서 마음의 잣대를 정하는 것이 정말 보수적인 것 아닌가. 영화를 보며 영화에 스며든 그 상태로 생각을 하고나면 행동의 답이 각 개인에게 나올 거라고 생각한다. 그때 하는 행동들이 의미가 있을 것이다.

김지운: 사람은 불변하는 것에 의지를 하게 되는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도 변하고 좋아하는 음악도 변하고 다 변해간다. 하지만 절대 불변하는 것이 신적 존재이고 종교성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어려울 때 종교를 믿고 신을 찾는 것이 아닐까. 그런 맥락에서 내가 시네마테크에서 본 좋은 영화들이 내가 어렵고 힘들고 흔들릴 때 신앙처럼 작용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게 나만의 상황은 아닐 것이다. 이것이 시네마테크에 대해 내가 갖고 있는 현실적인 의미라고 생각한다. 나에게는 성소고, 인생에 대해 고민하는 공부방이고 도서관이다. 영화의 출신성분을 따진다면, 유학파도 있고, 현장파도 있고, 전문적 교육을 받은 사람들도 있다. 나의 경우는 분류하자면 ‘시네마테크파’다. 어두운 극장에서 스크린을 응시하며 저런 영화를 만들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시네마테크의 중요성을 현실적으로 느낀다. 어떤 형태로든 시네마테크는 존재해야 한다. (정리: 김보년)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댓글을 달아 주세요